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Ep3 - 3. 시스템 혼란(5)
- 혹시 그런 거일 수도 있어요. 잠을 오게 하는 호르몬, 그러니까 멜라토닌을 준비되지 않게 하는 것이죠. 각성 효과가 있는 세로토닌을 다량으로 투여하거나 아니면 예전에 미군들이 실험했던 건데 뇌에 있는 송과선 제거 수술을 하면 멜라토닌이 분비가 되지 않아 잠이 안 올 수도 있어요.
철구는 세현의 말에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 할매도 대장처럼 만화나 영화 많이 봐? 게임하려고 그런 미친 짓을 하는 인간이 어디 있겠어?
세현은 철구를 한심스럽게 쳐다보며 말했다.
- 만화나 영화가 아니라 1200시간을 깨어 있는 사람을 분석하는 가장 과학적인 접근이에요.
철구는 세현의 말에 귀를 파며 말했다.
- 공상 과학 같은 말이잖아.
철구의 말에 세현이 고개를 저었다.
- 공상 과학이 아니라 과학이에요. 실제로 있을 수 있는 일이고, 있었던 일이기도 해요.
- 그럼 생각해 보자구. 그 송과선을 제거하는 일이 쉬운 일이야? 뇌수술인데? 그리고 그 세로.. 뭐야 아무튼 그건 얼마나 먹어야 50일 간 잠이 안 올 수 있지?
철구의 말에 세현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 그 놈들이라면 가능할 수도 있죠.
세현의 말에 철구가 의자에서 허리를 떼며 말했다.
- 그 놈들이 게임까지 갖고 놀진 않을 거라고 보는데. 그 놈들은 사람만...
그렇게 말하다가 철구가 무언가 알았다는 듯이 서둘러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 어. 성준아. 너 혹시 최근에 일어난 실종 사건 파일이나 자살 사건 파일 좀 있냐?
- 네. 정리 되어 있을 거예요.
- 그럼 10대 후반부터 40대 초반까지 한정해서 나한테 보내줘라. 자살은 시신이 발견된 거 빼고.
- 네. 금방 해서 보내드릴게요.
- 오케이. 땡큐.
철구가 전화를 끊자 세현은 철구를 보며 물었다.
- 무슨 일인데 갑자기 그래요?
철구는 세현을 보며 말했다.
- 아까 할매가 그랬잖아. 그 놈들이라면 가능하다고. 그래서 생각해 봤지. 일단 1200시간을 깨어 있다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거고, 만약 그럴 수 있다면 할매 말대로 누군가 의도적으로 그런 실험을 하게 될 것이고, 그러려면 사람이 필요하잖아. 그런데 뜬금없이 사람을 납치해서 그런 짓을 벌일 수는 없을 테니까 일단 자살을 하려고 하는 사람이나 혹은 실종된 사람을 중심으로 사람을 구하겠지. 그런데 그 사람들이 어쨌든 게임을 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니까 연령은 10대 후반부터 40대 초반까지가 가능하거든.
철구의 말에 세현은 고개를 끄떡였다. 그러다가 뭔가가 걸린다는 듯이 말했다.
- 그런데 만약 그 놈들 짓이라면 왜 그런 짓을 하는 걸까요? 송과선 실험이야 이미 미군에서 했던 건데.
세현의 말에 철구가 귀찮은 듯이 말했다.
- 그 놈들 짓이야 뭐가 뭔지 알 수 있나. 그리고 일단 정보를 모아보는 게 중요하니까 일단 신원 파악이 되면 그 사람들을 찾아다녀 보면 뭔가 나오겠지.
철구의 말에 대장이 말했다.
- 괜히 내가 이상한 의뢰를 받아서...
대장의 말에 철구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 그러게. 뭔 놈의 게임이야. 아무튼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 놓고 접근할 필요가 있어.
철구의 시큰둥한 말에 대장은 '....'만 계속 쳤다. 세현은 모니터를 보며 말했다.
- 아니에요. 이번 일도 어쩐지 구린 냄새가 나요. 그 놈들하고 연결된 것 같은.
