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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귀무쌍-38화 (33/110)

38-사망매화(死亡梅花) (3)

38-사망매화(死亡梅花) (3)

남궁율.

그녀는 억새밭이 끝나는 지점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강이 끝나가는 최하류.

그곳에는 높은 바위들이 골짜기를 이루며 서 있고 그 사이사이로 자갈들이 깔려 있다.

자월특작조의 사냥개들이 암초 사이에 끼어있는 배 하나를 발견했다.

“찾았습니다!”

보고는 남궁율의 옆에 서 있었던 비무극에게도 들어갔다.

“보자.”

비무극이 난파되어 있는 배로 다가갔다.

암초에 부딪쳐 걸레짝이 된 배는 간신히 형태만 유지하고 있는 상태였다.

촤악-

무림맹의 무사들이 자갈 바닥 위를 흐르고 있는 수류 사이에서 두 구의 시체를 건져왔다.

“삼칭황천과 사망매화입니다.”

시체가 자갈밭 위에 깔렸다.

검시관들이 두 구의 익사체를 면밀히 조사하기 시작했다.

남궁율은 퉁퉁 불어 있는 시체에게서 눈을 돌렸다.

구역질이 나려는 것을 간신히 참은 채, 그녀가 물었다.

“확실한가?”

자월특작조의 무사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 키의 남자는 칼에 의해 목이 잘렸고, 큰 키의 남자는 둔기에 의해 두개골이 산산조각 났습니다. 둘 다 물 밑 비슷한 위치에 가라앉아 있었던 것으로 보아 한 배 위에서 싸우다가 동귀어진한 것 같군요.”

“······.”

남궁율은 그 말을 듣고 다시 한번 시체를 확인했다.

허옇게 퉁퉁 불은 두 구의 시체.

물속의 바위와 자갈들에 온통 부딪치고 쓸린데다가 하류에 서식하는 큰 물고기들에게 뜯어먹혔는지 너무나도 처참한 몰골이다.

뼈도, 살도, 내장도, 가죽도, 터럭도, 뭐 하나 온전한 것이 없는 목불인견(目不忍見)의 참상이었다.

남궁율은 생각했다.

‘삼칭황천은 곤을 쓰고 사망매화는 칼을 쓰니, 시체들의 사인(死因)을 고려하면 정황상 이 둘이 맞을 것 같기는 해. 무기들이야 무거우니 물 밑으로 가라앉았을 것이고. 하지만 뭘까······ 이 찜찜함은.’

하지만.

“이것들은 눈속임이다.”

비무극은 냉철한 시선으로 감시(監尸)한다.

그는 악취가 풍겨오는 시체를 눈으로 핥듯 내리훑었다.

허옇게 불어터진 살점, 실타래처럼 풀어진 근육, 흐물흐물 쏟아져 나온 내장, 조각난 뼈······.

비무극은 차갑고 딱딱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우선 팔뼈의 굵기가 다르다. 다리뼈도 영양 부족으로 인해 휘어져 있고. 또 근육에 상처가 생겨난 뒤 아물며 오그라든 모양도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군. 삼칭황천은 모르겠다만, 적어도 이 시체는 사망매화가 아니야. 아마 난전 중에 죽은 장강수로채의 수적들 중 하나겠지.”

“잘 아시는군요.”

“당연하다. 사망매화는 한때 나와 동고동락하던 사형제였으니까.”

남궁율의 감탄에 비무극은 별 일 아니라는 듯 고개를 들었다.

“가정할 수 있는 상황은 둘. 첫째는 사망매화가 삼칭황천을 죽인 뒤 동귀어진한 것으로 꾸미기 위해 수적의 시체와 짝지어 놓았다는 것. 어떻게 생각하나?”

“······.”

비무극의 말에 남궁율은 한동안 골똘히 생각했다.

‘지금부터 혈도를 짚을 것인데. 발버둥치면 귀를 자르겠다.’

‘앞으로 내 말을 끊으려 드는 놈이 있다면. 그 전에 먼저 이 년의 멱부터 끊어놓고 보겠다.’

