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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귀무쌍-36화 (31/110)

36-사망매화(死亡梅花) (1)

36-사망매화(死亡梅花) (1)

검화(劍花) 남궁율.

그녀는 남궁세가의 최정예 ‘자월수색대’의 특작조를 이끌고 장강을 수색 중이었다.

수백 개의 폭포들로 이루어진 구당협곡의 상류에서 드넓은 억새숲으로 이루어져 있는 하류까지.

남궁율과 자월특작조의 무사들은 장강의 큰 지류를 따라 수색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이윽고, 그들은 한 무리의 피난민들과 마주칠 수 있었다.

“저희들은 파시에서 장사를 하던 장사꾼들입니다.”

생존자들은 사흘 전 파시에서 겪었던 일들에 대해 소상히 증언했다.

“장강수로채의 수적들이 무고한 이들을 죽이고 재물을 빼앗으려 할 때, 한 이름 모를 낭인이 저희들을 구해주었습죠.”

남궁율은 생존자들의 증언을 상세히 모았지만 의외로 별로 쓸만한 것은 없었다.

대부분의 생존자들은 겁이 나서 머리를 땅바닥에 처박고 있느라 거의 본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검은색 창을 쓰는 솜씨가 아주 신출귀몰······”

“무슨 소리야. 창이 아니라 긴 채찍이었어!”

“채찍도 아니야. 긴 도끼였어. 그러니까 휘두를 때마다 수적들 대갈통이 펑펑 터져나갔지!”

“아무튼 그 노인 덕분에 살 수 있었습죠.”

“노인이 아니라 소년 아니었던감? 병아리 새끼마냥 고개를 처박고 있었어서 잘 기억이······”

“글쎄, 키가 구 척은 되었다니까요 분명히!”

“나중에는 막 청룡언월도를 휘두르면서 장강수로채의 수적들과 싸우는데, 어휴! 저는 천신이 강림한 줄 알았습니다요!”

“한번 칼을 휘두를 때마다 우르릉 쾅 소리가 났습죠.”

“얼굴빛이 대추처럼 붉고 수염이 몸 길이보다 길었습죠!”

“캬- 수적들을 모두 죽이고 나서 홀연히 상류를 향해 떠나는데 그 모습이 아주······”

“무슨 소리야. 수적들을 다 죽이고 나서 하류로 내려갔어!”

‘이름 모를 낭인’에 대한 서술들은 생존자들마다 엇갈렸다.

남궁율은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삼칭황천······ 대체 뭐 하는 작자이지?’

그가 조가장과 남궁세가에서 벌인 짓을 보면 정도를 걷는 무인이라고 하기 힘들어 보인다.

하지만 그는 분명 흑도방과 목숨 걸고 싸웠고 그들로 인해 고통받는 백성들을 구해주었다.

또한 이번에는 장강수로채의 수적들에게서 무고한 백성들을 구출해 내기까지 했다.

정도를 걷는 문파, 혹은 관에서 나섰어야 할 일에 기꺼이 자신의 피를 흘리는 개인.

그들을 일컬어 세간에서는 ‘협객(俠客)’이라고 한다.

지금 삼칭황천이 보이고 있는 행보는 악적과 협객의 사이를 넘나드는, 실로 복잡미묘한 것이었다.

“······.”

남궁율은 자신의 목을 한번 쓰다듬었다.

아직도 붉으스름한 멍자국이 남아 아릿한 느낌을 준다.

문득, 늑대가 으르렁거리는 듯하던 그의 목소리가 귓가에 아른거린다.

‘지금부터 혈도를 짚을 것인데. 발버둥치면 귀를 자르겠다.’

‘앞으로 내 말을 끊으려 드는 놈이 있다면. 그 전에 먼저 이 년의 멱부터 끊어놓고 보겠다.’

그때의 뜨거운 숨결을 떠올리자 남궁율의 귀가 벌겋게 달아올랐다.

“······아니야. 분명 악적이 맞아. 맞을 거야. 맞아야 해.”

남궁율은 자신을 설득하듯 계속해서 되뇌였다.

순간, 옆에서 한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악적 아니야.”

남궁율이 고개를 돌린 곳에는 이제 막 예닐곱 살이나 되었을 법한 소녀가 눈을 또랑또랑하게 뜨고 있었다.

“거지 오빠는 악적 아니야. 착해.”

“······?”

남궁율은 소녀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 그저 미간을 가볍게 찡그릴 따름이었다.

바로 그때.

“······아가씨. 저쪽에서 뭔가가 다가옵니다.”

자월특작조의 검수 하나가 남궁율에게 다가와 속삭였다.

