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Ep3 - 3. 시스템 혼란(4)
석호의 말에 대장이 고개를 끄떡였다.
- 맵이 너무 넓어서 일일이 찾아다니기가 힘들다.
대장의 말에 석호가 제안을 하나 했다.
- 그럼 둘이 같이 다니지 말고 따로 다니면서 정보를 모르는 건 어떨까요?
석호의 말에 대장이 고개를 크게 저으며 말했다.
- 그럴 순 없다. 신부님 혼자서 다니는 건 불안하다. 우린 하드코어 모드여서 한 번 죽으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된다.
- 네? 죽으면 웨이 포인트에서 다시 부활한다면서요?
석호의 말에 대장이 고개를 저었다.
- 그건 노멀 모드로 시작하면 그렇다는 말이다. 노멀 모드는 죽으면 다시 부활하기 때문에 레벨이 천천히 오른다. 그리고 죽으면 레벨이 깎이는 페널티가 있다. 하지만 하드코어 모드로 게임을 하면 레벨이 금방 오르는 대신 한 번 죽으면 부활할 수 없다. 처음부터 다시 게임을 시작해야 한다.
석호는 대장의 말에 어폐가 있다는 걸 느꼈지만 그냥 피식 웃고 말았다. 어차피 이 캐릭터는 계정 자체가 해킹해서 만든 것이어서 죽더라도 같은 방식으로 접속하면 될 일이었다.
그리고 대장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우리는 드래건이 아니면 절대 죽일 수 없을 만큼 강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혼자 다니면 죽을까봐라는 말은 사실 말이 안 되는 것이라는 걸 아마 대장 자신도 알 것이라고 생각했다.
- 알겠어요. 뭐 대장이 그렇다면 그런 거죠.
- 그.. 그렇다.
- 그럼 오늘 저는 이만 종료할게요.
석호가 접속을 종료하고 나가자 대장은 자신의 말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말인지 깨닫고 머리를 쥐어뜯었다.
- 아... 이 게임 때문에 여러 번 쪽팔리네.
석호가 게임을 종료하자 대장은 여기 저기 돌아다니다가 마을 입구에서 파티원을 모집하는 것을 보았다.
- 슬래브 던전 공략하실 분 모집합니다. 레벨은 100 이상. 직업 상관없음.
대장은 그냥 지나치려다가 혼자 돌아다니느니 다른 사람들과 사냥을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파티원 모집 하는 사람에게 다가갔다.
- 정보 공개해야 되나요?
대장은 만약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면 단박에 거절을 하고 다른 곳으로 가려고 했다. 그런데 파티원을 모집하는 사람이 대장을 보더니 말했다.
- 정보 공개는 안 해도 되지만 레벨이 100 이상이라는 것은 확인해야 합니다.
그 말에 대장은 칼을 꺼내 보였다. 윙 오브 엔젤은 게시판을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기에 다른 칼을 꺼냈다.
물론 윙 오브 엔젤을 들고 있는 사람이 대장 하나는 아니었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의심을 받을 수 있었기에 대장은 드래건 슬래이어 스워드(Dragon slayer sword)를 꺼냈다.
그것은 레벨 제한이 150 이상이었기에 파티원을 모집하는 사람이 고개를 끄떡이고 파티원으로 받아들였다. 대
장이 파티원으로 가입해서 그런지 아니면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슬래브 던전을 공략하고 싶어서인지 모르지만 얼마 안 가서 파티원들이 모였다.
- 자 이제 출발하죠.
대장은 여러 파티원들과 함께 출발을 하며 그들과 대화창을 열었다. 아직 늦은 시간이 아니어서 그런지 대화가 활발하게 오고 갔다.
물론 대장이 매우 예쁜 여자 캐릭터였기에 사람들의 관심이 모두 대장 쪽으로 향했다.
모두들 캐릭터를 만들 때 약간의 보정은 있어도 자신의 외양과 흡사하게 나오기 때문에 다들 대장의 현실에서의 외모도 이렇게 예쁠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몇몇은 아예 노골적으로 대장에게 추파를 던지기도 했다.
