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축계(逐界)-쫓겨난 이들의 세계-290화 (290/309)

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Ep3 - 1. 게임의 시작 (3)

- 전설이 사실이로군. 자네는 정말 드래건과 살다 온 모양이로군.

갑옷 입은 남자가 그렇게 말하자 촌장이 고개를 끄떡이며 대꾸했다.

-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러면 드래건 피어를 맞고도 살아 있을 수가 있겠죠. 그리고 몸 상태를 보니 며칠을 굶은 것 같던데 그래도 힘을 쓸 수도 있구요. 아마 드래건의 피를 마셔서 그런 것 같습니다.

촌장의 말에 재현은 순간 당황했다.

- 드래건의 피요?

재현의 질문에 촌장이 고개를 끄떡였다. 재현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을 했다.

- 그.. 드.. 드래건의 피가 그렇게나 좋은 건가요?

촌장 할아버지는 고개를 끄떡거렸다.

- 드래건의 피 한 방울이면 저 농토의 작물을 100년 동안 거름 없이 키울 수 있다네. 그리고 드래건의 피를 먹은 사람은 아무리 굶더라도 죽지 않는다네. 그리고 드래건의 마법 공격에는 내성이 생긴다네. 물론 모두 전설에서 내려오는 얘기지만, 자네를 보니 맞는 말 같네.

재현은 뒷말은 듣지 않은 채 앞의 드래건의 피만 생각했다.

'그걸 먹으면 뭐라고?'

그러면서 발을 내려다보았다. 조금 더럽기는 했지만 아직 녹색의 기운이 남아 있었다.

'저 정도면 한 방울 정도는 되겠지?'

- 저 이제 됐나요?

재현은 발에서 드래건의 피가 사라질까봐 걱정이 되었다. 아직 남은 것이라도 얼른 먹어야 하리라.

- 응. 그만하면 됐네.

재현은 촌장의 말을 듣자 부리나케 밖으로 나왔다.

- 드래건과 같이 있어서 그런지 약간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것 같습니다만... 심성은 나쁜 사람이 아닌 것 같습니다.

촌장의 말에 갑옷을 입은 기사가 고개를 끄떡였다. 거구의 남자는 입맛만 다셨고, 촌장과 같이 왔던 남자는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여자 아이는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했다.

- 그래서 저 정신 나간 거지를 마을에 받아들인다구요?

- 저 사람은 드래건과 같이 살던 사람이야.

촌장의 대답에 여자 아이는 팔짱을 끼고 따지듯이 물었다.

- 그런데 뭘로 저 사람이 드래건과 같이 살았다고 판단하시죠? 여기서 드래건을 본 사람은 없잖아요.

- 전설과 일치하지. 대부분은. 그리고 드래건 피어를 맞은 사람 중 살아있는 사람은 저 사람이 유일하다는 것이지.

갑옷을 입은 사람이 말을 하자 여자 아이는 여전히 불만스러운 얼굴로 내키지는 않지만 받아들인다는 표정을 지었다.

- 그럼 이제 제가 가서 살 곳을 알려줘야겠네요?

여자 아이의 퉁명스러운 말에 촌장은 빙그레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 그래야겠지. 허허허.

재현은 바닥에 왼발이 닫지 않게 외발로 재현이 있던 이글루까지 왔다.

- 헉헉...

그 순간 눈앞에 메시지 창이 떴다.

촌장의 질문에 대답하라 퀘스트를 성공했습니다.

보상으로 마을에 거주할 수 있는 권리와 음식 제공의 권리를 부여받았습니다.

경험치가 50% 상승했습니다.

재현은 메시지 창 같은 것에 신경 쓰지 않은 채 방 안에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내가 발로 걷어찬 놈은 분명히 드래건이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게 아닌가? 그만한 동물이 또 어디 있겠는가?'

재현은 방구석에 앉아 누가 있는지 주변을 한 번 살폈다. 아무도 없었다.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자리에 주저앉아서 자신의 발을 보았다.

발톱에는 때가 잔뜩 껴 있었고, 발가락 사이에는 먼지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틈으로 초록색 액체들이 언뜻언뜻 보였다.

재현은 눈을 질끈 감고 발가락들을 빨아 먹기 시작했다. 무척이나 짰지만, 드래건의 피가 아니던가.

재현은 한 방울도 놓칠 수 없다는 심정으로 정성스럽게 발가락을 빨았다. 그 때 이글루의 문이 벌컥 열렸다.

재현은 발가락을 입에 문 채 열린 문으로 들어온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 살 곳으로 출발... 헉...

재현은 입에서 발가락을 빼며 '오해에요.'라고 외치려고 했다. 그러나 재현의 말보다 여자 아이의 행동이 더 빨랐다.

- 할아버지! 저 미친 거지가 발가락을 빨아먹고 있어요!

그 순간 재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건 빼도 박도 못할 상황이었다.

'아.. 그놈에 기집애. 갑자기 들어오고 난리야.'

재현은 이제 사람들을 어떻게 보나 싶었다. 그러나 자신의 생각은 기우(杞憂)에 불과했다.

그들은 이미 재현이 드래건과 함께 생활하다 온 사람이라 굳게 믿었던지 오히려 측은한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 발가락을? 아까 발을 보니까 꽤 더럽던데. 젊은 사람이 드래건과 살면서 얼마나 먹을 게 없었으면 발가락을 빠누..

다음날 아침 재현은 자신을 안내해 줄 사람과 함께 이글루를 떠났다. 마을은 이곳에서 한참을 내려가야 했다.

