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귀무쌍-35화 (30/110)

35-파시(波市) (3)

35-

술 취한 몇몇 수적들이 칼을 뽑아들었다.

“저 새끼 뭐야?”

“뭔 상관이야! 죽여!”

“이 새끼가 어딜 감히!”

그들은 앞서 죽은 동료들의 시체를 보지 못했다.

워낙에 순식간에 죽어나갔기 때문이다.

“······.”

추이는 곤을 들었다.

그리고 맨 처음 달려들던 수적의 배를 찔렀다.

뚜-둑!

척추뼈가 부러지는 소리.

순간적으로 치솟는 복압(腹壓)을 견디지 못한 내장들이 항문으로 뿌직뿌직 터져나온다.

추이는 그대로 곤을 옆으로 그었다.

옆에서 달려오던 두 번째 수적의 다리가 곤에 걸려 넘어졌다.

“끅!?”

하필 수적이 넘어진 곳에는 널빤지 위로 툭 튀어나와 있는 쇠못 하나가 있었다.

뿍-

쇠못의 녹슨 대가리가 수적의 목젖을 뚫고 들어가 뒷목으로 삐죽 튀어나왔다.

못의 뾰족한 부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됐다.

“이 새끼이이이!”

세 번째 수적이 추이를 향해 칼을 휘두른다.

추이는 조용히 앞으로 한 발을 내딛었다.

그리고 품속에서 망치 한 자루를 꺼내 수적의 머리통을 가로로 후려갈겼다.

떠-억!

관자놀이 부근이 움푹 꺼지며, 갈 곳 잃은 눈알 하나가 허공으로 떠오른다.

···풍덩! ···풍덩! ···풍덩!

세 구의 시체가 또다시 장강의 물살 위에 둥실둥실 떠다니게 되었다.

“······.”

“······.”

“······.”

수적들도 알았다.

지금 파시로 올라온 소년이 예삿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공손합이 미간을 찡그렸다.

“귀공은 누구신데 남의 영업장에서 행패를 부리시는가?”

짐짓 점잖은 꾸지람이었으나 어폐가 많다.

애초에 이곳은 장강수로채의 영업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추이는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 망치에 뭍은 뇌수를 털어냈다.

“산적 다음은 수적인가.”

회귀한 이래 처음으로 손에 묻힌 피는 산적들의 것이었다.

물론 녹림도로 위장한 흑도방의 졸개들이긴 했지만 말이다.

이번 상대는 수적.

일반적으로 산적들보다 더욱 상대하기 까다로운 도당들이다.

그들에게는 뭍의 법도나 윤리가 닿지 않는다.

장강을 지나다니거나 그곳을 터전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자연재해보다 더 무서운 흉신악살들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추이는 오히려 이런 부류의 적들이 상대하기 편했다.

명분이나 도리를 따질 필요도 없고 손속의 경중을 따질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주제에 피는 붉구나.”

추이의 말을 들은 공손합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것은 방금 전에 자신이 파시의 상인들에게 했던 말이기 때문이다.

이윽고, 공손합의 눈짓을 받은 수적들이 일제히 움직였다.

“보통 놈은 아닌 것 같으니 한꺼번에 쳐라.”

일백의 머리를 통솔하는 머리답게, 공손합은 순식간에 추이의 도주로를 막았다.

아까 죽은 여섯 명을 제외한 열다섯 명의 수적들이 칼, 창, 도끼, 활을 들어 추이를 겨누었다.

“궁노부터 쏴라!”

공손합의 명령을 들은 수적들이 빠르게 움직였다.

다섯 명의 활잡이들이 앞으로 나서서 추이를 향해 화살을 날려보냈다.

쉬쉬쉬쉬쉬쉭!

화살들이 추이를 노리고 쏘아져 나갔다.

펄럭-

추이는 입고 있던 낡은 피풍의를 벗어서 막처럼 둘렀다.

···푸욱!

화살촉이 피풍의 자락을 뚫고 들어오는 순간.

패액-

추이는 옷자락을 잡아채며 화살들을 죄다 다른 방향으로 꺾어버렸다.

동시에.

차라라라락!

옷자락이 걷히자마자 눈에 들어온 것은 허공으로 흩뿌려진 마름쇠들이었다.

뾰족뾰족한 쇠붙이들이 수적들의 얼굴에 일제히 틀어박혔다.

“끄아아악!”

거리만 믿고 방어를 생각하지 않았던 활잡이들이 저마다 얼굴을 움켜잡고 물러난다.

