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월담 (5)
44-
사망매화 오자운.
그는 나무뿌리 아래로 바싹 마른 솔잎을 끌어모아 덮은 채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모닥불이 꺼지고 숯에서 나던 연기마저도 사그라들었지만 오자운은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
몇날 며칠 동안 제대로 자지도, 먹지도 못했다.
무림맹의 개들을 피하며 입은 내상과 흉터들이 밤이슬에 닿아 곪아간다.
두통과 함께 고열이 올라왔고, 구역질과 속쓰림이 온통 뱃속을 헤집고 있었으며, 발은 이미 검고 푸르게 변해 제 색깔인 곳을 찾기가 힘들 정도였다.
···끔뻑!
찰나의 순간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오갔다.
잠깐 잠에 빠졌던 것일까, 아니면 죽었다가 소생한 것일까, 아니면 처음부터 쭉 제정신이었던 것일까.
꿈과 현실, 이승과 저승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오자운은 아내를 마주쳤다.
처(妻) 강아.
원래도 하얗던 얼굴이 더더욱 하얗게 변했다.
순하게 내려가 있었던 눈꼬리는 노기로 인해 하늘로 솟았고 그 곱던 머릿결은 바늘처럼 꼿꼿하게 곤두서 있었다.
강아는 입에서 피를 토하며 말했다.
‘당신과 혼인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독살당하지 않았을 것이오.’
오자운은 달려가서 아내를 끌어안고자 했으나 그와 아내 사이의 거리는 아무리 달려도 좁혀지지 않았다.
강아는 원독 어린 표정으로 한동안 오자운을 노려보던 끝에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가지 마오, 가지 마오, 부인! 가지 마시오.’
오자운은 애타게 부르짖었으나 산 자와 죽은 자의 간극은 절절한 마음만으로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때, 목이 터져라 부르짖는 오자운의 뒤로 또 하나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차갑고 이지적인 인상의 미녀.
가늘게 뜬 눈에서는 북풍보다도 더한 냉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맹영 사매. 그녀는 초막에서 보았던 마지막 모습과 같이 반라의 모습으로 서 있었다.
‘사매. 괜찮소? 살아있었구려!’
오자운이 소리쳤다.
그러자 맹영은 대답 대신 자신의 가슴팍을 가리고 있던 옷고름을 풀어헤쳤다.
이윽고, 오자운의 눈앞으로 선명한 칼자국이 드러났다.
희고 보드라운 살갗을 매화꽃 모양으로 파고들어간 깊숙한 흉터.
그곳에서 흘러내린 피가 하반신 전체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당신을 사모하지 말 것을 그랬어요. 아니, 아예 얽히지조차 않았어야 했는데······.’
맹영은 서글픈 표정으로 오자운을 바라본다.
‘사매! 사매!’
오자운은 맹영을 향해 달려갔으나 어느새 둘 사이에는 단장애(斷腸崖)보다도 훨씬 더 넓고 깊은 절벽이 생겨나 있었다.
맹영은 처연한 모양으로 서서 오자운을 기다렸으나 결국 천천히 등을 돌리고 말았다.
‘······.’
오자운은 아내도, 사매도 구하지 못한 채 그저 바보처럼 멍청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그저.
소쩍-
지쳐버린 불여귀(不如歸)의 울음소리만이 어두운 공간 속에 아스라이 울려퍼지고 있을 뿐이었다.
* * *
“······헉!?”
이윽고, 오자운은 눈을 떴다.
살얼음처럼 얇았던 선잠을 차가운 새벽이슬이 깨트렸다.
꺼진 모닥불 속, 타다 남은 장작들과 잿더미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소쩍-
먼 곳에서 망제(望帝)의 넋이 운다.
산짐승조차 오지 않는 어두운 산중에 오직 오자운만이 홀로 남아있었다.
“······.”
오자운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라진 왼팔이 시렵다.
잘려나간 뼈마디가 시큰거릴 때마다 아까 꾸었던 악몽 생각이 났다.
아내 강아, 사매 맹영.
두 여자의 죽음에 얽혀든 자신의 운명은 대체 어떤 파국을 맞이하게 될 것인가.
‘아마도 그리 안락한 마지막은 아니리라.’
무수히 많은 칼침을 맞거나, 두 눈알이 뽑히거나, 머리가 잘려 효시되거나, 그것도 아니면 차가운 강물에 내던져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지금은 아니지.’
오자운은 이를 악물고 몸을 일으켰다.
일모도원(日暮途遠) 도행역시(倒行逆施)라.
