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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계(逐界)-쫓겨난 이들의 세계-298화 (298/309)

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Ep3 - 2. 사건을 맡다.(3)

석호는 안으로 들어가 사제복을 벗고 사복으로 갈아입었다. 석호가 사제실 바깥으로 나왔을 때 윤 주교와 마주쳤다.

- 장 신부님 어디 가시는군요.

석호는 윤 주교를 보고는 얼른 인사를 하며 말했다.

- 새로운 일이 생겨서요. 정보 조사차 나갑니다.

석호의 말에 윤 주교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장 신부의 몸은 장 신부에게만 소중한 게 아니라는 걸 늘 기억하세요.

-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윤 주교는 미소를 띠고 고개를 끄떡였다.

- 다녀오겠습니다.

석호는 윤 주교에게 인사를 하고는 성당 뒤에 세워둔 자신의 차로 갔다. 은색 스포츠카가 한낮의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석호는 차에 타서 선글라스를 썼다. 그리고 대장이 찍어준 고등학교를 향해 갔다. 학교 교문 앞에 도착해서 석호는 뭐라 할지 난감했다.

거짓으로 말하기는 그렇고, 그렇다고 사실대로 말하자니 이상한 사람 취급받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에휴... 어떻게 하지?

석호는 교문 앞에서 잠시 고민을 하다가 자신의 앞으로 다가온 경비원 아저씨를 만나자 밝은 얼굴로 인사를 했다.

- 안녕하세요.

석호가 인사를 하자 경비원 아저씨는 주춤한 자세로 석호의 인사를 받고는 석호를 쳐다보며 물었다.

- 무슨 일 이슈?

- 학생을 찾으러 왔습니다.

- 학생?

석호는 핸드폰을 꺼내어 대장이 보낸 메일을 보고 물었다.

- 기숙사 309호 쓰는 학생인데... 이름은 정확히 모릅니다만...

석호의 말에 경비원 아저씨가 석호를 경비실 안으로 들어오게 한 후에 말했다.

- 잠깐만 기다려요.

그리고는 인터폰으로 교무실에 전화를 걸었다.

- 여기 기숙사 309호 쓰는 학생을 찾는 분이 와 계신데요.

경비원 아저씨와 교무실의 누군가의 대화가 조금 이어진 후에 경비원 아저씨는 인터폰을 끊고 석호를 보며 말했다.

- 기숙사 담당 선생님이 내려오실 거니까 조금만 기다려요.

- 네. 감사합니다.

석호가 경비실 안에 서서 몇 분정도 기다리자 웬 여자 선생 하나가 경비실 밖에서 창문을 두드렸다.

- 어디 계세요?

경비실 바깥에서는 안이 보이지 않는지 여 선생은 창문에 대고 경비원 아저씨에게 물었다.

- 이 안에 계세요.

아저씨의 말에 석호가 경비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여 선생을 향해 인사를 했다.

- 안녕하세요.

석호가 여 선생에게 인사를 하자 여 선생은 석호를 보고 조금 당황한 표정으로 같이 인사를 했다.

- 네? 아! 네. 안녕하세요.

석호는 여 선생을 보며 빙그레 웃었다. 여 선생은 석호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한 채 말을 했다.

- 어... 어떻게 오셨죠?

- 학생을 하나 찾으려고요. 기숙사 309호에 있는 학생인데요.

석호의 말에 여 선생은 고개를 끄떡이고는 말했다.

- 무슨 일 때문에..

석호는 여전히 미소를 띠며 말했다.

- 그 학생이 저에게 부탁한 일이 있어서요.

- 부탁이라뇨?

석호는 아직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말하기 곤란하여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

- 저는 서울대교구 명동성당에 있는 장석호 신부라고 합니다. 이 학교 학생 한 명이 저에게 편지를 보냈거든요.

여 선생은 신부라는 말에 고개를 들어 석호를 보았다.

'이런 사람이 신부라니...'

여 선생은 잠시 설렜던 마음이 와르르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게 표정에 드러났는지 석호가 여 선생에게 물었다.

- 선생님? 무슨 일...

여 선생은 속으로 외쳤다.

'당신이 신부인 게 가장 큰일이라구요!'

하지만 여 선생은 표정을 바꾸며 말했다.

- 아.. 아무 일도 아니에요. 그런데 신부님 옷이...

- 아! 옷이요. 성당 밖에서 활동할 때는 편하게 입어도 된답니다.

여 선생은 고개를 끄떡이고는 말했다.

- 아. 네. 그러면 교무실로 같이 가시죠. 그리고 그 학생을 부르면 되니까요.

- 네. 알겠습니다.

석호는 여 선생의 뒤를 따라 교무실로 향했다. 쉬는 시간이어서 그런지 학생들이 복도에 나와 있었고, 여학생들은 여 선생 뒤를 따라가는 석호를 넋을 놓고 쳐다보다가 교실 안으로 들어가 소리를 질렀다.

- 연예인 왔나봐. 아니 연예인보다 더 잘 생긴 사람이 왔어.

여학생이 외치는 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석호는 손으로 이마를 짚은 채 고개를 저었다.

- 에휴.. 잘 생긴 게 죄지.

