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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귀무쌍-3화 (48/110)

3-무적쟁자수 (1)

3 무적쟁자수 (1)

혈마 홍공.

그가 알려 준 마공 ‘창귀칭(倀鬼稱)’의 원리는 실로 간단했다.

‘죽인 자들의 원념’을 흡수하여 영혼의 격을 끌어올리는 근본적인 방식.

살생(殺生)을 하게 되면 업(業)이라는 것이 영혼에 차곡차곡 쌓이게 된다.

불가에서는 본디 이를 털어 내야 하는 대상으로 본다.

윤회의 고리 사이에 고기 지방처럼 덕지덕지 끼어서 고리의 원활한 흐름을 방해하는 대상으로 취급하는 것이다.

하지만 홍공은 그것을 다르게 해석했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단순한 똥일지라도, 누군가에게는 약이나 거름, 장작, 집 짓는 재료가 되는 법.’

업보를 장작 삼아 불태워 그것을 내공으로 치환하는, 실로 간단하면서도 무서운 방식.

어찌 보면 흡성대법과도 비슷하지만 사실 기저에 깔려 있는 논지의 깊이는 궤를 달리하는 것이었다.

홍공 역시도 흡성대법과 자신의 마공 ‘창귀칭(倀鬼稱)’을 동일 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것을 아주 싫어했고 말이다.

‘흡정공 따위의 잡기들은 그저 상대방의 정기를 빨아먹는 것이나, 이 창귀칭이라는 것은 한 인간의 모든 것을 통째로 삼켜 버리는 것이다. 희로애락, 오욕칠정, 고집멸도 이 모든 것들을 말이다. 즉, 흡정공과 나의 무공을 비교하는 것은 떨어지는 비 한 방울과 창해의 파도를 같은 선상에 놓고 견주는 것과도 같다.’

추이는 홍공의 가르침들을 모두 기억한다.

온몸의 혈관이 타들어 가며 몸이 강제로 변화하던, 그 지옥 같던 나날들을 똑똑히.

홍공은 말했다.

‘창귀(倀鬼)라는 것이 있다. 호랑이에게 잡아먹힌 사람이 죽어서 변한 것으로, 그것은 호랑이에게 붙어서 영격을 높여 주고 사냥을 보조하는 역할을 하지.’

홍공이 창안한 마공인 ‘창귀칭’ 역시도 이것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

‘처음으로 이 무공을 익히게 된 자를 ‘굴각(屈閣)’이라 한다. 기껏해야 몸에서 수증기 같은 형태의 마기를 방출할 수 있는 단계이지. 이는 1층부터 10층까지, 총 10개의 층계로 나뉜다.’

과거의 추이는 홍공이 살아 있는 동안 굴각의 경지를 10층까지 모두 올랐었다.

아무리 살겁의 크기와 빈도에 따라 빠르게 발전하는 속성의 마공이라고 해도, 이는 홍공조차도 놀랄 정도의 속도였다.

‘이 무공을 숙련되게 익힌 자를 ‘이올(彛兀)’이라 부른다. 이올의 피는 어지간한 무림인에게는 극독과 같다. 자신의 것이 아닌 남의 내공을 태우고 말려 버리는 성질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경지에 오르게 되면 내공의 빛깔이 붉게 되고 몸 바깥으로 분출될 때도 액체의 형태를 띠게 된다. 말 그대로, 피를 뿜어내는 형상과 같다. 이 또한 굴각과 마찬가지로 10개의 층계로 나뉜다.’

홍공이 죽기 직전, 추이는 굴각의 10층을 넘어 이올의 1층에 진입했었다.

추이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굴각을 10층까지 대성한다고 해도, 심후한 내공을 가진 스승이 임독양맥을 뚫어 주지 않는다면 다음 단계인 이올의 경지로 넘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굴각과 이올을 대성하게 된다면 다음 단계는 ‘육혼(鬻渾)’의 경지이다. 나는 이 단계에 한쪽 발을 디뎌 놓는 것만으로도 천하를 오시했으며 네 개의 층계를 오른 뒤에는 정, 사, 마의 모든 것들을 하찮게 여길 수 있었다.’

이올의 경지로 넘어가기만 한다면 육혼의 경지까지는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였다.

그래서 홍공은 추이를 굴각 단계에서만 머무르게 할 생각이었으나, 모종의 이유로 인해 계획을 변경했고 끝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다.

“지금 나의 경지는······ 굴각의 1층인가.”

추이는 나지막하게 읊조렸다.

피 묻은 창날에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본다.

육혼의 경지에 올라 있었던 강인한 육체는 온데간데없고 나약한 소년병의 몸, 아니 소년병조차 되지 못한 쟁자수의 몸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추이는 결코 조급해하지 않았다.

어차피 무공의 구결이야 머릿속에 다 있고, 무공의 부작용을 억누를 수 있는 호흡법 역시도 이제는 기억하고 있다.

