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사나운 창자(猛臟) (2)
27-
남궁팽생(南宮彭生).
장원 북쪽에 위치해 있는 큰 궁의 주인.
전대 가주 때부터 원로원에 몸담고 있었던 남궁세가의 실세.
추이는 그런 남궁팽생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뱀처럼 찢어진 눈, 걍팍하게 생긴 매부리코, 가슴께까지 기른 회색 수염, 뺨과 눈을 세로지르는 흉터.
‘맞군.’
추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 속에 있던 얼굴보다 다소 젊기는 하지만 그런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과거 호예양의 살생부 최상단에 올라 있었던 이름과 인상착의.
그 죄목은 간단했다.
‘호정문의 멸문을 보고받고도 그것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은 채 덮어버린 놈. 그것은 조가장의 조양자와 먼 친척 관계였기 때문이었지.’
남궁팽생은 조가장의 장주 조양자에게 보호비 외에 따로 뒷돈을 받고 있었다.
또한 조가장 말고도 다른 산하 문파들에게 뒷돈을 받거나 혹은 기타 향응을 제공받아 왔다.
가세가 기울고 있는 곳의 여식이 마음에 든다 싶으면 힘과 지위를 앞세워서 강제로 첩실로 맞이하기를 부지기수였다.
또한, 남궁팽생은 호예양와 추이에게도 직접적인 원한을 산 적이 있었다.
일단 변방까지 도망치는 호예양을 기어코 집요하게 추격해서 그녀의 가슴과 허리에 큰 상처를 입힌 인물이기도 했고, 오독교(五毒敎)의 잔당들을 궤멸시킨 뒤 창왕이라는 별호로 불리던 추이를 무림공적으로 몰아넣는 여론전을 펼쳤던 인물이기도 했다.
이러나 저러나 추이와 남궁팽생은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수지간인 셈이다.
꾸욱-
추이는 남궁율의 목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제단 위로 올라온 남궁팽생에게 물었다.
“도축장의 백정들에게 들었다. 이 늑대들을 잡아온 게 너라고. 맞나?”
“그렇다.”
“어미 늑대를 잡았으면 됐지, 새끼 늑대까지 잡았던 이유가 뭐냐?”
추이의 물음에 남궁팽생은 콧방귀를 뀌었다.
“위험한 종자들은 씨를 말려놔야지. 살려둬 봤자 인간에게 복수심을 품은 해수가 될 뿐이니까.”
“······.”
대답이 되었다.
남궁팽생은 아마 같은 사고방식으로 호정문의 유일한 생존자인 호예양을 뒤쫓았을 것이다.
호정문의 가주였던 호연암이 죽었으면 끝난 일이거늘, 굳이 그 새끼까지 뒤쫓아 죽이려 든 것을 보면 그의 집요함과 악독함을 알 수 있었다.
추이는 제단 위에 죽어있는 어미 늑대와 새끼 늑대를 향해 말했다.
“저 늙은 여우는 내가 대신 잡아주마.”
동시에, 추이는 손에 쥐고 있던 남궁율을 들어올렸다.
아혈을 짚자 그녀의 입이 벌어진다.
남궁율은 천천히, 마비가 반쯤 풀려 어눌해진 어조로 말했다.
“이······ 악적······ 남궁세가······ 한복판······ 이런 짓을······ 벌이고도······ 무사······ 할 수······”
하지만, 추이는 그녀의 말 따위는 조금도 귀담아 듣지 않았다.
쑤-욱!
벌어졌던 남궁율의 입안으로 무언가가 들어갔다.
그것은 혓바닥.
바로 추이의 혀였다.
“······!?”
“······!?”
“······!?”
지켜보던 모든 이들이 경악했다.
남궁율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추이는 계속해서 남궁율과 혀를 섞는다.
꿀꺽-
남궁율은 무언가가 목젖을 타넘어 들어오자 화들짝 놀랐다.
“컥!?”
남녀의 침이 한데 뒤섞이는 순간, 곧바로 입안이 타들어가는 듯한 매운맛이 느껴졌다.
“꺄아아아아악!”
남궁율이 비명을 지르자 제단 아래에 있던 남궁파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무, 무슨 짓이냐! 약속이 다르지 않느냐!”
“상처는 안 냈다. 독을 먹였을 뿐. 약속을 어긴 것은 없지.”
추이는 소매로 입을 한번 슥 닦고는 남궁율의 엉덩이를 발로 뻥 걷어차 제단 아래로 떨어트렸다.
