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귀무쌍-8화 (3/110)

8-보복행 (3)

8-

흑도방주 구양포.

그는 지금 복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혈전을 바라보며 이를 악물고 있었다.

마공을 익한 마인(魔人)의 출현.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주르륵-

차게 식은 땀이 목덜미를 적신다.

구양포는 본디 사파에서 나고 자란 무림인이었다.

정파의 ‘정’이 정(正)이 아니라 정(定)인 것처럼, 사파의 ‘사’는 사(邪)가 아니라 사(似)다.

정파가 ‘정의로운 집단’이라는 뜻이 아닌 것처럼, 사파 역시도 ‘사악한 집단’이라는 뜻은 아니다.

명분과 규범을 상대적으로 덜 중요시 여기는 풍조만이 차이점일 뿐, 무를 숭상하고 몸과 마음을 수양한다는 점에서 이 둘은 궤를 같이하는 개념이었다.

······하지만 마(魔)는 아니다.

그것은 글자의 의미 그대로 인외(人外)의 뜻을 가지며, 사파 중에서도 거칠고 비인간적인 무리로 일컬어지는 흑도(黑道)를 훨씬 뛰어넘는 악(惡) 그 자체이다.

정이든 사든 나눌 것 없이, 마는 무조건 멸해야 하는 공적(公敵)인 것이다.

‘대관절 저 새끼는 뭐냔 말이다! 대체 왜 흑도방에 나타난 거냐고!’

처음 습격자의 얼굴을 보았을 때, 구양포는 그가 정파의 고수라고 생각했다.

‘지들만의 정의에 심취한 정파 새끼들이 아니면 누가 이런 짓을 하겠어.’

흑도사걸의 머리통을 잘라내 굴려 보내는 것으로 보아 미쳐도 대쪽같이 미친 새끼가 아닌가 싶었지만······ 그 생각은 조가장의 호위무사가 죽음으로써 바뀌었다.

‘아무리 미친 새끼라고 해도 이건 선을 넘었다. 정파 소속일 수가 없어. 흑도다. 저 녀석은 흑도가 틀림없어!’

하지만 다 틀렸다.

저건 마(魔). 정(定)과 사(似)와는 아예 궤를 달리하는 무시무시한 존재였다.

구양포는 생각했다.

‘마인은 미쳐 날뛰며 폭주하는 것밖에 모르는 짐승이지. 산에서 맹수가 내려온 상황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그러니 빨리 후문으로 도망쳐서 사도련이든 무림맹이든 구원 요청을 보내야지.’

마공이라는 것이 원래 그렇다.

초반에는 습득하는 속도가 미친 듯이 빠르지만 중반을 넘게 되면 십중팔구 광인이 되어버린다.

이는 후반부, 지고의 경지에 도달해야만 극복할 수 있는데 그 경지까지 살아남는 마인들의 수는 거의 없다.

있다고 해도 이미 무림공적으로 낙인찍혀 천라지망에 갇혀 죽거나 혹은 뇌옥에 수감된 다음일 테니까.

···퍽! ···퍽! ···퍽!

적은 조가장의 호위무사를 뼈다귀로 때려죽이고 있다.

거의 육전 반죽이 되어버린 호위무사의 얼굴에서 시선을 뗀 구양포는 살금살금 걸어가 내실 안쪽의 비밀통로로 향했다.

그때.

“······네가 구양포지?”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마인의 입에서 사람의 말이 나온 것이다.

“!?”

도망치려던 구양포는 귀신이라도 본 듯 놀라 발걸음을 멈췄다.

‘이성이······ 있어?’

놀라운 일이다.

세상에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마인이 있다니.

‘그렇다는 것은······’

다리가 덜덜 떨려오기 시작한다.

상대는 마인. 이성을 가지고 있는 마인.

그렇다면 아마 상대는 지고의 경지에 올라 있는 존재일 가능성이 컸다.

‘절정고수!’

이제 막 이류에서 일류로 가는 길목에 서 있는 구양포에게는 하늘보다 더 높은 경지였다.