갈 길은 멀고 순리는 따르기 어렵다.
문득, 오자운은 불안감을 느꼈다.
‘내가 지금 기다리고 있는 추이란 인물. 그는 대체 어떤 인물인가? 믿어도 좋은 자일까?’
자신의 이름을 추이라 밝힌 그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비밀투성이였다.
사문이 어디인지도, 과거가 어떤지도, 진짜 이름과 신분이 무엇인지도 알 수 없었다.
그저 묵묵히 자신의 앞길을 열어주는 사람.
금방 떠나버릴 것 같으면서도 의외로 꾸준히 옆에 있어주는 존재.
하지만 오자운은 추이를 온전히 믿지 않았다.
비록 그가 자신의 아비를 제사지내주고, 묘의 벌초를 대신 해주고, 추격자들을 물리쳐 주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마교의 인물일리도 없다. 애초에 마교는 내가 무림공적으로 지목되어 쫓기고 있는 것조차 모를 터. 그런 마당에 나를 마중나올 리가 없지 않은가.’
오자운은 추이를 몇 번이나 떠보았지만 추이는 결코 마교에 관련된 그 어떠한 것조차 입에 담지 않았다.
차라리 뭔가 변명이라도 했다면 의심할 것도 없이 떠났을 텐데, 꿋꿋하게 아무런 변명도 설명도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오히려 묘한 신뢰가 가기도 했다.
······하지만 신뢰가 간다는 점에서 오히려 신뢰가 안 가기도 하는 것이 도망자의 복잡한 마음이다.
완전히 의심할 수도, 완전히 신뢰할 수도 없는 양가적인 상황 속에서, 오자운은 추이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을 떠올렸다.
‘반나절 안에 너를 저 성벽 안으로 들여보내 주마.’
너무나도 자신만만하던 그 목소리. 그 표정. 그 태도.
곁에 있노라면 묘하게 의지하게 되는 그 뒷모습에 오자운은 다시 한번 망설였다.
‘저 성벽 안으로 들여보내 주겠다는 것이······ 밀고를 해서 잡혀가게 만든다는 뜻은 아니겠지?’
신뢰가 가다가도 또다시 의심암귀가 고개를 든다.
조용한 숲속의 어둠에 홀로 파묻혀 있으니 더더욱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이다.
‘차라리 추이, 그 자를 죽이고 혼자서 도망칠까? 지금이라도······’
순간 오자운은 자신의 생각에 퍼뜩 놀라 고개를 저었다.
지금껏 자신을 도와줬던 사람에게 이 무슨 끔찍한 생각이란 말인가.
설사 그가 배신자라고 해도 아비의 제전에 죽엽청과 아귀포를 올려 준 은혜를 생각하면 감히 그래서는 안 된다.
게다가 추이는 죽이려고 해도 쉽사리 죽어줄 것 같지도 않았다.
“······.”
오자운은 자신의 칼을 너무도 손쉽게 막아내던 추이의 곤을 떠올렸다.
도저히 뚫을 수 없을 것 같았던 철벽.
아무리 돌을 던져도 파문 하나 일어나지 않는 검붉은 호수.
추이는 바로 그런 느낌이었다.
‘죽이자니 자신이 없고, 혼자 떠나가자니 자신이 없고, 같이 가자니 이 또한 자신이 없구나. 자운아. 오자운아. 너는 이토록 나약하고 못난 인간이었느냐.’
오자운은 탄식했다.
금방이라도 저 어둠 속에서 자신을 노리는 추격대의 칼끝이 빛날지 모르는 일이다.
대나무 숲을 스치는 소슬바람에 그는 숨었다가, 나왔다가, 앉았다가 일어났다가, 누웠다가, 등을 기댔다가, 문자 그대로 전전반측(輾轉反側) 하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오자운.”
어둠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자운은 깜짝 놀라 칼을 뽑아들 뻔했다.
아니, 실제로 뽑아들고 휘두르기까지 했다.
까-앙!
어둠 속에서 피어난 한 떨기 매화꽃이 시커먼 묵죽에 가로막혔다.
오자운의 칼끝 너머로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추이가 서 있었다.
“관문을 뚫었다. 가자.”
그 순간.
오자운은 어둠 너머로 작렬하는 한 줄기의 여명을 보았다.
‘내가 사매를 겁간하고 죽였다고 하더군.’
‘그럴 리가 없지.’
온 세상 짐승들이 그에게 등 돌려도, 이쪽을 바라봐 주는 한 명의 인간이 있는 것이다.
