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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귀무쌍-47화 (42/110)

47-삼인행 필유아사(三人行 必有我師) (1)

47-삼인행 필유아사(三人行 必有我師) (1)

차가운 바람이 불어 나뭇가지를 흔든다.

방금 전까지 붙어있던 잎사귀 하나가 앙상한 나뭇가지의 품을 떠나 어디론가 날아간다.

나뭇가지는 나뭇잎을 낳았으되, 그것이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다.

“······.”

어두운 밤, 추이와 오자운은 패도회의 장원을 둘러싸고 있는 높은 담벼락 위에 섰다.

이글거리는 횃불이 장원 곳곳을 밝히고 있는 너머로 수많은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상중(喪中).

패도회에서는 장례식이 거행되는 중이었다.

지금 돌아다니는 이들은 모두 외부에서 온 조문객들이다.

오자운이 담벼락 바깥에 있는 흰 조의(弔意) 화환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패도회의 누가 죽은 모양이군.”

“누가 죽었든 간에, 사람이 많으면 좋은 일이지.”

추이는 조문객들이 이루고 있는 장사진 너머를 바라보았다.

사람이 많으면 섞여들어가기 편하다.

조용한 침입을 계획하고 있는 습격자의 입장에서는 그렇다.

횃불 너머 안쪽의 장원으로 향하는 길.

칼을 찬 패도회의 무인들이 굳은 표정으로 서 있는 것이 보인다.

그들은 조문객들의 신원을 꼼꼼하게 확인한 뒤에야 안쪽에 마련되어 있는 장례식장으로 안내하고 있었다.

오자운이 추이에게 물었다.

“조문객들 사이에 섞여 들어가는 것이 가능하겠나? 신원 조회를 꼼꼼하게 하는 것 같은데.”

그가 걱정할 만했다.

패도회에 조문을 온 조문객들 중에는 소관의 경비대장 원월의 얼굴도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아마 자신이 통과시킨 누군가가 패도회에서 참사를 일으킨 것이 아닐까, 지레 켕기는 점이 있어서 조문을 온 모양이었다.

추이는 어깨를 으쓱했다.

“본래 상가(喪家)에서는 기름으로 볶고 지지거나, 열기가 남아있는 음식을 내놓지 않지. 그러니 필시 식은 밥과 편육을 쓸 것이야.”

“편육이라. 도축업자로 위장해서 잠입할 생각인가?”

“남궁세가에서는 그렇게 했었지.”

“백정도 좋지만, 내가 다른 수가 있다네. 조금 더 확실한 방법이지.”

오자운은 자신이 화산파의 추격을 뿌리칠 때 썼던 방법 하나를 내놓았다.

그것을 들은 추이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거렸다.

“그 또한 괜찮은 수로군.”

“한 수 배웠지?”

씩 웃는 오자운의 얼굴을 보자 자연스럽게 옛날의 일이 떠오른다.

회귀하기 전, 오자운과 이런 식으로 많은 관문을 돌파했던 추억이 새삼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리고 지금 추이는 또다시 오자운을 통해 한 수를 배우려 하고 있었다.

그때보다 훨씬 더 젊고 건강한, 그리고 이렇게 미소지을 줄도 아는 옛 스승을 통해서 말이다.

*       *       *

“똥 퍼~”

패도회의 뒷문.

남루한 행색의 두 남자가 어깨에 짊어진 장대 밑으로 두 개의 두레박을 덜렁거린다.

문을 지키던 위사들은 눈살을 찌푸렸다.

“뭐냐?”

“똥 푸십시오, 똥.”

큰 키의 남자가 넉살 좋게 말했다.

위사는 흘끗 고개를 돌렸다.

“······.”

조문객들이 많아 변소에는 똥이 넘쳐난다.

술과 고기를 양껏 먹은 이들이 빈번하게 오줌 똥을 싸는 바람에 원래라면 며칠은 너끈히 버틸 뒷간이 범람 직전인 것이다.

급하게 진행된 장례식이라서 그런가, 이런 하잘것없고 미미한 것까지는 미처 신경을 쓰지 못했다.

위사는 눈앞의 두 남자를 대충 훑어보았다.

머리는 산발에 얼굴에는 잿가루와 흙먼지가 덕지덕지 묻었다.

앞서 몇 집을 돌고 온 듯, 이미 옷에 똥물이 여기저기 튀어있었고 고약한 냄새도 난다.

장대 끝에 늘어져 있는 양쪽 두레박의 바닥에는 미처 마르지 않은 똥오줌이 고여서 역한 악취를 뿜고 있었다.

위사들은 코를 감싸쥐며 표정을 구겼다.