앞으로는 조금씩 조금씩 좋아질 일만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제 대체 무슨 조화 때문에 자신이 과거로 돌아왔는지에 대해 심사숙고할 차례다.

추이가 막 생각에 잠기려는 순간.

“무슨 생각을 그리도 깊게 하십니까, 소협?”

옆에서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주예화 표두.

호질표국의 1급 표사임과 동시에 이번 표행의 최고 책임자였다.

그녀를 포함, 십수 명의 표사들이 모두 마차에 오른 채 추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약관에도 한참 못 미치는 나이 같은데, 무공의 경지가 실로 어마어마하군.”

“어떤 무공을 쓰는지 봤나? 나는 너무 빨라서 못 봤네.”

“나도 어두워서 자세히는 못 봤어. 하지만 저 소협의 주변에 있던 녹림도들이 지르는 비명 소리는 똑똑히 들었지.”

“어떤 은거기인의 제자인지, 정말 부럽구만.”

“근데 왜 저런 무공을 가지고 우리 표국의 쟁자수를 하고 있었지?”

“예끼, 이 사람. 원래 무림에는 기인이사가 많은 법이라네.”

.

.

표사들은 조용히, 자기들끼리 떠들기에 여념이 없다.

하지만 추이는 그저 조용히 말안장 위에 앉아 있을 뿐이다.

주예화는 그런 추이에게 어떻게든 말을 붙이기 위해 눈치를 보는 중이었다.

‘이런 고수가 어디서 나타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우리를 구해 주었으니 적이 아닌 것 같기는 하다. 이번 표행을 도와준다면 정말 좋겠는데.’

방금 녹림도들의 습격으로 인해 많은 표사들을 잃은 상황이었기에 주예화의 마음은 급했다.

“소협. 말을 참 잘 다루십니다. 마치 수십 년 동안이나 말을 타 보신 것 같군요.”

“······.”

추이는 자신이 타고 있는 말을 슬쩍 내려다보았다.

덜덜덜덜······

말은 오줌을 지리며 걷고 있었다.

무척이나 두려워하는 듯한 기색,

추이가 고삐를 당길 때마다 말은 마치 뜨거운 인두에 데이기라도 한 것처럼 깜짝깜짝 놀라며 명령에 복종한다.

주예화는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그 말은 원래 성질머리가 고약해서 누구의 말도 듣지 않기로 유명한 말이었습니다. 힘은 좋으니 물건이나 끌라고 해서 데려왔는데, 설마 이 녀석이 자기 등에 사람을 태울 줄이야.”

그도 그럴 것이다.

추이는 전생에 수많은 전장을 누비며 살겁을 쌓아 왔다.

그중에는 인간도 있었지만 당연히 말도 있었다.

군마를 타고, 죽이고, 잡아먹고, 또 타고, 또 죽이고, 또 잡아먹고.

아마 추이의 영혼에 사람의 피 다음으로 많이 절어 있는 것이 바로 말의 피일 것이다.

아무리 사나운 개도 개장수를 만나면 꼬리를 말고 오줌을 지린다던가, 개보다 영특한 말의 경우는 그보다도 더한 모양이었다.

그때.

“갈림길입니다.”

앞서 달렸던 표사 하나가 돌아왔다.

주예화는 잠시 무언가를 고민하는가 싶더니 이내 추이를 바라보았다.

“소협. 초면에 이런 부탁을 드리게 되어 실로 염치가 없습니다. 혹시 지금까지와 같이 저희들의 표행에 동행해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당연히 보수는 섭섭하지 않으실 정도로······”

“싫다.”

“그렇군요.”

추이의 대답을 예상하고 있었던 듯, 주예화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궜다.

이 정도 힘을 가진 인물이 굳이 쟁자수를 자청하며 표행에 합류한 것에는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마도 자신의 힘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리라.

‘······이런 사람이 우리 편을 들어 주었다는 것은 천운이다.’

주예화는 꿋꿋하게 다음 말을 이어 나갔다.

“정말로 죄송한 일입니다 소협. 저희들을 도와주신 은혜는 사흘 밤낮으로 연회를 베풀어 대접하기에도 모자라나, 저희가 맡은 표행의 일자가 너무나도 촉박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자리에서 보답을 드리자니, 저희가 가진 재물의 양이 많지가 않습니다.”

표국이 운반하고 있는 표물들은 표국의 것이 아니라 의뢰자의 것인지라 마음대로 할 수 없다.

표행을 떠난 표사들이 따로 금전이나 재물을 가지고 있을 리도 만무한 터였다.

그래서, 주예화는 추이에게 다른 것을 주었다.

“미미하지만 이것을 받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은 금으로 만들어진 사각의 패찰이었다.

‘호정문-1급 표사’

주예화는 말했다.

“알고 계시겠지만, 호질표국은 호정문(虎穽門)에서 따로 운영하고 있는 표국입니다. 호정문은 안휘 지역에 있는 유서 깊은 문파이지요.”

추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호정문.

