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Ep3 - 2. 사건을 맡다.(4)
예찬은 교실에 들어와서 가영에게 조용히 말했다.
- 왔어.
예찬의 말에 가영이 알고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떡였다.
- 엄청 잘 생긴 사람이 왔다면서?
예찬은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 퍼핏 쪽 사람이래.
- 퍼핏?
가영은 예찬의 말에 의아한 듯이 예찬을 쳐다보았다. 예찬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 너는 잘 모르겠지만, 세계 3대 해커 그룹이 있거든. 퍼핏, 어나니머스, 마에스트로. 그 중에서 퍼핏이 가장 독보적이야. 소문으로는 달에 세운 기지도 해킹을 했다는 말이 있어. 인공위성도 해킹하고..
그렇게 말하던 예찬이 뭔가 깨달은 듯이 말했다.
- 아! 그랬구나... 인공위성...
예찬은 퍼핏이 자신들을 찾기 위해 인공위성을 이용했다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는 가영에게 말을 했다.
- 일단 전화해서 만나기로 했거든. 저녁 시간 이후에.
예찬의 말에 가영이 고개를 끄떡였다.
- 그래? 그럼 같이 가자.
- 일단 나는 선생님께 외출 허락을 받았거든. 너도 이따 가서 외출증 끊어. 그리고 밖에서 따로 만나자.
예찬의 말에 가영은 알았다는 듯이 예찬을 쳐다보며 말했다.
- 응. 알았어. 그런데 너 되게 똑똑해 보인다.
가영의 말에 예찬은 가영을 쳐다보며 말했다.
- 나 원래 되게 똑똑해. 공부도 잘 하고.
가영은 그 말에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 진짜.. 잘난 척은...
- 잘났으니까.
- 에휴.. 말을 말자.
수업이 끝나자 예찬은 서둘러 교문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학교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가영을 기다렸다.
저 멀리서 가영이 나오는 게 보였다. 그래서 예찬은 가영에게 다가가려 했으나 그 뒤에 쥐새끼처럼 누군가가 가영의 뒤를 따라 나오는 게 보였다.
- 누구지?
예찬은 가영의 뒤를 밟고 있는 이가 누군지 확인하기 위해 눈에 힘을 주어 교문 쪽을 쳐다보았다.
- 소희하고 친구들이잖아? 쟤네들 뭐야?
예찬은 스마트폰을 꺼내 가영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니 뒤에 애들이 따라오니까 난 먼저 성당에 가 있을게.'
가영은 예찬의 메시지를 받고 조금 걷다가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소희와 그녀의 친구들이 가영 쪽으로 걸어오다가 우뚝 걸음을 멈췄다. 가영은 그들을 쳐다보며 인사를 했다.
- 안녕! 어디 가니?
가영의 인사에 소희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 응. 뭐 좀 사러 가. 너도 어디 가나봐.
- 응. 반성할 일이 많아서 성당에 가려고.
가영의 말에 소희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 혹시 그 잘생긴 신부님 만나러 가는 거야?
- 잘생긴 신부님? 내가 그 신부님을 왜 만나지?
- 낮에 예찬이 찾아온 신부님 만나러 가는 거 아냐?
가영은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 그 신부님이 예찬이를 만났으면 만난 거지 나랑 별 상관없는데? 난 원래 가톨릭 신자여서 말야.
가영의 말에 소희는 조금 인상을 썼다. 분명 밖에서 예찬과 만날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전혀 엉뚱한 쪽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어 기분이 나빠졌다.
'응큼한 기집애네. 예찬이랑 가까워지는 건 안 되거든.'
소희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고는 가영에게 말했다.
- 아, 그렇구나.
- 응. 너도 어떤 물건인지 모르겠지만, 잘 사고 들어가.
가영은 소희와 친구들에게 그렇게 말을 하고 성당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소희 옆에 서 있던 여자 아이 하나가 말을 했다.
- 쟤 되게 재수 없다.
소희는 예찬과 가영이 가까워지는 게 싫어 무작정 따라 나온 자신의 조급함을 탓하며 친구들과 함께 발걸음을 돌렸다.
가영은 한참을 가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도 따라오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자 크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 휴우...
그 순간 누군가가 자신의 어깨를 툭툭 치자 가영은 깜짝 놀라 뒤를 쳐다보았다.
- 으힉...
가영이 놀라는 소리에 예찬은 더 놀라서 뒤로 물러났다.
- 에? 왜 그렇게 놀라?
가영은 예찬이라는 걸 알고는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 놀랐잖아. 기척을 내던가.
예찬은 가영이 왜 갑자기 짜증은 내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기에 가영의 손을 이끌고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이 성당 안으로 들어가자 안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석호가 나왔다.
- 어서 와요.
예찬에게 인사를 하던 석호는 옆에 서 있는 가영을 보며 물었다.
- 이 예쁜 여학생은 누구죠? 혹시 여자 친구랑 같이 온 건가요?
석호의 말에 가영은 얼굴이 빨개지며 말했다.
- 여.. 여자 친구 아니에요. 그.. 그리고.. 예쁜 것도 아니고...
