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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계(逐界)-쫓겨난 이들의 세계-302화 (302/309)

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Ep3 - 2. 사건을 맡다.(7)

대장의 말에 석호는 고개를 끄떡였다. 그리고는 다시 산을 쳐다보았다. 보통의 게임이라면 이런 설정은 마치 최종의 누군가를 기다리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이 게임은 마치 그런 걸 불허하는 것처럼 보였다.

왜 굳이 이 산맥을 이렇게 만들었을까하는 의문이 들 무렵 대장이 말했다.

- 저기 배 타 보자.

석호는 어차피 대장과 함께 시간을 보내주리라고 생각했기에 흔쾌히 고개를 끄떡였다.

- 저 배는 어떻게 타죠?

석호의 질문에 대장이 크게 웃었다.

- 하하하. 우린 저 배를 사고도 남을 돈이 있다. 배 타려면 돈을 지불하면 된다.

- 그렇군요.

석호는 멋쩍은 듯이 머리를 긁으며 배 쪽으로 걸어갔다. 석호와 대장이 배 앞으로 다가가자 NPC로 보이는 선장이 말을 걸었다.

- 뜨내기 같은데. 이 배에서 일해 볼 생각 없나?

석호는 선장의 뜬금없는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그 순간 대장이 먼저 나서서 말했다.

- 손님으로 탈 생각은 있다.

- 손님?

대장은 그 순간 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러자 손 위에는 반짝이는 금화가 하나 놓여 있었다. 선장은 손 위의 금화를 보더니 태도를 바꿨다.

- 손님을 몰라 뵀습니다. 이 배는 워낙 방문자가 적어서요.

석호는 대장을 보며 물었다.

- 금화를 보고 왜 갑자기 태도를 바꾸죠? 금화를 받을 생각도 안 하고.

석호의 질문에 대장이 말했다.

- 지금 내민 금화는 레벨 150 이상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 새겨진 문양은 게라시아 대륙 왕가의 문양이 새겨진 것이다. 즉 왕족이라는 의미다.

선장 레벨이 105이니까 나보다 한참 아래다. 자신보다 레벨이 높은 유저에게 선원 제의를 한 것에 대한 사과다. 그리고 왕족에 대한 예우를 갖추는 것이다.

석호는 게임은 게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이런 상황에 석호는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그리고는 처음 화면애서 봤던 레벨 389는 어마어마한 것이라는 걸 알았다. 석호는 아직도 게임이 적응이 되지 않았지만 어지간한 것은 대장이 알아서 하기 때문에 대장만 따라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 배에 타도 될까?

대장이 선장에게 말하자 선장이 아주 정중한 태도도 대장과 석호를 안내했다. 석호와 대장은 배 안으로 들어갔다.

배 안의 모습은 석호가 밖에서 생각한 것과는 사뭇 달랐다. 단순히 선원들이 항해를 하거나 무역을 하는 배로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현대식 크루즈와 같은 모습으로 전장에는 대형 연회장에서나 볼 것 같은 대형 샹들리에가 걸려 있었고 벽에는 벽지의 화려함과 어울리는 그림들이 걸려 있었다.

- 멋지군요.

석호가 배의 내부를 보고 감탄을 하며 말했다. 대장은 마치 자신이 꾸민 것처럼 자랑스럽게 말했다.

- 게임 안에는 훨씬 멋있는 장소가 많다.

석호와 대장이 대화를 나누던 중 아까 봤던 선장이 다가와서 말했다.

- 배가 곧 출항할 예정입니다.

선장의 말에 대장이 고개를 살짝 끄떡였다. 그러자 마치 대장의 허락을 기다렸다는 듯이 선장이 외쳤다.

- 배를 출항하라.

선장의 외침에 석호는 진짜 배가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조금 후에 주변을 돌아보니 많은 사람들이 자신과 대장을 쳐다보고 있다는 걸 느꼈다.

- 왜 우리를 쳐다보죠?

석호의 말에 대장은 웃으며 말했다.

- 이 배는 이 나라에서 가장 좋은 배다. 탑승 제한도 있을뿐더러 신분 제한도 있다. 그리고 선장이 우리에게 출항에 대해 '보고'를 한 것 때문일 것이다. 그건 보통 이상의 신분이어야 가능하다. 결정적으로... 우리가 너무 잘 나서 그렇다.

대장의 말에 석호는 고개를 끄떡였다. 자신이 주변을 돌아보아도 지금 눈앞에 보이는 대장보다 예쁘게 생긴 사람이 없었다. 석호는 의아한 듯이 대장에게 물었다.

- 신분 제한이라면 이 게임에도 신분이 있다는 말인가요?

- 그렇다. 하지만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얻는 것이다.

- 그럼 제 신분은 공작인가 보군요. 꽤 높은데요?