자신의 목을 단단히 휘감아 조르던 팔.

야생의 늑대와도 같던 그 무시무시한 야성.

그런 남자가 이리 쉽게 죽어 나자빠져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상대가 제아무리 무시무시한 무림공적이라고 할지라도.

“저도 이 시체는 삼칭황천의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하냐.”

남궁율의 대답을 들은 비무극이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학관에서도 항상 우수했던 생도였지. 네 판단을 존중하마.”

“감사합니다.”

“그렇다면 가정할 수 있는 두 번째 상황이 한층 더 최악이 되는군.”

비무극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끙 하고 침음을 삼켰다.

그리고는 무거운 어조로 말을 이었다.

“둘째는 삼칭황천과 사망매화가 둘 다 아직 살아있으며······ 손을 잡았다는 것. 이건 어떻게 생각하나?”

어떻게 생각하고 말 것도 없다.

무림맹과 남궁세가의 무사들의 표정을 한층 더 어둡게 만드는 가정이었다.

*       *       *

강이 완전히 끝나는 지점.

동시에 울창한 숲이 시작되는 곳.

추이는 그곳에서 모닥불을 피운 채 야영 준비를 하고 있었다.

수적 둘의 시체를 자신과 사망매화의 것처럼 꾸며놓기는 했으나 그것은 추격조의 시간을 허비시키기 위한 얕은 함정에 불과하다.

불과 한나절도 채 지나지 않아 그들은 이곳까지 추격해 올 것이다.

만약 추격조에 유능한 자가 있을 경우 반나절이 채 안 걸릴 수도 있고.

보글보글보글보글······

대나무 마디를 깎아 만든 그릇에 물이 끓는다.

추이는 사냥해 온 꿩의 깃털을 불에 넣고 내장과 고기는 그릇 안에 찢어 넣었다.

금새 기름이 둥둥 뜬 고깃국이 끓여졌다.

“······.”

추이는 모닥불 옆에 누워있는 사망매화를 바라보았다.

그는 식은땀을 흘리며 끙끙 앓고 있었다.

‘조금 셌나?’

추이는 자신의 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마지막에 사망매화의 뒤통수를 칠 때 힘조절을 조금 못했던 것 같기도 하다.

사망매화 오자운.

그는 연신 구슬땀을 흘리며 신음한다.

추이의 곤에 맞은 것이 아픈 것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지금까지 무림맹의 천라지망을 뚫고 오며 쌓인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오고 있는 모양이다.

추이는 사망매화가 마지막 순간 피워냈던 일곱 떨기의 매화를 떠올렸다.

‘이런 몸 상태로 그렇게 싸웠던 건가? 괴물은 괴물이군.’

추이는 사망매화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장신의 키, 다부진 골격, 호랑이의 것처럼 부리부리한 눈, 숱이 진하고 두꺼운 눈썹, 오악의 산처럼 쭉 뻗은 콧날과 굳게 다물어진 입술.

확실히 추이의 기억 속 얼굴 그대로였다.

‘조금 더 젊어 보이기는 하는군. 아직 고생을 덜 해서 그런가.’

추이는 오래 전의 일을 회상했다.

사망매화 오자운.

그는 젊어서는 협객으로, 늙어서는 신선으로 살았을 인물이었다.

사매를 간살한 뒤 마교에 투신했다는 누명을 쓰지만 않았더라면 말이다.

모종의 사건으로 인해 억울한 누명을 쓴 오자운은 하루아침에 화산파 최고의 기재에서 무림공적으로 몰락했다.

지난 생의 추이가 그를 처음 만난 시점은 오자운이 이미 마교에 투신하고 난 다음이었다.

‘네가 우사(右使)의 제자냐?’

죽은 홍공의 시체 뒤에서, 추이가 처음으로 마주했던 오자운은 화산파의 매화검수가 아니라 마교의 ‘좌신장차사(左神將差使)’였다.

본디 마교의 ‘우신장차사(右神將差使)’였던 홍공은 마교를 배신하고 탈주하여 혈교를 새롭게 창시했다.

