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귀무쌍-34화 (29/110)

34-파시(波市) (2)

34-

파시의 외곽에는 쓰레기들이 둥둥 떠다닌다.

찢어진 폐그물 조각, 더러운 천, 부서진 널빤지, 닥나무 새끼줄 토막, 썩어가는 잡어 시체······.

그것들의 무리에 새로운 하나가 추가되었다.

···풍덩!

국밥집 주인이 강물에 빠졌다.

이마에는 쇠뇌 한 대가 단단히 박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좋았어! 명중! 이걸로 내가 하나 앞서간다.”

“예미랄 새끼야! 치사하게 앞으로 나가서 쏘는 게 어딨냐?”

“먼저 죽인 놈이 임자라 이거야! 억울하면 너도 활 써!”

“좋다. 제일 많이 죽인 놈에게 오늘 노획물 몰아주기다! 어디 한번 해 보자고!”

낄낄 웃는 사내들은 모두 칼, 창, 도끼, 활 등의 병장기로 무장하고 있었다.

그들을 태운 배의 중앙에는 커다란 깃발 하나가 펄럭인다.

장강수로채(長江水路砦).

장강 전체를 누비는 조직적인 수적(水賊) 패거리.

거친 뱃일을 하는 사나이들조차 어린 소녀마냥 울먹거리게 만드는 존재들이 나타났다.

“히익······”

“자, 장강수로채가 왜 여기를······”

“끝났어······ 우린 모두 끝이야······”

파시 위에 있는 모든 이들이 겁을 집어먹고 오들오들 떤다.

이윽고, 수적들의 배 맨 앞으로 한 명의 장한이 나섰다.

“들어라.”

그는 커다란 체구에 텁석부리 수염을 기른 장사였다.

불룩 튀어나온 태양혈이 그가 상당한 수위의 무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나는 장강수로채의 백두 공손합이다. 얌전히 투항하면 흐르는 피가 적어질 것이야.”

장강수로채의 ‘백두(百頭)’는 밑에 백 개의 머리를 거느리고 있는 계급이다.

그 위로는 장강수로채 전체를 통틀어 단 열둘 밖에 없다는 ‘천두(千頭)’ 계급이 있고 그 위로는 채주 하나 뿐.

수적들은 낄낄 웃으며 파시로 건너왔다.

“우리 공손백두님의 말씀 잘 들었지?”

“있는 것 없는 것 싹싹 긁어 내와라, 어서.”

“나중에 우리가 뒤져서 나오게 되면 목숨만 빼앗는 게 아닐 거야. 으응?”

그때, 한 남자가 용감하게 앞으로 나섰다.

“우, 우리는 여기 어, 어부들하고 사정이 조, 좀 다르오!”

“?”

공손합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남자는 덜덜 떨면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나, 나는 파등을 관리하는 자인데······ 우, 우리 뒤에는 패도회가 있소이다! 호북성 초장현의 패도회를 모르지는 않겠지?”

그는 ‘패도회(佩刀會)’라는 말을 입에 담은 이상 수적들이 자신들을 어쩌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안다.”

공손합의 표정은 여전히 심드렁했다.

그는 허리춤에서 칼을 빼들며 말했다.

“패도회가 너희들을 팔았거든. 나한테.”

“······에?”

남자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그 뒤 다른 어떠한 표정도 지을 수 없는 몸이 되었다.

싹둑-

공손합의 허리춤에서 뽑혀나온 박도가 남자의 모가지를 잘라내어 강물 위로 날려버렸기 때문이다.

···풍덩!

흩어지는 핏물을 보며 공손합은 혀를 끌끌 찼다.

“패도회에서 너희들에게 말 좀 전해달라더라. 지금까지 상납금 바치느라 수고 많았고, 이제 어디로 팔려가든 간에 거기가 고향이다~ 생각하면서 정붙이고 살아 보라고.”

그러자 파등선의 여자들이 오들오들 떨기 시작했다.

“그, 그럴 수가······ 이젠 빚도 거의 다 갚았는데······”

“무슨 소리예요 이게? 저, 저한테는 올해까지만 일하면 집에 갈 수 있다고······”

“팔다뇨? 우, 우리를요? 우리를 당신들에게 팔았다구요?”

“어, 엄마······ 엄마 보러가야 되는데 나······”

믿기 힘든 현실에 서 있을 힘도 없다는 듯, 몇몇 여자들이 픽픽 쓰러졌다.

그때. 한 여자가 공손합의 앞으로 뛰어나가 엎드렸다.

“나으리! 장군 나으리! 제발 자비를 베풀어 주세요! 저는 뭍으로 가야 해요! 콜록콜록-”

그녀는 푹 꺼진 볼을 가리키며 울먹였다.

