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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계(逐界)-쫓겨난 이들의 세계-309화 (309/309)

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Ep3 - 3. 시스템 혼란(6)

- 자! 오늘은 어디를 탐색해야 되나요?

석호가 들어오며 그렇게 얘기를 하자 세현이 웃음을 참다가 크게 터트렸다. 세현이 웃자 대장은 또다시 '....'을 쳤다.

- 무슨 일이 있어요?

석호의 말에 세현은 고개를 저으며 웃음을 참았다.

- 아.. 아니에요. 하하하. 게.. 게임 잘 해요. 하하하.

세현은 웃으면서 사무실 밖으로 나갔고, 석호는 의아한 듯이 세현의 뒷모습을 보다가 모니터를 보며 대장에게 물었다.

- 세현 씨 왜 그래요?

석호의 질문에 대장은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모니터에 화면을 하나 띄웠다.

- 지난밤에 찾은 자료이다. 일단 이 내용을 바탕으로 그 죽은 아이를 찾는 것과 함께 다른 사람들도 찾아야 한다.

석호는 그 문서를 읽다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 50일 연속 게임이요? 말도 안 되는데..

- 그러니까 그런 인간을 찾아봐야 한다.

석호는 대장의 말에 고개를 끄떡이고, VR 머신을 썼다.

- 자 오늘도 열심히 찾아보자구요.

밖으로 나온 철구는 명단에 적인 사람들의 주소를 훑어보고는 가까운 곳에 사는 사람들 위주로 찾아 돌아다녔다.

철구가 먼저 도착한 곳은 사무실과 그리 멀지 않은 주택가였다. 주택가 안으로 들어가자 철구는 저절로 주변을 두리번거리게 되었다.

- 더럽게 잘 사는구만.

철구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주소가 적힌 곳으로 향했다.

'딩동딩동'

철구가 커다란 철문 앞에서 초인종을 누르자 인터폰을 통해 아줌마 목소리가 들렸다.

- 누구세요?

철구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 여기가 이청솔 씨 댁인가요?

철구의 질문에 안에서는 대답이 없었다. 철구는 다시 초인종을 누르자 안에서는 귀찮다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 그런 사람 여기 안 살아요.

- 네? 분명 여기가 주소지로 나와 있는데요?

- 그런 사람 없다니까요.

아줌마는 일방적으로 인터폰을 끊었다. 철구는 주소를 다시 확인하고 초인종을 누르고 말을 했다.

- 이청솔 씨 실종 사건 때문에 나왔습니다. 시간 되시면 협조 부탁드립니다.

철구의 말에 안에서 조금 망설이는 듯한 머뭇거림이 느껴졌고, 철구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말을 했다.

- 광역 수사팀에서 이번에 실종된 사람들 대상으로 행적 파악만 하는 겁니다. 문 열고 말씀하시기 그러시면 인터폰으로 말씀하셔도 됩니다.

철구의 말에 인터폰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 잠시만요.

그러다가 조금 후에 문이 열렸다. 그러나 문이 활짝 열려 철구가 들어갈 정도가 아니라 안전 고리가 걸린 채 조금 열렸다.

- 무... 무슨 일이시죠?

안에서는 이 집과 어울리지 않는 모습의 꾀죄죄한 중년 여성이 말을 건넸다. 철구는 현관문 앞에 서서 이청솔의 과거 행적에 대해 물었다. 중년 여성은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말을 했다.

- 게임에 미쳤어요. 오죽하면 다니던 대학까지 때려치우고...

- 아.. 그렇군요. 그 외에는 특이한 점은 없었나요?

중년 여성은 조심스럽게 말을 했다.

- 우리 가족을 죽일 거라고. 항상 그렇게 얘기를 했는데...

중년 여성은 슬픔도 괴로움도 아닌 이상한 표정이 되었다. 그리고는 조금 히스테릭한 말투로 말을 했다.

- 이제 됐나요?

그러고는 문을 쾅 닫아버렸다. 철구는 갑작스러운 반응에 어리둥절했다. 초인종을 다시 눌렀지만 안에서는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

- 뭐야, 저 여자.

철구는 그 집에서 나와 다른 주소지를 찾아갔다. 송파를 지나 하남 쪽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시골길 같은 곳을 따라 한참을 달려 낡은 집 앞에 도착했다.

- 뭐야, 여긴 완전 시골이잖아.

철구는 주소를 보고 집 앞으로 갔다. 허물어져 가는 담벼락 너머에는 허름한 주택이 하나 보였다.

- 계십니까?

철구가 담벼락 너머에서 안에 소리를 치자 안에서는 할아버지 한 분이 문을 열고 나왔다.

- 누구슈?

- 아, 여기가 박철웅 씨 댁인가요?

철구의 말에 할아버지는 얼굴이 붉어지며 소리를 쳤다.

- 그.. 그 새끼 뒈진 지 벌써 1년이 넘었는데 돈 받으러 온 거야!