말을 탈 줄 모르는 재현은 무뚝뚝한 사내 뒤에 앉았는데, 말에서 내릴 때까지 인상을 써야만 했다.

말을 타는 것은 마치 누군가 똥침을 계속 놓는 것 같았고, 한동안 엉덩이며 항문 주위가 몹시 아렸다.

무뚝뚝한 사내 - 촌장이 그루퍼라고 부르는 걸 보면 그 사람 이름이 그루퍼였다. - 그루퍼가 말을 잘 타는 사람이라서 그런지 그의 뒤에 붙어서 오는 것만으로도 눈앞의 메시지창이 세 번이나 나왔다.

말 위에서 균형을 잡는 승마 기술을 습득하셨습니다.

승마 기술은 말을 자주 타고 다니거나, 여러 승마술을 배우면 향상됩니다.

승마술(Riding Horse) : blv. 1

마스터 레벨 : mlv. 50

자신의 똥꼬와 허벅지를 내어주며 무려 레벨이 3이나 올랐다. 재현은 한시바삐 이 어처구니없는 꿈에서 깨고 싶었지만, 여전히 꿈에서 깰 조짐은 보이지 않았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이 세계에 적응을 하는 게 빠를 성 싶었다. 만약 훗날 누군가가 꿈속에선 내 맘대로 할 수 있다는 개소리를 지껄인다면 한 방 먹이리라 다짐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어차피 꿈이지만 게임 같은 거니까 즐기고 가리라는 생각도 하였다. 하지만 재현의 이런 착한 마음은 마을에 들어올 때부터 틀어지기 시작했다.

마을 입구에 들어섰을 때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촌장의 말에 따르면 이방인이 들어온 것이 마을 생기고 처음이라고 했으니까 환영 인파일 것이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큰 오산이었다. 재현에 대한 헛소문이 언제 그렇게 퍼졌는지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들리는 소리가 가관이었다.

- 드래건하고 살다 와서 정신이 살짝 나갔대요.

- 지도에도 없는 곳에서 와서 헛소리만 하고 다니나 봐요.

뭐 이 정도는 양반이었다.

- 글쎄 배고프면 발을 빨아 먹는데요.

- 드래건한테 지능을 빼앗겨서 바보 천치라던대요.

갈수록 가관이었다. 조만간 누군가는 재현이 똥도 주워 먹을 것이라고 얘기할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한숨이 절로 나왔다.

- 들었나 봐요.

한 아줌마가 말하자 옆에 있던 남자는 재현을 흘끗 보더니 크게 웃으며 말했다.

- 제깟 놈이 들어 봤자지. 바보 천치라면서.

그 순간 재현은 자신도 모르게 울컥했다. 그런데 그루퍼가 낮고 음산한 목소리로 사람들에게 말했다.

- 촌장님이 인정한 마을 주민이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떠들지 마라!

그루퍼의 한마디에 마을 주민들은 쭈뼛거리며 흩어졌다. 재현은 힘 빠진 표정으로 그루퍼를 보며 인사를 했다.

- 고맙습니다.

그러나 그루퍼는 예의 그 무표정한 얼굴로 인사도 받는 둥 마는 둥 했다.

'아! 내가 어쩌다 이런 꼴이 됐냐.'

직업을 묻던 목소리가 다시 들릴 때부터 이 꿈은 이상했다.

'꿈이 뭐 선택제인가?'

혼자 이런저런 상념에 빠졌을 무렵 그루퍼가 입을 열었다.

- 여기다. 식량은 아래 마을 하이네 집에 가서 받아오면 된다.

- 네. 그러죠.

재현은 이 마을 생활이 고달플 것이라는 것을 겪어보지 않았어도 알 것 같았다.

이미 동네에서는 바보 거지로 놀림을 당했고, 더욱이 직업은 백수니까 그저 여기서 꿈을 깰 때까지 무위도식하는 생활을 할 것이므로 이러한 자신이 그들에게 달갑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결국은 왕따를 당하리라. 재현은 대답 이후에 한숨을 푹 쉬었다.

- 그럼 쉬어라!

그루퍼는 그 말만 남기고 말을 타고 가버렸다. 혼자 허름한 집 앞에 서자 갑자기 설움이 북받쳐 올랐다. 자리에 주저앉아 신세한탄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기 되면 '울보'라는 별명만 더 생길 것 같아 허름한 집 안으로 들어갔다. 집 안은 더욱 황당했다. 의자와 책상. 그리고 침대가 전부였다.

옷을 걸만한 장롱도 - 하긴 난 지금 옷이 한 벌밖에 없긴 하지만. 그것도 누더기로. - 책을 꽂을 책장도, 하다못해 변변한 탁자 하나 보이지 않았다.

- 에휴...

재현은 침대에 주저앉았다. 허름한 집구석은 둘째 치고 이제 여기서 무얼 하나 싶었다.

이 질긴 꿈은 도대체 깰 생각을 안 하니 원... 꿈에서 깨면 인터넷을 뒤져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방에 눕자 오랜만에 혼자 여유롭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잠이 왔다.

'꿈속에서 잠을 자다니 신기한 일이군'

하는 생각과 깜빡 잠이 들었다. 재현이 눈을 뜬 것은 누군가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 때문이었다.

밖에서 들리는 소리에 눈을 뜨고 자신도 모르게 낯선 환경에 두리번거리게 되었다.

그리고 문 앞으로 다가가 문을 열었을 땐 처음 봤던, 재현이 발가락을 빨다가 만났던 여자 아이가 앞에 서 있었다.

- 촌장님이 좀 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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