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Ep3 - 2. 사건을 맡다.(2)
예찬은 자신이 가입해 있는 해커그룹 내에서 도는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수학여행 때 아이들에게 얘기한 적이 있었다.
다들 그냥 지나가는 말로 들었는데, 가영이 그걸 기억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애들과 몰래 마신 맥주가 입을 가볍게 만들었다고 자책을 해도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다.
- 음.. 내가 의뢰를 해볼 수는 있는데, 안 돼도 어쩔 수 없어.
예찬의 말에 가영이 고개를 끄떡였다.
- 정말 이상한 일이니까 아마 의뢰를 받을지 몰라. 그런데... 의뢰비는 얼마야?
예찬은 가영의 말에 어깨를 으쓱했다.
- 몰라. 나도.
그렇게 대화를 마치고 학교로 돌아온 예찬은 수업이 끝나자마자 자기의 기숙사 방으로 들어가서 검색을 시작했다.
카타콤 서버에 접속해서 아이디 검색을 해봤지만, 미라지 엑스라는 아이디는 존재하지 않았다.
- 일단 접속을 해보자.
예찬은 VR 머신을 머리에 쓰고 게임에 접속했다. 카타콤이라는 거대한 글자가 눈앞을 지나자 예찬은 커다란 나무 아래에 자신이 나타나는 걸 느꼈다.
그리고 그 안으로 마치 빙의하듯 시선이 빨려 들어갔다. 예찬은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고 마을 정보 길드 쪽으로 걸음을 향했다.
레벨 150이 넘는 유저들에게 공개되어 있는 곳 중 하나였지만, 대부분의 유저들은 여기를 들러 정보를 모으기보다 몬스터들과 싸우며 레벨을 올리는데 급급해 잘 모르는 곳 중 하나였다. 예찬은 게시판에 붙은 소문란을 확인해 보았다.
그레비아 왕국의 왕이 기사단을 모집하고 있습니다.
오라이시 왕국에서 카울러 탑을 건설하기로 했다는데, 사실 여부는 모릅니다. 하지만 마법사들은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게 좋겠죠?
최근 레벨 300을 돌파한 사람이 있다는데 어디에 있는지 알 수는 없답니다.
얼마 전 마운틴스 오브 드래건에서 누군가가 내려왔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혹시 드래건이 폴리모프하고 내려온 건 아닐까요?
예찬은 별 쓸데없는 정보라고 생각하고는 밖으로 나와 NPC들에게 질문을 퍼부었다. 가장 최근에 일어난 이상한 일에 대해 묻는 것으로 시간을 허비했다. 모두 헛소리만 해댔지만, 그 중 하나가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 레벨이 전부는 아니더라구요. 얼마 전에 해캄(Hekam) 지방에서 만난 사람은 레벨이 8밖에 안 됐는데, 어마어마한 마법을 쓰더라구요. 마법사인 줄 알았는데, 직업이 백수라나? 그런데 백수라는 직업이 뭐죠?
예찬은 그 NPC에게 다시 물었다.
- 그 아이디를 알 수 있나?
그런데 그 순간 NPC는 이상한 행동을 했다.
- 그게.. 아이디는... 아이디를 입력해 주세요.
- 뭐?
- 아이디는... 아이디를 입력해주세요.
예찬은 이건 무슨 버그인가 싶었다.
- 종료.
예찬은 게임을 종료하고 VR 머신을 벗었다.
- 이거 뭐야?
그런데 그 때 예찬의 방을 누군가가 두드렸다.
- 나야.
예찬은 가영의 목소리에 문을 열었다. 예찬은 가영에게 자기 책상 의자를 내주고 자신은 옆에 놓인 침대 위에 앉았다.
- 니 말대로 조금 이상한 거 같긴 하네.
예찬의 말에 가영이 의아한 듯이 예찬에게 물었다. 예찬은 가영에게 방금 전 상황을 얘기해 주었다.