석호의 말에 대장이 웃으며 말했다.

- 레벨만으로는 이미 한 나라의 왕이 될 만한 레벨이다.

- 그런가요? 그럼 대장은 신분이 뭐에요?

석호의 질문에 대장이 웃으며 말했다.

- 공주!

석호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떡였다.

- 그렇군요. 이제 다 이해가 되네요.

- 아무튼 그런 것보다 일단 선실 밖으로 나가서 풍경을 보면 더 놀랄 거다.

대장은 석호의 손을 이끌고 배 위로 올라갔다. 석호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너무 놀라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해가 지고 있는 바다의 모습은 금빛, 핏빛이 섞인 황홀경이었다.

- 와.. 대단하군요.

석호의 말에 대장이 웃으며 석호의 손을 이끌고 선두(船頭)로 향해 갔다. 바람이 피부로 느껴지진 않았지만, 마치 바닷바람이 뺨을 스치는 것 같은 느낌까지 들었다.

석호는 저 멀리서 커다랗게 바다를 향해 가라앉고 있는 태양을 한동안 쳐다보았다. 그 순간 대장의 머리가 석호의 어깨에 살포시 기대어졌다. 석호는 잠깐 흠칫했지만, 그냥 그대로 놔두었다.

- 나중에 진짜 바다를 보여줄게요.

석호의 말에 대장이 희미하게 고개를 끄떡였다. 석호와 대장은 한동안 배 위에서 해가 지는 모습에 젖어 있었다. 그러다가 해가 바다 안으로 떨어지자 사방이 어두워졌고, 선장이 두 사람의 곁으로 다가와 말했다.

- 밤바다는 위험합니다. 선실로 내려가시겠습니까?

선장의 질문에 대장과 석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선실 안으로 들어갔다. 선실 안에는 파티가 진행 중이었다.

두 사람이 안으로 들어가자 모두의 시선이 다시 두 사람을 향했다. 석호는 사람들의 시선이 부끄러웠지만, 대장은 오히려 당당한 표정으로 석호에게 말했다.

- 파티인데, 춤 신청도 안 하나?

석호는 대장의 뜬금없는 말에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여러 커플이 플로어 위에서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고개를 끄떡였다.

- 공주님, 저와 춤을 함께 추어주시겠습니까?

석호가 대장에게 그렇게 말을 하자 대장의 복장이 갑자기 바뀌었다. 화려한 드레스의 모습이었다.

- 옷부터 바꿔 입어야 된다. '변경'을 외치면 된다.

석호는 대장의 말대로 '변경'을 외치고 눈앞에 놓인 여러 의상 중 가장 파티복에 가까운 옷을 골라 입었다.

두 사람이 플로어 위로 올라오자 또다시 두 사람에게로 시선이 모였다. 두 사람은 부드럽게 흐르는 음악에 맞춰 유려하게 춤을 추었다.

석호는 자신의 춤 실력이 이렇게 뛰어난 줄 몰랐지만, 이것도 게임 중 어떤 능력 때문에 그러리라고 대충 감으로 생각했다.

그렇게 몇 분 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여기저기서 박수 소리가 들렸다. 대장은 우아한 태도로 사람들에게 인사를 했다. 석호 역시 엉거주춤하게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내려왔다.

- 재미있어요. 그리고 고마워요.

석호는 어디선가 들리는 '존댓말'에 의아한 듯이 대장을 쳐다보았다. 대장은 얼굴이 발그레하게 변하여 석호에게 말했다.

- 고맙긴요.

대장은 고개를 숙인 채 말을 했다.

- 이.. 이렇게 한 번 해 보고 싶었어요.

대장의 말에 석호가 대장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 나중에 시간 나면 자주 이 게임 해요. 대장이 하고 싶은 거 다 해 보면 되잖아요.

석호의 말에 대장이 고개를 숙인 채 끄떡였다. 그리고 그 순간 바닥으로 물방울 하나가 툭 하고 떨어졌다.

대장이 울고 있다는 사실에도 놀랐지만, 이런 상황까지 게임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도 몹시 놀라웠다.

- 울지 말아요.

석호가 말을 하자 대장이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 안 울어요!

대장은 황급히 화장실 쪽으로 달려갔고, 석호는 그 앞에서 뻘쭘하게 대장을 기다렸다. 그리고 대장이 나오자 두 사람은 마치 원래 게임 속의 연인처럼 재미있게 게임을 즐겼다. 그러다가 알람 소리가 들렸다.

- 아! 오늘은 성당에 가 봐야 돼요.

석호의 말에 대장은 몹시 아쉬운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떡였다. 대장이 고개를 끄떡이자 석호는 밝게 웃으며 말했다.

- 내일부터는 우리 일을 해야겠죠?

석호의 말에 대장이 대답했다.

