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귀무쌍-7화 (2/110)

7-보복행 (2)

7-

흑도방주 구양포.

그는 상위 조직에 상납해야 할 상납금을 정산하느라 조금 예민해져 있는 상태였다.

그런 구양포에게 빈정거리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조가장의 호위무사. 조태범을 항시 지키는 자였다.

“실패하셨더군?”

“······.”

호위무사의 말에 구양포는 입을 꾹 다물었다.

가뜩이나 상납금 문제 때문에 골치 아픈데 일이 더 꼬여버렸다.

조가장의 호위무사는 시종일관 짜증스러운 표정이었다.

“장주께서 화가 많이 나셨소. 우리 도련님께서도.”

“······.”

“흑도방도들을 녹림도로 위장시켜서 호질표국을 습격한다. 표사들을 다 죽여서 호질표국의 위세를 확 꺾고, 강탈한 표물들은 흑도방에서 알아서 처리한다. 거기에 우리 조가장의 사례까지 듬뿍. 이 얼마나 남는 장사였소?”

“······.”

“근데 그걸 못해서 이 모양 이 꼴이 되나? 어휴. 그러니까 사도련에 갖다 바칠 상납금도 간당간당한 거요. 이러다가 수금귀라도 내려오게 되면? 그때는 어쩔 거요?”

호위무사의 빈정거림에 구양포는 대꾸하지 못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 호질표국 표사들의 무공 수준은 완벽히 파악하고 있었다.

그들을 전멸시키고도 남을 만한 인원수를 보냈는데, 어째서 이쪽이 역으로 전멸당했을까?

살아 돌아온 흑도방도가 하나도 없었기에 당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알 길이 없었다.

이윽고, 구양포가 짜증을 냈다.

“다음번에는 성공할 것이오. 흑도사걸(黑道四傑) 애들을 보낼 테니까.”

“처음부터 그들을 보냈으면 됐잖소?”

“이렇게 될 줄 알았나? 애초에 호질표국 표사들의 무공 수위에 대해 잘못 알려준 조가장 잘못도 있지.”

“이걸 우리 탓을 한다고? 허 참.”

호위무사가 피식 웃었다.

이윽고, 그는 상체를 앞으로 숙인 채 진중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이번에는 실수 없어야 하오.”

“알겠소.”

“호질표국의 이번 표행이 실패해야 호정문이 자금적으로 궁지에 몰리게 되오. 그래야 그놈들이 우리 도련님의 혼담을 받아들이지.”

“알겠다니깐.”

“호예영, 그 자존심만 있는 계집이 결국 돈에 못이겨 몸을 파는 꼴을 보셔야만 우리 도련님의 속이 풀려. 아시겠소?”

“아, 몇 번을 말하오!”

호위무사와 구양포는 티격태격 말다툼을 벌인다.

바로 그때.

콰-쾅!

복도 저 너머에서 요란한 폭음이 들려왔다.

“······?”

“뭐요?”

구양포와 호위무사가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순간.

툭-

무언가가 내실 안으로 굴러들어왔다.

데굴데굴데굴······

그것은 네 개의 목이었다.

흑도사걸. 흑도방의 최고수들.

구양포를 제외하면 흑도방에서 가장 강한 무인 네 명이 이렇게 목만 남아 굴러들어온 것이다.

*       *       *

추이는 맨 처음 정문에서 시작해 안쪽 장원으로 들어올 때까지 정확히 마흔 네 명을 죽였다.

달리 무기는 쓰지 않았다.

손에 든 말뼈다귀 하나가 전부였다.

뚝-

말의 대퇴골에 닿은 인간의 두개골은.

딱-

마치 모래알처럼 바스라졌다.

그때.

“웬놈이 소란이냐?”

추이의 앞을 가로막는 네 사람이 있었다.

붉은 얼굴, 칼자국, 애꾸눈, 수염쟁이.

무공 수위는 삼류에서 이류 사이.

추이는 이들의 정체를 빠르게 파악했다.

“흑도사걸 맞지?”

“어린놈이 건방지······ 헉!?”

흑도사걸 중 하나가 말을 끝맺지 못하고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추이가 대뜸 발을 걷어올려 붉은 얼굴의 사타구니를 걷어찬 것이다.

“크학!?”

