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Ep3 - 1. 게임의 시작 (7)
재현은 자신의 눈앞에 뜬 화면을 보고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 이.. 이게 뭐야? 실패하면 끝?
재현의 말에 촌장은 고개를 끄떡였다. 재현은 그런 촌장을 보며 말했다.
- 그런데 진정한 드래고니아가 되면 뭐가 좋죠?
재현의 말에 모두들 경악의 표정을 지었다.
- 드래고니아가 되면 드래건과 동등해지는 것입니다.
재현은 귀를 파며 말했다.
- 그러니까 드래건과 동등해지면 뭐가 좋아지는 거냐구요?
재현의 질문에 다들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 드래건과 동등해진다는 것만으로 인간 중엔 '신(神)'이 되는 겁니다.
재현은 그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
- 신이요? 그런 거 별론데. 그냥 내 몸 하나 지킬 수 있으면 되고, 돈도 다이아몬드가 있으니까 그만하면 된 것 같고... 그냥 이대로 살면 안 될까요?
재현의 말에 촌장이 고개를 크게 저으며 말했다.
- 그럴 수는 없습니다.
- 그럴 수 없다뇨?
재현은 이 해괴망측한 퀘스트를 하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촌장은 재현에게 다가와 얘기를 했다.
- 드래고니아가 되기 위한 준비가 이미 되었기 때문입니다.
재현은 의아한 듯이 촌장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그 순간 촌장의 얼굴이 흐려지더니 눈앞의 풍경이 바뀌었다.
- 이.. 이게 뭐야?
재현의 눈앞이 밝아지는 순간 재현은 황궁 안에 도착해 있었다.
도무지 어떤 상황인지 파악이 되지 않았지만, 직감적으로 이젠 빼도 박도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뭔 놈의 백수가 이래.
재현이 혼자 중얼거릴 때 커다란 목소리가 들렸다.
- 황제 폐하 들어오십니다.
재현은 순간 마음속으로 갈등을 했다. 주변 사람들이 모두 무릎을 꿇고 앉는 것을 보고 같이 앉아야 하나 싶었다.
그러나 그 순간 자신은 '드래고니아'라는 사실을 떠올리며 뻣뻣하게 서 있었다. 그러자 모두들 놀란 표정이 되어 재현을 쳐다보았다.
- 빨리 무릎을 꿇으십시오.
옆에 있던 그루퍼가 외쳤지만 재현은 모른 척하고 그냥 서 있었다. 저 앞의 높은 단 위로 화려한 복장을 한 이가 들어오자 재현은 그가 황제라는 걸 알았다.
재현은 단상 위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런데 그 순간 재현의 주변으로 창과 칼이 다가왔다.
- 무엄하다. 황제 폐하께서 들어오시는데 예의를 갖추지 않다니!
그러나 그 순간 황제의 목소리가 들렸다.
- 무기를 치워라!
재현은 벌써 자신의 소문이 여기까지 퍼졌나 싶었다가 게임이라고 생각하고는 피식 웃었다.
- 알아주시니 고맙습니다.
재현의 말에 주변에 있던 장군 같은 남자가 눈을 부라리며 재현을 쳐다보았다.
- 저.. 저런..
그러더니 황제를 향해 무릎을 꿇고 말했다.
- 아무리 드래고니아라고 해도 황제님께 무엄한 놈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습니다. 황제 폐하의 어명을 어긴 죄, 황궁 안에서 칼을 꺼낸 죄는 저 놈을 처치한 후에 받겠습니다.
그렇게 혼자서 떠들더니 재현을 향해 칼을 들고 다가왔다.
재현은 순간 자신은 아직 한 번도 전투를 해 본 적도 없으며, 매뉴얼로만 읽어본 게 전부였기에 몹시 당황했다.
하지만 자신의 스탯을 믿고 한 번 붙어보기로 했다. 재현의 눈빛이 변하자 황제 역시 드래고니아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 보고 싶어서 인지 장군의 칼을 제지하지 않았다.
장군의 칼이 재현의 머리를 향해 날아왔다. 저 정도는 피하겠지 싶었지만 재현은 우왕좌왕하고 피하지 못한 채 칼을 정통으로 맞았다.
모두들 경악에 찬 표정으로 그 장면을 보았다. 재아무리 드래고니아라도 제국 최고의 검사의 칼을 정통으로 맞고서는 살아남기 힘들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밝은 빛이 재현의 몸을 감싸더니 칼을 튕겨냈다. 하지만 날아오는 충격까지는 막지 못했는지 재현이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 우씨... 아프잖아.
재현은 진짜 꿀밤을 맞은 것처럼 머리가 얼얼했다.
- 니가 먼저 때린 거야. 이제부터는 정당방위니까 알아서 해.
재현은 장군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힘없이 그냥 내지른 주먹이 어찌나 빨랐는지 장군의 가슴팍에 정확하게 가서 꽂혔다.
그 순간 장군이 뒤로 주르륵 물러났다. 재현은 자신의 주먹을 쳐다보며 말했다.
- 생각보다 대단한데?
재현의 주먹을 맞은 장군은 얼떨떨한 표정이었다가 다시 얼굴이 붉어지며 재현 쪽으로 몸을 던졌다.
