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조말지맹(曹沫之盟) (2)
30-
-第 二手-
추이는 곤을 단단히 쥐었다.
눈앞에 있는 적은 망치나 송곳, 마름쇠 같은 잡기가 통하지 않는 강대한 벽.
곤 하나에만 온 힘을 집중해야만 뚫을 수 있을 것이다.
츠츠츠츠츠츠······
추이는 창귀들의 힘을 끌어올렸다.
추이는 굴각 십층계의 문턱을 넘어 이올의 계단 일층계에 진입했고 한층 더 심후한 내력을 동원할 수 있게 된 바 있었다.
“······!”
추이가 끌어올리는 내력을 감지한 남궁천의 두 눈이 커진다.
콰-콰쾅!
추이의 곤이 작살처럼 쏘아져 나간다.
대기에 몇 겹이나 되는 구멍이 뚫린다.
주변으로 엄청난 양의 흙먼지가 일어나 풀과 관목들을 모두 송두리째 뽑아 날려버렸다.
추이의 공격을 눈앞에 둔 남궁천은 탄식했다.
“이런 게 날아올 줄 알았으면 그냥 양보를 하지 말 것을 그랬군. 아니면 칼이라도 쓸 것을······”
그의 혼잣말이 끝나기도 전에, 추이의 곤이 남궁천의 몸에 내리꽂혔다.
시커먼 궤적이 복부로 틀어박히기 직전, 남궁천의 눈이 파랗게 빛났다.
빙글- 쉬리리릭!
남궁천은 몸을 팽이처럼 회전시켰고 팔을 최대한 비틀어 곤이 자신의 몸을 스치고 흘러가게끔 만들었다.
동시에, 그는 이화접목의 묘리가 반영된 금나수법으로 추이의 곤을 맞받았다.
삐직- 쉬이이이익!
남궁천의 손아귀에서 연기가 난다.
동시에 긴 도포의 옷소매가 곤에 말려들며 요란한 마찰음을 냈다.
···뿌지지지직!
도포자락이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곤의 궤도가 비틀린다.
퍼-펑!
추이의 곤은 허공을 가르며 아무것도 없는 위로 치솟아 올랐다.
기분 탓인지, 하늘에 있던 구름들이 좌우로 쩍 갈라져 있었다.
“······.”
추이는 아무런 수확도 없이 곤을 거둬들였다.
남궁천의 손바닥에서는 물을 펄펄 끓이는 것 같은 수증기가 피어오르고 있었으나 정작 피 한 방울 보이지 않았다.
화르르륵!
쇠와 살의 마찰에 의해 발생한 열이 남궁천의 도포 자락과 옷소매를 활활 불태우고 있었다.
“후욱-”
남궁천은 입김을 불어 옷소매에 붙은 불길을 꺼트렸다.
사람의 키보다도 훨씬 더 높게 피어오른 불이었으나 노인의 심호흡 한 번에 사라져 연기만이 자욱하다.
“이제 세 수 남았다.”
남궁천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여유가 있었다.
추이 역시도 태연한 표정으로 곤을 고쳐 쥐었다.
세 번째 수가 장전되고 있었다.
···우드득!
추이는 온몸의 근육을 한계까지 꼬았고 그것을 단번에 풀어내어 그 힘을 곤 끝에 집중했다.
곤의 뿌리 쪽에서부터 타올라오는 창귀들의 기운이 시뻘겋게 뻗어나온다.
그것은 마치 괴물의 눈알처럼, 곤 끝에 응집한 채로 피눈물을 뚝뚝 떨어트리고 있었다.
추이는 곤을 머리 위로 한번 휘둘러 반원의 형태를 그렸다.
그리고 반월이 한쪽 꼭짓점에서 시작해 다른쪽 꼭짓점에서 끝나는 순간, 허공에 그려졌던 핏빛의 호는 정면을 향한 직선으로 변했다.
···콰앙!
추이가 체중을 실어 디딘 땅이 움푹 패이며 무수한 균열이 생겨났다.
“쯧!”
이번에는 남궁천 역시도 미간을 찡그리며 혀를 찼다.
추이의 기세가 아까보다 한층 더 사납고 이질적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전에는 포경선에 탄 어부가 고래를 향해 던지는 작살 같았다면, 이제는 전속력으로 달려온 충차(衝車)가 성문을 향해 부딪쳐 드는 모양새였다.
부우우우웅!
흑색과 적색이 소용돌이치며, 검붉게 뒤섞인 궤적이 남궁천의 몸통 정중앙을 향한다.
-第 三手-
남궁천은 입을 꾹 다물고 손목을 들어 올렸다.
“······.”
이윽고, 추이의 곤 끝과 남궁천의 손목이 한 곳에서 마주친다.
까-앙!
쇠붙이와 사람의 뼈가 만났는데 병장기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추이는 하마터면 곤을 놓칠 뻔했다.
지이이이잉······
곤을 타고 전해져 오는 무시무시한 반동.
마치 쇠로 만들어진 산을 때린 것 같은 느낌이다.