츠츠츠츠츠츠츠······

이윽고, 마인이 기세를 갈무리하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그 전까지 느껴지던 짙은 마기가 싹 사라졌다.

구양포는 더더욱 절망했다.

마기를 스스로 제어할 수 있을 정도의 강자라면 자신으로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길 수 없다.

그는 적의 앞에 냅다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기 시작했다.

“살려주십시오! 살려만 주시면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       *       *

추이는 묘족의 호흡을 통해 마기를 억누르고 있었다.

대기 중의 맑은 기운을 흡수하여 단전에 갈무리하자 폭풍우처럼 휘몰아치던 매캐한 기운이 점차 가라앉아간다.

츠츠츠츠츠······

방금 죽인 조가장의 호위무사가 창귀가 되어 추이에게 들러붙었다.

[도······ 련······ 니임······]

살겁의 업보가 영혼에 눌어붙었고 그로 인해 창귀칭의 내력은 더더욱 심후해진다.

흑도사걸에 이어 또 다시 강한 창귀를 흡수했기에 추이의 경지 역시도 높아졌다.

추이는 단숨에 굴각 4층계에 도달했다.

전생에서는 도달하기까지 일 년이 넘게 걸렸던 경지였다.

바로 그때.

“사, 살려주십시오!”

흑도방의 방주 구양포가 머리를 조아렸다.

“살려만 주시면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그는 덜덜 떨면서도 꿋꿋하게 말을 이었다.

“오. 오늘은 사도련에게 상납금을 바치는 날입니다. 문제가 생긴다면 저야 그냥 파리목숨처럼 죽고 끝나겠지만······ 행여라도 자칫 귀하신 분에게 귀찮은 일이 생길까 염려됩니다!”

한마디로, 자신은 사도련의 비호를 받고 있으니 함부로 죽였다간 뒤탈이 있을 것이라는 뜻이다.

추이는 잠시 멈칫했다.

상대방이 추이의 무공 수준에 대해서 무언가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이 기회를 잘 이용하면 생각보다 일이 훨씬 더 쉽게 풀릴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추이는 짤막하게 말했다.

“스스로 무공을 폐해라.”

“예, 예? 무공을요?”

“싫으면 죽든가.”

“······.”

구양포는 이를 악물었다.

스스로 단전을 부숴서 무공을 폐한다면 그는 폐인이 된다.

그렇게 되면 어차피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으니 한번 발악이나 해볼 일이었다.

바로 그 순간.

섬뜩-

엎드려 있던 구양포의 뒤통수에 서늘한 감각이 깃들었다.

그가 황급히 뒤로 물러서려는 순간.

빠-각!

추이의 뼈다귀가 구양포의 머리에 빗맞아 스쳤다.

“끄흑!?”

지레 겁먹고 엎드려 있느라 공격을 허용했다.

구양포는 피를 줄줄 흘리며 뒤로 비틀비틀 물러났다.

그 앞으로 추이가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구양포가 씹어 내뱉듯 외쳤다.

“이놈! 절정고수가 아니구나! 기껏해야 이류무인 따위가 감히!”

그는 순식간에 상대의 깊이를 가늠했다.

“어떤 사술로 눈속임을 한 것이냐!”

“······.”

추이는 그저 피식 웃을 뿐이다.

부웅-

뼈다귀가 휘둘러진다.

검붉은 기운이 뼈다귀를 통해 스멀스멀 피어올라 대기 중으로 흩뿌려지고 있었다.

“커흑! 컥! 뭐, 뭐야 이게!?”

대기중으로 번지는 붉은 기운을 들이마신 구양포가 연신 기침을 했다.

눈이 따갑고 입안이 맵다.

어쩐지 몸 안에 흐르고 있는 내공이 탁하게 변질된 느낌이 들었다.

[킥킥킥킥킥킥······]

[죽어······ 너도 죽어······]

[우리랑 같이 가요······ 방주님······]

더군다나 귓가에는 계속 익숙한 웃음소리들이 들려온다.

죽은 흑도방도들의 목소리였다.

“으, 으아아······ 으아아아아아!”

구양포는 허리춤의 도를 뽑아들고 계속해서 휘둘렀다.