가영의 태도에 예찬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 게시판에 올린 글이요. 사실은 제 얘기가 아니라 얘 얘기거든요. 제가 대신 올려 준 거에요.
예찬의 말에 석호는 고개를 끄떡였다.
- 그렇군요. 아무튼 그럼 이 안으로 들어와요.
예찬과 가영은 석호를 따라 사제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 넓지 않은 공간에 좁은 침대가 하나 놓여 있었고, 그 옆에 책상이 있었다.
그리고 뭔가 작업 중이었는지 노트북이 켜져 있었다.
- 자, 이제 얘기를 한 번 해 보죠.
석호의 말에 가영이 입을 열었다.
- 게시판에 올린 그대로에요. 뭔가 이상한 일인 것 같아서요.
석호는 가영의 말을 듣고 손깍지를 끼며 말했다.
- 결국은 게임 내 캐릭터가 비슷하게 생겼고, 아이디가 같다는 것 때문에 4년 전 교통사고로 죽은 애가 게임을 하고 있다고 판단한 거군요.
석호의 말에 가영은 고개를 끄떡였다.
-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정확하게 어떻다고 판단하긴 힘들지 않을까요?
석호의 말에 예찬이 말을 보탰다.
- 그것만이 아니라 게임에서 이상한 점이 있어서요.
예찬은 지난 밤 자신이 겪은 상황에 대해 얘기를 했다.
- 가장 문제는 그 아이디가 게임 내에는 없다는 거예요.
예찬으로 말에 석호는 다른 가능성을 얘기했다.
- 혹시 게임 내의 버그가 아닐까요? 그럴 수도 있잖아요?
석호의 말에 석호 앞에 놓인 노트북 스피커로 기계음이 나왔다.
- 그럴 가능성은 없다. 아이디는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나타나기 때문이다. 데이터베이스에 그런 아이디가 없으면 없다는 말이 나올 뿐이다.
석호의 노트북에서 기계음이 들리자 예찬은 흥미로운 듯이 노트북을 보며 말했다.
- 시리(siri)나 코타나(cotana)보다 정교한데요? 인공지능인가요?
예찬의 말에 석호가 대답했다.
- 사람입니다. 퍼핏(puppet)이죠.
석호의 말에 예찬은 의아한 표정으로 석호에게 말했다.
- 퍼핏이요? 신부님이 퍼핏 아닌가요?
예찬은 나름대로 도발적인 말투로 말했지만, 석호는 피식 웃으며 노트북을 보며 말했다.
- 대장이 직접 말해줘야겠군요.
석호의 말에 대장이 대답했다.
- 세상 어디에서건 광대의 춤은 계속된다. 고예찬 군. 지난 번 케네디 공항 해킹은 아주 그럴 듯했어.
예찬은 기계음의 말에 멈칫했다. 케네디 공항 해킹은 말 그대로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기에 예찬은 모르쇠로 일관해야 했다.
- 그게 무슨 말이죠?
예찬의 말에 대장이 웃으며 말했다.
- 하.하.하. 옵티머스. 연기가 어설프다. FBI 추적을 혼자 막은 줄 알았나?
예찬은 대장의 말에 고개를 숙였다.
- 들킨 걸 너무 실망하진 말라고. 나 외에는 아무도 모르니까.
대장의 말에 예찬은 일그러진 미소를 띠며 말했다.
- 퍼핏은 못 당하겠군요.
예찬의 말에 대장이 말했다.
- 니 말이 거짓말이 아닌 것 같군. 옵티머스 정도 되는 해커가 얘기하는 거니까.
가영은 아까부터 기계음과 예찬이 얘기하는 걸 듣다가 물었다.
- 저는 잘 이해가 안 되서 그런데 노트북 당신이 퍼핏이고, 예찬이가 옵티머스고 그럼 여기 잘생긴 신부님은 그냥 신부님인가요?
가영의 말에 석호가 웃으며 대답했다.
- 저는 그냥 신부죠. 컴퓨터를 조금 할 줄은 알지만 대장이나 여기 예찬 학생처럼 잘 하진 못하죠.
석호의 말에 대장이 '삐삐' 소리를 내며 말했다.
- 그럼 이 일은 우리가 접수하도록 하겠다.
대장의 말에 석호가 모니터 쪽을 쳐다보며 물었다.
- 다른 분들께도 알려야 하지 않을까요?
석호의 말에 대장은 잠시 침묵을 했다. 어차피 이 일은 게임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굳이 알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동안의 일들을 생각하면 항상 의외의 상황이 발생하였기에 일단 알리고 자신이 먼저 일을 진행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일단 알리기는 하지만 일의 시작은 내가 먼저 할 예정이다.
석호는 대장의 말에 고개를 끄떡였다.
- 그러죠. 뭐.
그리고는 예찬과 가영을 쳐다보며 말했다.
- 일단 우리가 이 일을 조사해 보고 다시 연락을 줄게요.
석호가 그렇게 말을 하자 가영은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 감사합니다. 그런데...
가영이 말을 흐리자 예찬이 나서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