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월담 (3)
42-
호북성의 상징은 무당파이다.
무당파는 구파일방의 한 축을 떠받치고 있는 정도십오주의 일원이자 호북성 최강의 무력 집단이었다.
그 밑으로는 제갈세가가 있었다.
제갈세가는 비록 오대세가에 포함되지는 못했지만 호북성 내에서는 나름대로 큰 위세를 자랑하는 유명한 세가였다.
무당파와 제갈세가는 모두 정도에 속하는 무력 집단.
하지만 호북성에도 꽤나 유명한 사도 조직이 있다.
패도회(佩刀會).
호북성 최강의 사파.
초장현에 근거지를 두고 있는 이들의 위세는 무려 제갈세가와 패권다툼을 벌일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다.
명실공히 호북 사파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이 강력한 조직의 주요 수입원은 인신매매.
큰돈을 벌 수 있다고 어린 여자들을 살살 꼬시거나, 여의치 않으면 납치 유괴마저도 서슴지 않는 이들의 사업 방식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패도회는 먼 지방의 꽃다운 처자들을 반강제로 납치해 와서 기루에서 일하게 하거나, 먼 지역에 팔아넘기는 것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그리고 그 부의 상징이 바로 초장현의 최고 번화가 한복판에 있는 이 ‘부차루(夫差樓)’였다.
높은 누각들로 이루어져 있는 이 화려한 기루에는 전국 각지에서 모인 수많은 기녀들이 술과 웃음으로 포장된 피눈물을 팔고 있었다.
“후후후후-”
한 남자가 부차루의 최상층, 가장 넓고 화려한 방 안에서 조용히 웃는다.
그는 하얀 얼굴에 여리여리한 몸, 아름다운 이목구비를 가진 미남자였다.
도좌윤.
패도회주의 외동아들이자 패도회의 후계자.
그는 일찌감치 자신의 것으로 넘겨받은 부차루에 매일같이 드나들고 있었다.
기루의 경영 상태를 점검한다는 명목이기는 하지만 실상은 새로 들어온 기녀들을 제일 먼저 접하기 위함이었다.
도좌윤은 손에 든 수배서를 한번 팔랑 흔들었다.
“사망매화. 한때는 옥룡공자(玉龍公子)라고 불렸다지? 이 자와 나중에 누가 더 인물이 좋은가?”
그러자 옆에 있던 기녀들이 웃음 지었다.
“당연히 도 공자님이죠.”
“어찌 감히 비교가 되겠습니까.”
“결이 완전히 다른걸요.”
“······.”
기녀들의 아부를 들은 도좌윤은 껄껄 웃었다.
“이 자는 선이 굵직굵직한 게 전형적인 사내대장부 상이고. 나는 선이 여리여리한 게 기생오래비 같지 않은가?”
“저는 도 공자님의 외모가 훨씬 더 좋아요.”
“저두요.”
“저두.”
“······.”
기녀들은 콧소리를 내며 도좌윤에게 들러붙는다.
그때, 도좌윤의 시선이 맨 끝에 있는 기녀 하나를 향했다.
그녀는 어색한 표정으로 쭈뼛쭈뼛 망설일 뿐 아까부터 도좌윤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있었다.
“너. 이름이 뭐냐?”
도좌윤의 지목을 받은 기녀가 얼른 머리를 조아렸다.
“벽리향이라 합니다.”
“표정이 근데 왜 그렇게 어두워?”
그러자 다른 기녀가 도좌윤에게 말했다.
“쟤는 엄마랑 여동생이 멀리 떨어진 장강으로 팔려갔는데, 그게 걱정이 되어서 맨날 표정이 저렇대요.”
“그래? 장강이면 우리 패도회의 관할은 아닌데?”
고개를 갸웃하던 도좌윤은 벽리향이라는 이름의 기녀를 향해 씩 웃어보였다.
“아무래도 아버님이 네 어미와 동생을 장강수로채에 파셨나 보구만. 그럼 뭐, 이제는 끝났다고 봐야지.”
“······.”
벽리향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그게 재미있다는 듯, 도좌윤은 빙글빙글 웃는 낯으로 말을 계속했다.
“지금까지 몸판 돈 쪼개서 상납금 바치느라 고생했을 텐데 참으로 장한 여자들이군. 마지막으로 몸값을 확 땡겼을 테니 우리 쪽에서는 수익이 아주 짭짤하겠어.”
“······.”
“이제 우리 패도회의 손을 떠났으니 별 수 있나. 어디로 팔려가든 간에 거기가 고향이다~ 생각하고 정 붙여야지.”
“······.”