하지만 죽은 흑도방도의 망령들은 계속해서 구양포의 몸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순간.

핑-

구양포의 몸이 휘청거렸다.

아까 전에 엎드려 있을 때 뼈다귀에 맞은 뒤통수에서 피가 철철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마 어디를 잘못 맞은 모양.

“이, 이런······”

점점 손끝에 힘이 풀린다.

들고 있던 칼이 점점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비틀거리는 구양포의 앞으로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원래대로였으면 죽이기가 조금 어려웠을 수도 있었겠군.”

추이는 비틀거리고 있는 구양포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구양포는 일류의 경지를 눈앞에 두고 있었던 무인.

만약 놈이 작정하고 방어에만 전념했다면 추이로서도 상당히 귀찮은 일이 될 뻔했다.

하지만 놈이 뭔가를 제멋대로 오해하고 갈팡질팡하는 바람에 상황이 훨씬 쉬워졌다.

꾸르르륵!

흑도사걸과 조가장의 호위무사가 창귀가 되어 추이를 거들었다.

강한 자의 망령은 내공을 더욱 심후하게 만드는 영약과도 같다.

추이는 뼈다귀를 굳게 잡았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구양포를 향해 일직선으로 휘둘렀다.

구양포는 황급히 그것을 피하려 했으나.

···뚜각!

아슬아슬하게 팔꿈치를 내주고 말았다.

“끄흑!”

뼈다귀에 스친 팔꿈치가 순식간에 아작났다.

밑으로 덜렁거리는 팔을 무시한 구양포는 칼을 직선으로 찔러 넣었다.

하지만, 추이는 인간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기괴한 몸놀림으로 허리를 꺾어 구양포의 공격을 피해냈다.

“뭐야!?”

구양포는 깜짝 놀라 외쳤지만 이미 늦었다.

추이는 형식과 형식이 맞부딪치는 싸움이 아닌, 대규모의 거대한 난전에 익숙했다.

휘둘러지는 칼뿐만이 아니라 날아드는 화살, 바닥에 쓰러져 있던 적, 흩뿌려지는 신체 파편, 폭발하는 화약, 불, 피, 먼지, 진흙, 단말마 같은 모든 변수들 가운데서 살아남는 법.

인간의 예상이 닿는 궤도와는 무관하게, 아무 때나, 아무 자세에서나 적의 목숨을 취할 수 있는 몸놀림을 추이는 알고 있었다.

‘이 자식, 그냥 이류무인이 아니다. 고도의 훈련을 받은 자객, 아니 뭐지······!?’

어느 문파 소속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자유롭다.

낭인이라고 하기에는 움직임에 절도가 있다.

암살자라고 하기에는 대놓고 올곧다.

더군다나 마기라니?

하지만 구양포의 생각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부웅-

추이는 몸을 허공으로 던졌고 손에 쥔 뼈다귀를 앞으로 내질렀다.

마치 작살처럼 뻗어나간 뼈다귀는 그대로 구양포의 양 쇄골을 부수고 목젖을 강타했다.

“께-헥!”

구양포는 한쪽 손으로 자신의 쇄골들을 받치며 허우적거렸다.

그러느라 훤히 드러난 몸통에 추이의 뼈다귀가 한번 더 떨어졌다.

우직!

이번에는 옆구리였다.

구양포는 먹은 것을 죄다 토해내며 주저앉았다.

추이의 뼈다귀가 그 앞으로 느슨하게 드리워졌다.

순간.

“어으! 으어으으!”

구양포가 손사래를 치기 시작했다.

“사, 살려주십시오 대협! 제발 목숨만은······”

그는 눈물 콧물을 흘리며 빌기 시작했다.

아까보다도 훨씬 더 비굴한 태도였다.

천하의 흑도방주가 이런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을 내송현의 사람들이 안다면 모두가 기절초풍할 것이 틀림없었다.

적어도 내송현 안에서 그는 수많은 서민들의 생사여탈권을 손에 쥔 염라대왕이나 다름없는 존재였으니까.

하지만.

“조가장의 장원 지도를 가지고 와.”

