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보복행 (1)
6-
추이는 안휘성 내송현의 한 마을을 찾았다.
아궁이에서 뽀얀 연기가 피어오르는 집집마다 웃는 소리, 우는 소리, 화내는 소리 등등이 다양하다.
그중 연기도 피어오르지 않고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 집이 있었다.
쓰러져가는 초가집.
추이는 허물어져가는 사립문을 지나 잡초 무성한 마당으로 들어왔다.
<농기구 일체>
바람이 싸늘하게 불어올 때마다 쪼개져 있는 간판이 삐그덕 삐그덕 소리를 냈다.
한때는 낫이나 쇠스랑 등의 농기구를 만드는 대장간이었던 곳으로 짐작된다.
“여기도 오랜만이로군.”
추이는 작게 중얼거렸다.
회귀하기 전, 한창 창귀(槍鬼)라는 마명을 떨치고 다닐 무렵에 들렸던 곳이었다.
···벌컥!
추이는 대장간의 문을 제멋대로 열고 들어갔다.
“누구야?”
어둠 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추이는 대답했다.
“나다.”
“······?”
그러자 탁자에 걸터앉아 있던 노인이 고개를 들었다.
오른쪽 눈, 오른쪽 손, 오른쪽 다리가 없는 노인이 핏기 없는 얼굴을 들어 추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니가 누군데?”
“추이.”
“그런 놈 몰라. 여기는 폐업했고, 이제는 안 해.”
“알고 왔어.”
추이는 노인의 앞으로 걸어가 탁자 앞에 앉았다.
그리고 말했다.
“농기구를 좀 만들러 왔는데.”
“폐업했다니까. 어린 놈이 귓구녕이 막혔나.”
“일단 망치를 하나 부탁하지.”
“······미친놈.”
노인은 추이에게서 시선을 뗐다.
그리고 들고 있던 술병을 입으로 가져가려는 찰나.
“길이 열일곱 촌. 자루 둘레는 네 촌. 머리는 구형(球形)으로 둥그렇게. 무게는 열 근을 넘지 않았으면 좋겠군.”
추이의 말이 노인의 손을 멎게 했다.
그는 입으로 가져가려던 술병을 내려놓고는 잠시 추이를 바라보았다.
“그런 걸로는 못이 안 박힐 텐데?”
“못 박는 용도 아니야.”
“허 참. 아예 망치 대가리에 가시도 몇 개 달아주랴?”
“그럼 휴대하기가 불편해.”
“······.”
노인은 추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윽고.
탁-
그는 손에 든 술병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하나 남은 눈을 가늘게 떴다.
“다른 건?”
“여덟 촌 반짜리 송곳 두 개. 스물여섯 번 단조된 놈 하나, 서른네 번 단조된 놈 하나.”
“자루는?”
“아무거나. 단, 겉은 한지홀률(旱地㺀律)의 가죽으로. 허릿심 부근이면 좋겠군.”
“마감은?”
“빈틈없이.”
노인은 머리를 북북 긁었다.
비듬이 소금처럼 수북하게 떨어졌다.
“오래 걸려.”
“안 돼. 빠르게 해.”
“모레 오전에 와.”
“내일 오후에 가지.”
“정말 미친놈이로고.”
노인은 술병을 저 멀리 집어던져 깨 버렸다.
독한 화주가 먼지 쌓인 바닥을 적신다.
추이가 물었다.
“무게감 있고 깔끔한 게 있으면 좋겠는데.”
“칼은 어때.”
“짧아.”
“도끼는.”
“무거워.”
“창을 찾나?”
“내와 봐.”
노인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바닥에 깔린 덮개를 치우더니 그 밑에 있는 나무 문을 열었다.
이윽고, 노인은 그곳에서 검은 천에 둘둘 감싸져 있는 창 한 자루를 꺼냈다.
아무런 장식도 없는, 흑빛의 창 한 자루.