- 분위기 깨지 마라!

석호는 대장의 말에 크게 웃었다. 그러다가 조금 난감한 표정으로 대장에게 물었다.

- 그런데... 이 게임 어떻게 끄는 거에요? VR 머신 벗으면 되는 건가요?

석호의 말에 대장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 게임 종료!

그 순간 대장이 기계적으로 걸어가 방으로 가버렸다. 석호는 당황해서 대장을 잡으려고 했지만, 대장은 아무 반응이 없었다.

- 아! 게임 종료라고 외치면 저렇게 되는 구나.

석호가 '게임 종료'라고 외치자 눈앞의 화면이 꺼지면서 암전(暗轉)되었다. 석호는 VR 머신을 벗고, 수트를 벗었다.

- 이건 뭐.. 게임이 아닌데?

석호는 그렇게 놀라며 시계를 보았다. 별 거 한 것이 없어 보이는데 벌써 세 시간이나 흘러 있었다.

- 시간 참 빠르군.

석호는 사무실에서 나와 차를 타고 성당으로 향해 갔다. 그 때 석호의 핸드폰으로 메시지가 도착했다.

'매뉴얼 전송했다. 내용이 조금 많다.'

석호는 '고마워요.'하고 메시지를 보내고 성당으로 가는 차 안에서 생각에 잠겼다. 대장의 여러 행동도 그렇고, 게임의 상황도 그렇고 조심해야 될 것이 많다고 느꼈다.

아무리 게임이라도 대장과 연인처럼 행동하는 것은 사제로서 앞으로 더욱 조심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석호는 성당에 와서 할 일을 하고 자신의 방에 와서 대장이 보내 준 매뉴얼을 출력했다. 600페이지가 넘는 상당한 양이었다.

석호는 매뉴얼이 다 출력되자 책상 앞에 앉아 매뉴얼을 읽기 시작했다. 평소 자신이 알고 있는 세계와 다른 세계의 모습에 처음엔 적응이 되지 않았지만 읽어가는 동안 게임 속 세계의 상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자 금방 시스템과 운영되는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석호가 생각하기에 이곳은 완벽하게 현실 세상과 다른 세상이었다. 직업도 신분도 경제력도 본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결정되었다.

처음 선택한 직업은 말 그대로 초년생으로서 게임에 적응하기 위한 것이었다. 1차 전직 때 다른 직업을 선택하여 전직을 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자신이 원하는 직업을 게임을 경험한 이후에 선택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신분 역시도 중세 귀족 체계를 따르고 있긴 했지만 중세처럼 순혈주의를 강조한 것이 아니었다.

누구든지 노력 여하에 따라 귀족이 될 수 있었고 더 나아가 한 국가를 경영하는 왕이 될 수도 있었다.

물론 왕이 되기까진 철저하게 약육강식의 세계처럼 강자가 정복하는 논리였지만 그 강자라고 하는 것이 단순히 싸움을 잘 하고 레벨이 높은 이가 아니었다.

그 안에서 구축된 인간 관계, 활동량, 기여도 등이 작용하는 것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단순히 레벨이 높다고 내가 다른 이들보다 강한 것이 아니었다.

그 안에 있는 무수한 기술들, 그리고 아이템들이 부족한 레벨을 보조해 주는 역할을 했다. 돈을 버는 일조차 노력에 따른 보상이 적절해 보였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igh risk, high return)이 기본이었고, 그 외에도 투입된 시간이나 노력 여하에 따라 보상이 이루어졌다.

석호는 매뉴얼을 읽으며 자꾸만 현실과 비교하는 자신이 우스웠다. 만약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 이렇다면 참 좋을 것 같다는 한편으로는 공상적이고 한편으로는 어리석은 생각을 하였다.

누구도 출발점이 같지 않고, 부대 환경이 같지 않은 현실과 이상적인 노동관을 적용해서 현실이 그러했으면 하고 생각하는 자신이 아직 많이 모자라다고 생각했다.

석호는 다시 매뉴얼을 읽으며 게임의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했다. 겉보기에는 상당히 복잡한 것 같았지만 그 안에는 하나의 시스템이 있었다.

레벨업의 과정을 통해 스킬을 획득하는 방법과 이벤트의 경험을 통해 스킬을 획득하는 방법이 있었다.

그리고 특수한 환경에서만 습득할 수 있는 스킬이 있었다. 석호는 매뉴얼을 읽으며 이 게임이 단순히 캐릭터를 키워 자기만족을 하는 게임이 아니라는 걸 느꼈다.

게임 속 세상은 완벽한 하나의 세계였다. 물론 게임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월 사용료를 지불해야 했지만 이 정도의 게임을 이용하는 데에는 턱없이 적은 금액이었다. 석호는 매뉴얼을 읽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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