남궁파가 허공을 밟고 날아올라 남궁율을 받아들었다.
남궁율은 눈을 까뒤집은 채 입에 거품을 물고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중독 상태임이 명백해 보였다.
‘······젠장! 대체 무슨 독이지?’
산전수전 다 겪어본 남궁파조차도 짐작 가는 독이 없다.
아마도 극도로 희귀한 산공독 종류인 모양.
“의원! 의원은 어디에 있느냐!?”
남궁파는 남궁율을 업고 나는 듯이 달려 의원이 있는 곳으로 향한다.
한편, 남궁세가의 무인들은 저마다 칼을 빼들고 제단을 포위했다.
남궁율이 빠져나온 이상 저 괴한을 살려둘 이유가 조금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추이는 바지 주머니에서 작은 병 하나를 꺼내들었다.
“이건 해독제다.”
“······.”
“제단 위로 다른 놈이 올라오거나, 남궁팽생, 네가 도망간다면 이 병은 바로 깨질 것이다.”
추이의 태연한 말에 남궁팽생의 표정이 다시 한번 일그러졌다.
칼을 뽑아들고 제단 위로 올라오려던 남궁세가의 무사들이 다시 제단 밑으로 내려가며 이를 뿌득뿌득 갈게 되었다.
이윽고.
터-엉!
추이는 늑대를 묶고 있던 끈을 끊어냈다.
옮길 때 장정 서넛이 달라붙어야 했던 검은 장대가 추이의 손에 들렸다.
남궁팽생을 비롯한 몇몇 노련한 이들은 그제야 그것의 정체를 알아볼 수 있었다.
“그것은 곤귀 구강룡의 곤······ 사도련의 수금귀와 무슨 관계냐?”
“알 것 없다.”
추이가 귀찮다는 듯 손사래를 치자 남궁팽생이 이를 뿌득 갈았다.
“그렇군. 알겠다. 감이 오는구나. 네가 조가장과 흑도방을 몰살시킨 삼칭황천이라는 놈이었군.”
“마음대로 생각해라.”
“같잖은 잡배야. 나를 조양자 따위와 비교했다가는 큰코 다칠 것이야.”
이윽고, 해독제가 든 병을 앞에 두고 남궁팽생이 기세를 끌어올렸다.
칼을 든 남궁세가 무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추이 역시도 전투에 돌입한다.
츠츠츠츠츠츠······
추이가 든 흑색의 곤이 시뻘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창귀들이 피눈물을 흘리며 곤 끝을 기어오른다.
그것은 오직 추이와 남궁팽생에게만 보이고 있었다.
“조, 조양자!? 그대가 어째서······?”
추이의 곤끝에서 울부짖는 조양자의 얼굴을 본 남궁팽생은 기절할 듯 놀라며 눈을 크게 떴다.
이윽고, 남궁팽생이 씹어 내뱉듯 외쳤다.
“사술! 사술이다! 아니, 이건 마공이 분명한······ 헉!?”
하지만 남궁팽생의 목소리는 바람에 묻혀버렸다.
추이의 흑곤이 어마어마한 기세로 날아든다.
콰-쾅!
위에서 아래로, 단순하게 떨어져내린 흑색의 벼락은 그 높던 제단을 두 조각으로 쪼개버렸다.
쩌저저저저저저적!
양쪽으로 벌어지는 제단.
남궁팽생은 재빨리 칼을 휘둘러 추이의 곤에 대응했다.
한데?
쉬릭-
추이는 곤을 휘둘러 제단을 쪼개버린 즉시 곤을 놓아버렸다.
그리고는 품에서 두 자루의 송곳을 쥐고는 그대로 남궁팽생의 눈과 심장을 노렸다.
“······!?”
남궁팽생은 황급히 왼손을 들어올려 눈을 가렸고 몸은 옆으로 한껏 비틀었다.
그 때문에 심장을 노렸던 송곳은 그의 수염을 싹둑 잘라버리는 것에 그쳤고 눈을 노렸던 송곳은 그의 왼손을 관통하고 나서 멈췄다.
후두둑- 후두두둑-
붉은 피를 흩뿌리며 물러난 남궁팽생의 머리 위로 이번에는 망치가 떨어져 내렸다.
남궁팽생은 황급히 발을 뒤로 물러 망치를 피했으나.
뿌직!
바닥에 이미 자리하고 있던 수많은 마름쇠들 중 몇 개를 밟고 말았다.
“크윽! 뭐 이런 개 같은······!”