- 거봐. 뭔가 이상하다니까.
예찬은 고개를 끄떡이고 말했다.
- 일단 의뢰를 받아줄지 안 받아줄지 모르지만, 일단 올려보자.
예찬은 가영이 앉았던 자리에 자신이 앉아 컴퓨터를 켰다. 그리고는 몇 개의 프로그램을 실행시키고 웹브라우저를 켰다.
- 이게 뭐야?
가영은 자신이 못 보던 웹브라우저를 보고 물었다.
- 토르 브라우저라는 건데, 설명하자면 기니까 조금만 기다려.
예찬은 여러 군데 검색을 하다가 'Gate of Truth'라는 사이트에 접속을 했다. 그리고 가영에게 자리를 양보하며 말했다.
- 거기 빈 칸에 니가 하고 싶은 말 채워 넣으면 돼.
가영은 고개를 끄떡이고 자리에 앉아 타이핑을 쳤다.
저는 카타콤이란 게임을 하는 유저인데, 게임을 하다가 이상한 일이 있어서 의뢰를 드려요. 다른 게 아니라 카타콤이란 게임에서 만나지 못할 친구를 만났거든요. 그 친구는 4년 전에 교통사고로 죽은 친구거든요.
카타콤이란 게임이 현실 기반 캐릭터 생성이기 때문에 현실과 외모가 크게 다르지 않잖아요.
그냥 캐릭터가 그 친구여서가 아니라 그 친구 아이디가 조금 특이하거든요. 그런데 그 아이디를 쓰는 사람을 계정 찾기에서 찾아보았는데 없는 아이디라고 나오더라구요.
전 분명히 그 친구를 봤거든요. 저도 나름대로 컴퓨터 쪽에 관심도 많고 어느 정도 실력도 있다고 자부하는데 아무리 자료를 찾아봐도 정보를 알 수가 없네요. 도대체 어떻게 된 걸까요?
그리고 확인 버튼을 누르자 그냥 검은 화면이 나왔다가 꺼졌다.
- 이게 뭐야? 이게 끝이야? 우리가 어디 있는지, 누군지도 모르잖아.
가영의 말에 예찬이 어깨를 으쓱했다.
- 내가 알고 있는 건 여기까지야. 여기에 의뢰를 하면 누군가가 우리를 찾아온다고 그러더라구.
예찬의 말에 가영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 그런 말도 안 되는 게 어디 있냐? 아무 정보도 없이 우리를 어떻게 찾아와?
예찬은 가영의 말에 몇 가지 가능성들에 대해 말했다.
- 뭐 IP 추적이나 그런 걸로 알 수 있는데, 토르 브라우저는 IP를 감추는 브라우저거든. 그리고 바이러스나 해킹 툴 같은 걸로 알 수도 있는데... 이 컴퓨터는 그런 걸로 올 수는 없을 거구. 아예 그런 걸 설치할 수 없게 방화벽을 설치해놨거든.
예찬의 말에 가영은 팔짱을 끼고 말했다.
- 그럼 니 말은 어쨌든 우리를 찾을 수 없다는 거잖아.
가영의 말에 예찬은 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 그러게. 여기에 올리는 법만 알고 있었거든. 모임 중에 한 명이 직접 사람이 찾아왔다고 했거든.
예찬의 말에 가영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 그럼 뻥일 수도 있다는 거잖아.
그리고는 예찬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
- 컴퓨터 잘 하는 거 맞아? 완전 허당 하냐?
가영의 말에 예찬이 버럭 했다.
- 아니거든.
- 애는 멀쩡하게 생겨서 왜 가끔 하는 짓이 이렇게 허당인지 모르겠네.
가영의 말에 예찬은 입술을 쭉 내밀고는 입술을 씰룩거렸다.
- 에휴... 아무튼 부탁 들어주느라 고마웠다.
