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합(合) (2)
46-
패도회주 도막생.
세간에서는 그를 가리켜 거력패도(巨力覇刀)라는 별호로 부른다.
무위는 능히 일성(一城)의 패자를 자처할 만하며, 젊었을 시절에는 하북팽가의 도왕(刀王)과 호적수로 통했을 만큼 대단한 걸물이기도 했다.
그리고 도막생이 유명한 것 하나가 또 있었다.
바로 지극한 부성애(父性愛)였다.
도막생은 아들인 도좌윤을 끔찍하게 아끼기로 소문이 나 있었는데, 그것은 자신부터가 사대 독자로 귀하게 컸고 또 오대 독자로 겨우 얻은 도좌윤이 늦둥이에 칠삭둥이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일까, 방금 전까지 도좌윤의 비참한 말로를 조롱하던 술꾼들은 숨소리 조차도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있었다.
까딱했다가는 도막생의 대도(大刀)에 목이 달아날지도 모르는 판국이니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나오지 않겠다면 좋다.”
도막생의 태도가 무언가 이상했다.
그는 객잔 안에 누군가가 숨어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여기 있는 놈들을 하나하나 다 죽이다 보면 나오겠지.”
도막생의 말을 들은 패도회의 무사들이 칼을 뽑아들고 객잔 안을 포위했다.
이제 객잔 안의 술꾼들은 칼침의 그물 안에 갇힌 피라미들과 같은 신세가 되었다.
한편. 오자운은 그런 패도회의 무사들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었다.
이윽고, 그는 옆에 있던 추이를 향해 눈짓했다.
“아무래도 들킨 모양인데. 이쯤에서 뒤엎는 게 낫지 않을까?”
“······.”
하지만 추이는 매실만 오독오독 씹고 있을 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오자운은 황당하다는 듯 입을 반쯤 벌렸다.
이런 상황에서 어찌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을 수가 있단 말인가?
“이봐. 배짱이 두둑한 것은 잘 알겠지만······ 우리가 나가지 않으면 무고한 이들이 죽어.”
“진정해라.”
추이는 오자운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는 시큰둥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우리를 찾아온 게 아니다.”
“······?”
오자운이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드르륵-
2층에 있던 누군가가 의자를 끄는 소리가 들렸다.
“패도회는 손님을 시끄럽게도 맞이하는구나.”
몸을 일으킨 이는 한 명의 여인이었다.
다만 머리를 남자처럼 짧게 자르고 피부가 햇볕에 그을려 있어서 일견 보기에는 곱상한 미소년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녀는 콧잔등을 가로지르는 칼자국을 씰룩이며 조소했다.
“불쾌해할 쪽은 나인 것 같은데, 이런 식으로 적반하장이라니. 황당하기 짝이 없군.”
“너는 누구냐? 이곳에는 왜 왔지?”
도막생이 짧은 머리칼의 여인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러자 여인은 황당하다는 듯한 반응이다.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잡으러 왔나?”
“장강에서 온 수적인 것은 알고 있다. 부차루에서 내 아들이 신세를 졌다지?”
“부차루? 뭔 소리냐 그게?”
여인이 눈살을 찌푸리자 도막생은 이를 뿌득 갈았다.
“모른 척 하지 마라! 내 아들을 불구로 만든 놈이 너잖냐!”
도막생의 칼이 뽑혀나왔다.
그는 무시무시한 기세로 칼을 휘둘러 아래에서 위로, 대각선의 반원을 그려냈다.
콰-콰콰콰콰콰쾅!
높은 객잔 건물이 통째로 쪼개졌다.
하늘로 뻗어 나가는 무시무시한 참격에 놀란 술꾼들 몇이 깜짝 놀라 난간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하지만 2층 난간에 서 있던 여인은 조금도 놀란 기색이 아니었다.
“거력패도라······ 과연 명불허전이로군. 하지만 그게 뭐?”
그녀는 허리춤에 두 자루의 칼을 빼들었다.
그것은 일반적인 칼이라고 하기에는 짧았고 단도라고 하기에는 길었다.
각각 적색과 청색을 띤 두 개의 검신이 그녀의 양손에서 빛을 번뜩였다.
까가가각! 따앙!
도막생은 칼을 들어 자신의 목을 노리고 날아드는 두 줄기의 검기를 막아냈다.
그 틈을 타 난간에서 뛰어내린 여인이 도막생의 앞에 섰다.