“너무 가까이 오지 마. 좀 떨어져라.”

“그래도 몸 수색을 받아야 하니깐······”

“됐어, 됐어. 얼른 들어가.”

“감사합니다-”

“냄새가 심하니 그늘진 곳으로만 다녀라. 가능한 손님들 눈앞에 띄지 말고.”

위사들은 똥을 푸러 온 두 남자를 제대로 살펴보지 않았다.

몸수색은커녕 가까이 가는 것조차도 꺼려하는 기색.

그 덕분에 두 남자는 패도회의 장원 안으로 수월하게 진입할 수 있었다.

똥 두레박을 짊어진 그들은 바로 추이와 오자운이었다.

“······.”

추이는 패도회의 내부를 쭉 훑어보았다.

몇몇 위사들이 경계를 서고 있는 너머로 조문객들이 술을 마신다.

하나같이 비단옷을 입고 있는 이들이었다.

높은 담벼락 안쪽에는 다닥다닥 모여있는 건물들.

그 너머로 커다란 호수와 그 위를 가로지르는 몇 개의 다리가 보인다.

다리 너머에는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섬이 있었고 그 위에 또다시 몇 개의 높은 누각들이 솟구쳐 있었는데 누각 아래쪽에는 물안개가 낀 것처럼 뿌옇다.

조문객들은 동쪽의 다리를 통해 그 누각으로 들어갔다가 서쪽의 다리를 통해 나오고 있었는데 꼭 지정된 경로로만 움직일 수 있는 것 같았다.

마치 섬 안쪽에 진법(陣法)이라도 펼쳐져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때.

“이봐.”

지나가던 한 무사가 코를 감싸쥐고는 오자운을 흘겨보았다.

“냄새나니까 저 건물 뒤쪽으로만 다녀라. 손님들이 불쾌해하시면 큰일이니.”

“예예. 그럼요.”

"빨리 꺼져."

오자운은 얼른 고개를 숙이고는 총총걸음으로 뛰어가 그늘로 녹아들었다.

그리고는 추이를 돌아보며 말했다.

“어때. 백정보다 대우가 더 좋지?”

“과연 그렇군.”

추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똥 푸는 사람은 외지고 그늘진 곳으로 다녀도 아무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다.

다른 사람들이 말을 섞지 않는 것을 넘어 아예 쳐다보기조차 싫어하기 때문이다.

백정은 피 냄새를 가릴 수 있는 데다가 어딜 가도 천대받는 직종이기에 위장이 수월했는데, 똥 푸는 일은 그보다도 훨씬 더 장점이 많았다.

오자운은 코웃음쳤다.

“웃기는 일이지. 다른 이들의 고혈을 쥐어짜고 그 위에서 패악질을 일삼는 놈들이 어찌 똥을 더러워하는가. 자신들이 똥보다도 한참 못하다는 사실을 알기나 하는······”

“됐고.”

추이가 오자운의 설교를 끊었다.

“잠입은 했는데, 변수가 하나 있을 것 같다.”

“장강의 수적 말인가?”

“그렇다. 천두 해백정. 그녀가 패도회를 돕기라도 한다면 일이 귀찮아진다.”

패도회주 도막생과 장강수로십이채의 천두 해백정.

이 둘이 현재 어떤 사이일지를 알아야 한다.

추이는 똥통과 똥지게를 추스르며 말했다.

“해백정이 패도회의 일을 관망한다면 일이 쉽겠지만, 만약 그 여자가 패도회와 협력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일이 번거로워지겠지. 둘 다 나에게 원한이 있을 테니까.”

“일을 벌이기 전에 둘의 관계가 지금 어떤지를 알아보면 되겠군. 어떻게 알아봐야 할까.”

오자운의 고민을 들은 추이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모르면 물어봐야지.”

“물어봐? 누구한테?”

그러자 추이는 오자운을 바라보며 말했다.

“삼인행 필유아사(三人行 必有我師)라.”

“······?”

오자운은 미간을 찡그렸다.

‘삼인행 필유아사’란 ‘세 명이 길을 가면 그 가운데 반드시 나의 스승이 될 만한 사람이 있다’는 뜻.

오자운은 물었다.

“그 말을 왜 지금 하나?”

“그것은 지금 우리가 둘이기 때문이지. 모르는 게 많은 둘. 그리고······”

이윽고, 추이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뒷간을 향해 걸어오고 있는 패도회의 무사 하나를 바라보았다.

“저기. 아는 것 많은 세 번째가 오는군.”

그는 추이와 오자운이 모르는 것을 상세히 알려줄 스승이 될 것이다.

*       *       *

패도회의 이급위사(二級衛士) 황춘.

