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귀무쌍-4화 (49/110)

4-무적쟁자수 (2)

4-

호질표국이 있는 안휘성으로 가는 동안, 추이는 여러 날에 걸쳐 과거를 회상했다.

호질표국.

그리고 호질표국을 운영하고 있는 호정문.

그곳은 추이에게 있어서도 꽤나 의미가 있는 곳이었다.

‘······좋은 곳이었지. 나 같은 뜨내기한테도 잘 해 주었으니까.’

호정문의 문주 호연암과 그의 아내 사지원은 타고난 천성이 선한 이들이었다.

그들은 호질표국에 소속된 모든 이들을 살뜰히도 보살폈다.

표사들은 물론이요 추이 같은 일용직 쟁자수들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표국에 고용된 쟁자수들은 화물을 마차에 싣고 내리는 등의 상하차 작업이나 단순한 청소, 그 외 모든 자잘한 허드렛일들을 도맡아 하는 이들이다.

호연암과 사지원은 그런 쟁자수들을 하나하나 직접 챙기며 일할 때 어려운 점은 없는지 늘 살피곤 했다.

자연스럽게, 모든 쟁자수들이 호질표국을 좋아했다.

늘 떼이기 일쑤였던 일급을 한 번도 밀린 적이 없으며, 끼니도 때마다 챙겨주고, 무엇보다 사람 대접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추이 역시도 쟁자수로 일하던 시절, 호질표국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추이가 호질표국으로 향하는 이유는 단지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 녀석은 잘 있으려나. 이 시간대면 아직 살아있을 텐데.’

추이는 전장에서 만났던 옛 친구이자 전우, 그리고 훗날 의형제를 맺었던 한 남자의 얼굴을 떠올리고 있었다.

호예양(虎豫讓).

추이가 말단 병사로 군에 입대했을 때 만났던 맞선임.

자신만큼이나 키가 작고 깡말랐지만 주먹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쓰던 싸움꾼.

화상으로 인해 얼굴과 목젖이 짓물렀고 그 때문에 목소리 역시도 괴상하던, 그래서 군 막사 내에서도 모두에게 소외당하던 그와 추이는 제법 죽이 잘 맞았다.

추이는 호예양의 뒤를 따라다니며 생존에 필요한 것들을 배웠고 그 덕에 몇 번의 전투에서 간신히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그 뒤로 호예양과 추이는 둘도 없는 선후임, 아니 의형제 사이가 되었다.

둘은 한 막사에서 뒤엉켜 잠을 잤고 같은 그릇에 밥을 먹었다.

서로의 과거를 모두 알고 있었고 터놓지 못할 흉금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추이는 혈마를 만났다.

그때 추이의 옆에는 호예양이 함께 있었다.

‘그 손을 놓지 않으면 신호탄을 터트리겠다.’

추이의 목을 쥐고 있는 혈마를 향해, 호예양은 목숨을 걸고 협박했다.

결국 호예양의 기세를 인정한 혈마는 추이를 풀어주었고 그날 밤, 호예양과 추이는 혈마의 제자가 되었다.

가혹한 스승은 두 제자를 전장으로 내몰고 쉴 새 없이 채찍질했다.

호예양과 추이가 목숨을 걸고 약재를 가져올 때마다 혈마는 천천히 자신의 몸을 회복해 나갔다.

그리고 어느 날 밤, 혈마는 두 제자에게 말했다.

‘이제 마지막 거래다.’

혈마는 추이를 향해 말했다.

‘이번에 구해올 약재는 백년근 설삼이다. 할 수 있겠느냐?’

‘하겠습니다.’

할 수 있다 없다를 논하는 것이 아니라 하겠다는 대답을 한 추이를 혈마는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때, 호예양이 토를 달았다.

‘백년근 설삼은 지금 저희들의 실력으로는 구하기가 어렵습니다. 그 전에 먼저 저희의 임독양맥을 뚫어주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

혈마는 머뭇거렸다.

추이의 임독양맥을 뚫어주기 위해서는 그동안 추이가 구해온 약재들을 일부 사용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본디 그것들은 혈마의 몸을 회복시키는데 쓰여야 할 것들이었다.

호예양이 계속 말했다.

‘그 약재들을 이용하여 저희의 임독양맥을 타통시켜 주신다면 말씀하신 마지막 재료들을 조달해올 수 있을 것입니다. 부족하게 된 약재들은 저희가 함께 채워놓으면 그만입니다.’

그 말에 결국 혈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추이와 호예양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고 앉았다.

호예양이 먼저 말했다.

‘추이야. 네가 먼저 임독양맥을 뚫어라.’

‘싫다. 너 먼저 해라.’