추이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너무 짧은데. 일 장(丈)은 넘어야 써.”
“그런 건 군부대나 가야 있어. 이게 제일 긴 거야. 날을 갈려면 하루는 걸려.”
추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작고 예민한 것은 없나?”
“철질려는 어때.”
“다 가져와.”
노인은 힘겨운 발걸음으로 일어나 위쪽의 벽을 한번 손으로 쓸었다.
먼지가 우수수 떨어지는가 싶더니 벽 안쪽에 있는 작은 공간이 드러났다.
그 안에는 괴상하게 생긴 못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딸깍- 딸까닥!
노인은 못 네 개를 들어 대가리를 서로 붙였다.
그러자 못들은 서로 단단하게 조립되어 철질려의 형상을 갖추게 되었다.
“속이 비어있는 못이라서 피를 빼내기에 좋지. 끝부분에 미늘이 돋쳐 있어서 한번 박히면 잘 빠지지도 않아.”
추이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다시 물었다.
“작업복은?”
“허 참, 대장간에서 옷 찾는 놈이 다 있군.”
노인은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처음의 권태로운 눈빛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훌렁-
그는 자신이 입고 있던 더러운 상의를 벗었다.
회색 털로 되어 있는 가죽옷이었는데 군데군데 술과 토사물이 말라붙어 굳은 흔적이 역력했다.
노인은 그것을 팡팡 털고는 탁자 위에 엎어 놓았다.
“곰 가죽. 사람 일흔넷을 잡아먹은 놈이야.”
“용케 잡았군?”
“그놈은 아무도 못 잡았어. 저 혼자 늙어 죽었지.”
추이는 곰 가죽 갑옷을 한번 쓸어보았다.
노인이 첨언했다.
“웬만한 병장기로는 못 뚫어. 뭐, 좀 아프긴 하겠지만.”
추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후식은?”
“무슨 맛.”
“혀가 바싹바싹 마르는 맛. 진한 것으로.”
그 말을 듣자마자 노인은 탁자 위로 올라갔다.
또다시 먼지가 우수수 떨어지고, 천장 위 서까래 부근에 있던 문이 열렸다.
그 안에는 손바닥만한 크기의 작은 항아리들이 쭉 줄지어 있었는데, 노인은 그 중에서도 가장 안쪽에 있는 밀봉된 항아리를 꺼내놓았다.
“맹독. 남만산이야. 묘족들이 쓰는 거라고 들었는데, 무서워서 확인은 못 해봤어.”
“시음도 되나?”
“원래는 돈 받아야 돼.”
추이는 항아리의 밀봉을 풀고 안에서 올라오는 냄새를 맡아보았다.
그리고는 짧게 말했다.
“사기당했군, 주인장.”
“젠장. 그럴 것 같더라니.”
“그래도 줘. 강족(姜族)의 것도 쓸만하지. 묘족의 것만은 못해도.”
추이는 주문을 끝냈다.
노인이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디로 보내줄까?”
“가지러 오지.”
“농사짓고 싶어서 안달이 난 모양이군.”
“그 전에 비료부터 만들 생각이야. 밭에 미리 파묻어 놓게.”
“이것저것 많이도 샀어. 비쌀 텐데.”
“원하는 걸 말해봐.”
추이가 말했고, 노인이 들었다.
둘 사이에 돈 이야기는 오가지 않았다.
노인은 하나뿐인 눈을 감고 잠시 무언가를 생각했다.
“······은퇴 후에는 혼자 조용히 살았어. 말년에 겨우 얻은 딸 하나 키우면서.”
노인이 말했고, 추이가 들었다.
“딸이 죽었는데.”
“······.”
“사흘 됐어.”
“······.”
“살려줄 수 있겠는가?”
“······.”
노인은 바람에 삐그덕거리는 문을 바라보며 혼자 이야기한다.