할아버지의 반응에 철구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 아닙니다. 광역 수사대에서 실종자들을 조사하고 있어서 과거 행적을 조사하러 나왔습니다.

철구의 말에 할아버지는 머리를 긁으며 사과를 했다.

- 아이구. 미안헙니다. 하두 그 놈의 자식이 진 빚 받으러 오는 놈들이 많아서..

철구는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떡였다.

- 잠시 얘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철구의 말에 할아버지가 문을 열고 철구를 안으로 불러들였다. 거실에 앉은 철구는 할아버지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 박철웅 씨가 실종되기 전에는 어땠나요?

철구의 말에 할아버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그 놈의 자식... 공부허라고 부모가 등골 빠지게 대학꺼지 보냈는데, 게임인가 뭔가 한다구 정신 팔구 다니다가 뭔 사기를 당했는지 5000만 원까지 빚지고 도망다녔지.

철구는 집을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 그런데 여기는 할아버지 혼자 사시는 것 같은데요?

철구의 말에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떡였다.

- 그 눔 에미, 애비는 다 경상도에 살아. 난 그 눔 할아버진데, 학교까지 통학헌다구 우리 집에서 살았거든.

- 아, 그랬군요.

철구는 그렇게 고개를 끄떡이고 할아버지에게 말했다.

- 혹시 철웅 씨가 쓰던 방을 살펴볼 수 있을까요?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떡이다가 무언가 생각났는지 철구를 보며 물었다.

- 거.. 아까 뭐냐, 어디서 왔다구 했지?

철구는 갑작스러운 할아버지의 질문에 조금 당황을 하긴 했지만, 웃으며 대답했다.

- 광역 수사대에서 나왔구요. 저는 강남 경찰서 조성준이라고 합니다.

철구의 의뭉스러운 거짓말에 할아버지는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 그려. 우리 손자 실종되구 처음 찾아오는 경찰이라서..

철구는 할아버지의 말에 반문을 했다.

- 아무도 안 와 봤다구요?

- 응. 아무도 안 왔지.

철구는 할아버지의 말에 조금 화가 났다. 실종된 지 1년이나 되었는데,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 죄송합니다.

- 아녀. 아녀. 그 눔의 자식. 어디서 밥은 먹고 다니는지..

할아버지는 목소리에 물기가 젖은 채 철웅의 방문을 열어주었다. 철구는 철웅의 방 안으로 들어가 이리 저리 살펴보았다.

크게 이상한 점은 보이지 않았다. 전형적인 학생의 방처럼 꾸며져 있었다. 철구는 쭉 살펴보다가 책꽂이에 꽂혀 있는 수첩을 들어보았다.

일상적인 스케줄이 적혀 있었고, 메모 몇 개가 보였지만 그다지 중요한 건 아니었다.

- 도무지 모르겠군.

철구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수첩을 제자리에 꽂으려고 책꽂이 쪽으로 수첩을 밀다가 수첩 뒤에 있는 포켓이 살짝 삐져나온 걸 보았다.

다시 똑바로 해서 꽂으려고 수첩을 펼치자 포켓 안에 '유서'라는 제목이 또렷이 보이는 접혀진 종이가 보였다.

- 유서?

철구는 포켓을 열어 안에 있는 종이를 꺼냈다.

사는 게 힘들다.

이런 말을 하면 다들 살지 못해 죽는 사람도 있는데 배부른 소리한다며 타박하기도 한다. 하지만 죽지 못해 사는 괴로움을 누가 알 것인가?

누구도 나를 대신 살아줄 수는 없다. 현실의 삶을 포기하는 것이 비겁한 일이라고들 하지만 더 비겁하고 비굴하게 살아도 현실은 언제나 나를 외면했다.

더 잘난 사람, 더 나은 사람이 되라고 어릴 적부터 끊임없이 잔소리를 들어왔다.

영어 학원, 수학 학원, 미술 학원, 피아노 학원... 나를 더 성장하게 만들어 줄 것처럼 말하던 곳이 내게는 지옥과 다름없는 곳이었다.

그렇게 해서 좋은 대학에 가고, 대기업에 취직해 남들과 같이 경쟁하며 살다가 어느 순간 힘이 빠져 도태되면 그건 내가 못나서 그런 것이 되어버리는 가혹한 현실 앞에서 더 잘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나 싶다.

솔직히 나에게 충고하는 그 수많은 책들, 영상들은 소위 1% 사람들 얘기 아닌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그들처럼 되지 못하는 99%는 어차피 낙오자일 뿐이다.

열정, 희망, 노력, 인내... 그 꼴 같지 않은 말들로 우리의 삶이 얼마나 괴로워졌는가 말이다. 누군들 희망이 없었고 누군들 열정이 없었단 말인가.

노력하지 않은 사람은 누구고 인내하지 않은 사람은 누군가. 마치 성공한 사람들은 그 과정을 훌륭히 지내온 사람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쓰레기처럼 산 것이고.

