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산 중 호걸이라 하는
1 산 중 호걸이라 하는
······어렸을 적.
사람들은 나를 쓰레기, 혹은 노예라고 불렀다.
조금 더 큰 뒤에는 주로 잡초, 독종 같은 멸칭으로 통했다.
장성한 뒤에는 독사창(毒蛇槍)이나 창귀(槍鬼)라는 말도 들어 봤다.
지고의 경지에 오른 뒤에는 잠시지만 창왕이라는 과분한 별호로 불리게 되었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응애-”
이제 다시 쓰레기라고 불리게 생겼다.
* * *
이제 막 열대여섯 살쯤 되었을까.
앳된 외모의 소년 하나가 산기슭에 서 있다.
“응애?”
소년은 황당함이 가득한 어조로 아기 울음소리를 한번 흉내 내어 보았다.
“음. 그렇군. 그 정도로 어리진 않은가.”
추이(酋耳).
성은 없고, 그냥 이름만.
아무튼 그는 돌아왔다.
혈(血)과 마(魔)가 뒤섞여 있던 전장의 저편에서, 때 묻지 않은 어린 시절의 몸으로.
그리고 그런 그를 환영해 주는 인파가 있었다.
“뒈져라!”
녹림도(綠林徒).
산에 숨어 행인들을 죽이고 재물을 앗아 가는 몹쓸 도당.
그들이 깊은 산속을 지나는 한 표국을 야습하고 있는 중이었다.
“······.”
추이는 수염 한 올 없는 보송보송한 턱을 손으로 쓸었다.
‘과연. 그러고 보니 이때쯤이었지. 쟁자수로 일하던 때가.’
추이는 본디 남방의 소수민족 출신이었다.
외세에 의해 부족이 전멸당한 뒤, 유년시절의 그는 점소이나 쟁자수를 비롯한 일들을 전전하던 끝에 군에 입대하게 된다.
군에 입대한 뒤로 추이는 수많은 전장을 누볐다.
의(衣)는 다 떨어진 군복 한 벌이면 족했고, 식(食)은 배급으로 나온 감자 한 알이면 되었다.
주(住)는 전장이었다.
창을 베고 누웠고, 시체를 덮고 잤으며, 뜨거운 피와 차가운 밤이슬로 몸을 씻었다.
천성을 그렇게 타고난 것일까, 아니면 적성이 개화한 것일까.
그는 창 한 자루를 꼬나 쥔 채 수없이 많은 사람을 죽이면서도 정작 본인은 한 번도 죽지 않을 수 있었다.
한평생 전장만 떠돌다가 죽어 버리라던 망자들의 저주 때문일까.
추이는 회귀하고 나서도 이렇게 전장에 오도카니 서 있는 것이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그는 몸을 가만히 놔둘 수 없었다.
본인이 그러한 성격도 아니었거니와, 도무지 세상이 그를 그렇게 놔두지 않았다.
“이 꼬맹이는 뭐야?”
지나가던 산적 하나가 추이를 봤다.
그는 창끝을 치켜들며 말했다.
“표사는 아니고. 쟁자수인가?”
추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눈앞에 있는 적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충혈된 눈.
과부하에 걸린 몸.
그걸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대가리.
전장에 처음으로 나와 본 인간이 보이는 전형적인 반응이다.
피맛에 눈이 돌아가 버린 초짜에게 여자나 어린애, 노인들을 배려해 줄 여유 따위는 없다.
예상대로, 산적은 창을 꼬나 쥔 채 추이에게 달려들었다.
“호질표국 놈들은 다 죽인다아아아아!”
그것이 그의 불행이었다.
키리릭- 터억!
추이는 코끝까지 밀려 들어온 창을 너무나도 쉽게 피해 버렸다.
그리고 한때 지문이 닳아 사라져 버릴 정도로 훈련받았던 금나수법을 사용해 상대의 창대를 잡아챘다.
“어?”
산적의 표정이 멍해졌다.
그리고 그대로 굳어 버렸다.
푹-
추이가 산적의 창을 빼앗자마자 그것으로 그의 심장을 관통해 버렸기 때문이다.
“무공(武功)은 사라졌으되, 무리(武理)는 남았다. 이거면 충분하지.”
호흡을 할 때마다 단전 안쪽으로 매운 열기가 피어오른다.
미미하게나마 내공이 쌓였다.
전생에 익힌 무공은 비록 속성의 마공(魔功)이기는 했으되, 말단 병사로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것이었다.
내력을 끌어올리는 추이의 눈빛이 검붉게 변했다.
콱-
그는 산적의 심장을 관통한 창을 그대로 들어 올렸다.
사람 죽이는 법을 몸이 기억하고 있다.
사람이 기억을 잃어도 숨 쉬는 법은 잊지 않듯, 추이의 몸은 전생의 살인기예(殺人技藝)를 똑같이 재현해 내고 있었다.
그때.
“으아아, 이 괴물!”
뒤에서 비명에 가까운 악다구니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린 곳에는 한 산적이 활을 들어 이쪽을 겨누고 있는 것이 보인다.
피잉- 퍽!
산적이 쏜 화살이 추이의 이마를 향했다.
하지만.
“······.”
추이는 고개를 옆으로 틀어 화살을 빗겨냈다.
화살이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간 이마에서는 그저 한 줄기 피가 흘러내렸을 뿐이다.
살가죽만 찢고 두개골은 뚫지 못한 것이다.
산적은 당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알지 못했고, 그것이 그대로 그의 사인(死因)이 되었다.
뿌욱!
추이의 창이 활 든 산적의 옆구리를 관통했다.
이제 창에는 두 사람의 몸이 꿰이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모자란지, 추이는 그 창을 그대로 들어 올렸다.
“뭐냐, 이 미친놈은!? 죽어라!”
능선을 따라 올라온 거구의 산적이 추이를 향해 도끼를 휘둘렀다.
하지만.
뻐억!
그 역시도 추이의 창에 가슴을 관통당해 축 늘어져 버리게 되었다.
첫 번째 산적, 두 번째 산적, 세 번째 산적들이 모두 추이의 장창에 꿰뚫렸다.
칠십 관은 너끈하게 넘어갈 무게의 창을 추이는 훌쩍 들어 올려 어깨에 걸쳤다.
후두둑- 후두둑- 후두둑-
떨어지는 빗방울이 새빨갛다.
산적(山賊)으로 만든 산적(散炙)을 어깨에 짊어지고 다니니 네 번째 고깃덩어리부터는 당최 가까이 오려 하질 않는다.
그저 귀신을 본 듯 혼비백산하여 물러날 뿐.
“······호질표국이라. 옛날 생각나는군.”
추이는 고개를 들어 어둠에 젖은 숲 너머를 바라보았다.
칼과 칼이 부딪치는 소리, 표사와 산적이 내지르는 단말마들이 뒤엉켜가고 있다.
추이는 느긋한 태도로 발걸음을 옮겨 숲속으로 향했다.
산중에 창귀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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