남궁팽생은 발바닥을 뚫고 들어와 발등으로 삐죽 고개를 내민 마름쇠들을 보며 이를 갈았다.
그런 상황 속에서.
···타악!
추이가 손을 뒤로 뺐다.
그러자 손목에 묶여있는 잠사가 제단 가운데로 떨어졌던 곤을 끌어올린다.
차라라라락! 부웅-
추이의 곤이 다시 한번 휘둘러졌다.
“제대로 해라. 해독제 필요 없어?”
“이 건방진 애숭이가!”
남궁팽생은 내력을 있는 힘껏 끌어올려 검에 실었다.
검과 곤이 한데 부딪친다.
쩌-엉!
묵직한 쇳소리가 장원 전체를 떨어 울린다.
절정에 이르른 남궁팽생의 내력은 과연 심후한 것이었다.
그의 칼끝에서 피어오른 검기(劍氣)는 기체의 수준을 넘어 농밀한 액체로 변해 있었다.
마치 꿀처럼 끈적하게 방울져 떨어지는 검루(劍淚), 그것이 추이를 향해 확 흩뿌려진다.
“······.”
추이는 몸을 활처럼 구부려 남궁팽생의 검루들을 피해냈다.
마치 용암 방울이 튄 것처럼, 남궁팽생의 검루에 닿은 곳은 맹렬한 기세로 쪼개지고 타들어간다.
쾅! 쩌억- 까앙!
추이는 방울방울 날아드는 검루를 모두 받아쳐 날려버렸다.
‘가라.’
추이는 곤에 들러붙어 있던 창귀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수많은 창귀들이 자신의 한(恨)을 내공으로 변환시켜 추이의 혈관 속을 맴돈다.
그것들은 이내 순도 높은 창기(槍氣)로 변하여 곤 끝에 끈적한 액체처럼 늘어졌다.
그것을 본 남궁팽생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추이는 그런 남궁팽생의 앞으로 곧장 뛰어들었다.
“말했잖아.”
그리고 품 안에 숨겨놓았던 마름쇠들을 죄다 흩뿌렸다.
“너 정도는 충분히 때려잡는다고.”
추이의 곤이 허공에 뜬 마름쇠들을 향해 쇄도했다.
퍼퍼퍼퍼퍼펑! 따따따따따따따땅!
불똥과 함께, 대량의 마름쇠들이 곤에 부딪쳐 날아갔다.
그것들은 죄다 남궁팽생을 향하고 있었다.
“크윽!?”
남궁팽생은 칼을 휘둘러 검루를 넓게 펼쳤다.
마치 검막(劍膜)과도 같은 형태였다.
하지만 날아드는 마름쇠에도 추이의 창루가 묻어있었다.
퍼퍼퍼퍼퍼퍼퍽!
그것은 남궁팽생이 펼친 검막을 뚫고 들어와 그의 전신에 얕게나마 틀어박혔다.
남궁팽생은 눈을 비롯한 급소로 날아드는 몇몇 마름쇠를 칼로 쳐냈다.
그러느라 자신의 정수리를 향해 떨어져 내리는 추이의 망치를 미처 보지 못했고 말이다.
“헉!?”
남궁팽생은 황급히 고개를 옆으로 치웠다.
추이의 망치가 일직선으로 떨어져 내려 그의 귀를 찢어버렸고, 곧이어 빗장뼈를 부숴놓았다.
빠-각!
쇄골이 부러지는 것을 넘어 모래알처럼 바스러지는 감각.
남궁팽생은 이를 꽉 악물었다.
고강한 무공과 그렇지 않은 전투법.
대체 이런 상식 외의 고수가 어디서 출몰했는지, 왜 자신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는지, 남궁팽생은 그저 의아하기만 할 따름이었다.
“뒈져라!”
하지만 그런 호기심을 푸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눈앞의 적을 죽이는 것이다.
남궁팽생의 칼에서 시퍼런 검루가 휘몰아쳤다.
초승달 모양의 긴 궤적이 ‘창궁무애검법’의 진수를 허공에 그려내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추이가 몸을 낮췄다.
별달리 효과가 있는 방어 자세는 아니었다.
굳이 따지자면 바닥을 굴러 도망치기 위한 나려타곤의 자세.
체면을 중요시하는 정도의 무인들이라면 백안시하는 회피 동작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상식 외의 인물, 바닥을 구르는 것은 물론 기어서 도망칠 수도 있다고 판단한 남궁팽생은 칼의 궤적을 더더욱 촘촘하게 짰다.