석호는 혼자 낮게 중얼거렸다. 그 이후로도 여학생들은 석호를 계속 쳐다보았고, 그런 상황은 교무실에서도 반복됐다.

여 선생을 따라 석호가 교무실로 들어가자 일제히 석호 쪽으로 눈길이 쏠렸다.

- 여기 잠깐 앉아 계세요. 그 학생 불러올게요.

석호는 '방송으로 부르면 되지 않나?'하고 생각했지만 여 선생은 잽싸게 교무실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몇몇 여 선생들이 그 여 선생 뒤를 따라 나갔고, 얘기를 나누는 목소리가 교무실까지 들렸다.

- 시.. 신부님이라고?

목소리가 큰 여 선생 하나가 놀라서 외쳤고 그 소리가 교무실 안까지 들려왔다. 석호는 민망한 마음에 가시방석에 앉은 듯 했다.

그렇게 불편한 시간이 얼마 지나자 처음 나갔던 여 선생과 뒤따라 나갔던 여 선생들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 표정들이 몹시 안타깝다는 표정이었지만 석호는 고개를 외면한 채 앉아만 있었다.

- 조금 있으면 올 거예요.

처음 봤던 여 선생이 말을 하자 석호는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 감사합니다.

석호가 인사를 하자 여 선생이 석호에게 물었다.

- 신부님은 혹시 신분증이나 이런 건 없나요?

석호는 여 선생의 말에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떡였다.

- 아! 저희도 사제 서품을 받을 때 서품증은 있지만 들고 다니지는 않습니다. 명동성당에 전화를 해 보시면 아마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석호의 말에 여 선생은 고개를 '절망적인 표정을 하고' 끄떡였다. 사기꾼이라도 좋으니 신부만 아니었으면 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조금 후에 안경을 쓴 웬 남학생이 교무실로 들어왔다.

- 저 분이야.

예찬은 석호를 의아한 눈초리로 쳐다보며 말했다.

- 누구시죠?

석호는 예찬을 보며 물었다.

- 내가 묻고 싶은 말인데요? 누군데 글을 보낸 거죠?

석호의 말에 예찬의 눈이 커다래졌다.

- 그... 어.. 어떻게...

석호는 예찬의 귀에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 대며 말했다.

- 퍼핏...

그 말을 듣자 예찬은 핏기 없는 표정이 되었다. 아무리 '퍼핏'이 대단한 해커일지라도 이렇게 자신의 위치를 쉽게 찾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퍼핏이 이렇게 잘생긴 남자일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 아.. 그.. 그게...

석호는 예찬이 말을 더듬자 웃으며 말했다.

- 그 분 부탁을 받고 온 거에요. 확인을 좀 해 달라고 해서.

예찬은 석호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고개를 끄떡였다. 교무실의 전 선생님들이 석호와 예찬을 쳐다보고 있기에 석호는 조금 민망한 표정으로 말했다.

- 이렇게 계속 구경거리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는데요?

그제야 예찬도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 아.. 네..

- 자세한 얘기는 이따가 밖에서 하죠. 선생님들껜 잘 말씀드리구요.

석호의 말에 예찬이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 네. 감사합니다.

- 그럼 이따 어디서 볼까요? 아! 전화번호를 드릴 테니까 이따가 이리로 전화 주세요.

석호는 명함을 하나 꺼내 예찬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 비밀!

석호의 말에 예찬이 고개를 끄떡였다. 석호는 몸을 돌려 교무실 안에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선생님들을 향해 인사를 했다.

-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석호가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오자 몇몇 선생들이 예찬의 옆으로 다가와서 물었다.

- 무슨 일이니? 저 신부님하고 어떻게 아는 사이야?

예찬은 여 선생의 질문에 명함을 뒷주머니에 넣으며 말했다.

- 제가 요즘 고민이 많아서 고민 상담 하려고 편지를 보냈거든요.

- 고민?

예찬은 다소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 신부가 되는 건 어떨까 하고 말이에요. 아무래도 신부님이 제 고민을 이해해 주실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예찬의 말에 여 선생은 의아한 듯이 물었다.

- 너 저번엔 무인 도로 시스템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하지 않았나?

예찬은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 그랬었죠. 그런데... 그건 미국 회사에서 거의 완성 단계라고 하더라구요. 꿈이 사라져서인지 조금 허탈해서...

- 음.. 그랬구나...

예찬은 자신이 말을 하면서도 왠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여 선생은 쉽게 수긍을 하는 것 같다 도리어 조금 이상했다.

'이런 어설픈 거짓말에 넘어가는 거에요, 선생님?'

예찬은 여 선생을 보며 그렇게 생각했지만, 여 선생은 다른 생각에 빠졌는지 그냥 고개만 끄떡였다.

- 이따 저녁시간 이후에 신부님 좀 뵙고 와도 될까요?

예찬의 말에 여 선생은 고개를 끄떡였다.

- 그.. 그래.

예찬은 여 선생께 인사를 하고 교무실 밖으로 나와 당장 가영이에게 달려갔다. 교무실 안에 여 선생은 크게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 신부님이라니.. 에휴...

여 선생의 한숨에 옆에 같이 있던 여 선생들도 같은 표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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