하지만 대장은 그런 사람은 아예 대화 거부를 걸어 놓고 사냥을 시작했다. 한참동안 몬스터를 잡고 던전 보스에게로 다가갈 때였다.
몇몇은 중간에 죽어서 웨이 포인트로 가버렸기에 남은 사람은 총 여섯 명이었다.
- 이 인원으로 가능할까요?
전사인 남자가 말을 하자 파티를 처음 모집했던 사람이 조금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 글쎄요. 보스가 무척 세다는 말은 들었는데.
- 그럼 이쯤에서 나가야 되나요?
힐러인 여자가 말을 하자 어새신인 다른 남자가 대답했다.
- 여기까지 왔는데 어찌 되었건 해 보죠.
그 때 대장이 말을 했다.
- 여기 보스는 레벨 210대에요. 우리 모두가 레벨 150 이상이면 여섯 명이면 충분히 가능해요.
대장의 말에 다들 대장 쪽을 쳐다보았다. 슬래브 던전은 공개된 정보가 거의 없기 때문에 보스 몬스터의 레벨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가 없었기에 대장의 말에 의아함을 가진 것이었다. 대장은 웃으며 말했다.
- 게시판에서 얻은 정보에요.
대장의 말이 조금 미심쩍긴 했지만, 다들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그 중 한 캐릭터가 구석에 앉아 멍하게 있었다.
- 바바리안. 하실 말씀 없나요?
파티 모집을 했던 기사의 말에 바바리안은 왠지 지친 표정으로 말을 했다.
- 오랫동안 게임을 했더니 정신이 없네요.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서요.
바바리안의 말에 기사가 말했다.
- 저도 16 시간째인데, 이번 던전 사냥 끝나면 저도 좀 쉬려구요.
기사의 말에 다들 놀란 표정으로 기사를 쳐다보았다.
- 16 시간이요?
- 레벨 업이 좀 필요해서 무리하고 있죠.
기사의 말에 일부는 고개를 끄떡였고, 대장을 비롯한 몇몇은 그래도 너무 심했다 싶었다. 그런데 그 다음에 이어지는 바바리안의 말에 놀라서 그를 쳐다보았다.
- 저는 1200 시간째에요.
하지만 곧 전사인 남자가 말을 했다.
- 누적 시간이 1200 시간이겠죠. 하하하.
전사인 남자의 말에 다들 수긍하듯이 고개를 끄떡였다. 그러자 바바리안이 말을 했다.
- 그렇겠죠. 타이머를 보니까 제가 게임 시작한지 1200시간이 되었으니까요.
다들 그 말에 그저 폼 좀 잡으려는 것인 줄 알고 그냥 듣고 넘겼다. 하지만 대장은 그의 행동이 뭔가 이상해 보였다.
'1200 시간동안 계속 게임을 했다고?'
대장은 남자의 아이디를 찾았다. 그리고 다른 컴퓨터를 통해 남자의 아이디 기록을 뒤졌다. 얼마 후 남자의 아이디와 관련된 정보가 떴다.
- 가입일이... 어? 뭐야? 레벨이 151?
대장은 다시 게임으로 돌아와서 바바리안 옆으로 가서 귓속말을 했다.
- 정말 1200 시간 동안 연속으로 게임을 하신 거예요?
대장의 말에 바바리안이 조금은 뚱한 표정으로 대장을 쳐다보았다.
- 글쎄요.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고 했는데, 아직 조금 무디네요. 정신도 없고...
대장은 그 사람의 말이 왠지 이상하게 여겨졌다. 그러나 곧 보스 몬스터와 전투가 시작되자 대화가 끊기고 각자 전투를 치렀다.
대장은 자신의 본 실력을 다 보이면 의심을 받을 것 같아 자신이 쓸 수 있는 상위 마법이 아닌 중상의 마법만을 시전했다.
하지만 그 정도만으로도 충분히 위력적이었는지 보스 몬스터의 피해가 어마어마했다.
한 10분 정도 싸움이 끝나자 어새신과 전사를 제외한 네 명이 남아 레벨 업을 했다.
바바리안인 남자는 몸빵으로 몬스터와 맞섰는데, 대장은 교묘하게 남자가 죽지 않게끔 도와주었다.