“?”

남궁율은 억새밭 너머를 향해 목을 길게 뺐다.

사사사사사사사삭······

한 줄기 검은 바람이 일어 억새들을 꺾어놓는다.

흑의를 걸친 한 떼의 무림인들이 이쪽을 향해 접근해 오는 것이 보였다.

놀랍게도 그녀가 아는 얼굴들이었다.

“무림맹?”

남궁율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이쪽을 향해 경공을 써서 달려오는 이들은 모두 무림맹의 무인들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들의 맨 앞에서 달리고 있는 이는 남궁율도 익히 하는 얼굴이다.

정도십오주의 하나인 ‘화산파’의 매화검수.

동시에 무림맹 등천학관의 교관이기도 한 그의 이름은 비무극(費無極)이었다.

이윽고, 남궁율과 비무극은 억새밭의 한가운데에서 서로를 마주하게 되었다.

등천학관의 생도인 남궁율이 교관인 비무극에게 먼저 인사했다.

“화산파의 낭와진인을 뵙습니다.”

“오랜만이구나.”

낭와진인 비무극은 딱딱한 태도로 남궁율의 인사를 받았다.

그는 눈이 작고 코가 크고 날카로웠으며 입술이 얄팍하여 표정으로 속내를 읽기가 힘든 자였다.

남궁율이 이끌고 있는 자월특작조는 열두 명.

비무극이 이끌고 있는 무림맹의 무인들 역시도 열두 명이었다.

비무극이 남궁율에게 물었다.

“여기서 무얼 하고 있었느냐?”

“방학기를 맞이하여 본가에 잠시 내려와 있는 중입니다. 한데 개인적으로 해결할 일 하나가 생겨서 그것을 처리하고 난 뒤 학관으로 복학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렇군.”

고개를 끄덕인 비무극이 말을 이었다.

“우리는 지금 무림공적을 뒤쫓고 있는 길이다.”

“······!”

남궁율의 눈이 커졌다.

비무극은 옷소매로 땀을 닦으며 말을 계속한다.

“사매를 간살(奸殺)하고 달아나 마교에 귀의하려는 악적의 위치가 특정되었다. 바로 이 근방이지.”

“‘사망매화(死亡梅花)’를 말씀하심이군요.”

“그렇다. 본디 대외비인 정보이나······ 현재 천라지망에 구멍이 생겨 그것을 급히 막아야 함이야. 무당이 힘을 빌려준다고는 했으나, 지금 당장 손 하나가 아쉬운 실정이다.”

비무극이 남궁율에게 말했다.

“혹시 여건이 된다면 남궁세가의 힘을 조금 빌릴 수는 없겠느냐?”

“본가의 허락을 받지 않고서는 어렵습니다. 이것은 제 조부님께서 명하신 일인지라······”

“그런가. 검왕 선배께서 명하신 일인가. 그렇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비무극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지쳐 보이는 무림맹의 무사들에게 말했다.

“이 악적은 화산이 배출한 것이니 화산의 손으로 처단해야 한다. 무고한 이들의 피가 흐르기 전에 서둘러야 할 것이다.”

비무극은 그 말을 남기고는 쏜살같이 하류를 향해 달렸다.

그의 허리에 매달린 칼집의 끝에 여섯 개의 매듭이 지어진 끈이 팔랑거리고 있었다.

무림맹의 무사들 역시 비무극을 따라 강의 하류로 뛰어갔다.

한편, 자월특작조의 또 다른 무사가 남궁율에게 말했다.

“어차피 저희도 하류로 가야 합니다. 목표의 흔적이 파시가 열렸던 곳을 지나 하류로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으음.”

남궁율은 생각에 잠겼다.

방금 지나간 저 무림맹의 추격대는 현재 ‘사망매화’라는 무시무시한 무림공적을 뒤쫓고 있다.

그는 같은 사문의 사매를 간살한 뒤 마교로 넘어가려고 하는 악질적인 색마로, 무림맹에서 천라지망까지 풀어 잡으려 드는 대상이었다.

남궁율이 물었다.

“얼마 전, 파시에서 장강수로채의 백두를 참살한 이가 사망매화일 가능성은?”

“단언하기는 힘들지 않을까요. 두 악적의 행보가 어느정도 겹치고 있으니 직접 만나보지 않으면 알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자월특작조의 의견을 종합한 남궁율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가는 길이 같으니 뒤쫓아 가자. 다만 사망매화를 우리 쪽에서 먼저 발견하게 되었을 시에는 굳이 교전하지 말고 무림맹에 따로 기별을 넣도록 하는 게 좋겠어.”