“저는 몸이 너무 아파서 당장 의원에게 진맥을 받지 못하면 올해를 넘기기 힘들 거라고 했어요! 이번에는 정말 뭍으로 가야 해요! 제발······!”

“오호- 그러냐? 그러면 안 되지. 아프면 진료를 받아야지.”

공손합의 말에 여인의 얼굴 표정이 밝아진다.

하지만 공손합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다.

다만 여인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서며 손을 내밀었을 뿐이다.

“어디 보자. 내가 곧 편작이고 화타다. 그래, 어디가 아프냐?”

“예? 저, 저는 두통이 좀······”

여인이 목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리는 순간.

쩌억-

공손합은 박도를 들어 여인의 머리통을 반으로 쪼개 버렸다.

옆에서 낄낄 웃는 수적들을 돌아보며 공손합은 말했다.

“너희들 중에도 아픈 놈 있으면 말해라! 내가 그때그때 바로바로 고쳐주마!”

“역시, 두목님은 천하제일 명의셔! 머리가 아프면 머리를 없애면 된다 이거야!”

수적들은 박수갈채를 보내며 공손합에게 아부하기 바쁘다.

이윽고, 공손합은 서늘한 눈빛으로 모든 이들을 향해 말했다.

“여기 있는 남자들이고 여자들이고, 이제부터는 죄다 우리 장강수로채의 재산이다. 당연히 뭍으로는 영영 갈 수 없는 것이야.”

그 말에 남자들이고 여자들이고 모두 자리에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어쩌겠는가.

장강수로채.

더 정확하게는 장강수로십이채(長江水路十二砦).

이들은 장강에 있는 열두 개의 협곡에 진을 치고 사천으로 가는 길목을 통제하고 있는 대규모의 수적 집단이다.

관과의 관계가 끈끈하여 토벌 대상으로 분류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약간의 자치권마저 얻어 행사하고 있는 형국이니, 일반 소시민들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천재지변이나 다름없는 존재들인 것이다.

이들을 만났으니 파시에 모인 모든 사람들의 운명은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다.

전 재산을 빼앗긴 채 평생 노예처럼 궂은일을 하다가 살해당하거나, 쇠약사하게 될 것이다.

벽리연과 그녀의 어미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때.

“이, 이렇게 당할 수는 없소!”

분연히 일어나는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생선 잡던 칼을 빼 들며 외쳤다.

“어차피 저들에게 잡히면 끝장날 거, 여기서 한번 붙어봅시다! 쪽수도 우리가 더 많잖소!”

그 말에 몇몇 괄괄한 남자들이 동조했다.

회칼과 손도끼를 든 남자들이 자리에서 뛰쳐나왔다.

몇몇은 그물과 작살을 들고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하하하하-”

공손합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이윽고, 그는 손에 들고 있던 박도를 횡으로 한번 붕 휘둘렀다.

퍼퍼퍼퍼퍼퍼퍽!

분연히 떨치고 일어났던 일곱 사내의 머리통이 일거에 깨져나갔다.

핏물과 뇌수가 흩뿌려지며, 방금 전까지만 해도 투지를 불태우던 어부들의 표정이 멍하게 바뀌었다.

“무공도 모르는 무지렁이들이······ 주제에 피는 붉구나.”

공손합은 주변의 남자들을 너무도 쉽게 때려죽였다.

박도는 날이 무뎠고 군데군데 이가 빠져 있어서 사실 도(刀)라기보다는 쇠몽둥이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것에 맞을 때마다 건장한 체격의 어부들이 수숫대처럼 픽픽 꺾여나갔다.

뻐억! 퍽! 우지직! 뎅겅-

공손합이 반항하는 어부들을 죽이는 모습은 마치 살찐 생쥐들을 찢어발기는 고양이와도 같았다.

“으아아아아아!”

어부들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한 명이 죽기 직전 뿌린 그물이 공손합을 덮쳤으나.

“흐읍!”

공손합은 그 질긴 그물을 순수한 힘으로 찢어버렸다.

“무기를 들었던 놈들은 손목을 자르고 온몸에 칼집을 낸 뒤 소금에 절여 주마. 무기를 들지 않았던 놈들은 왼쪽으로 가 서라. 고분고분하게만 굴면 상처 하나 입히지 않는다.”

그 말에 파시의 모든 사람들은 완전히 전의를 상실해 버렸다.

쩔그렁- 쩡!

회칼과 손도끼들이 널빤지 위로 떨어져 내렸다.

그러자 수적들이 낄낄거리며 걸어와 어부들을 포박했다.