뿌지지지지지지지지직! 퍼퍼퍼퍼펑!
내력 싸움의 반동으로 인해 손아귀 가죽이 죄다 찢어졌고 더 나아가 손목과 팔뚝의 근육들까지 모조리 터져나갔다.
추이의 두 팔은 양 어깨까지 새빨간 피로 물들게 되었다.
한편, 남궁천은 여전히 태연했다.
“시큰하구만. 앞으로 비 오는 날에는 힘들겠어.”
그는 추이의 곤을 막아냈던 오른쪽 손목을 왼손으로 주물거리며 말했다.
“군(軍)에 몸담고 있었던 모양이지?”
아무렇지도 않게 묻는 과거사.
하지만 그의 짐작은 무섭도록 예리한 것이었다.
“곤, 아니 창은 오랑캐와의 전장에서 배워왔나? 방금의 독룡출동(毒龍出洞) 초식은 기본에서 많이 변형된 것 같고. 창술의 딱 기본만, 극한까지 연마한 모양새로군. 완전히 실전형이야. 근데 이건 자네 나이대에는 불가능한 경지인데······.”
추이는 남궁천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남궁천 역시도 그저 혼잣말을 한 것일 뿐, 딱히 추이의 대답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었다.
남궁천은 추이의 자세를 눈으로 읽으며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아까부터 봉(封), 폐(閉), 착(捉), 나(挐), 상란(上攔), 하란(下攔)의 여섯 기법만 쓰는군. 이상해. 군부의 창술이기는 하나 장교의 것이 아닌 말단병사의 그것이야. 장군가의 자제는 아닌 것 같다는 말이지. 아니면, 아직도 힘을 숨기고 있나? 으응?”
남궁천은 계속해서 추이를 관찰하고 있었다.
추이가 남궁팽생과 싸울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눈을 떼지 않고 말이다.
‘끈적한 늙은이로군.’
추이는 호기심과 궁금함으로 반짝거리는 남궁천의 시선을 또다시 외면했다.
“이제 두 수가 남았군 그래. 아, 맨 첫 수는 물러줄까? 내가 반칙을 했으니까.”
“······필요없다.”
이윽고, 추이는 네 번째 수를 두었다.
붕붕붕붕붕붕붕붕붕붕-
곤을 돌리자 흑색의 회오리가 몰아친다.
쿠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폭력적인 바람이 지면을 깎아내고는 그 파편들을 회오리에 휘감아 두르고 있었다.
이윽고, 추이는 곤을 꽉 움켜쥔 채 가로로 휘둘렀다.
마치 방망이를 내질러 날아드는 공을 쳐내는 모양새.
후-우우우우욱!
엄청난 풍압이 일며, 회오리의 원심력이 그대로 실려있는 곤 끝이 남궁천의 허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조양자도, 남궁팽생도 목숨을 잃었던 바로 그 수였다.
“······!”
남궁천이 두 팔을 모두 들어올려 얼굴과 몸통을 가렸다.
-第 四手-
이윽고, 추이의 곤이 남궁천의 두 팔뚝 위를 때렸다.
쩌-억!
벼락이 거대한 대추나무를 쪼개놓는 듯한 소리가 터져나왔다.
남궁천이 인상을 쓴 채 뒤로 반 걸음 밀려났다.
반면 추이는 뒤로 다섯 발자국을 물러났다.
뿌직! 피식! 줄줄줄줄줄······
곤을 쥔 팔의 근육들은 이제 찢어지고 터져서 넝마에 가까웠다.
남궁천은 양쪽 팔뚝을 슬슬 쓸며 말했다.
“좋은 횡소천군(橫掃千軍)이구나. 뼈가 저릿저릿해.”
추이는 고개를 끄덕여 칭찬에 대한 답례를 한다.
한편.
“······.”
“······.”
“······.”
이 둘의 격돌을 지켜보는 관중들은 떡 벌어진 입에 흙먼지가 들어가는 것도 모른 채 넋을 놓고 있었다.
남궁천이 누구인가?
그는 검왕(劍王).
천하제일인에 가장 가깝다고 알려져 있는 정도십오주의 지존들 중 하나이다.
이전 세대의 정점이자 구무협의 상징으로 여태 군림하고 있는 그를 뒤로 반 보나 밀어낼 수 있는 젊은이가 존재한다니.
이것은 세간의 상식에는 전혀 부합하지 않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정작 이 상황을 만들어가고 있는 두 주인공은 덤덤하기 그지없다.
“홀홀홀- 이제 한 수가 남았느니라.”
“······.”
추이는 곤을 잡았다.
다섯 번째 수. 이번이 마지막이다.
츠츠츠츠츠츠······
바로 그때쯤 해서, 추이가 예상했던 대로 단전 속에서 변화가 일었다.
‘드디어 복속되었군.’
조금 전에 죽인 남궁팽생의 창귀가 비로소 완전히 추이의 명령에 굴종하게 된 것이다.
우-우우우우우우우······
아직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남궁팽생의 창귀가 흑곤의 자루를 타올랐다.