“나는 장강수로채의 천두(千頭) ‘해백정(亥白丁)’이다.”
“······!”
그 말에 도막생의 두 눈이 커졌다.
장강수로채에는 총 열두 개의 채(寨)가 존재한다.
이 채는 대략 일천 명 정도의 수적들로 구성되며, 열 명의 수적을 통솔하는 이를 ‘십두(十頭)’, 백 명의 수적을 통솔하는 이를 ‘백두(百頭)’, 그리고 천 명의 수적을 통솔하는 이를 ‘천두(千頭)’라 칭한다.
그리고 열두 개의 채를 통솔하는 열두 명의 천두들 위에는 채주(寨主) 하나만이 존재한다.
“······.”
도막생은 침음을 삼켰다.
지금 눈앞에 있는 이는 장강수로십이채의 열두 정점들 중 하나인 천두 계급, 그 중에서도 가장 신비롭다고 알려져 있는 ‘해백정(亥白丁)’인 것이다.
도막생이 말했다.
“몰랐군. 소문의 해백정이 여자일 줄이야.”
“알았으면 칼 집어넣지?”
“그럴 수는 없지. 제아무리 뭍의 법도를 모르는 장강의 수적이라 해도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 내 아들을 그 꼴로 만들어 놓은 것은 절대로 그냥 넘어갈 수 없다.”
“아까부터 무슨 헛소리인지 모르겠군. 나는 부차루가 불타던 때에 이곳에 없었다. 여기서 한참 떨어진 객잔에 머물고 있었지. 그 주변 사람들을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아라.”
“······?”
아무래도 패도회주 도막생과 장강수로채의 천두 해백정은 무언가를 오해하고 있는 듯싶다.
도막생이 물었다.
“그렇다면 그대는 이곳에 왜 왔는가?”
“내 부하를 죽인 놈을 잡으러 왔다.”
해백정. 그녀는 살기어린 눈으로 도막생을 쏘아보았다.
“내 밑에 있던 백두 하나가 공금을 몰래 빼돌려 패도회의 폐기 몇을 샀다고 하더군. 내 손으로 직접 처벌할 생각이었는데 웬 쌩뚱맞은 놈에게 죽었다길래 확인차 온 것뿐이다.”
“그럼 내 아들과는?”
“무관계다. 다만 폐기들을 판 놈이 누구인지, 산 놈이 누구인지 정확히 듣기 위해 며칠 전에 한번 만나 이야기를 나눴을 뿐.”
해백정은 며칠 전 도좌윤을 만나 폐기들을 누구에게 팔았는지, 장강수로채의 누가 그녀들을 사갔는지를 물어봤던 적이 있었다.
아마도 도막생은 그 때문에 장강수로채에서 자기 아들을 건드렸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윽고, 오해가 어느정도 풀린 도막생은 칼을 등 뒤로 넘겼다.
“그것이 사실인지 조사해볼 것이오.”
“마음대로 해라. 다만, 내 말이 사실일 경우에는 어떻게 할 셈이지?”
“그쪽의 무죄가 밝혀지게 되면 내 정식으로 사과하리다. 그리고 우리 패도회의 특빈(特賓)으로 대우하도록 하겠소. 또한 그대의 활동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도록 하지.”
“좋아. 나는 정말로 무고하니까. 이렇게 패도회의 협조를 얻게 되었으니 흉수를 찾기가 더 수월해지겠어.”
해백정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들고 있던 쌍검을 허리춤에 넣었다.
아무래도 그녀 역시 패도회주 도막생과 그 부하들을 한꺼번에 상대하는 것은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이윽고. 도막생과 해백정이 객잔을 나선다.
패도회의 무인들 역시도 칼을 허리춤에 집어넣으려 했다.
“잠깐.”
도막생이 그런 부하들을 만류했다.
그는 살기로 인해 벌개진 눈을 가늘게 떴다.
그리고는 부하들에게 짧은 명령을 내렸다.
“아직 칼을 집어넣지 마라.”
도막생의 원한에는 아직 불이 꺼지지 않았다.
“조금 전에 객잔에서 내 아들의 흉을 봤던 놈들의 혀를 모두 잘라오도록.”
그 말에 패도회의 무사들이 집어넣으려던 칼을 다시 빼 들었다.
객잔 곳곳에서 피와 함께 비명소리가 난무하기 시작했다.
도막생은 그 처참한 광경을 끝까지 지켜보고 난 뒤에야 고개를 돌렸다.
