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Ep3 - 1. 게임의 시작 (5)
재현은 책을 침대에 던져 놓고 누웠다. 잠을 많이 자서 ? 아니 자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 잠이 오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은 아침이 아닌가?
재현은 마을도 구경할 겸 해서 밖으로 나왔다. 재현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한 사람도 보이지 않다가 갑자기 거리에는 사람이 많아졌다.
- 이건 뭐야? 다들 공무원인가? 시간을 칼같이 맞춰서 일하고 쉬고 하는 거야? 뭐 규칙적인 생활이 건강에 좋긴 하겠지.
아닌 게 아니라 조금 추운 지방임에도 사람들은 모두 혈색이 좋았고, 건강해 보였다. 하다못해 지나가는 똥개마저 튼튼해 보였다.
- 아. 촌장님께 돈이나 좀 달라고 할 걸. 이 누더기라도 바꿔 입게.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지만, 집이랑 먹을 것까지 제공하는 촌장한테 돈까지 뜯어내는 건 비인간적이다 싶어 그냥 말았다.
조금 걷다가 보니 작은 상점이 하나 보였다. 돈이 없으니 살 건 없었지만, 그래도 상점에서 이것저것 물어라도 보게 안으로 들어갔다.
- 어서오...
상점 주인은 밝게 웃으며 인사를 하다가 재현을 보더니 웃음도 멈추고 인사도 멈췄다.
'거 참. 기분 더럽군. 아무리 내가 거지꼴이어도 손님이잖아.'
재현은 상점 안에서 이런 물건 저런 물건들을 살펴보았다. 상점 주인은 노골적으로 불만스런 표정을 지었고, 마치 재현이 도둑질이라도 해갈 것처럼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쳐다보았다.
'어휴. 성질 같아선...'
그러다가 문득 주머니에 있는 다이아몬드가 생각이 났다. 그리고 주머니에 손을 넣어 다이아몬드를 꺼내 주인에게 다가갔다.
주인은 재현을 고깝게 보다가 주머니에서 주먹만 한 다이아몬드가 나오자 눈이 휘둥그레져서 재현을 쳐다보았다.
- 이거 얼마나 합니까?
재현은 주인 앞에 서서 다이아몬드를 내밀었다. 주인은 재현의 손에 오른 다이아몬드를 보더니 침을 꿀꺽 삼켰다.
'이런.. 저런 행동은 대개 도둑놈이나 사기꾼들이 하는 행동인데.'
주인은 재현의 눈치를 한 번 보더니 짐짓 관심이 없는 것처럼 '흠흠..'하고 헛기침을 하고는 말했다.
- 2000 카누 정도 하네. 지금 팔겠나?
재현은 '카누'라는 단위도 모를뿐더러 주인의 행동이 미심쩍어 다이아몬드를 주머니에 다시 넣으며 말했다.
- 사기도 정도껏 치셔야죠.
그리고 상점 문 쪽으로 걸어가자 상점 주인은 당황하며 재현을 불렀다.
- 이.. 이보게. 어제 촌장님께 자네 얘기를 들었지. 드래건과 살다 왔다고? 그래 그건 드래건에게서 가져온 건가?
재현은 이 대화의 우위가 자신에게로 넘어왔음을 느꼈다. 그래서 퉁명스럽게 대답을 했다.
- 드래건에게서 가져온 거죠. 흠흠.. 여긴 손님이 왔는데 차 한 잔도 안 주시나 보네요.
재현이 이렇게 말하자 주인은 당황하면서 손사래를 쳤다.
- 아.. 아니 그럴 리가. 자네 같은 사람이 우리 마을에 산다는 게 얼마나 기쁜 일인 줄 아나? 잠시만 기다리게. 내 금방 차 한 잔 가져올 테니.
상점 주인이 안으로 들어가자 재현은 일어나서 물건들을 살펴보았다. 한 눈에 보기에도 꽤나 무거워 보이는 도끼가 보였다. 그 아래에는 '2000 카누'라고 쓰여 있었다.