이에 좌사 직을 맡고 있었던 오자운이 전 우사였던 홍공을 처단하기 위해 추이가 있던 전장까지 추격해 왔던 것이다.

좌사 오자운.

그는 자신의 손으로 죽이려 했던 홍공이 이미 절명해있는 것을 보고 그 상황에 흥미를 느꼈다.

비 오는 밤.

죽은 홍공의 목을 사이에 두고 이야기하던 추이와 호예양.

호예양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죽었고, 추이 역시도 사지(死地)를 돌파하며 입은 상처들을 이겨내지 못하고 서서히 눈을 감고 있을 무렵이었다.

오자운은 그날 추이를 살려주었다.

‘신기하구나. 우사가 제자를 두다니. 그럴 인물로는 보이지 않았는데.’

원래라면 호예양을 따라 죽었을 추이를 데려다가 상처를 치료해주고 끊어진 기혈을 이어준 것이다.

‘본디 내가 했어야 할 일을 너희가 했으니, 내가 너희에게 빚을 졌다고 봄이 상당하다.’

홍공의 목을 수거한 오자운은 죽은 호예양의 장례를 대신 치러주기도 했다.

이후, 추이는 좌사 오자운의 뒤를 따라다녔다.

그는 마도에 귀의한 인물답지 않게 상당히 고지식한 면이 있었다.

추이는 오자운을 따라다니며 어깨 너머로 많은 것들을 배웠다.

크게는 마기를 다스리는 법부터 시작하여 작게는 먹을 것이나 잠자리를 구하는 법까지.

무림에서 살아남기 위한 기초적인 지식들을 추이는 목마른 사슴이 물을 들이켜듯 배워나갔다.

하지만.

오자운은 추이에게 이런저런 것들을 가르쳤으되, 딱히 추이를 제자로 여기지는 않았다.

추이 역시도 오자운에게 이런저런 것들을 배웠으되, 딱히 오자운을 스승으로 여기지는 않았다.

세상에는 딱 잘라 정의할 수 없는 관계도 있는 법.

‘따라오지 못하겠다면 거기서부터는 그냥 네 갈 길로 가거라.’

오자운은 스승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무책임했으며.

‘배울 걸 다 배웠다고 생각되면 떠나겠다.’

추이는 제자라고 하기에는 너무 냉정했다.

오자운은 여관을 발견하면 혼자서 방을 잡고 묵었다.

추이는 마굿간에서 자거나 밤이슬을 맞으며 여관의 처마 밑에서 새우잠을 자야 했다.

추이는 오자운이 누군가와 싸우게 되면 혼자서 도망쳤다.

오자운이 피투성이가 된 채 칼을 거두면, 추이는 그제야 돌아와 오자운의 뒤를 따랐다.

그런 시간이 꽤 오래 지속되었다.

어느덧 추이의 키가 오자운과 비슷해질 무렵.

오자운은 숙적들과 마주하게 되었다.

무림맹에서 나온 사냥개들.

그들은 천라지망을 짜 그 안에 오자운을 가두었다.

오자운은 마교로 복귀하기 위해 밤낮없이 싸웠다.

하루도 그의 칼에서 피가 마를 날이 없었다.

추이는 늘 숨어 있었다.

창을 쥐고 전장으로 뛰어가고 싶었으나 오자운은 결단코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내 일은 내 일. 네 일은 네 일이다. 내 너를 내켜서 들였으되, 내키지 않게 되면 언제든 버릴 수 있음이야.’

오자운을 마주한 적들은 모두 죽었다.

그와 칼을 맞댄 자들은 단 한 명도 살아서 되돌아가지 못하고 불귀(不歸)의 객이 되었다.

오자운은 자신의 얼굴을 본, 그리고 추이의 얼굴을 본 이들을 기어코, 악착같이 쫓아가 죽였다.

그가 왜 그렇게 필사적으로 생존자들을 말살하는지, 그때의 추이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오자운은 늘 똑같이 무표정한 얼굴로 추이를 대했다.