그리고 싸움이 끝나자 나온 아이템들을 분배했다. 대장은 아이템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이제 사냥이 끝났으니 파티를 끊겠다는 기사의 말에 파티를 끊었다.
그리고 나서 대장은 바바리안에게 접근을 했다.
- 전 이 아이템들이 별 쓸모가 없어서요. 마법사니까요.
대장이 바바리안에게 아이템들을 주자 바바리안은 멍한 표정으로 받아들고 말했다.
- 고맙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대장이 건네준 아이템들은 화폐로 교환을 해도 꽤 많은 돈이 될 수 있는 것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대장은 바바리안에게 다시 물었다.
- 그런데 어떻게 하면 1200 시간 동안 게임을 할 수 있어요?
대장의 질문에 바바리안은 잠시 정신이 든 듯 말했다.
- 누적 시간이 그런 거죠. 뭐.
하지만 대장은 집요하게 물었다.
- 에이. 누가 누적 시간을 그렇게 말해요. 저도 레벨을 빨리 올리고 싶어서 그런 거에요.
대장의 말에 바바리안은 대장을 쳐다보며 말했다.
- 레벨을 빨리 올려서 뭐하게요?
그 말에 대장은 재빨리 대답했다.
- 레벨을 많이 올리면 좋잖아요.
대장의 말에 바바리안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 그저 레벨을 올리려면 천천히 시간을 투자하면 되요.
- 그것보다 빠르게 올려서...
대장이 무어라고 더 말을 하려고 하자 바바리안은 다시 조금 멍한 표정으로 말했다.
- 이렇게 빨리 올리면 위험해요. 아직 어린 아가씨 같은데.
그렇게 말을 하고 바바리안은 대장을 잠깐 쳐다보며 말했다.
- 어린 아가씨 같아서 한 마디 더 하자면 이 게임 너무 깊게 빠져들지 마요.
그리고는 바바리안은 숲 속으로 달려갔다. 대장은 따라가려면 충분히 따라갈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의 말에서 무언가 크게 이상한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너무 깊게 빠져들지 말라니. 자기처럼 게임 중독이 되지 말라는 얘긴가?
대장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게임 접속을 끊었다. 그리고 다시 남자의 아이디를 해킹하여 정보를 찾았다. 뒤지면 뒤질수록 이상한 것들이 나왔다.
- 이 사람 뭐야?
다음 날 대장은 모두를 모이게 한 이후에 지난 밤 찾은 정보에 대해 얘기를 했다. 석호는 성당에 일이 있어 늦었기에 대장은 철구와 세현에게만 얘기를 해주었다.
- 그게 무슨 말이야.
철구는 대장의 말이 무슨 미친 소린가 싶었다. 24시간 내내 게임하는 것도 모자라서 연속 접속 시간이 1200시간이라니 그건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 이봐 대장. 1200시간이면 50일이라구. 잠도 안 자고 50일 동안 게임을 하는 인간은 없다구.
철구의 말에 대장은 답답한 듯이 말했다.
- 그래서 이상하다는 거다. 신부님이 성당에 간 동안 심심해서 파티 사냥을 하다가 한 캐릭터가 조금 멍하길래 물어보니까 지금 연속 접속 1200시간이라고 해서 뻥인 줄 알았는데 해킹을 해서 로그 기록을 보니까 진짜 1200시간이 되었다.
대장의 말에 철구는 더 답답한 듯이 말했다.
- 그냥 접속만 해 놓은 거 아냐? 접속해 놓고 그냥 자면 1200시간 될 수도 있잖아.
철구의 말에 대장이 발끈하며 말했다.
- 난 바보가 아니다. 로그 기록에는 활동 상황, 가령 아이템 획득이라든가 하는 기록이 나온다. 그런데 가만히 있으면 활동을 안 하니까 아이템 같은 걸 먹을 수 없다. 그런데 그 인간은 1200시간 동안 꾸준히 아이템을 주워 먹었다.
대장의 말에 철구가 여전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 아무리 그래도 50일간 잠을 안 자고 게임을 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얘기야.
옆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세현이 말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