추이는 곧바로 곤을 휘둘렀다.

“걱정 마! 멀어서 안 닿는······!”

맨 앞에 있던 수적이 외치다 말고 멈췄다.

추이의 곤 끝이 그의 아래턱을 박살내고 지나갔기 때문이다.

추이는 곤을 손가락 두 개의 끝에 끼워서 휘두르고 있었다.

그래서 수적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먼 거리를 공격할 수 있었던 것이다.

부욱-

곤 끝에 목젖 가죽을 뜯긴 수적 하나가 비명을 질러댔다.

살점과 핏방울이 미친 듯이 튀자 제아무리 거친 수적들이라고 해도 겁에 질릴 수밖에 없다.

“히익!?”

“귀, 귀신이다!”

“으아아아- 살려줘!”

그 혼란의 도가니 위를 추이가 덮쳤다.

우직! 우직! 으드득!

추이는 곤을 휘둘러 활잡이들을 때려죽였고, 활잡이들의 시체를 방패 삼아 덤벼드는 칼잡이들의 머리통을 망치로 두들겨 깨 놓았다.

창을 쓰는 몇몇 수적들이 있어 추이를 찌르려 했으나.

떠-걱!

추이의 곤에 맞아서 창과 허리가 같이 부러져나갈 뿐이었다.

“······.”

공손합은 부하들이 모조리 죽어나갈 때까지 나서지 않았다.

이윽고, 마지막 한 명의 수적까지 대가리가 깨지고 나자 그가 말했다.

“어디의 누구시오?”

“······.”

추이는 곤을 타고 흘러내리는 피를 털어내며 공손합을 바라보았다.

공손합은 말했다.

“그렇군. 어디의 누구신지는 묻지 않겠소. 나도 부하들의 죽음에 대한 것은 여기서 묻어두지.”

“······.”

“그러니 이만 서로 갈 길 갑시다. 어떻소?”

공손합은 눈치가 빠른 사람이었다.

그는 추이가 차 한잔 마실 시간도 되지 않을 동안 스물 한 명을 피떡으로 만드는 것을 똑똑히 지켜보았다.

공손합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내 부하들은 삼류도 되지 못할 놈들이오. 무공을 익혔다고는 하나 서과(西瓜)의 겉이나 몇 번 핥았을까. 솔직히 나도 마음만 먹으면 저놈들 쯤이야 일다경 안에 도륙낼 수 있소이다.”

추이가 한 것은 공손합도 할 수 있다.

그러니 공손합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둘이 싸우게 되면 필히 한쪽은 죽을 것이나, 다른 한쪽의 몸도 성하지는 못할 것이오. 그러니 서로 소모전은 피하는 것이 좋지 않겠소? 그대는 우리가 파시를 습격해서 불쾌했고, 나는 그대가 내 부하들을 도륙내어서 불쾌하니, 이대로 서로 퉁칩시다.”

공손합은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에 추이가 짧게 대답했다.

“물 위에서 사는 수적들이라 그런가.”

“······?”

“물에 빠져도 주둥아리만 동동 뜨겠구나.”

추이는 곤 끝을 세웠다.

그리고는 까닥까닥 움직였다.

“필히 죽는 쪽은 네가 될 터이고, 이쪽의 몸이 성할지 성하지 않을지, 내기할까?”

“하룻강아지 놈이 범 무서운 줄 모르는군. 후회하게 될 것이다.”

공손합이 박도를 뽑아들었다.

부우웅-

박도는 초승달 모양의 궤적을 그리며 추이의 목을 노렸다.

그러나.

따-앙!

추이는 곤을 휘둘러 박도의 칼날을 때렸고 그 찰나의 순간에 내력을 흘려보냈다.

“······! ······! ······!”

손으로 전해져 오는 반탄력에 공손합은 박도를 놓쳐버렸다.

풍덩!

박도는 강물 아래로 가라앉았다.

공손합은 이를 악물고 뒤로 물러났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방금 교환한 일합에 오른손의 손목뼈가 아작이 났음을.

‘절정고수!’

일류의 경지인 자신을 일합에 꺾어놓을 수 있는 이가 흔할까.

공손합은 추이의 힘을 이제야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덜덜 떨리는 오른손 손목을 움켜잡고는 뒤로 연신 물러났다.

그리고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추이와 시선을 마주하게 되었다.

사사사사사사······

강물 위를 스치는 바람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얼굴을 가리고 있는 검은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붉은 눈.

그것을 본 공손합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고수들에겐 본능이란 것이 있다.