결국 성공을 하면 모든 것이 미화되는 것 아닌가. 실패하면 그 모든 것이 부정되는 것이고.

평범하게 살다 평범하게 죽을 수 없는 현실 앞에서 폼 재며 난 이렇게 살아서 성공했다는 말을 들으면 솔직히 역겹다.

아버지가 재벌이 아니고 기득권층이 아니면 아무리 발버둥 쳐도 평범하게 살 수밖에 없지 않은가 말이다.

이런 현실에서 열심히 살라는 말은 지옥에서 버티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지옥에 사람을 던져 놓고 그 안에서 발버둥 치는 이들에게 꿈과 희망, 열정을 논하는 건 가혹한 일이다.

우리는 그런 현실을 견뎌왔다는 개소리 따위는 집어치워라. 나는 그런 현실을 버티고 버티다가 이 자리에 온 것이다.

지금 당장의 죽음을 누군가가 막을 순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누군가는 이 괴로운 현실로 그 사람을 다시 던져버리는 것이라는 걸 잊지 마라.

게임 속에 몸을 던져 현실을 포기한 내가 미친 인간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엔 이 현실에서 마치 정상처럼 살아가는 너희들이 더 미친 인간으로 보인다.

적어도 내가 몸을 던진 세계는 노력한 만큼, 투자한 만큼 결실이 있는 곳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그저 그런 삶을 사는 현실과는 다른 유토피아인 것이다. 유토피아가 이곳에 있는데 왜 지옥에서 버티라고 하는 것인가.

나를 위한다면, 아니 우리를 위한다면 우리가 꾸려 나가는 이 세계를 파괴하거나 혼란스럽게 만들지 않았으면 놓겠다.

다시 꿈을 깨어 절망의 지옥으로 가고 싶진 않으니까.

- 이게 유서야?

철구는 그 종이를 훑어보다가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 외에 뭐가 있나 살펴보았으나 별다른 특이점은 찾을 수가 없었다. 철구는 방에서 나오면서 할아버지에게 말을 했다.

- 저희가 찾아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철구의 인사에 할아버지는 그저 고개만 끄떡일 뿐이었다. 철구는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하고 나와서 한숨을 쉬었다.

- 게임 때문에 이게 다들 뭔 짓들이야. 참나.

철구는 다른 사람들도 찾아가 보았지만, 대부분이 경제적으로 힘든 사람이거나 아니면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물론 단순 가출자도 많이 있었지만, 아무 말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실종된 사람도 다수 있었기에 철구는 그러한 사람들 명단만 따로 정리했다.

한편 석호와 대장은 게임 속을 며칠 간 헤맸지만, 특이한 것을 찾을 수가 없었다.

- 아무 것도 없다. 대부분은 우리가 아는 것들뿐이다.

대장의 말에 석호가 고개를 끄떡였다.

- 한강에서 김 서방 찾기가 이것보다는 쉬울 것 같네요.

석호가 그렇게 말을 하자 대장이 고개를 끄떡였다.

- 아, 철구 아저씨한테 연락이 왔다.

석호는 잠시 게임을 멈추고 대장이 철구와 통화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대장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자 석호가 대장에게 물었다.

- 무슨 일이에요?

- 사람을 찾으라는 거다. 실종자들 중에서 이상한 사람들만 추려서 보냈다. 그 사람들 조사..

대장은 그렇게 말을 하다가 갑자기 무언가 생각이 났는지 석호에게 말했다.

- 오늘은 이만 게임 접어야겠다. 아주 중요한 정보인 것 같다.

- 네? 네.

대장이 먼저 접속을 종료하자 석호 역시 접속을 종료하였다. 그리고 모니터 쪽으로 보며 말했다.

- 뭐길래 그래요?

- 아까 철구 아저씨가 보낸 명단을 통해서 정보를 모으면 그 사람들 게임 아이디로 알 수 있을 거다. 사람들은 대게 같은 아이디를 사용하기 때문에 쉽게 정보를 찾을 수 있을 거다.

대장의 말에 석호가 고개를 끄떡였다.

- 그렇겠군요.

- 아이디 찾아서 계정까지 들여다보면 좀 더 확실하게 알 수 있을 거다. 우리가 김 서방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대장의 말에 석호가 피식 웃었다.

- 그렇겠군요.

대장이 무언가 열심히 찾고 있는 동안 석호는 물끄러미 자신의 VR 머신 안을 들여다보았다.

꽉 막힌 공간 안에 시야를 가둔 채 어딘지도 모를 세상을 바라보는 모습. 어쩌면 플라톤이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었던 이데아의 모습이 이것이 아닌가 싶었다.

모두들 VR 머신 안만을 바라보고 있고, 정작 외부에 있는 현실을 모르는 아이러니를 느낀 석호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 조만간 컴퓨터 안에서 미사를 보겠군.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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