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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귀무쌍-28화 (23/110)

28-사나운 창자(猛臟) (3)

28-

“으아아아아아아!”

남궁팽생은 칼을 휘둘렀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 검붉은 창귀들이 낄낄거리며 그런 남궁팽생을 농락하고 있었다.

[이놈 팽생아-]

[우리에게 뒷돈 받아 처먹을 때는 좋았지?]

[다 끝났다. 자, 이제 산군(山君)님을 따라가자.]

[히히히히히- 꼴 좋다, 이 색마 놈아. 히히히히히-]

[팽생아- 팽생아- 남궁팽생아- 내 늘 네놈을 벼르고 있었느니라!]

흑도방과 조가장의 창귀들이 비웃음을 흘리며 눈먼 남궁팽생의 주위를 맴돌았다.

분노는 피를 빠르게 돌게 하고, 빠르게 도는 피는 독을 온몸 구석구석까지 밀어 보낸다.

강족의 독은 제일 먼저 눈을 멀게 만든다.

그 다음은 귀를 닫게 하고, 그 다음은 코를 막히게 한다.

반면 입은 여전히 잘 벌어지며 혓바닥도 여전히 팔팔하게 움직인다.

특이하게도, 강족의 독은 입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남궁팽생은 눈과 귀를 닫은 채 입만 크게 열고 있는 것이다.

“이 새끼들! 이 벌레만도 못한 새끼들아! 살아있었으면 내 눈도 못 마주쳤을 쓰레기들이!”

남궁팽생의 칼이 허공을 베어가른다.

그의 칼은 잘 벼려낸 명검.

일검에 바위도 쪼개버릴 수 있을 정도로 강한 칼이다.

하지만 칼은 결국 산 것을 죽일 수 있을 뿐, 죽은 것을 다시 죽일 수는 없다.

창귀들은 남궁팽생이 아는 모든 사람들의 목소리를 흉내내며 그를 조롱하고 비웃었다.

[너, 돈 받고 지인의 아들래미를 무림맹에 특별 채용해 주었지? 그때 최종 면접에서 떨어졌던 청년 둘이 자살한 것을 알고 있느뇨?]

[팽생 이 개자식아- 나를 지방으로 좌천시켜 놓고 내 마누라랑 붙어먹은 걸 내가 모를 줄 아느냐!]

[내 딸을 몰래 첩실로 들여서 학대하더니, 애 낳고 산후조리 한 번을 안 시켜줘서 결국에는 죽여 놓았지?]

[이놈 팽생아! 내가 누군 줄 아느냐! 네가 마도의 첩자라고 누명을 씌워서 처형했던 우가장의 장주다! 내게서 빼앗아갔던 장보도는 어쨌느냐!?]

창귀들은 남궁팽생의 과거들을 늘어놓으며 연신 비웃어댄다.

남궁팽생은 이빨이 부러져 나가는 것도 모른 채 이를 뿌득뿌득 갈았다.

“아니다! 나, 나는 뒷돈을 받지 않았어! 첩들이 죽어나가는 건 모르는 일이다! 다 마도의 첩자들이 꾸며낸 일이야! 나, 나는 몰라!”

바로 그때, 그의 앞에 또 다른 창귀 하나가 나타났다.

붉은 수염을 길게 기른 노인.

뻥 뚫린 두 눈구멍에서는 핏물이 울컥울컥 차올라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남궁팽생은 기겁했다.

“조, 조양자······ 당신이 어떻게······ 주, 죽었잖아 너는!”

[죽기는. 그대를 남겨놓고 내 어찌 혼자 가리까.]

조양자의 입이 귀밑까지 찢어졌다.

그 무시무시한 미소 앞에서 남궁팽생은 악에 받쳐 소리질렀다.

“이노옴! 뒈지려면 혼자 뒈질 것이지 왜 수살귀처럼 나를 잡아끄느냐!”

[그동안 그대의 구린 뒷일을 다 내가 도맡아서 하지 않았소이까. 그러니 우리는 한 몸이 아니겠소. 끌끌끌······]

“닥쳐라! 원로의 자리를 유지하기 위한 고육계(苦肉計)였을 뿐이다! 나를 방해한 놈들이 잘못한 게야!”

[잘 알고 있소. 그대를 원로로 만들어준 공신들 중의 하나가 나 아니오.]

“공신? 주제도 모르는 소리! 조양자, 네놈은 그냥 사냥개였을 뿐이야! 병신 만들라는 놈 병신 만들고! 죽이라는 놈 죽이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돈이나 가져오는! 네놈뿐만이 아니라 남궁세가 북궁원도! 그 밑에 산하 문파나 세가들도 다 똑같다! 다 개새끼들일 뿐이라고!”

[그렇소. 그동안 뒤 구린 일 참 많이도 시키셨소. 끌끌끌······ 그 덕에 나는 이렇게 뚝배기 속 개장국 한 그릇만도 못한 신세가 되었구료.]

