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축계(逐界)-쫓겨난 이들의 세계-304화 (304/309)

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Ep3 - 3. 시스템 혼란 (1)

3. 시스템 혼란

- 뭐 저런 놈이 다 있어?

모니터 화면을 보던 정 과장은 짜증이 밀려왔다. 어지간하면 다들 주어진 정보 내에서 선택을 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주어진 정보라는 것이 '보통' 사람들이라면 선호할만한 것들이 반드시 존재하기 마련이고, 약간 삐딱한 사람일지라도 본인의 마음에 드는 것이 하나라도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저 놈은 선택부터 시스템을 꼬이게 만들었다. 정 과장은 모니터를 터치해 본사로 연락을 했다. 화면에는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의 얼굴이 비췄다.

- 최 박사님 좀 바꿔줘.

정 과장은 다짜고짜 최 박사를 찾았고, 그 여자는 약간 이맛살을 찌푸리고는 대답했다.

- 잠시만 기다리세요.

몇 초를 기다리자 백발이 성성한 최 박사가 나타났다.

- 박사님 시스템이 조금 꼬였습니다.

그러자 최 박사는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대꾸를 했다.

- 시스템이 꼬이다니. 우리 한샘 시스템의 천재들이 모여 만든 시스템이야. 비록 아직 100% 개발이 완료되진 않았지만, 충분히 베타테스트를 거쳤는데 시스템이 꼬이다니 말도 안 돼.

최 박사는 쉴 새 없이 혼자 떠들어댔다. 정 과장은 얼굴이 상대에게 보인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냥 입 다물고 들을 수밖에 없었다.

최 박사의 말이 끝나자 정 과장은 그제야 입을 열었다.

- 웬 놈이 이상한 직업을 선택해서요.

그 말에 최 박사는 화를 참으며 대답했다.

- 직업이야 말로 가장 공들인 부분인데, 거기서 어떤 오류가 나타나길래. 그리고 지구상에 있는 모든 직업은 다 넣었는데. 도대체 무슨 직업을 선택했길래 그러나?

정 과장은 최 박사와 통화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참 말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 글쎄, 어떤 놈이 '백수'를 선택해서요. 그것도 돈 많은 백수를.

그러자 최 박사는 '아차!'하는 표정으로 뒤통수를 긁었다. '백수'는 직업군에 포함시키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도대체 어떤 정신 나간 인간이 캐릭터를 선택할 때 '백수'를 선택하겠냔 말이다. 그리고 '백수'가 과연 직업인가 하는 것도 문제였다.

최 박사는 잠시 침묵하다가 또다시 길게 말을 이었다.

- 백수? 도대체가 백수가 직업이야? 백수를 선택하다니 정신 나간 놈인가 보군. 그런데 백수를 선택한 그 놈은 어떻게 됐는지 파악은 됐나?

딴생각을 하며 최 박사의 말을 듣던 정 과장은 화들짝 놀라 '네?'하고 반문을 했다.

- 그 놈의 소재는 파악이 됐냐 말일세.

정 과장은 옆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 보통 시작점인 원 포인트에서 나인 포인트까지 확인해 봤지만 없었습니다.

- 그럼 어디 있는 거지?

정 과장은 속으로 '기획한 당신이 알지 내가 어떻게 알겠소?'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으나 참았다.

- 저야. 잘 모르죠.

- 하긴. 자네가 시스템에 대해 알 리가 없지.

최 박사의 은근 무시하는 말에 정 과장은 화가 났지만, 그의 말이 또 틀린 말은 아니었다. 최 박사는 한동안 혼잣말처럼 시스템과 관련된 이런 저런 얘기를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 아따, 노인네. 말 많네.

정 과장은 그렇게 투덜거리고 다시 모니터를 시작했다. 이 회사에서 정 과장의 역할은 NPC로 가장해 게임 이 곳 저 곳을 다니면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요인들을 찾는 것이었다.

물론 이건 회사의 극비 사항이었다. 만약 이 사실을 유저들이 안다면 감시당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즉시 반박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정 과장은 한숨을 푹 내쉬며 중얼거렸다.

- 이 백수 노무 새끼. 어디 숨어 있는 거야?

최 박사는 정 과장과의 전화를 끊고 무척이나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게임을 기획할 때부터 모든 상황을 준비했던 최 박사는 그가 이런 실수를 할 리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 데이터를 살펴보면 무언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이 몇 개 보이긴 했다.

하지만 그건 단순히 시스템 상에서 벌어질 수 있는 특수 이벤트나 아니면 과도한 접속으로 인한 대량의 트래픽 유발로 인한 데이터로 보였을 뿐이었다.

- 뭔지 먼저 알아봐야겠군.