“너 아까 도끼 들고 설치던 놈이지? 기억해 뒀다?”

“이놈은 남자치곤 얼굴이 곱상한데. 내가 앞으로 예뻐해 줄게.”

“어이쿠, 이놈은 뭘 처먹었길래 이렇게 키가 커? 안 되겠다. 너는 손목 말고 발목부터 좀 자르자.”

남자들이 포박당하고 난 다음은 여자들 차례였다.

애꾸눈 수적 하나가 새끼줄을 들고 가서 파등선의 여자들을 줄줄이 묶었다.

그때.

“뭐야? 꼬맹이도 있네?”

애꾸눈이 벽리연을 발견하고는 히죽 웃었다.

벽리연은 화들짝 놀라 어미의 뒤로 숨었으나 애꾸눈은 기어이 그녀의 머리채를 잡아 끌어냈다.

“히히히- 나는 열 살을 넘어가면 여자로 안 보는데, 이게 웬 떡이냐.”

그러자 벽리연의 어미가 애꾸눈의 발치를 붙들고 애원했다.

“제발 제 딸만은 봐주십시오 나으리, 제가 뭐든지 하겠습니다! 정말 뭐든지!”

“저리 꺼져, 장모님아. 사위한테 밟혀 죽기 싫으면!”

애꾸눈은 벽리연의 어미를 걷어찼다.

그리고는 벽리연의 머리채를 휘어잡은 채 배로 끌고 갔다.

바로 그때.

···철썩!

작은 뗏목 하나가 물살을 거슬러 파시에 당도했다.

턱-

아직 앳된 얼굴의 소년 한 명이 뗏목에서 걸음을 떼어 파시 위로 한 발자국을 내딛었다.

그 앞을 지나가던 애꾸눈이 입술을 비죽 들어 올리며 웃었다.

“얘야- 시장에 뭘 사러 온 거라면 너무 늦었구나. 장은 파했다.”

하지만 소년은 태연했다.

“뭘 사러 온 것은 아니고.”

“그럼 뭐 팔러 왔냐? 뭐든 간에 늦었어. 너도 일루 와.”

“팔러 온 것도 아니야.”

소년은 애꾸눈의 손에 잡혀있는 벽리연을 바라보며 말했다.

“대화를 하러 왔다.”

“대화? 푸하핫! 어디서 이런 병신같은 게 왔······”

애꾸눈은 말을 끝맺지 못했다.

여섯 개의 모서리를 가진 흑색의 곤 하나가 뱃전 아래에서 쑥 뽑혀 나왔기 때문이다.

뻐-적!

골통이 부서지며 이빨과 뼛조각들이 수면 위로 촥 흩뿌려진다.

풍덩-

머리통이 날아간 수적의 몸이 강물에 처박혔다.

소년은 곤을 든 채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이, 이놈 뭐야?”

“죽여버려!”

뒤에서 여자들을 끌고 가던 수적 두 명이 각자 칼과 도끼를 들고 달려들었다.

하지만.

···우지끈! 떠-억!

하나는 곤에 맞아 목이 부러졌고 다른 하나는 곤 끝이 입을 뚫고 들어가 얼굴의 절반을 으깨놓았다.

풍덩- 풍덩-

수적의 시체 세 구가 강물 위를 둥둥 떠다니게 되었다.

소년은 벽리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대화를 해 달라고 했었지?”

벽리연은 얼마 전 소년과 나눴던 대화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엄마가 몸이 많이 아픈데. 뭍에 가려면 무림인 아저씨들 허락을 받아야 한댔어요.’

‘그러니.’

‘네. 오빠도 무림인이면 나중에 무림인 아저씨들 만났을 때 부탁 좀 해주세요. 울 엄마 좀 뭍에 가게 해 달라고.’

‘흠. 만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만난다면 부탁은 해 보마.’

‘같은 무림인들끼리는 말이 잘 통할지도 모르잖아요. 제가 말해본다고도 했었는데, 엄마가 그러지 말라고 했어요. 어차피 말해도 못 알아듣는다고. 무림인들은 무림인들끼리만 대화가 통한댔어요.’

‘음. 그도 그렇지.’

국밥값으로 동전 두 닢을 빚졌으니 어쩌겠나.

소년은 대화에는 별로 소질이 없지만 무림인들끼리의 대화에는 제법 능숙한 편이었다.

거기다가 마침 소년에게는 좋은 대화수단이 쥐어져 있지 않은가.

“내가 한번 무림인 아저씨들이랑 대화를 해 보마.”

곤귀를 죽여버리고 빼앗은 묵죽곤(墨竹棍)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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