“다 네놈이 자초한 일이다! 네놈이 남궁세가의 삽혈맹세에 참여했을 때부터, 남궁의 산하로 들어왔을 때부터, 네놈은 나의 개가 되기를 자처한 게야! 개면 개답게 주인 말을 들어라! 어서 저승으로 꺼져버리란 말이다!”

남궁팽생이 내력을 쥐어짰다.

검은 피를 토하면서까지 내지른 일격이 조양자의 창귀를 반으로 갈라버렸다.

그러자 조양자가 낄낄 웃었다.

[곧 나를 따라오게 될 거요, 북궁원로. 이곳은 매우 춥고 고독하니······ 각오 단단히 하고 오시오······ 끌끌끌끌······]

끝으로, 조양자의 창귀가 확 사라졌다.

동시에 남궁팽생은 입에서 엄청난 양의 검은 피를 토해냈다.

“크허억······ 꺼헉!”

시야가 천천히 돌아온다.

남궁팽생은 산발이 된 머리카락 사이로 시선을 들었다.

“······.”

“······.”

“······.”

그는 반으로 쪼개진 제단 위에 서 있었다.

그리고 그 밑에는 남궁세가의 무인들, 그리고 남궁세가의 초청을 받아 모인 안휘성의 저명인사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차가운 시선으로 남궁팽생을 바라본다.

“······?”

남궁팽생은 장내의 분위기가 왜 이런지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한 중년인이 벌떡 일어났다.

그는 재시현 최가장의 장주 최은조였다.

“북궁원로! 방금 하신 말씀이 진담이오!”

“······?”

남궁팽생은 멍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방금 전에 자신이 무슨 말을 했더라?

이상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마치 무언가, 잡귀 같은 것에 홀린 듯한 기분.

이윽고, 옆에서 또 한 명이 분개한 표정으로 일어났다.

그는 재시현의 옆 고빈현의 대표 문파 대나빈문의 문주 이주선이다.

“남궁세가는 삽혈맹세를 한 산하 조직들을 오직 키우는 사냥개 정도로 여긴다는 말이오!?”

그 뒤는 가히 우후죽순이라는 말이 딱 맞는 상황이었다.

곳곳에서 가주, 문주들이 일어나 남궁팽생을 성토했다.

“오구현 미도문의 문주 강구민이라 하오. 나는 오늘 이 자리에 남궁세가의 벗이 되기 위해서 왔지 남궁세가의 개가 되기 위해서 온 것은 아니외다.”

“방금 전 뒷돈 어쩌구 했던 발언은 무엇이오? 해명하셔야 할 것 같소!”

“아무리 남궁세가의 원로라고 해도 이건 아니지 않소! 첩을 돈으로 사 온다니!”

“멀쩡한 세가를 마교의 첩자로 몰아서 몰살시켰다는 것은 또 뭐요?”

“무림맹의 채용 비리라니! 원로께서 무림맹 간부로 재직하고 있으셨을 때의 일이오? 대체 뭐요?”

“어험! 다른 것은 몰라도 장보도 사건에 대해서는 내 꼭 짚고 넘어가야겠소이다!”

군중들이 두 부류로 갈렸다.

하나는 삽혈맹세를 통해 남궁세가의 산하로 들어가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던 이들이다.

그들은 하나같이 분노한 표정으로 남궁팽생을 향해 목소리를 높인다.

다른 하나는 그들을 막지도, 내버려 두지도 못한 채 엉거주춤 서 있는 남궁세가의 무인들이었다.

결국 모든 이들의 시선은 남궁팽생을 향한다.

바로 그 시점에서.

퍼-억!

남궁팽생의 허리가 ㄱ자로 꺾였다.

“꺼억!?”

마른기침을 토해내는 남궁팽생의 뒤로 추이가 검은 곤을 드리웠다.

“이래서 강족의 독이 무섭지.”

바닥을 기어다니며 기침을 하는 남궁팽생을 보며 추이는 작게 중얼거렸다.

강족의 독은 인간의 눈, 귀, 코를 마비시키되 입만은 마비시키지 않는다.

그것은 독에 중독되어 보지도, 듣지도, 맡지도 못하게 된 인간이 누군가의 보살핌마저 받지 못하게 하기 위함.

“만악(萬惡)의 근원은 혀끝이라······.”

눈, 귀, 코가 망가진 인간은 단 하나 남아있는 혀로 자신의 괴로움과 불만들을 끊임없이 토로한다.

이것이 계속되다 보면 주변 사람들은 지쳐서 그를 외면하게 된다.

결국 입속의 혀를 살려놓은 것은 중독된 자를 최종적으로 고립시켜 진정한 의미의 죽음으로 몰아넣기 위함이다.