세현의 말에 철구가 세현을 쳐다보며 말했다.
- 어디서 많이 듣던 말투군.
- 철구 씨가 맨날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이잖아요. 뭔가 구린 냄새가 나.
세현은 철구의 말투를 흉내 내며 말했다. 그러자 철구가 세현을 보며 말했다.
- 어설퍼. 좀 더 연습해서 잘 따라해 봐.
철구의 말에 세현이 혀를 내밀고 '메롱'을 했다. 그 때 대장이 말을 했다.
- 나는 게임에서 그런 인간들이 더 있나 살펴봐야겠다. 로그 기록은 전체로 관리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 아이디별로 관리되기 때문에 조금 시간이 걸릴 것 같다.
대장의 말에 철구가 고개를 끄떡였다.
- 그 미친 인간들 찾으면 연락해. 성준이가 보낸 정보랑 일치하는 놈이 있으면 확실한 근거가 되는 거니까.
철구는 의자에 몸을 기댄 채 생각에 잠겼다.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어긋나는 것들이 자꾸만 눈에 보였다.
- 게임, 죽은 놈들, 1200시간 연속 접속, 송과선 제거 수술...
철구는 그렇게 입으로 중얼거리다가 고개를 저었다.
- 도대체 말이 안 되는 조합이군.
철구의 중얼거림에 세현 역시 고개를 끄떡였다. 세현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연결되는 것도 없을뿐더러 도무지 이번 일은 그 실체조차 모호하게 느껴졌다.
- 결국 죽은 사람이 게임에 나타났다는 걸 알아내야 하는데, 엉뚱한 일까지 벌어졌군요.
세현의 말에 철구는 고개를 끄떡이다가 말을 했다.
- 글쎄. 죽은 사람이 게임에 나타났다는 말을 들으니까 혹시 1200 시간 연속 게임에 접속해 있던 사람도 죽은 사람이 아닐까 싶은데?
철구의 말에 대장이 '삐삐' 소리를 냈다.
- 죽은 사람은 아이디가 없는 정보라고 나온다. 하지만 그 바바리안은 정보가 정확하게 나왔다. 그러니까 회원 가입을 하고 게임을 하는 사람이다.
대장의 말에 철구가 웃으며 말했다.
- 뭐 만화나 영화에서는 그런 거 안 나오나? 죽은 사람을 살려서 게임을 한다던가 하는 거 말야.
철구의 말에 대장이 대답했다.
- 있다. 좀비로 부활시키는...
- 아.. 됐고. 아무튼 난 성준이한테 전화올 때까지 눈 좀 부치고 있을 테니까 이따가 깨워줘.
철구는 의자에 몸을 기댄 채 눈을 감았다. 세현은 그런 철구를 보며 말했다.
- 저 방에 침대 놔두고 왜 맨날 의자에 기대서 자요?
- 아따. 마누라도 아닌데 잔소리 참 심하네.
- 뭐.. 뭐라구요?
- 이따 깨워주기나 해. 나 잔다.
철구는 의자에 몸을 기댄 채 다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몇 초 후에 낮게 코를 고는 소리가 들렸다. 세현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 하여간 고생을 사서 하고 살아.
세현의 말에 대장은 '삐삐' 소리를 내며 웃었다.
- 하.하.하. 마누라도 아닌데...
대장의 장난 섞인 말에 세현이 모니터 쪽을 째려보았다. 그러자 대장은 얼른 화면을 껐다. 모니터에서는 '연결 안 됨'이란 글자만 둥둥 떠다녔다. 얼마 후 철구는 세현이 몸을 흔들자 잠에서 깨어났다.
- 성준 씨한테 메일이 왔데요.
철구는 머리를 한 번 흔들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 뭐 이상한 거 있어?
철구가 그렇게 중얼거리자 대장이 모니터에 성준이 보낸 메일을 띄웠다.
- 실종자 명단이다. 자살자 명단은 '사망'이 명확하기 때문에 자살을 했으나 시신을 찾을 수 없는 명단, 실종자로 처리했다고 한다.