“아, 근데 상대가 장강수로채의 수적들이라 그건 좀 힘들 수 있겠군. 하하하하- 우리도 뭐, 더 이상 손님 받기가 힘들어진 폐기(廢妓)들 위주로 팔아먹기는 하지만, 그놈들은 거기에서도 어떻게든 악착같이 본전을 뽑아낸단 말이지. 참 신기해- 며칠 전에도 한 계집년이 와서 묻기에 비슷한 말을 해줬던 적이 있는데 말이야.”
벽리향의 얼굴은 이제 거의 울 것처럼 변했다.
도좌윤은 그런 그녀의 얼굴을 손으로 턱 붙잡았다.
그러고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인다.
“너도 그 꼴 나기 싫으면 오늘 밤 최선을 다하는 게 좋을 거야. 장강수로채 구경 가고 싶지는 않지?”
커다란 뱀이 몸을 휘감아 오는 듯한 감각.
하지만 벽리향은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는 처지였다.
그녀가 결국 눈물을 떨구는 순간.
···쾅!
옆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뭐냐?”
도좌윤이 벽을 바라보았다.
···쾅! ···쾅! ···쾅!
벽 너머의 복도에서 들려오는 소음은 점점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술상 말석에 앉아있던 호위무사 하나가 말했다.
“옆방 문들이 부서지고 있는 모양입니다. 누가 난동을 부리고 있는가 보군요.”
“어떤 미친놈이?”
도좌윤이 피식 웃었다.
아무리 그래도 설마 자신이 있는 방문까지 부수겠냐는 듯 여유로운 기색이었다.
하지만.
···콰콰쾅!
예외는 없었다.
도좌윤이 있는 방문이 박살나며 한 소년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추이. 시커먼 곤을 짊어지고 있는.
도좌윤의 시선이 추이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이건 또 뭐 하는 거지새끼야? 부차루 이제 아무나 막 들어오네?”
도좌윤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술상의 건너편에 앉아있던 다섯 호위무사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패도육호(佩刀六虎).
도좌윤을 호위하는 여섯 명의 호위무사를 뜻한다.
이들은 하나같이 패도회 내부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강한 칼잡이들이었다.
자신의 앞을 막아서는 다섯 사내를 보며 도좌윤은 투덜거렸다.
“육도(六刀)는 어디서 뭐 하는 거야? 계단 막고 있으라고 했더니.”
“이놈 말이냐?”
추이가 잘린 목 하나를 술상 위로 내던졌다.
텅- 텅- 와르르르-
앞서 송곳에 귀를 맞아 죽었던 칼자국 사내의 모가지가 술병과 안주들 위로 요란한 소리를 내며 뒹굴었다.
“······.”
“······.”
“······.”
“······.”
“······.”
남은 다섯 사내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윽고, 다섯 개의 칼이 뽑혀나온다.
육도(六刀)가 죽었으니 일도(一刀), 이도(二刀), 삼도(三刀), 사도(四刀), 오도(五刀)가 남은 셈이다.
도좌윤이 헛웃음을 지었다.
“저놈 몸에 상처 하나 낼 때마다 은자 한 냥이다. 팔이나 다리를 자르거든 열 냥, 목을 잘라오면 백 냥 준다.”
그 말에 다섯 사내의 눈에서 불이 번뜩였다.
촤촤촤촤촥-
다섯 개의 도가 벼락처럼 떨어져 내렸다.
추이는 곤을 휘둘렀다.
내력과 내력이 부딪치며 충격파가 발생한다.
주변의 집기들이 죄다 부서지며 내력의 조각들이 곳곳에 깊은 상흔을 남겨놓았다.
추이는 턱끝으로 들어오는 칼끝을 피한 뒤 곤을 던지듯 내질렀다.
떠-억!
오도(五刀)의 가슴팍이 뭉개지며 피와 살점이 튀었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꺽꺽거리는 그를 향해 추이는 몸을 한번 빙글 돌렸다.
오도의 가슴팍을 때렸던 곤 역시도 빙글 회전하며 반대쪽 끝이 그의 머리통을 산산조각으로 부숴놓는다.
촤-악!
피분수가 일어 방의 벽면을 온통 빨갛게 물들였다.
근처에 있던 사도(四刀)가 시야를 가리는 피 안개에 당황하는 순간.
푸욱-
추이가 던진 송곳이 그의 미간 사이에 박혀들어갔다.
터억- 퍽!
선 채로 절명한 사도의 어깨를 밟고 뛰어오른 추이가 방 바닥에 마름쇠를 뿌렸다.
“이런 미친!”
“시비 걸러 온 게 아니었군.”
“작정하고 온 살수(殺手)다! 회에 알려!”
일도(一刀), 이도(二刀), 삼도(三刀)가 이를 악물었다.
삼도가 등을 돌려 방 밖으로 뛰쳐나갔다.
패도회에 습격 사실을 알리려는 목적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했다.