칼밥을 먹고 살아가는 무림인들 사이에서는 이 본능이 얼마나 예리한가에 따라 목숨줄의 길이가 달라진다.

공손합은 자신의 본능이 예민함을 알고 있었고 또 그만큼 그것을 믿었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수많은 생사의 기로에서 모두 생문(生門)을 골라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자신이 그토록 믿는 본능이 절박하게 소리치고 있었다.

도망치라고. 뒤도 돌아보지 말고 달아나라고.

······하지만 어디로 도망칠 것인가?

이곳은 파시다.

뭍이 아니라 물 위에 형성된 시장이기에 도망칠 곳이 없다.

‘빈다고 해서 살려 줄 놈은 아닌 것 같고······’

결국 공손합은 선택했다.

후다닥-

그는 재빨리 배로 뛰어가더니 갑판에 있던 밧줄을 당겼다.

그러자 갑판 위로 폭죽 몇 개가 쏘아졌다.

퍼퍼퍼펑!

공손합은 자신을 향해 걸어오고 있는 추이를 돌아보았다.

“곧 내 부하들 모두가 이쪽으로 오게 될 것이다. 그뿐이냐? 이곳에는 지금 천두(千頭)님이 와 계시거든. 지금이라도 도망치는 편이 좋을걸?”

“너를 더 빨리 죽이면 된다.”

“흐흐흐. 그게 쉬울까?”

순간, 공손합이 번개같이 움직였다.

그는 옆에 있던 벽리연의 뒷덜미를 잡아챘고 품 안에 넣어놨던 단도를 꺼내 그녀의 목에 들이밀었다.

“자. 한 발자국만 더 다가와도 이 꼬맹이는 죽는다.”

“······.”

공손합은 벽리연의 목에 칼을 들이밀고 추이를 협박하고 있었다.

하지만 추이는 여전히 무표정했다.

“꼬마야. 미안하다.”

추이는 겁에 질린 표정의 벽리연에게 무심한 어조로 말했다.

“너를 살리기 위해 수적들을 내버려 둘 수는 없다."

그러자, 공손합에게 잡힌 벽리연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알아요. 엄마가 뭍에 갈 수 있게만 해 주세요.”

“약속하지.”

추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발걸음을 앞으로 내딛었다.

공손합이 깜짝 놀라 외쳤다.

“뭐, 뭐 하는 거냐! 진짜 죽인다!”

“죽여.”

추이가 또 한 발자국을 내딛자 공손합이 또 한 발자국을 물러났다.

“대신 이걸 알아라.”

추이의 새빨간 시선이 공손합의 눈을 응시한다.

“그 아이를 죽인 대가로, 너는 이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꼴을 겪게 될 것이다.”

“······.”

“손가락 발가락 끝부터 시작하여 몸통만 남을 때까지 잘근잘근 포를 떠 주마. 그리고 두 눈알과 이빨을 모두 뽑고, 귀와 코를 자르고, 혀를 불로 지질 것이다. 그리고 저 파시 사람들이 관리하는 돼지 축사에 넣어서 평생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해 주지.”

“······.”

이례적으로 많은 말을 하는 추이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아무런 고저가 없다.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현실감이 느껴지고 있었다.

더불어 추이에게서 느껴지는 무시무시한 기운.

정도의 무공도, 사도의 무공도, 마도의 무공도 아닌 듯한 압도적인 이질감이 공손합의 영혼을 옥죄여 온다.

공손합이 발악하듯 외쳤다.

“처, 천두······ 아니 채주님께서 가만있지 않으실 것이다. 아니, 사도련 전체가 가만있지 않을 거야!”

“사도련 전체가 움직이든 어쩌든, 너는 돼지우리에 들어가게 된다. 팔, 다리, 눈, 코, 입, 귀, 모든 것을 잃어버린 채로. 평생.”

추이의 무심한 목소리에 공손합의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는 완전히 꺾여버린 기세로 물었다.

“얘, 얘를 살려주고 항복하면······ 나한테 어떻게 할 거냐?”

공손합의 질문에 추이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것은 내가 결정할 게 아닌 것 같군.”

“······?”

멍한 표정의 공손합이 추이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는 순간.

짜-악!

공손합의 뺨싸대기를 갈기는 손바닥이 있었다.

어리둥절한 표정의 공손합이 고개를 돌린 곳에는 벽리연의 어미가 서 있었다.

그녀는 공손합에게서 벽리연을 빼앗아 들며, 눈물 그렁그렁한 눈으로 말했다.

“꿇어 씨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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