- 역시 도둑놈 심보였군. 이 따위 도끼랑 이 다이아몬드 가격을 같이 불러?
조금 후에 상점 주인이 나오더니 말을 했다.
- 자. 몸에 좋은 잣차일세.
재현은 구수한 향을 맡으며 한 모금 마시면서 지나가는 말로 말했다.
- 그럼 이 다이아몬드 값은 저 도끼 값하고 같겠네요. 허. 사람을 바보로 아셨군요.
재현의 말에 상인은 당황하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바보가 아니잖아. 이거야 원...'
- 방금 전엔 내가 장난을 쳐본 것이라네. 에이. 아무렴 그 다이아몬드가 2000 카누 가치겠나. 보통 다이아몬드도 이 정도면 엄청날 텐데 드래건한테 가져온 거라면...
재현은 상인의 다음 말을 기대했다. 그러나 역시 상인은 사기꾼이었다.
- 한 20000 카본 정도 하지.
재현은 찻잔을 탕하고 내려놓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 진짜 저를 바보로 아시는군요.
그리고는 밖으로 나오려고 할 때 문득 '카본'이라고 단위가 달라졌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재현의 행동에 놀란 건 상인도 마찬가지였다.
- 자네.. 욕심이 과하군. 그래 물론 그 정도 다이아몬드 값어치는 20000 카본이라네. 그런데 자네가 드래건에게서 가져왔다는 증거는 없지 않는가? 만약 드래건에게서 가져왔더라도 어떤 효과가 있는지 상급 감별사에게 검증하기 전까지는 아무 것도 모르는 상황인데.
재현은 상인의 말만 듣고는 20000 카본이 어느 정도의 금액인지 가늠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상인에게 차분하게 물었다.
- 알겠습니다. 그럼 여기서 사 주실 수 있나요?
그 말에 상인은 고개를 저었다.
- 내가 20000 카본이 어디 있겠나? 다만 성에 갈 때 팔아다 줄 수는 있네만... 물론 판매 계약서를 쓰고 판매금에 5%를 지불한다는 조건일세. 판매하겠나?
재현은 그 말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사기꾼 같았기 때문이었다.
- 나중에 팔 때 다시 오죠.
재현은 이렇게 대답을 하고 상점 밖으로 나왔다. 뒤에서는 '4%, 아니 3%'를 외치는 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침대 위에 던져둔 '기본 매뉴얼' 책을 펼쳤다. 무척이나 두꺼운 책이었다. 재현은 책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지만, 그래도 필요한 것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앉아서 차분히 읽기 시작했다.
- 아무리 내 꿈이어도 뭘 알아야 해 먹지. 일단 읽어나 보자.
재현은 한동안 시간을 내서 매뉴얼이라고 쓰인 책을 읽었다. 그러다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 게임이잖아? 난 게임을 시작한 적이 없는데...
재현은 매뉴얼을 바닥에 내려놓고 도대체 이 상황이 어찌된 일인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이 꿈, 아니 게임을 시작하기 전에 자신이 어떤 상황이었는지 생각을 해 보았다. 아무리 생각을 해도 기억이 떠오르지 않았다. 재현은 머리를 감싸 쥔 채 고개를 저었다.
- 이게 말이 안 되잖아. 분명히 난 게임을 한 적이 없는데 내가 게임 속 세계에 와 있다니... 이거 완전히 양판소(양산형 판타지 소설)잖아. 아무리 내가 그런 걸 좋아했어도 이건 아니잖아...
재현은 멍하니 창밖을 바라다보았다. 창밖에 사람들이 오고 가고 있었지만, '게임'이라 그런지 생동감이 없어 보였다.
- 저 사람들은 다 NPC인거야?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 거지?
재현은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 내일부터 이게 무슨 상황인지 알아봐야겠어.