* * *
“왜 우나?”
“안 운다.”
동고공 의원이 점소이 황눌과 나누는 대화다.
물론 이것은 성문을 통과하기 위해 위장한 신분.
그러니까, 원래는 추이와 사망매화의 대화인 것이다.
그들은 어수선한 분위기의 소관을 그냥 통과했다.
깐깐하던 경비대장 원월은 둘을 제지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두었다.
화산파와 무당파의 무인들 역시도 패도회와 얽히고 싶지 않은지 못 본 척 하는 분위기다.
추이와 사망매화는 그물에 걸렸던 물고기가 찢어진 그물코로 나와 푸르른 창해로 도망가듯, 그렇게 거리의 인파들 속으로 섞여들었다.
“······.”
사망매화는 발걸음에 힘을 실었다.
추운 산속에 홀로 있다가 사람들이 북적이는 곳으로 오니 몸이 데워지는 것 같다.
퉁퉁 부어 피가 흐르는 발이 최후의 기력을 쥐어짜내고 있었다.
이윽고, 사망매화는 추이에게 물었다.
“대체 무슨 수를 썼길래 이 삼엄한 소관을 그냥 통과했나?”
추이는 사망매화에게 그간의 일을 간단하게 설명해 주었다.
동고공이라는 의원에게서 통행증과 약초 지게를 빼앗은 뒤, 소관을 통과하여 부차루에서 한바탕 난동을 부린 것까지 모두.
사망매화는 입을 딱 벌렸다.
‘······소관을 통과하기 위해 사파(私派)의 패도회를 건드렸다고? 놀랍구나. 이게 제정신으로 취할 수 있는 계책이란 말인가!’
이런 상황에서 타초경사(打草驚蛇)라, 아무리 그래도 설마 '사(私)'를 건드릴 줄은 몰랐다.
이것은 오자운이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허(虛)였다.
고개를 돌려보니 정말로 저 높은 누각 건물에서 화마가 활활 타오르고 있는 것이 보인다.
저 정도의 규모라면 아마 불이 잡힌다고 해도 이틀 정도는 거리 전체가 어수선해질 것이다.
수많은 경비병들이 정신없이 물을 퍼다 나르고 있는 것을 보며, 사망매화가 말했다.
“자네는 나이도 어려 보이는데 어찌 이런 것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내는가? 분명 누구에게 사사한 것일지언데. 그렇다면 자네를 길러낸 스승은 또 누구란 말인가?”
추이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이것들은 사실 오자운을 따라다니던 시절에 배운 것들이기 때문이다.
무림맹의 천라지망을 뚫고 생사경을 오가는 동안 어깨너머로 체득했던 경험들.
이것들이 지금은 오히려 추이로 하여금 오자운을 가르치게 하고 있었다.
추이는 잠시 옛날의 일을 회상했다.
‘······.’
까마귀들만이 날아다니던 화산파의 동문.
먼지만 수북하게 쌓인 솟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잔잔하게 흘러가던 절강의 물결.
그리고 산중에 흐드러지게 피어났던 붉은 혈매화.
그때 느꼈던,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속마음을, 지금 추이는 입 밖으로 꺼내놓았다.
“받은 만큼 돌려줄 뿐.”
“······?”
사망매화는 추이가 하는 말의 뜻을 알아듣지 못했다.
다만, 지금 이 순간부터 그는 추이를 진심으로 믿게 되었다.
불구경을 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사망매화는 추이에게 포권을 취하며 고개를 숙였다.
“다른 사람의 간난(艱難)을 덜어주는 것을 인(仁)이라 하고, 곤란(困難)에 빠진 이를 구해주는 것을 용(勇)이라 부른다 하지. 자네는 이 모든 것을 갖춘 사람이네. 지난밤 내내 자네를 의심했던 나 자신이 부끄럽군.”
“······.”
추이는 손사래를 쳤다.
파시의 기녀들과 부차루의 기녀들을 상대하며 느꼈던 것이지만, 역시나 영웅놀이 같은 것에는 취미가 붙질 않는다.
이윽고, 사망매화가 물었다.
“그래. 이제부터는 어디로 갈 셈인가?”
그 말을 들은 추이는 다시 한번 과거를 떠올렸다.
옛날, 험한 관문을 돌파하고 나면 추이는 늘 오자운에게 다음은 어디로 가냐며 묻곤 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오자운이 늘상 하던 말이 있었다.
“일단 밥이나 먹으러 가지.”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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