옆에 있던 해백정이 그 모습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백주대낮에 무고한 백성들을 저리 괴롭혀도 되는 건가?”
“장강의 수적에게 들을 말은 아니군. 뭐, 상관없소. 이 일대는 나의 소관. 아비가 아들의 명예를 지켜주고 설치(雪恥)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 아니겠소?”
도막생의 대답을 들은 해백정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지만 그녀는 부하를 죽인 흉수를 꼭 찾아내 죽여야 하는 상황, 그러기 위해서는 이 근방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 패도회의 협조가 필요했다.
‘삼칭황천이라고 했나. 그 자식······ 반드시 잡아 죽인다.’
해백정은 본디 자신의 부하였던 백두 공손합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그가 공금을 횡령하여 그 돈으로 뭍의 폐기들을 사와 엽색 행각을 벌인다는 보고를 받았을 때부터였다.
그녀는 언젠가 공손합의 파렴치한 행각을 공표하고 정식으로 그를 처형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공손합은 웬 뜨내기에게 당해 허무하게 죽어버렸다.
장강의 수적들에게 있어 물 위에서 전사하는 것은 거룩하고 신성한 것.
공손합은 횡령한 돈으로 오입질이나 하다가 걸려 치욕스럽게 처형당해야 하는데, 하필 물 위에서 전사하는 바람에 명예로운 죽음을 맞이해 버렸다.
그래서 공손합의 부하들은 아직도 자신의 전 두목이 고결한 최후를 맞이했다며 가슴을 쭉 펴고 다니고 있는 실정이다.
그 점이 해백정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어찌되었든 간에 부하가 죽었으니 두목이 나서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공손합 따위의 죽음에 복수를 하겠다며 나서야 하는 이런 상황 자체가 그녀에게 있어서는 심각한 짜증거리였다.
그냥 횡령범, 오입쟁이로 공표하고 목을 잘라버렸으면 간단한 것을 말이다.
‘하아- 엄청 귀찮네 이거. 채주님의 특별 명령만 아니었어도.’
해백정은 미간을 구긴 채 도막생을 따라 객잔 밖으로 나갔다.
‘근데 채주님께서는 왜 그 삼칭황천인지 뭔지 하는 놈을 산 채로 잡아오라고 하신 거지? 그것도 나 혼자만 나가서······.’
자연스럽게 삼칭황천이라는 고수에게 관심이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 * *
도막생은 자신이 원하는 것은 기어이 갖고야 마는 사내였다.
아들의 불행에 고소함을 맛봤던 혓바닥들을 모조리 잘라 손에 쥔 다음에야, 그는 객잔을 떠났다.
패도회의 무인들은 그제야 칼을 집어넣고 객잔 밖으로 나갔다.
“아이고······ 아이고······”
“의, 의원 좀 불러주시오!”
“사람 죽네! 사람 죽어! 허이구!”
패도회가 떠난 곳에는 온통 신음과 통곡만이 남아 흐를 뿐이다.
한편.
추이와 오자운은 이 모든 광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았다.
오자운이 추이의 팔을 툭 쳤다.
“이곳에서는 자네가 나보다 인기가 좋군 그래.”
“······.”
오자운을 쫓는 집단은 화산 하나지만, 추이를 쫓는 집단은 벌써 셋이다.
남궁세가. 그리고 장강수로채와 패도회.
벌써 셋이나 되는 굵직한 집단들이 추이를 찾아 눈에 불을 켜고 있는 것이다.
이윽고, 오자운이 말했다.
“잔도까지 수월하게 가려면 귀찮은 추격대는 하나라도 덜어내야겠지?”
“······.”
추이는 잠시 생각했다.
이제 패도회는 쓸모를 다했다.
호북성에 들어올 때는 도움이 됐으나, 호북성을 나갈 때에는 방해가 될 것이다.
“······.”
추이는 잠시 파시의 기녀들을 떠올렸다.
그리고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자운의 입꼬리가 빙긋 휘어졌다.
하지만 고통에 신음하고 있는 객잔 안의 사람들을 향한 그의 눈은 조금도 웃고 있지 않았다.
“고기도 먹었고 술도 마셨겠다. 그새 몸이 늘어질 것 같군.”
“그러면 몸을 풀어야지.”
“이따가 밤운동이나 하세.”
추이의 생각이 바로 오자운의 생각과 같았다.
꽤나 잘 맞는 합(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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