‘네가 먼저 하고, 내가 다음에 하겠다.’

‘네가 먼저 하고, 내가 다음에 하자.’

‘말 들어라. 이번에는 네가 먼저 임독양맥을 뚫고, 그동안 내가 약재를 구해 오겠다. 그 다음에는 내가 임독양맥을 뚫고, 네가 약재를 구해 오너라. 마지막에 약재를 구하러 나가는 사람이 더 힘든 것 알지?’

호예양의 양보에 추이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날 밤, 혈마가 추이의 임독양맥을 뚫어주는 동안 호예양은 목숨을 걸고 필요한 약재들을 조달해 왔다.

강해진 호예양조차도 등과 허리에 화살이 일곱 대나 박힌 채 돌아왔을 만큼 위험한 여정이었다.

이윽고, 호예양은 혈마에게 임독양맥을 맡겼다.

그동안 혈마는 추이에게 회복에 필요한 마지막 약재들을 조달해 오라고 지시했다.

추이는 호예양을 위해 목숨을 걸고 적진에 침투했다.

그리고 이내, 고위 지휘관이 몸보신을 위해 준비해 놓았던 백 년근 설삼을 훔치는 것에 성공했다.

‘이제 되었다. 형제도, 스승도, 모두 좋아질 것이다.’

하지만 돌아가는 여정은 올 때의 여정보다 길고 험난했다.

두 번 정도 팔이 잘릴 뻔했고, 네 번 정도 물에 빠져 죽을 뻔했다.

날아드는 화살을 피해 엎드려 기어가는 동안 귀 하나와 손가락 세 개를 잃어야 했다.

그렇게 몇 개의 강을 건너고 산을 넘어, 추이는 돌아왔다.

하지만 추이를 맞이한 풍경은 예상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목이 잘린 채 죽은 혈마.

그리고 온몸의 구멍에서 피를 쏟아내고 있는 호예양.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추이를 향해, 호예양은 쓰게 웃었다.

‘알고 있었지 않으냐. 홍공은 어차피 우리를 살려놓을 생각이 없었다. 내가 조금 더 먼저 움직였을 뿐이지.’

혈마는 추이가 떠난 직후 곧바로 호예양을 죽이려 들었다.

그리고 호예양은 그것을 알고 온몸 기혈에 흐르는 마기를 역류시켜 폭사했다.

그 전에 추이를 먼저 떠나보냈던 것이고.

‘울지 마라. 불구 노인네 하나 죽이는 것쯤 아무 것도 아니었다.’

호예양은 이 빠진 칼을 흔들어 보이며 픽 웃었다.

‘······.’

폭우 속에 천천히 식어가는 형제 앞에서 추이는 오랫동안 앉아 있었다.

그동안 호예양은 못다했던 옛날 이야기를 해 주었다.

‘내가 너를 왜 살린 줄 아느냐?’

‘모르겠다.’

‘그것은 네가 호질표국의 쟁자수였기 때문이다.’

‘······?’

의아해하는 추이를 향해, 호예양은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았다.

‘나는 멸문당한 호정문의 마지막 후예다.’

‘······!’

호예양은 호정문의 문주 호연암과 그의 아내 사지원의 자식이었던 것이다.

‘너는 말했었지. 잠시지만 호질표국에서 쟁자수를 했던 적이 있다고. 그곳의 문주와 그의 아내는 좋은 사람이었다고.’

‘······.’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너를 가족으로 생각한 것이.’

호예양은 지친 표정으로 미소지었다.

‘나의 부모를 떠올리며 좋은 기억을 말해주는 이는 너밖에 없었다.’

‘······.’

추이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호정문이 멸문당한 뒤, 호예양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힘든 길을 걸어왔다고 했다.

복수를 위해 얼굴을 숯으로 지지고 그 숯을 삼켜 목소리를 바꾸었다.

호정문을 멸문시킨 원수들을 죽이기 위해 변소 아래의 똥물에 몸을 담그기도 했고, 구더기 끓는 시체더미 속을 파고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예양은 복수에 실패했다.

추격자들에게 쫓긴 끝에 그는 군부에 몸을 담았고 이 먼 곳의 변방까지 흘러오게 된 것이다.

‘너를 만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여유가 생긴다면, 부디 나의 한을 풀어다오.’

그것이 형제의 마지막 유언이었다.

“······.”

그때 호예양이 흘렸던 눈물을 추이는 미쳐서도 잊지 않았다.

“이번에는 그 한이라는 것이 아예 생길 일도 없게 될 것이다.”

그래서 지금 추이는 호질표국의 표사들과 반대 방향으로 걸어 호정문을 향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의 벗, 영원한 의형제를 만나기 위하여.