최 박사는 슈퍼바이저(Supevisor) 모드로 게임에 접속을 했다. 물론 이렇게 해서 시스템의 꼬인 문제점을 찾기란 한강에서 김 서방 찾기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정보를 모아야 했다.

그래야 일정 루트를 끊고 시스템을 재가동 하든가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최 박사는 대형 스크린에 뜬 화면을 잠깐 쳐다보다가 곧 마을의 정보 길드와 게시판 쪽을 뒤졌다.

그리 특이한 사항은 보이지 않았기에 그냥 접속을 끊으려다가 마을 구석에서 혼자 미친 것처럼 맴돌고 있는 NPC 하나를 발견했다.

- 저런 건 없었는데...

최 박사는 그가 구상한 전 캐릭터, 전 내용을 감수했기 때문에 NPC의 성향이나 특징을 잘 알고 있었다. 최 박사는 맴돌고 있는 캐릭터 옆으로 다가가 말을 걸었다.

- 자네는 뭐하는 건가?

그러자 NPC는 대답 대신 이상한 말을 지껄여댔다.

- 아이디는... 아이디를 입력해 주십시오.

- 뭐.. 뭐라고?

- 아이디는.. 아이디를 입력해 주십시오.

최 박사는 옆에 있던 연구원에게 말을 했다.

- 저 정신 나간 NPC 소스 코드 좀 뽑아봐.

최 박사의 말에 연구원이 난감한 듯이 대답했다.

- 지금은 서버에 사람들이 많이 몰릴 시간이어서 소스 코드를 건드리기 힘듭니다.

연구원의 말에 최 박사가 말했다.

- 일단 이 주변에 공사 중 표시를 먼저 걸어놔. 좌표가... X21065-Y37991-Z23189.

그러자 연구원이 좌표 값을 입력하고 물었다.

- 범위는요?

- 음.. 15 정도로 해.

범위 수치를 15로 정하고자 연구원이 최 박사에게 말했다.

- 상점 일부가 포함되는데요?

- 골치 아프군. 그럼 13으로 줄여봐.

범위 수치를 13으로 줄이고 화면을 보던 연구원이 다시 말했다.

- 여전히 상점 일부가 포함되는데요?

최 박사는 자신의 이마를 툭툭 치며 말했다.

- 이거 다른 유저한테 걸리면 안 되는 놈인데... 행동이 이상하니 바로 눈에 띠일 테고.. 어쩐다...

최 박사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말을 했다.

- 그냥 13으로 구역 설정해. 나중에 거기에 들어온 사람 있으면 시스템 점검이라고 대충 둘러대고.

- 네. 알겠습니다.

연구원이 13의 범위로 제한을 가하자 그 안에 있던 유저들이 스르르 밀려났다. 그 공간에는 오직 최 박사와 NPC만 존재했다.

- 언제쯤 소스 코드를 꺼낼 수 있어? 로그 기록하고 같이 말야.

최 박사의 말에 연구원이 대답했다.

- 일단 서버 트래픽이 현재보다 30% 정도 줄어야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잠깐 이 쪽 맵 부분을 멈추고 데이터를 보려면... 오늘 밤에나 가능할 것 같습니다.

최 박사는 연구원의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

- 음... 결국은 잠시 멈춰서 찾아야 되는 건가?

최 박사는 운영실에서 나와 자신의 방으로 갔다. 그리고 핫라인을 통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 정확한 원인은 모르겠지만, 어디선가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두 차원을 연결하는 무언가도...

최 박사는 전화기 너머의 말을 한참동안 듣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 굳이 두 세계를 연결하는 통로를 만든 이유가 무엇인가요?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최 박사는 다음에 들리는 말에 굳게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전화기 너머에서 들리는 말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손이 떨려왔다.

- 그... 그런...

최 박사는 처음 듣는 그 계획이 올바른 것인지 아닌지 판단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이미 자신이 이 상황에서 빠져나올 수 없을 만큼 깊이 발을 담그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 혹시 카타콤이 그 계획의 일부인가요?

최 박사는 수화기 너머에서 들리는 충격적인 말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 네.. 아.. 알겠습니다.

최 박사는 전화를 끊고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저 지금과는 차원이 다른 게임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자 했던 자신의 생각과는 너무나도 다른 얘기에 최 박사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지금이라도...'

최 박사는 고개를 저었다. 그간 이 게임에 쏟은 열정과 노력이 아까워서가 아니었다.

전화대로라면 자신이 이 게임에서 손을 떼는 순간 자신 역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될 것이라는 강한 느낌 때문이었다.

- 어쩐다... 이를..

최 박사는 머리를 감싸고 책상 위에 엎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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