알 두 쪽이 연달아 터져나갔다.

사타구니를 움켜잡고 쓰러진 붉은 얼굴의 옆으로 얼굴에 칼자국 난 남자가 달려든다.

그러자 추이는 곧바로 손가락을 뻗어 칼자국의 눈을 찔러버렸다.

“아악! 씨발!”

눈을 부여잡고 물러나는 칼자국의 머리 위로 애꾸눈과 수염쟁이가 뛰어올랐다.

추이는 애꾸눈의 사각지대로 뼈다귀를 집어던졌고, 동시에 수염쟁이의 칼을 피해 뒤로 물러났다.

뻐-억!

비륜(飛輪)처럼 날아든 말뼈다귀에 머리를 스친 애꾸눈이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졌다.

살짝 뭉개진 관자놀이에서 뇌수가 방울방울 흘러나오고 있었다.

동시에, 추이는 복도에 있던 도자기를 걷어찼다.

깽창!

도자기의 허리 부근이 박살나며, 날카로운 파편들이 곧장 허공으로 비산했다.

···푸푸푸푹!

날카로운 파편들이 한 손으로 사타구니를 붙잡고 있던 붉은 얼굴의 얼굴을 더더욱 붉게 물들여 놓았다.

“끄아아아악!”

붉은 얼굴이 주춤하는 순간, 추이는 바닥에 떨어진 말뼈다귀를 들어 그의 얼굴을 후려쳐 버렸다.

움푹-

시뻘겋게 물든 얼굴이 이상한 모양으로 푹 꺼졌다.

눈알과 이빨들이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튀어나와 흩어졌다.

“뭐, 뭐야 이 새끼. 뭐 이렇게 이상하게 싸워?”

수염쟁이가 황당하다는 듯 입을 벌린다.

기상천외한 싸움 수법이 난무하는 흑도에도 이런 식으로 무자비하게 싸우는 놈은 없었다.

적어도 그가 알고 있기로는 말이다.

바로 그때.

“으아아아아아!”

격분한 칼자국이 앞으로 달려들었다.

부웅-

칼이 휘둘러졌지만 복도가 좁아서 궤도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추이는 고개를 숙여 칼을 피했고 그대로 머리를 들어 칼자국의 귀를 물어뜯었다.

뿌드득!

귀가 뜯겨나가며 선혈이 펑펑 뿜어져 나온다.

“흐악!?”

귀를 붙잡으며 물러나고 있던 칼자국이 발을 헛디디는 순간.

푸-욱!

추이는 도자기 파편 하나를 들어서 칼자국의 뜯겨나간 귓속 깊숙이 박아넣었다.

쿵!

칼자국마저 바닥에 드러눕자 이제는 수염쟁이 혼자가 되었다.

“으, 으어어어······”

수염쟁이는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그 앞으로 추이가 걸어오고 있었다.

질겅질겅······ 오도독- 오독-

씹던 귀를 바닥에 퉤 뱉는 추이.

그 태도는 너무나도 한가로워서 마치 산책이라도 나온 사람 같았다.

“이, 이 새끼!”

수염쟁이는 긴 칼을 빼들어 추이를 향해 휘둘렀다.

그러나.

추이는 너무도 쉽게 칼을 피했고 수염쟁이의 옆구리 빈 틈을 파고들었다.

빠-각!

뼈다귀가 뼈다귀를 부순다.

수염쟁이는 갈비뼈가 모조리 부러진 것도 모자라 그것이 폐를 관통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칼을 놓쳤다.

그리고는 옆구리를 부여잡은 채 벽에 기대어 쓰러졌다.

“허억······ 헉······ 너 뭐냐. 누가 보내서 왔냐?”

“대장간.”

“뭐?”

수염쟁이는 이해하지 못했다는 듯 미간을 찡그렸다.

하지만 추이는 더 이상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다만 손에 든 말뼈다귀를 뒤로 장전했다가.

빠-각!

크게 휘둘러, 벽과 수염쟁이의 아래턱을 동시에 부숴버렸을 뿐이다.

“흑도사걸. 끝.”

추이는 칼을 주워들었다.

그리고 쓰러진 시체에서 목을 잘라냈다.

때때로, 사람의 신체는 자신의 뜻을 전달하는 좋은 수단이 된다.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에게는 더욱 그렇다.