추이가 대답을 하지 않자 그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피 냄새가 하도 진해서 귀신인 줄 알고 부탁했는데. 역시 안 되는군.”
그러고는 할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럼 아쉬운 대로, 딸을 죽인 놈들이라도 죽여줘.”
“누군데.”
“흑도방.”
“알았다.”
“네 명이야.”
“알았다고.”
“흑도사걸이라는 놈들인데······ 젠장, 누군지도 안 묻나?”
노인은 투덜거린다.
추이는 더 들을 필요 없다는 듯 일어났다.
“어차피 다 죽일 거야.”
그 말을 끝으로 추이는 대장간을 나섰다.
막 사립문을 벗어나려던 그때.
멈칫-
추이의 발걸음이 멎었다.
사립문 옆에 개집 하나가 텅 비어있는 것이 보인다.
그 앞에는 피가 말라붙어 있는 말뼈다귀 하나가 굴러다니고 있었다.
뒤에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복날에 개 잡았던 거야. 올 여름은 그걸로 버텼어.”
원래는 개가 물어뜯었던 뼈다귀가 개를 죽이게 되었다.
추이는 굵은 말뼈다귀를 집어들었다.
노인이 물었다.
“그건 왜?”
“마음에 들어서. 물건들이 완성되기 전까지는 이걸 쓰도록 하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는 추이.
그리고 그런 추이를 바라보는 노인.
노인의 표정은 미묘하다.
웃는지 우는지, 어쩌면 둘 다인지, 모를 표정이었다,
그가 딸을 생각하는지 딸을 죽인 이들을 생각하는지, 어쩌면 둘 다인지, 이 또한 모를 일이었다.
* * *
흑도방. 내송현을 주름잡고 있는 사도 문파.
고래등 같이 펼쳐져 있는 흑도방 안에서는 오늘 중요한 회의가 있다.
각 지역 분파들의 분파장들이 한데 모여 상납금을 정산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흑도방의 정문을 지키고 있는 문지기의 눈빛에는 잔뜩 기합이 들어가 있었다.
그때.
남루한 옷가지를 걸친 한 소년이 흑도방의 정문 앞으로 걸어왔다.
손에는 썩은내 나는 뼈다귀 하나를 든 채로.
문지기는 코웃음쳤다.
“이건 또 어디서 굴러먹다 온 개뼈다귀야?”
정문 앞에 서 있는 추이를 향해, 문지기는 침을 뱉으며 말했다.
“그거 뜯어먹을라고 갖고 다니는 거냐? 저리 꺼져. 냄새나니깐.”
하지만 문지기는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었다.
빠-각!
위에서 아래로 휘둘러진 뼈다귀에 의해 골통이 박살나 즉사했기 때문이다.
“뭐, 뭐냐!?”
“이 새끼가!?”
옆에서 히죽이죽 웃고 있던 두 명의 문지기가 부리나케 반응했지만.
뻑! 우득-
그들 역시도 뼈다귀에 의해 안면이 함몰되고, 목이 부러져 즉사했다.
추이. 방금 흑도방도 세 명을 죽인.
그는 뼈다귀에 새롭게 말라붙은 피를 툭툭 털어냈다.
그리고는 흑도방의 정문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이글거리는 횃불 아래 흑도방의 장원이 훤히 보인다.
회귀 전에도 왔었던 곳이라 내부 지리는 얼추 눈에 익다.
‘······그때는 많이 놓쳤었지.’
추이는 뼈다귀를 들어올려 허공에 대고 몇 번 휘둘렀다.
문지기 개 세 마리 가지고는 아직 몸이 덜 풀린 모양이다.
‘이번에는 좀 더 꼼꼼하게 해 보자.’
도주로도 다 꿰고 왔으니 지난 생에 놓쳤던 놈들까지 전부 잡아죽일 수 있을 것이다.
추이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흑도방 안쪽.
사냥터 가장 깊숙한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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