가영은 예찬에게 그렇게 말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예찬은 '아냐'하고 말을 했지만, 도무지 글을 올린 사람을 어떻게 찾을 수 있는지 알 수가 없었기에 몹시 답답했다.
- 진짜 이거 뻥 아냐? 기다려보다 아니면 포럼에 올려봐야겠다.
예찬은 그렇게 중얼거리고 컴퓨터를 껐다.
대장은 홈페이지에 누군가가 글을 남긴 걸 확인했다.
- 카타콤?
대장은 안 그래도 요즘 말이 많은 카타콤에 대해 한번 파보고 싶었는데 잘 됐다 싶어 그 게시물을 얼른 열었다. 그리고 IP 추적을 시작했다.
- 오호.. 우회 IP라.. 나름 머리 썼어.
대장은 커맨드 입력창에 무언가 코드를 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화면 하나가 떴다.
대장은 불법인 줄 알지만 의뢰자의 효과적인 추적을 위해 이 사이트에 접속하는 컴퓨터에 스파이웨어를 심어 놓았다.
대장은 스파이웨어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그리고 접속한 컴퓨터의 MAC 주소를 찾았다. 그리고 대장은 접속한 IP 주소를 추적해 보았다. 그리고는 피식 웃었다.
본인은 최대한 추적을 피하려고 한 것 같았지만 대장한테는 어림없는 짓이었다. 대장은 그 IP와 MAC 주소가 자신의 추종자 중 하나라는 걸 알았다.
물론 그들은 대장이 이 사이트를 관리하는 줄 몰랐을 것이다. 대장은 IP와 MAC 주소를 통해 어느 곳에서 접속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 이 말이 진짜인지 뻥인지 확인해 보면 되겠군.
대장은 모두에게 메시지를 보내려다가 일단 석호에게만 메시지를 보냈다. 철구가 이 메시지를 받고 얼마나 뭐라 할지 생각하고는 그냥 자신을 이해해 줄 것 같은 석호에게만 메시지를 보낸 것이었다.
'의문스런 사건이다.'
그리고는 게시판에 올라온 내용을 석호에게 보냈다. 조금 후에 석호에게 전화가 왔다.
- 이상하긴 한데요. 장난 같은데요? 그리고 그 죽은 친구라고 하기엔 근거가 너무 빈약하구요.
석호의 말에 대장이 대답했다.
- 그래서 확인해봐야 할 것 같다. 그리고 그 카타콤이란 게임, 요즘 가장 핫한 게임이면서 루머도 상당히 많다. 루머 중엔 우리가 한번 추적해봐야 할 것들도 있다.
대장의 말에 석호가 말했다.
- 그런가요? 그럼 철구 씨나 세현 씨도...
석호의 말을 끊고 대장이 말했다.
- 조금 확실해지면 말하려고 아직 안 했다. 신부님은 이해해줄 거라고 생각해서 먼저 연락했다.
대장의 말에 석호가 웃으며 말했다.
- 저야 늘 대장을 이해하죠. 그런데 자주 이러면 안 돼요.
석호의 말에 대장이 대답했다.
- 이건 의심스러운 게 많아서 그렇다. 단순히 게시판의 글 때문만은 아니다.
- 알겠어요. 그럼 어디로 가봐야죠?
대장은 석호의 스마트폰으로 지도를 한 장 전송했다.
- 에? 고등학교 기숙사에요?
석호의 질문에 대장이 말했다.
- 가서 거짓말이면 혼 좀 내줘라. 그리고 장난이면 그 애한테 이 말도 꼭 전해줬으면 좋겠다.
대장의 말에 석호가 낮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 뭐죠?
- 앞으로 장난치면 퍼핏(Puppet)이 가만히 안 둔다고.
석호는 대장과 전화를 끊고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 철구 씨한텐 연락 안 한 이유가 이거네. 철구 씨였으면 엄청 짜증냈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