자신의 속마음을 조금도 털어놓지 않을 것이라는 듯.

······하지만.

그런 오자운의 표정이 조금 변했을 때도 있었다.

무림맹의 천라지망을 피해 서쪽으로 도주하던 중, 한 억새밭에서 만난 무덤 앞에서였다.

-오사지묘(伍奢之墓)-

오자운이 개인적인 이야기를 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이곳에 내 아버지가 묻혀 계신다.’

시시각각 무림맹의 칼끝이 다가오는 와중에도, 오자운은 무덤의 풀을 뽑고 그 앞에서 절을 올렸다.

‘아버지는 생전 죽엽청과 아귀포를 좋아하셨지. 그것을 좀 갖고 왔으면 좋았을 것을.’

오자운은 아쉽다는 듯한 표정으로 텅 빈 묘 앞을 응시했다.

추이로서는 처음 보는 오자운의 인간적인 면모였다.

이후, 오자운은 추이에게 부탁을 하나 했다.

‘훗날, 내가 무림맹의 개들에게 죽거든 내 시체를 수습해서 이 무덤 옆에 묻어줄 수 있겠나?’

그때 추이는 별 생각 없이 그러겠다고 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절대 지켜지지 못할 약속이었다.

그 후 몇 개월 뒤.

마교의 총본산으로 통하는 천산산맥의 비도(秘道)를 눈앞에 두고, 오자운은 무림맹의 추격대를 마주했다.

그때까지 살아남은 추격대의 최정예들이 오자운을 포위하고 밤낮으로 차륜전을 벌였다.

무림맹 측 인원은 총 아흔 하나, 그 중 서른 두 명이 화산파의 매화검수들이었고.

‘오라.’

오자운은 혼자였다.

그날의 싸움에서도 오자운은 추이를 산봉우리 하나를 건너 떨어트려 놓은 채 싸웠다.

추이는 언제나 그렇듯, 싸움이 끝난 뒤 오자운을 찾으러 갔다.

피가 바다를 이룬 자리에는 늘 오자운이 홀로 우뚝 서서 추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늘 그래왔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여느 때처럼 피가 바다를 이루고 있었으되, 그 자리에 오자운은 없었다.

추이는 오자운이 패배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조금도 하지 않았다.

그는 강한 사람이었으니까.

다만 추이는 늘 오자운이 했던 말을 떠올렸을 뿐이다.

‘따라오지 못하겠다면 거기서부터는 그냥 네 갈 길로 가거라.’

‘내 일은 내 일. 네 일은 네 일이다. 내 너를 내켜서 들였으되, 내키지 않게 되면 언제든 버릴 수 있음이야.’

추이는 오자운의 가르침대로 행했다.

그가 추격대를 무사히 물리치고 마교로 복귀했을 것이라 추호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날 이후 두 남자가 다시 만나는 일은 없었다.

다만 아주 먼 훗날 나중에야, 추이는 오자운의 행방을 풍문으로만 들을 수 있었을 뿐이다.

오자운은 그날 마교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는 서른 두 개의 칼침을 맞고 죽었다.

자리에 꼿꼿하게 선 채, 두 눈을 부릅뜬 채로 숨이 끊어졌다.

이후 그의 두 눈알은 파내어져 화산파의 동문(東門)에 매달렸고, 목은 가래나무 솟대 위에 효시되었으며, 몸은 말가죽 자루에 담겨 절강(浙江)에 버려졌다.

‘······.’

그것을 알게 된 추이는 창을 잡았다.

화산파의 동문을 찾아갔지만 눈알은 이미 까마귀가 쪼아먹고 없었고, 솟대에 걸린 목은 옛저녁에 썩어 문드러져 홍진(紅塵)처럼 나부낀 뒤였다.

추이는 절강을 찾아갔다.

그리고 한동안 절강의 서산(胥山)에 피어난 붉은 매화들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그 다음, 추이는 다시 한번 화산파를 찾아갔다.

그의 별호가 창왕(槍王)에서 창귀(槍鬼)로 바뀌게 된 것이 바로 그 시점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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