그리고 이 독이 창귀들의 간교한 속삭임과 더해진다면 놀랄 만한 부가효과를 내게 된다.

바로 지금의 남궁팽생이 처한 상황처럼 말이다.

“오, 오해요! 내, 내, 내가 무슨 말을 했다는 거야! 나는 그저······!”

남궁팽생은 손을 허우적거리며 변명을 늘어놓으려 했다.

하지만 추이가 그것을 기다려 줄 리가 없었다.

육각기둥의 형태를 한 긴 흑곤이 묵직한 바람을 일으킨다.

부웅- 쩍!

도끼로 장작을 팼을 때나 날 법한 소리.

그것이 남궁팽생의 허리에서 터져나왔다.

“끄학!?”

남궁팽생은 칼을 놓쳐버렸다.

허리를 맞을 때 곤 끝에 팔꿈치를 스쳤는데 아마도 팔뼈 전체가 부러진 것 같았다.

“끄으으으으······”

절정에 이른 고수가 벌레처럼 바닥을 기어다닌다.

추이는 그 위로 사신처럼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푸욱!

곤이 제단 바닥에 꽂혔다.

추이는 곤을 놓고는 바닥에 떨어진 송곳과 망치를 집어들었다.

···터억!

피로 물든 손아귀가 남궁팽생의 머리채를 휘어잡는다.

덜덜 떨리는 남궁팽생의 얼굴을 향해, 추이는 망치를 들었다.

“사, 살려다오.”

“안 돼.”

구걸과 거절이 오가는 시간은 짧았다.

떠-걱!

망치가 남궁팽생의 턱을 후려갈겼다.

아래턱이 박살나며 아랫 이빨들이 모조리 입밖으로 흩어졌다.

“으어어어어어······”

남궁팽생이 몸을 웅크린다.

추이는 핏물과 이빨들을 발로 쓸어 제단 밑으로 털어버렸다.

“내 의형의 이빨을 부러트렸다지?”

“······?”

남궁팽생이 무슨 소리냐는 듯 고개를 든다.

추이는 무심한 표정으로 송곳을 들어올렸다.

“내 의형의 가슴팍을 칼로 도려내기도 했고?”

“으어어어······ 무, 무슨 소리야······ 그런 적 없어!”

“그런 적 있어. 기억은 잘 안 나겠지만.”

추이는 송곳을 들어 남궁팽생의 가슴팍을 연거푸 쑤셨다.

남궁팽생은 가슴을 움켜쥔 채 바닥을 구른다.

추이는 그 앞으로 걸어가며 송곳을 망치로 바꿔 쥐었다.

“내 의형이 그러는데, 너한테 볼기짝 한 짝을 잘리기도 했다는군.”

“네, 네 의형이 누군데! 나는 그런 놈 몰라!”

“몰라도 돼. 이번 삶에는.”

추이는 망치로 남궁팽생의 엉덩이를 내리찍었다.

꼬리뼈가 와작 소리를 내며 부러졌고 그 밑에 있는 좌골까지 왕창 주저앉는다.

“······! ······! ······!”

상상을 초월하는 격통.

남궁팽생은 소금에 닿은 지렁이마냥 몸을 비비 꼬기 시작했다.

이제부터는 비무나 대결의 성질을 지닌 것이 아니었다.

그저 고문.

잔혹한 복수만이 남았을 뿐이다.

남궁세가의 무사들 몇이 칼을 뽑아들고 제단 위로 뛰어올라왔으나.

“더 이상 가까이 오면 이놈을 바로 죽이겠다. 이래 봬도 인질이야.”

돌아보지도 않고 말하는 추이의 목소리에 남궁세가의 무사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이윽고.

추이는 남궁팽생을 제단 맨 끝으로 걷어찼다.

피를 흘리며 끅끅대는 남궁팽생.

그는 어린아이처럼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제발······그······ 만······ 잘못······ 했······”

추이는 그저 무심한 표정으로 그런 남궁팽생을 내려다본다.

‘이놈이 살생부에 적힌 마지막 이름이었지.’

눈을 감으면 아직도 호예양이 읊던 시조가 귓가에 선하다.

역수(易水)의 강물과 숯을 삼킨 복수귀의 탁한 목소리가 한데 섞여 휘몰아치던, 그날의 기억이.

此地別燕丹.

-이 땅에서 연단(燕丹)과 이별하여.

壯士髮衝冠.

-장사의 성난 머리털이 갓관을 뚫었다.

昔時人已沒.

-그 시절의 사람들은 이미 가고 없지만.

今日水猶寒.

-지금도 이 강물 여전히 서늘하도다.

추이는 눈을 떴다.

그리고 지금은 가고 없는 의형의 유지를 이어, 살생부에 적힌 마지막 이름에 마침표를 찍었다.

···퍽!

곤으로 남궁팽생의 대가리를 깨 놓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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