장군의 주먹이 재현의 몸통에 정통으로 맞았지만 튕겨나간 것은 오히려 장군 쪽이었다. 재현은 그냥 한 걸음 뒤로 물러설 뿐이었다.
- 우씨... 아프다니까.
재현은 가슴 한 편이 조금 뜨끔한 걸 느꼈다. 그 때 황제의 목소리가 들렸다.
- 이제 그만 하거라.
그러더니 재현의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나왔다. 재현은 멀뚱히 서서 황제를 쳐다보았다.
- 재미있는 녀석이구나.
황제가 재현의 앞에 서서 제일 먼저 한 말은 그것이었다. 그러자 옆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고 있던 촌장이 말했다.
- 드.. 드래건과 살다 와서 예.. 예의범절을 몰라서 죄를 지었사옵니다. 페하께서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를 해 주시길 간청드리옵니다.
촌장의 말에 황제는 고개를 끄떡이며 재현에게 말했다.
- 그래, 드래건과 같이 살다 왔다고?
황제의 말에 재현은 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 뭐 그렇다고 해 두죠.
재현은 황제를 향해 시큰둥하게 대답을 했다. 하지만 황제는 여전히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 경은 우리나라에 중요한 사람이다. 앞으로 황실에 머물면서 다양한 것들을 배우도록 하라.
황제의 입에서는 재현이 생각지 않았던 명령이 떨어졌다. 그러자 재현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재현 대신 대답이라도 하듯이 외쳤다.
- 황제 폐하의 명을 따르겠나이다.
재현은 이 상황이 썩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주어진 것이 그렇다면 그대로 따르기로 하였다.
그날부터 재현은 황실 안에서 말 그대로 귀족과 같은 삶을 살 수가 있었다. 물론 조건으로 이 나라에 대한 다양한 것들을 공부하는 것들이 있었는데, 대부분이 게임 매뉴얼에 나온 내용을 반복적으로 습득하는 것이었다.
재현은 왜 황실에서 자신에게 이런 특급 대우를 해 주며, 이런 식의 반복적 노가다를 시키는지 몰랐지만, 수시로 뜨는 레벨업과 차곡차곡 쌓여가는 스킬들을 보며 재현은 이것도 그리 나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잘 키운 돼지처럼 언젠가 잡혀먹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칠 무렵 정말 잘 키운 돼지를 잡는 날인지 황제가 재현을 불렀다.
- 이제 드래고니아가 세상이 나타나는 날이 되었구나.
재현은 황제 앞에서 조금은 뚱한 표정으로 말했다.
- 아직 안 나타나면 안 되까요?
재현의 말에 황제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여전히 예의는 배우질 못했구나. 하지만 진정한 드래고니아라면 예의 따위에 얽매이진 않겠지. 하하하.
황제는 혼자서 말을 하고 혼자 웃음을 터트렸다. 주변에 있던 신하들 역시 웃으며 있었다. 재현은 그들의 행동에 인상을 찌푸렸다.
- 아무튼 이제 너에게 황제로서 엄숙한 명령을 내리겠노라.
그 말에 모두들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재현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황제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재현의 그런 행동이 이젠 익숙한지 그냥 말을 시작했다.
- 이제 완벽한 드래고니아가 되어 우리 대륙의 통일의 단초가 되어라.
재현은 황제의 말에 손사래를 치고 싶었다. 완벽한 드래고니아라니. 말만 들어도 고생길이 훤해 보였다. 하지만 강제 이벤트인지 재현의 눈앞에 이벤트 창이 떴다.
진정한 드래고니아가 되어 왕국으로 돌아오라.
기간 제한 없음. 거부권 없음.
난이도 측정 불가.
방법 : 레드 드래건을 만나 자신이 드래고니아라는 것을 입증하고, 대륙을 통일하라. 실패할 시 모든 것이 리셋되어 새로운 캐릭터로 시작해야 함.
보상 : 새 왕국의 황제.
재현은 그 창이 자신의 운명의 지침을 바꾸어 놓는 것인 줄 알지 못했다.
단지 난이도마저 측정이 불가한 이벤트, 거부할 수 없는 이벤트라니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재현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 에휴... 내 팔자야...
그리고는 고개를 들어 황제를 보며 물었다.
- 그럼 먼저 해야 할 일이 뭐죠? 혹시 드래건을 죽이고 와야 된다든가 하는 건 아니겠죠?
재현의 말에 주변 사람들의 표정이 경악으로 바뀌었다. 황제마저 얼굴색이 조금 바뀌더니 크게 웃었다.
- 하하하. 역시 드래고니아는 배포가 대단하군. 드래건을 죽인다라... 죽일 수 있으면 죽여도 되지만, 아마도 그건 불가능할 걸세.
- 그럼 뭘 해야 완전한 드래고니아가 되는 거죠?
그렇게 묻다가 재현은 '퀘스트'라고 중얼거렸다. 그러자 눈앞에 퀘스트 목록이 떴다.
'아! 이거군. 레드 드래건을 만나면 된다고?'
재현은 창을 닫고 황제에게 다시 말했다.
- 일단 레드 드래건을 만나러 가면 되겠군요.
재현의 말에 황제의 눈이 조금 흔들렸다.
- 맞네. 일단 레드 드래건을 만나야 된다네.
재현은 황제에게 고개를 끄떡이고는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