추이 앞에서는 이제 언제든 눌러죽일 수 있는 벌레에 불과했다.

“조, 조가장 말씀이십니까? 알겠습니다! 당장 가져오겠습니다!”

구양포는 엎드린 자세에서 개처럼 기어 내실로 향했고 이내 커다란 지도 한 장을 들고 와 추이에게 바쳤다.

추이는 지도를 품속에 넣은 뒤 말했다.

“호정문에 돈 빌려준 것 있나?”

“예, 예? 호정문이요?”

“있어 없어?”

“이, 있습니다! 채권 서류가 있어요!”

“어디냐.”

구양포는 덜덜 떨던 끝에 내실 안쪽의 서랍 한쪽을 바라보았다.

···콰쾅!

추이는 서랍을 뼈다귀로 내리쳐 부쉈다.

그리고 그 안에 있던 모든 빚 문서나 노비 문서, 장부 등등을 꺼내들었다.

구양포는 피와 식은땀을 뚝뚝 떨어트리며 무릎을 꿇고 있었다.

“대, 대협. 목숨만은 살려주시면 제가 크게 사례를······”

“몇 명이었나?”

“예?”

구양포가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든다.

추이는 그에게 물었다.

“지금처럼 네 앞에서 목숨을 구걸했던 사람들. 몇 명이었냐고.”

“대, 대협······ 제발······”

구양포는 금방이라도 울 듯 고개를 숙인다.

하지만 추이는 무심한 표정으로 손에 들린 장부들을 들여다볼 뿐이다.

“다른 성에서 양인 여자들을 납치해 와서 강간하고, 홍루에 팔아넘기고, 화대를 착취하고, 그 돈으로 흑도방을 크게 키웠구나. 호질표국에 알게 모르게 빚도 많이 지워뒀군. 차명 채권으로 말이야.”

“흐, 흑도는 다들 그렇게 합니다. 저도 그냥 끄나풀에 불과한······”

구양포는 말을 끝까지 이을 수 없었다.

추이는 뼈다귀를 연거푸 내리찍었기 때문이다.

쩍- 쩌억! 쩌-억! 빠각!

구양포의 양쪽 무릎이 박살나고 두 손도 으깨져 버렸다.

“끄아아아아아악!”

그는 비참한 몰골로 바닥을 나뒹굴게 되었다.

추이는 옆에 있던 화로를 걷어찬 뒤 장부와 각종 문서들을 모조리 태워버렸다.

불은 장부를 모조리 태우고 몸집을 불려 내실 전체를 불태우기 시작했다.

“이걸로 호질표국 표사들의 한은 조금 풀렸겠군.”

호질표국이라는 말이 나오자 구양포의 두 눈이 커졌다.

그런 그의 앞으로 추이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이제는 형제의 복수를 할 차례다.”

추이는 뼈다귀를 높게 들어올렸고, 그대로 구양포의 머리통을 내리찍었다.

짜-각!

긴 복도가 두 조각으로 쪼개졌다.

구양포의 머리통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

추이는 복도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고 이쪽을 향해 올라오는 흑도방도들을 쳐다보았다.

언뜻 보기에도 거의 일백에 육박하는 숫자.

이곳까지 뚫고 오느라 지친 추이에게는 상대하기 어려운 숫자였다.

하지만.

츠츠츠츠츠츠츠······

시뻘겋게 물든 바닥에서 새로운 망령 하나가 몸을 일으킨다.

구양포. 방금 죽어서 창귀가 된 흑도방의 전 주인이 추이의 새로운 힘이 되었다.

···뿌득!

단전 속에서 무언가가 찢어지는 소리가 나며, 내공의 양이 확 증가했다.

이것이 바로 강한 자를 흡수해 창귀로 부리는 마공 ‘창귀칭(倀鬼稱)’의 진짜 힘이었다.

저벅- 저벅- 저벅-

추이는 뼈다귀를 들고 계단 아래를 향해 천천히 내려갔다.

밑에서 흑도방의 잔당들이 올라오는 소리가 들린다.

“오늘은 밤이 길겠군.”

아마도 몸을 질리도록 풀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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