그는 별명이 ‘황금충’일 정도로 금붙이를 좋아하는 자였다.

황춘은 금붙이 장식이 되어있는 칼을 허리에서 풀러 나무벽에 기대어 세우고는 측간의 문을 열었다.

삐걱-

측간의 나무문이 요란한 소리를 냈다.

더러운 널빤지 바닥 중앙에 발을 디딜 수 있는 발판 두 개, 그리고 그 사이로는 시커먼 구멍이 보인다.

“어휴, 쌀 뻔 했네.”

황춘은 서둘러 피풍의 자락을 들추고는 바지를 벗었다.

“끙- 낮에 먹은 탁주가 덜 데워져서 그런가. 배가 어째 싸륵싸륵······”

그리고는 아래를 향해 뻥 뚫려있는 측간 구멍과 자신의 똥구멍을 마주보게 했다.

뿌직-

배에서 금방 신호가 온다.

풍덩-

저 아래에서 똥이 똥물에 빠지는 소리가 났다.

“휴우-”

황춘은 뒷간의 나무틀 위에 쪼그려 앉은 채로 긴 숨을 내쉬었다.

풍덩- 풍덩- 풍덩- 쪼르르르르······

급한 볼일부터 덜 급한 볼일들까지를 연달아 처리하고 나니 비로소 딴 생각이 난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 혓바닥을 잘라놨던 놈들한테서 수금 들어올 때가 됐는데.”

일전에 그는 패도회주의 명을 받아 객잔에 있던 상인들 몇몇의 혓바닥을 잘랐던 적이 있었다.

참고로 그때 그에게 혓바닥을 잘렸던 자들 중 하나가 자기 처가에서 하는 포목점의 맞은편에 있던 경쟁 포목점의 점주였다.

그래서 황춘은 더더욱 악랄하게, 기어코 그의 혀를 끊어놨던 것이기도 하다.

“이걸로 마누라가 한층 더 살가워지겠구만. 다음 중추절에 장인어른 찾아뵐 면도 섰고.”

황춘은 피식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저번에 객잔에 있던 놈들의 혀를 자르는 것으로 위신을 세웠으니, 이제 일대에 소문이 쫙 퍼졌을 것이다.

한동안은 인근 상인들에게 공짜술, 공짜밥은 물론이요 용돈까지 두둑이 받아 챙길 수 있으리라.

“한동안은 외근 위주로 돌아야지. 수금 좀 바짝 해다가 집도 고치고 수레도 바꿔야······”

황춘은 희망찬 미래를 그리며 손을 뻗었다.

벽 한켠에 쌓여있는 새끼줄을 찾기 위함이다.

그러나.

더듬- 더듬-

뒷간 구석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뒤처리용 새끼줄이 다 떨어진 것이다.

“에이 씨······”

황춘은 뒤처리할 물건이 없자 이를 악물고 욕을 내뱉었다.

뒷간으로 뛰어와 급한 볼일을 해결했는데 뒤처리할 물건이 없다면 사람이 당황하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 아니겠는가.

‘가만있자. 뭘로 닦아야 하나?’

뒤처리를 할 새끼줄이나 목봉도 없고 바깥에 있는 동료들을 소리쳐 부르자니 그것도 쪽팔린다.

더군다나 변소는 멀고 외진 곳에 있어서 정말 고래고래 소리지르지 않으면 와줄 사람도 없었다.

황춘은 자신의 피풍의 자락을 조금 찢어내 쓸지 말지 진심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바로 그 순간.

스윽-

황춘은 밑에서 무언가가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뭐야?”

밑을 보니 깊은 똥구덩이 속의 어둠만이 눈에 들어온다.

‘이상하다? 분명 뭔가 허연 게 스쳐 지나갔는데?’

뒷간 밑의 똥물가에는 쥐들이 많다.

아마 그것들 중의 하나가 아닐까? 하고 황춘은 대충 생각했다.

스스스스스······

또다시 허연 것이 황춘의 시야 한쪽에서 어른거렸다.

그때까지도 황춘은 뒤처리를 할 뭔가를 찾느라 아래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어?”

겉옷 자락을 찢던 황춘의 시야에 그 허연 것이 제대로 들어왔다.

변소 안의 깊은 구멍에서 불쑥 튀어나온 것.

그것은 바로 창백한 손바닥이었다.

“헉!?”

황춘은 너무 놀라서 소리도 내지 못했다.

턱-

구멍 아래에서 올라온 그 하얀 손은 그대로 황춘의 발목을 붙잡았고.

“으아악!?”

그대로 뒷간 밑의 어두운 구멍 안으로 끌어내렸다.

···풍덩!

뒷간 안에는 다시 고요한 정적만이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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