마름쇠 때문에 방 바닥에 발을 디딜 공간이 많지 않았고, 또 무엇보다 삼도가 발을 떼자마자 추이가 그를 향해 곤을 던졌기 때문이다.
뻐-억! 쾅!
작살처럼 날아든 곤이 삼도의 등을 꿰뚫고 들어가 심장을 터트린 뒤, 가슴팍을 뚫고 튀어나와 벽까지 부쉈다.
추이는 벽에 박힌 곤을 쑥 뽑아들고는 삼도의 시체를 빼지도 않은 채 휘둘렀다.
···퍽! ···퍼억!
일도와 이도는 엉겁결에 칼을 휘둘렀지만 곤에 꿰인 삼도의 시체만 너덜너덜해질 뿐이었다.
“미친 놈!”
“시체를 방패처럼 써먹어!?”
말은 그리하고 있으나 일도와 이도 역시도 보통 강단의 사내들이 아니다.
그들은 불과 몇 초 전까지만 해도 동료였던 이의 시체를 난도질하며 그 너머에 있을 추이를 공격했다.
그들의 합격술은 꽤나 절묘한 것이어서 추이조차도 단번에 제압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추이는 편한 길을 택하기로 했다.
···퍼억!
추이는 사도의 시체에 박혀있던 송곳을 걷어차 그것을 뽑아냈다.
그리고 곤을 휘두르면서 자연스럽게 송곳의 손잡이 부분을 후려쳐 날려보냈다.
“흐악!?”
바로 도좌윤이 덜덜 떨고 있는 방향으로.
“공자님!?”
일도가 도좌윤을 지키기 위해 몸을 날렸다.
워낙 급박한 상황인지라 일도는 날아드는 송곳을 자기 팔로 막아낼 수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 이도는 추이의 곤을 홀몸으로 막아내고 있었다.
물론, 지금껏 일도와의 합격술로 인해 겨우겨우 동수를 이루던 것을 혼자서 감당해낼 수 있을 리가 없다.
빠-각!
추이는 순식간에 이도의 칼을 두 동강 냈고 내친김에 그의 골통마저 수백 조각으로 깨 놓기에 이르렀다.
이제 남은 이는 팔 부상을 입은 일도 뿐이다.
추이는 묵묵히 그 앞으로 걸어갔다.
일도가 말했다.
“돈을 받고 일하는 것이냐. 아니면 패도회에 원한이 있느냐.”
“둘 다 아니다.”
추이의 대답에 일도는 혼란스럽다는 듯 잠시 입을 다물었다.
이윽고, 일도가 말했다.
“나는 주인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다. 대체 무엇을 해야 주인을 지킬 수 있을지 알 수 없어 혼란스럽구나.”
그는 곧은 시선으로 추이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간절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너는 심지가 곧고 의기가 반듯한 사내로 보인다. 그러니 필시 너처럼 심지가 곧고 의기가 반듯한 사내를 존중할 줄 알겠지.”
“······?”
추이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일도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주인을 위해 일하는 자로서 너에게 죽을 각오를 하고 덤벼들고 싶지만······ 그것이 아무 소용도 없다는 것이 앞선 동료들의 죽음으로 증명되었다. 그러니, 나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죽음을 맞이하고자 한다.”
이윽고, 일도는 추이의 앞에 무릎을 꿇은 채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나는 너에게 대항하지 않고 자결하겠다. 그러니 너의 시간을 아껴 준 나의 최후를 봐서라도 주인만은 살려주기를 바란다.”
동시에. 일도는 칼을 거꾸로 쥐고는 자신의 목을 찔렀다.
쿵-
그 뒤 피를 쏟아내며 그대로 쓰러져 죽었다.
“······.”
추이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는 저 뒤에서 덜덜 떨고 있는 도좌윤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목숨을 걸고 지킬 만한 주인으로는 안 보이는데.”
하지만 남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판단하든 간에 그것은 자기 마음이다.
이윽고, 추이는 곤을 높이 들어올렸다.
그러자 도좌윤이 납작 엎드렸다.
“사, 살려주세요!”
“······.”
“도, 돈 다 드릴게요! 원한이라면 제 아버지한테 푸세요! 저는 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어요! 정말이에요!”
도좌윤은 오줌까지 지리며 애걸했다.
그는 옆에 벗어놨던 전낭에서 은자들과 전표들을 있는 대로 꺼내 추이의 앞에 바쳤다.
“이, 일단 제가 가진 건 이게 다예요! 지, 집에 가면 더 가져올 수 있고요! 다 가져가세요! 다 드,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추이는 조금의 표정 변화도 없었다.
다만 귀찮다는 듯 짧게 대답했을 뿐이다.
“필요 없어.”
필요한 것은 따로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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