‘······일단 호정문의 멸문부터 막아야 한다.’

호정문의 자금줄인 호질표국을 녹림도로부터 구해주었으니 작게나마 미래가 바뀌었을 것이다.

하지만 추이는 지금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호정문에 개입할 생각이었다.

‘호예양. 그 녀석도 곧 만나게 되겠지.’

그런 생각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니 어느덧 호정문이 있는 안휘성에 도착했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거리 너머, 호정문의 장원을 감싸고 있는 담벼락이 눈에 들어온다.

추이는 그 앞을 지나가는 점소이 하나를 향해 손짓했다.

“말 좀 묻자.”

“뭐야?”

점소이는 귀찮다는 표정으로 추이를 돌아보았다.

식재료를 잔뜩 얹은 대나무 광주리를 나르고 있던 터라 더더욱 표정이 구겨져 있는 채다.

“꼬맹아, 지금 나한테 말한 거냐?”

“그렇다.”

“요런 쥐방울 만한 새끼가 어디서 반말을······ 예끼!”

점소이는 추이의 머리를 딱 소리 나게끔 한 대 쥐어박았다.

그리고는 짜증을 내며 발걸음을 돌렸다.

“별 거지 같은 새끼가······”

하지만 그는 발걸음을 뗄 수 없었다.

추이가 손을 뻗어 점소이의 머리카락을 휘어잡았기 때문이다.

“어? 이 새끼, 이거 안 놔? 하 참- 콱 마 패 죽여버릴······”

점소이는 추이를 향해 주먹을 날리려 했다.

하지만 추이는 별다른 반응 없이 입을 열었다.

“말.”

동시에, 추이의 손바닥이 점소이의 따귀를 후려갈겼다.

“좀.”

점소이의 고개가 너무 급격하게 돌아가 목뼈마저 부러트리기 직전, 추이의 따귀가 다시 한번 점소이의 골통을 원래 위치로 돌려놓았다.

“묻.”

추이의 따귀가 또 한번 점소이의 뺨을 후려쳤다.

해골이 목에서 뽑혀나올 것만 같은 공포에 점소이가 울음을 터트리려는 순간.

“자.”

추이가 또다시 손을 들어 올렸다.

점소이가 황급히 소리쳤다.

“무, 물어보십시오!”

추이는 들어 올렸던 손을 내렸다.

“내가 안휘에 오랜만에 와서 그러는데. 저기 있는 저 작은 장원이 호정문 맞나?”

“맞습니다!”

“호정문의 문주 이름이 호연암 맞지?”

“맞습니다!”

“호연암의 아내 이름이 사지원 맞지?”

“맞습니다!”

“그 둘의 아들 이름이 호예양 맞지?”

“아닙니다!”

무심코 고개를 끄덕이려던 추이는 잠시 멈칫해야 했다.

점소이의 마지막 대답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문제에 대해 점소이는 부정의 대답을 내놓았다.

추이는 한번 더 물었다.

“그 둘의 아들이 호예양이 아니라고?”

“그, 그렇습니다.”

추이의 분위기가 바뀌자 점소이가 주눅 든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추이는 약간의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지금껏 호예양이 호정문의 후예라고 철썩같이 믿어 왔다.

한데 그것이 아니라니?

‘회귀하면서 내가 알던 사실이 변했나? 아니야. 그럴 리가 없다. 모든 것이 예전 그대로라는 것을 오면서 몇 번이나 확인했어. 그런데 왜?’

호예양이 호연암과 사지원의 자식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시간상, 그는 분명 현실에 살아서 존재하고 있었어야 했다.

결국.

짜-악!

추이는 점소이의 따귀를 한 대 더 때릴 수밖에 없었다.

“똑바로 말 안 할래?”

“지, 진짜입니다! 억울해요!”

“내가 호정문으로 갔을 때 호예양이라는 놈이 존재하면 어떡할 테냐? 그때는 따귀로 안 끝난다.”

추이가 묻자 점소이는 빽 하고 소리를 질렀다.

“아, 있겠죠 당연히!”

“······?”

이건 또 무슨 소리일까.

추이는 점소이의 대답을 이해하지 못하고 미간을 찡그렸다.

“아까는 아니라면서?”

“아니죠 당연히!”

이윽고, 점소이는 씩씩거리며 말을 이었다.

“호정문주님과 아내 분의 아들이 호예양이냐면서요!”

“그래.”

“아니, 시집도 안 간 처자를 왜 대뜸 남자로 둔갑시킨답니까!”

“뭐?”

추이가 되묻자, 점소이는 한번 더 쐐기를 박았다.

“호정문에는 아들이 없고 외동딸만 하나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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