추이는 흑도사걸의 목을 잘라내어 머리카락을 한데 꼬아 묶었다.

그리고는 붉게 변한 복도를 총총걸음으로 걸어 안쪽으로 향했다.

‘흠. 무기가 완성된 다음에 올 걸 그랬나?’

하지만 그러려면 무려 하루를 기다려야 한다.

차라리 그동안 몸이라도 풀어놓는 것이 나았다.

‘그래야 바로 조가장을 방문할 수 있으니.’

추이는 목을 좌우로 꺾으며 멈춰섰다.

툭- 데굴데굴데굴······

네 개의 목을 순서대로 굴린다.

하나같이들 상태가 엉망이라 제대로 굴러가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뜻이 더 잘 전달될 것이다.

이윽고.

“어흠- 커흠!”

복도 안쪽에서 금방 반응이 왔다.

조가장의 호위무사가 밖으로 걸어나온 것이다.

“나는 정파의 조가장 소속으로 이런 더러운 사파의 흑도 무리와는 무관하오. 오늘은 그저 몇 가지를 협상하기 위해 왔을 뿐.”

그는 추이를 향해 꾸벅 목례를 했다.

“보아하니 이 사특한 흑도방 놈들을 토벌하러 온 영웅이신 듯한데, 한 몫 거들어 드릴까?”

“······.”

추이는 달리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퉤-”

입술을 깨물어 피를 낸 뒤 그것을 호위무사를 향해 뱉었을 뿐이다.

“으앗!?”

그는 추이가 뱉은 피를 눈에 맞고선 깜짝 놀라 물러났다.

“무슨 짓이냐! 나는 조가장 소속이지 흑도방 소속이 아닌······ 끄아아아아아악!?”

호위무사는 말을 하다 말고 갑자기 눈을 미친 듯이 문지르기 시작했다.

추이는 과거 혈마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이 무공을 숙련되게 익힌 자를 ‘이올(彛兀)’이라 부른다. 이올의 피는 어지간한 무림인에게는 극독과 같다. 자신의 것이 아닌 남의 내공을 태우고 말려버리는 성질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 추이의 창귀칭은 아직 굴각(屈閣)의 단계, 그것도 기껏해야 1층계에 불과하다.

이올(彛兀)의 단계까지는 갈 길이 한참 멀었다.

‘그래도 어느 정도 효과는 있지.’

눈앞에 있는 호위무사가 눈을 벅벅 비비며 발광하는 것으로 보아 썩 효력이 괜찮은 것 같았다.

맹독까지는 아니어도 극도로 매운 고춧가루를 눈에 흩뿌린 수준은 될 것이다.

···차앙!

호위무사가 허리춤에서 칼을 뽑아들었다.

아까의 흑도사걸보다도 훨씬 더 빠르고 날카로운 참격이 몰아쳤다.

내공이 은은한 기체의 형태로 응집되어 있는 것을 보니 최소 이류 이상은 되는 무인.

쩌-억!

호위무사의 칼에 닿은 벽이 두부처럼 갈라졌다.

검신을 타고 고속으로 회전하는 내공의 기류가 벽을 잘라버린 것이다.

콰콰콰쾅!

한쪽 벽면이 무너져 내린다.

하지만 추이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은 채 말뼈다귀를 들었다.

지금껏 호흡 뒤에 숨겨놓고 있었던 기운이 여과없이 폭사되었다.

츠츠츠츠츠츠······

시뻘건 아지랑이가 말뼈다귀 표면에 난 작은 구멍들 속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지금껏 흑도방으로 들어오면서 때려죽인 이들의 원혼이 피가 뚝뚝 떨어지는 말뼈다귀 끝으로 불길하게 응집해 들었다.

[살려줘······]

[죽기 싫어······]

[아파······ 추워······]

[흑흑흑흑흑흑흑흑······]

맨 마지막에는 창귀(倀鬼)가 된 흑도사걸의 얼굴이 나타났는데, 그것들은 추이의 몸 주변을 연신 배회하며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겨우 뜬 눈으로 그것을 본 조가장의 호위무사가 질겁했다.

“마, 마공!?”

사파의 조잡한 사술(詐術) 따위가 아닌, 진짜배기 무림공적의 상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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