철구는 그 말에 고개를 끄떡이고 모니터를 보았다. 10대에서 40대까지 실종자를 보니 꽤 많았다.
- 뭐 이렇게 많아? 원래 이렇게 많았나?
철구의 말에 대장이 옆의 화면에 실종자 통계를 보여주었다.
- 실종자 수가 조금 상승하긴 했지만, 자살자 중 실종자를 포함하면 비슷하다.
그리고 그 옆에 지난 해 자살을 한 인원이 나왔다.
- 뭐 이렇게 많이 죽어? 아무리 사는 게 힘들어도 그렇지. 허 참. 진짜 말세로군.
철구는 혀를 차며 말했다.
- 그렇게 쉽게 말하지 마요.
세현은 철구의 말에 타박하듯이 말했다. 철구는 세현의 타박에도 말을 계속했다.
- 죽을 만큼 안 힘들어 봐서 그래. 죽을 만큼 힘들면 죽고 싶다는 생각이 없어져.
세현은 철구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알고 있기에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대장은 무엇이 그리 억울한지 대꾸를 했다.
- 죽을 만큼 힘들면 죽고 싶어진다.
- 그러니까 그런 생각을 하는 게 죽을 만큼 힘들지 않다는 거야.
- 철구 아저씨가 말하는 죽을 만큼 힘든 게 뭐냐?
철구는 모니터를 보며 말했다.
- 어린 애는 잘 모르겠지만 '아 이렇게 하면 죽는구나.'하는 게 죽을 만큼 힘든 거야.
- 철구 씨!
세현이 철구를 향해 소리를 쳤다. 철구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 할매, 나 귀 안 먹었으니까 조용히 말해도 돼.
세현은 입을 다물고 복화술을 하듯이 말했다.
- 어린 애한테...
철구는 세현의 말에 귀를 파며 말했다.
- 대장 정도면 다 알아들어. 그러니까 내 말의 요지는 죽고 싶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말라는 거야.
철구의 말에 대장이 발끈하여 말을 하려다가 마지막 말에 그냥 입을 다물었다.
생각해 보면 지금 가장 괴로운 사람이 철구였는데 오히려 역설적이게도 철구의 입에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말라는 말이 나오자 더 이상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철구는 혼잣말처럼 허공에 중얼거렸다.
- 난 죽고 싶은 생각은 없어. 죽을 수도 있으니까 항상 최선을 다하자는 주의지.
- 그게 무슨 말이에요?
세현은 철구의 입에서 죽음이라는 말이 반복해서 나오자 왠지 불안해졌다.
- 무슨 말이긴. 어차피 우리 모두 죽을 거잖아. 그러니까 열심히 살자는 거지.
철구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 아무튼 다들 이상한 걱정 같은 거 하지 말고 살자구. 그리고 그 명단 하나만 출력해 줘.
철구는 대장이 뽑아준 용지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철구가 밖으로 나가자 대장은 투덜거리듯이 말했다.
- 철구 아저씨는 아무 것도 모르면서..
대장의 말에 세현은 모니터를 보며 말했다.
- 철구 씨 말이 맞아요. 철구 씨가 직설적으로 말해서 그렇지, 사실 철구 씨만큼 힘들 게 사는 사람은 없거든요.
- 나도 힘들다.
대장의 푸념에 세현이 웃으며 말했다.
- 모두 힘든 건 맞는데, 철구 씨의 힘듦은 어쩌면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일지 몰라요.
- 그래도...
세현은 모니터를 보며 부드럽게 웃어주었다.
- 그래도 대장한테는 잘생긴 석호 신부님이 곁에 있잖아요.
세현의 말에 대장이 당황하며 말했다.
- 시... 신부님이잖나..
- 뭐 그래도. 환속하는 사람도 많다니까 혹시 알아요?
세현의 말에 대장은 '.....'을 쳤다. 세현은 그걸 보고 빙그레 웃었다. 그 때 문이 열리며 석호가 안으로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