천망(天網). 하늘에서 덮치는 그물처럼, 남궁팽생의 검격이 추이를 옥죄어 오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퉤-”
추이가 침을 뱉었다.
새빨간 피가 섞인 침이 남궁팽생이 짜놓은 검루의 그물코 사이를 뚫고 날아들었다.
그것은 정확히, 반쯤 벌어져 있던 남궁팽생의 입안으로 들어갔다.
“컥!? 카학!”
남궁팽생이 별안간 검을 뒤로 물렀다.
입안 전체가 타들어간다.
두피와 겨드랑이, 사타구니가 순식간에 땀으로 축축해졌다.
혀뿌리가 뽑혀나오는 듯한 매운맛에 정신이 절로 아찔해지고 있었다.
추이는 과거 홍공이 했던 말을 생각했다.
‘이 무공을 숙련되게 익힌 자를 ‘이올(彛兀)’이라 부른다. 이올의 피는 어지간한 무림인에게는 극독과 같다. 자신의 것이 아닌 남의 내공을 태우고 말려버리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다.
추이의 침은 극독과도 같다.
무시무시한 매운맛과 더불어 타인의 내공을 가뭄 맞은 논바닥처럼 쩍쩍 말려버리기 때문이다.
‘아직 이올의 경지가 낮아서 지속 시간은 그리 길지 않지만······ 그래도 꽤나 충격적일 것이다.’
아까 추이가 남궁율에게 입맞춤을 통해 먹인 침 역시도 같은 원리였다.
“컥! 커헉! 으으윽!?”
남궁팽생은 목을 움켜쥔 채 뒤로 물러났다.
그때, 추이가 돌발행동을 했다.
이 자리에 모인 모든 이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행동이었다.
···땅그랑!
추이는 해독제 병을 남궁팽생의 발치로 던졌다.
그리고는 태연하게 말했다.
“내가 네게 먹인 독의 해독제는 이것 하나뿐이다.”
추이는 그 뒤를 이어 말하려 했다.
“선택해라. 이 해독제를 남궁율에게 먹일 것인지, 아니면 네가 먹을 것인······”
하지만 추이의 말은 도중에 끊겼다.
“으아아아아아!”
남궁팽생이 해독제를 집어들더니 그것을 바로 제 입에 처넣었기 때문이다.
내공이 시시각각 말라비틀어지는데다가, 무엇보다 입안이 너무너무 매우니 도무지 제정신을 유지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
“······.”
“······.”
그 점을 이해해 주는 사람은 군중들 속에 없었다.
조카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해독제를 저 살자고 홀랑 까먹어버린 놈.
그것이 대중들이 남궁팽생을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하지만.
“커헉!?”
그렇게 해서 해독제를 삼킨 남궁팽생의 상황은 더더욱 나빠질 뿐이었다.
맵고, 내공이 타들어가는데다가, 숨까지 잘 안 쉬어지기 시작했다.
남궁팽생의 안색이 거무죽죽하게 죽어간다.
“······? ······? ······?”
의아한 기색으로 고개를 드는 남궁팽생에게, 추이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뻥이야.”
상대가 심계(心計)에 걸려들었다.
추이의 침이 가지는 독성은 반 시진도 채 가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사라져 버린다.
하지만, 방금 전에 남궁팽생이 해독제인 줄 알고 삼킨 독은 그 유명한 강족의 독.
추이가 조가장을 멸문시킬 때 사용했던 맹독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방금 전의 유리병 속에 담겨 있던 것이 진짜 함정인 것이다.
‘끝났군.’
추이는 전투의 끝이 다가오고 있음을 직감했다.
아울러 남궁세가에서의 볼일 역시도 이제는 사라질 것이다.
드르르르르륵······
추이는 무거운 곤 끝을 바닥에 대고 끌며 남궁팽생을 향해 걸어갔다.
한편.
“크아아아아아악!”
남궁팽생은 검은 눈물을 흘리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핏발이 잔뜩 곤두선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듯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상대에게 끌려다니기만 하다가, 마지막에는 심계에 걸려 허무하게 중독되어 버렸으니 분노에 눈이 머는 것도 당연했다.
남궁팽생이 아무도 없는 허공에 대고 칼을 휘두르며 발악했다.
“이, 이 비겁한 놈! 저, 정정당당하지 못하게!”
“······정정당당?”
추이는 육각형의 쇠기둥을 높이 들어올리며 웃었다.
비겁에 정정당당이라.
실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농담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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