그것은 조양자의 창귀와 뒤엉켜 무시무시한 모습으로 변해 끔찍한 단말마를 내뱉고 있었다.
뜨거운 피눈물을 흘리며 노역에 가담하게 된 남궁팽생.
그의 원한이 고스란히 추이의 내력이 되어 곤 끝에서 활활 타오른다.
이올(彛兀)의 제 1층계.
그것을 한순간에 확 뛰어넘은 추이는 현재 이올의 제 2층계를 내딛고 있었다.
시뻘건 기운이 전신에서 마구 뿜어져 나온다.
추이는 마치 피 웅덩이에서 방금 막 기어나온 혈귀와도 같은 형상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아직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무공이기에 마공이라고 생각하는 이는 없었다.
“······저, 저게 대체 무슨 무공인가?”
“나는 본 적도 없고 들은 적도 없네.”
“실로 무시무시하군. 내 생전 저렇게 흉포한 무공은 처음일세.”
“정, 사, 마를 통틀어 저런 무공이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음이야.”
다만, 추이가 뿜어내고 있는 압도적인 이질감과 피 냄새에 본능적인 경계심으로 주춤주춤 물러설 뿐.
이윽고.
퍼-엉!
추이가 도약했다.
남궁팽생의 창귀마저 끌어모은 흑곤이 남궁천을 향해, 지금까지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속도와 힘으로 쏘아져 나갔다.
“······! ······! ······!”
남궁천의 표정이 급변했다.
육각형으로 깎여 있는 곤, 뭉툭한 그 끝이 어째서인지 무섭도록 날카로운 창극으로 보인다.
한번 꿰뚫리면 두 번 다시 빠져나올 수 없는 무시무시한 창날.
그것의 끝이 이쪽을 향해 붉게, 거칠게, 폭력적으로 쇄도하고 있었다.
-第 五手-
남궁천은 찰나의 순간, 판단을 내렸다.
그것은 이성에 의한 것이 아니라 무인으로서의 본능에 의한 것이었다.
날아드는 곤을 손바닥으로 막으려 하다가.
스릉-
황급히 두 손을 뒤로 물렸고 곧장 허리춤의 칼을 빼들었다.
까-앙!
추이의 곤에서 뿜어져 나온 내력과 남궁천의 칼에서 흩뿌려진 내력이 한데 맞붙었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어마어마한 폭음과 함께, 주변으로 갈가리 찢어진 내력의 파편들이 튄다.
땅이 쪼개졌고 바위에는 구멍이 퍽퍽 뚫렸으며 나무는 불타버렸다.
모든 관중들이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싼 채 엎드리던 바로 그때.
···타탁!
추이가 몸을 뒤로 뺐다.
최후의 일격이 남궁천의 칼에 가로막히는 순간, 내력과 내력이 서로 맞부딪치며 밀어내는 반탄력을 이용해서 바람처럼 내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어엇!?”
남궁세가의 무인들 몇몇이 막으려 했으나 그들은 추이의 그림자 끝조차도 스칠 수 없었다.
퍼퍼퍼퍼퍼펑!
추이는 군중들이 눈을 한번 깜빡이는 사이에 현장에서 사라져 버렸다.
붉은 바람과 짙은 피비린내만을 남겨둔 채로.
* * *
상대가 떠나버리고 난 뒤, 결전 장소에는 남궁천과 군중들만이 남겨졌다.
“······이런.”
남궁천은 허탈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자신의 칼을 내려다보았다.
곤과 부딪친 칼은 반으로 동강났다.
절단면은 마치 용광로에 담갔다가 뺀 듯 끈적하게 녹아내리고 있었다.
남궁파가 황급히 남궁천의 옆으로 뛰어왔다.
“아버님, 잡을까요!?”
“냅둬라.”
남궁천은 칼을 버리고는 고개를 저었다.
“저 녀석. 애초부터 싸울 생각이 없었다. 마지막 수로 도망칠 심산이었던 게야.”
“지금 바로 추격하면 잡을 수 있습니다.”
“잡으면?”
“예?”
“잡으면 뭘 어떻게 하려고?”
“그야······”
남궁파가 우물쭈물거리자 남궁천이 혀를 쯧쯧 찼다.
그는 자신의 검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다.
“잡아 온다고 해도 내가 그 녀석을 볼 면목이 없다. 첫 번째는 실수였다고 쳐도, 마지막은 실수가 아니었으니까.”
남궁천은 검을 뽑지 않고 다섯 수를 양보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첫 수에서 무의식적으로 검을 사용했고, 마지막 수에서는 의식적으로 검을 사용했다.
약속을 두 번이나 어긴 것이다.
남궁파는 물었다.
“아니, 아버님. 그렇다면 마지막에는 왜 칼을 쓰셨습니까? 첫 번째는 정말 무의식적으로 빼셨던 것 같지만······ 마지막에는······?”
그러자 남궁천은 입맛을 다시며 대답했다.
“죽을까 봐.”
“······!”
남궁파를 비롯, 알게 모르게 귀를 쫑긋 세우고 있던 관중들을 기절할 듯 놀라게 만든 한마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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