재현은 자리에 벌러덩 누워 매뉴얼의 나머지를 읽기 시작했다.
- 뭐 별 거 없잖아? 정보를 보려면 '정보'라고 외친다고?
재현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정보'하고 외쳤다. 그러자 자신의 눈앞에 자신의 정보창이 나왔다.
아이디 : 미라지 엑스
고유 레벨 : 3
직업 : ????
창작 아이템
갑옷 : 백수의 옷신발 : 백수의 신발
장갑 : 백수의 장갑무기 : 없음
액세서리 : 없음.
보유 아이템 : 다이아몬드
상태창
체력 : 20/25 마나 : 1/1
힘 : 12민첩성 : 10
정신력 : 8지력 : 3
특수 스킬
방한(Not Cold) : blv. 1
설인(Snow Man) : blv.1
승마술(Riding Horse) : blv. 3
- 이게 뭐야?
재현은 상태와 관련된 부분을 찾아보았다. 최고치가 1000이었다. 그리고 거기에 아이템이나 여러 레벨을 같이 올리면 최대 1500까지는 될 수 있었다.
- 완전 쓰레기네.
재현은 꿈속에, 아니 게임 속의 자신이 너무나 허접해 보였다.
- 이런 젠장. 현실에서도 루저였는데, 여기서까지 이렇단 말야.
재현은 은근히 화가 났다. 그러다가 문득 자신이 왜 책을 펼쳤는지 생각해 보았다.
- 아. 돈... 도대체 20000 카본이 얼마나 되는 거야?
재현은 상인과 관련된 부분을 찾아보았다. 그러다가 이곳에서 쓰는 화폐 단위를 살펴보았다.
- 가장 작은 단위가 카낙, 그 다음이 카누, 그 다음이 카록, 제일 큰 단위가 카본이군. 천 카낙이 일 카누, 천 카누가 일 카록, 천 카록이 일 카본이라..
그러다가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 집 한 채가 100 카본? 배 한척 만드는 데 300 카본? 그럼 20000 카본이면.. 뭐야? 재벌이잖아?
재현은 그제야 20000카본이 어느 정도인지 감이 왔다. 재현은 자신의 주머니를 만져보고는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가지고 있는 다이아몬드면 이 마을 전부를 살 수 있을 만한 돈이었다.
- 젠장.. 그 상인 놈, 생각하니까 열 받네.
재현은 왠지 흐뭇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가 자신의 바지를 보게 되었다.
- 어? 이건?
재현은 자신의 바지가 초록색으로 물들어 있는 것을 보았다.
- 드.. 드래건 피?
재현은 주위를 살피다가 얼른 문을 잠갔다. 또 그 재수 없는 여자애가 와서 자신을 미친놈으로 볼지 모른다는 생각에 재현은 아무도 들어올 수 없게 문을 꽉 잠갔다.
그리고는 바지를 벗었다. 때가 찌들어 있어 더러워보였지만,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재현은 옆에 놓인 물을 입에 물고 바지 아래 자락을 입에 물었다. 그리고 최대한 세게 빨았다.
처음에 느껴지던 찝질함이 어느 정도 사라지자 왠지 조금 비릿한 맛이 나기 시작했다.
'이거 무슨 맛이야? 그냥 미친 짓 아냐?'
재현이 혼자 그렇게 중얼거릴 때 눈앞에 새로운 창이 떴다.
드래건의 피를 신체에 봉인하였습니다. 이로써 드래건의 능력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드래고니아(Dragonia)의 시작 : 레벨 없음.
진정한 드래고니아가 되기 위해서는 앞으로 드래건의 피를 1리터(L)를 더 먹으면 됩니다. 아니면 드래건에게 인정을 받으면 됩니다.
재현은 '드래고니아'라는 말을 보고 매뉴얼을 다시 열었다. 그리고 목차에 나온 것 중 드래고니아를 찾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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