당연하게도, 쟁자수로 일했던 추이 역시 잘 알고 있는 문파였다.

‘······몇 년 안에 몰락하여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되는 비운의 문파.’

꽤나 바르고 공명정대하게 운영되고 있었던 이 문파는 어느 날 갑자기 하루아침에 망해 버린다.

지금은 꽤나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는 모양.

그래서 주예화가 이번 표행에 상당히 신경 쓰고 있는 것이리라.

“이 표찰은 제 신분을 상징하는 표찰입니다. 이것을 소지하신 채로 호정문으로 가시게 된다면 아마 1급 표사에 준하는 귀빈 대우를 받으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부디 제 성의를 받아 주셨으면 합니다.”

“······.”

추이는 주예화가 내민 금패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내 손을 뻗어 그것을 받았다.

주예화의 표정이 더없이 환해진다.

그때쯤 해서 눈앞에 갈림길이 나타났다.

주예화는 다시 한번 포권 자세를 취했다.

“저희들은 이 길로 바로 표물을 배송하러 가 보겠습니다. 일이 끝나는 대로 바람같이 표국, 아니 문(門)으로 바로 복귀하여 소협에게 제대로 감사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부디 저희 문에 편히, 머무시고 싶으신 만큼 머물러 주시기를.”

호질표국의 표사들임과 동시에 호정문의 무인들이기도 한 이들.

그들은 연신 추이에게 포권을 취하며 멀어져 갔다.

이윽고, 추이는 조용히 말 머리를 돌려 호질표국이 있는 안휘로 향했다.

“······.”

한편, 주예화는 산등성이 너머로 멀어지는 추이를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애꾸눈의 표사가 그녀를 향해 씩 웃는다.

“반하셨습니까? 아까 그 소협, 하도 곱상하여 저는 처음에 계집아이인 줄 알았습니다. 여리여리하고 하얀 것이 딱 표두님 취향이던데.”

“돌았냐? 칼 다시 뽑아?”

“어이쿠, 왜 찌르십니까. 찔리십니까?”

주예화는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듯 고개를 홱 돌려 버렸다.

그리고 조용히 말을 이었다.

“······너희들은 못 봤겠지만, 나는 봤다.”

“무엇을요?”

“그자의 창술 말이다.”

주예화는 식은땀을 흘렸다.

“무공의 연원과 정체는 전혀 모르겠으나 창술 자체는 낯익은 것이었다.”

“창술로 유명한 문파나 세가가 어디일까요? 산동악가(山東岳家)? 아니면 마가창(馬家槍)이나 양가창(楊家槍), 이화창(梨花槍), 으음. 사가간자(沙家杆子)나 이가단창(李家短槍)도 유명하고.”

“아니, 무림의 것이 아니다.”

뒤이어지는 주예화의 말에 수다스럽던 부하의 입이 닫혔다.

“그것은 군(軍)의 창술이었다.”

“······.”

부하가 한참의 침묵 끝에 멍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아까 그 소협이 군가의 자제분이시란 말씀이십니까?”

“확실할 것이다. 내가 본 것은 기본 초식 몇 개에 불과했으나, 숙련도가 말이 안 되는 수준이었어. 절대 그 나이에 보일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다. 분명 장군가에서 체계적으로 키운 뒤 실전 경험을 쌓도록 하기 위해 내보낸 인재일 것이다. 필히 귀한 신분이겠지.”

그 말에 표사들 역시도 고개를 끄덕였다.

주예화의 설명에 개연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유력한 군가(軍家)의 자제일 것이니 친분을 쌓아 두어서 나쁠 것은 절대 없다.”

“문(門)의 사정이 위태로우니, 저런 고수를 한 명이라도 식객으로 모실 수 있으면 필히 큰 도움이 되겠군요.”

“그렇지. 밥과 술을 대접해 준 이들을 외면하기란 어려울 터이니······ 더군다나 아까의 그 소협은 녹림도들에게 밀리고 있는 우리를 목숨 걸고 도와줬을 정도로 의로운 인물이다. 문의 위기를 좌시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주예화는 표물들을 돌아보며 표정을 굳혔다.

“현재 문의 자금 사정이 좋지 않아 모든 무인들이 다 표사로 붙은 상황이다. 어서 빨리 이 표행을 끝내고 돌아가야 본진의 전력 공백을 채울 수 있어. 서두르자.”

“맞습니다. 아까 초청한 그 소협이 저희가 돌아올 때까지 머물러 주었으면 좋겠군요. 혹시나 그새 흑도방 놈들과 시비가 붙는다면 도움이 될 수 있게요.”

“외부에서 초청해 온 고수 한 명 한 명이 아쉬운 실정이지. 그래서 내가 나를 상징하는 금패를 내준 것이 아니겠나. 그것이 있으니 아마 문에서 극진히 모실 것이다.”

호질표국의 표사들은 발걸음을 서두르기 시작했다.

최대한 빨리 이 표물들을 운송하고 나서 문파로 복귀하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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