남궁율의 말에 자월특작조의 무사들 역시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그들은 먼저 지나갔던 무림맹의 무사들을 뒤쫓기 시작했다.

목표는 구당협곡(瞿塘峽谷)의 하류였다.

*       *       *

하류.

이곳에 흐르는 강 이름은 율(溧)이다.

장강으로 흘러드는 수없이 많은 지류들 중의 하나였다.

급격히 흐르던 물살도 이곳에서는 한껏 누그러진 태도를 보인다.

자신이 품고 온 퇴적물들을 한 곳에 쌓아놓으며 너그러이 굽이지는 물 건널목.

그곳에는 끝도 없이 펼쳐진 억새밭이 있었고 군데군데 무른 진흙언덕이 솟아올랐다.

“······.”

추이는 한 묘 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억새와 잡초들이 너무 많이 자라 있어서 언뜻 보고 있으면 무덤이라는 생각조차도 들지 않는곳.

-오사지묘(伍奢之墓)-

다만 세월에 깎인 비석 하나만이 이 무덤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려주고 있을 뿐이다.

쪼르륵-

추이는 파시에서 얻어온 술잔 하나에 죽엽청을 따랐다.

그리고 바싹 마른 아귀포 하나를 무덤 앞에 내려놓았다.

추이는 무덤에 난 풀들을 다 뽑아낸 뒤 그 앞에서 절을 두 번 올렸다.

그리고 무덤가에 한동안 앉아있으려니.

파사삭-

뒤쪽의 억새들이 바람에 한번 몸을 누인다.

이윽고, 한 명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

추이는 그를 돌아보지 않았지만 그는 추이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산발이 된 흑발이 귀신의 것처럼 나부꼈고 옷으로는 다 떨어진 회색의 법의를 걸쳤다.

오른쪽 팔 아래에는 투박한 장검 하나가 메여 있었으되, 왼쪽 팔이 있어야 할 곳에는 그저 옷소매만 펄럭이고 있을 뿐이었다.

낯선 사내는 묘 앞에 있는 죽엽청과 아귀포를 바라보며 물었다.

“묘를 왜 이런 곳에다가 썼소?”

“모른다.”

추이는 짤막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낯선 사내가 의아하다는 듯 한번 더 되물었다.

“아는 사람의 묘가 아니오?”

“모르는 사람이다.”

“그런데 왜 제를 올리고 있소?”

그의 물음에 추이는 여전히 짧게 대답했다.

“아무도 찾지 않는 곳에 혈혈단신으로 누워있는 것이 딱해서. 그뿐.”

“그런가.”

낯선 사내는 눈을 몇 번 꿈뻑거리더니 엉거주춤 걸어와 추이의 옆에 섰다.

“그럼 나도.”

그는 추이의 옆에 꿇어앉아서 묘를 향해 두 번의 절을 올렸다.

이윽고, 외팔이 사내는 무덤 앞에 놓인 죽엽청과 아귀포를 바라보며 말했다.

“낯선 무덤에 제를 지내주는 마음이 참으로 의롭군. 그 의기는 충분히 보답 받아야 하는 것일세.”

그는 말을 마치고는 허리춤에 매여있는 장검을 들어 추이에게 내밀었다.

“받게. 능히 백금(百金)의 값어치가 있는 보검이야.”

하지만, 추이는 그가 내미는 보검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내가 백금의 보검을 받아들 사람이었다면 그 전에 당신의 목을 잘라서 천금(千金)의 현상금을 받았겠지.”

“······!”

순간, 외팔 사내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추이는 묘를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사망매화 오자운(伍紫雲). 칼을 뽑아라.”

“······.”

외팔 사내는 여전히 묘를 응시하고 있었다.

다만.

스릉-

그가 잡고 있던 장검의 날이 검집에서 조용히 뽑혀 나올 뿐이다.

···턱!

추이 역시도 묘를 응시한다.

다만 오른손으로는 곤을 단단히 잡고 있는 채였다.

바로 그 순간.

“여기 살아있는 놈들이 있다!”

묘 너머의 억새밭에서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이내, 수많은 발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공손 두령의 원수를 갚자!”

“파시에서 살아남은 놈들은 모두 뒤쫓아 죽여!”

“천두님의 명령이시다! 백두님을 죽인 놈들을 어떻게든 찾아내!”

“이 새끼들, 장강수로채에게 덤빈 것을 죽어서도 후회하게 만들어 주마!”

죽은 공손합이 쏘아 보낸 신호탄이 장강수로십이채의 수적들을 불러모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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