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Ep3 - 1. 게임의 시작 (2)
- 드래건 피어를 맞고도 살아있다구요?
누군가의 목소리가 몹시 놀란 듯했다.
- 그랬다네. 산 위에서 드래건 피어가 들려 마을 주민들을 모두 대피시키고, 한참 후에 파수꾼을 보내 확인해보았더니 드래건은 사라졌고, 이 젊은이만 눈밭에 누워있었다네.
늙은 사람의 목소리다. 재현은 정신을 차렸지만, 항상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면 이런 순간에 중요한 얘기를 하기 때문에 일부러 정신을 못 차린 것처럼 누워만 있었다.
하지만 늙은 사람은 재현이 깨어났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처럼 재현을 보지도 않고 말했다.
- 이제 정신이 드나?
이 타이밍에 눈을 뜨고 넙죽 '네. 정신이 듭니다.'하면 엿들었던 게 들통 날 것 같아서 일부러 연기를 했다.
- 여... 여기가 어디죠?
재현의 연기가 어설펐는지 늙은 노인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 그건 내가 묻고 싶은 것이라네.
재현이 자리에서 머리를 긁으며 일어나자 늙은 노인은 재현에게 자신을 먼저 소개했다.
- 난 이 마을에 촌장(村長)이라네. 이 마을은 드래건 게이트(Dragon Gate)라고 하네.
- 네. 그렇군요.
- 그나저나 물어볼 게 많은데 괜찮겠나?
그런데 그 순간 타이밍도 적절하게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렸다. 촌장 옆에 서 있던 남자는 얼굴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그러나 그 상황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아! 배가 고프겠구만. 일단 일어났으니 간단하게 요기를 먼저 하게나.
그러더니 촌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촌장 옆에 서 있던 남자 역시 나를 한 번 흘끗 보더니 밖으로 나갔다.
방 안에 혼자 남은 재현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일반적인 집 구조와는 구조가 많이 달랐다. 아니 이건 일반적인 집구조가 아니었다.
- 이글루?
재현은 어렸을 때 부모님과 같이 얼음 축제에 놀러갔다가 본 이글루를 떠올렸다.
- 이거야 원. 눈밭에, 드래건에, 이글루까지... 내 꿈이지만 참 스펙타클하네.
그런데 그나저나 이 꿈은 도대체 언제까지 이어질까 궁금했다. 그리고 꿈에서도 기절했다가 깨는 것이 가능하고, 꿈에서 잠도 든다는 것이 이상했다.
- 이거야 원..
그 때 문이 열리며 웬 여자 아이 하나가 들어왔다. 그 아이는 방한복으로 온몸을 둘러싸고 있었다. 툴툴거리며 물고기 구운 것과 키위 빛깔의 음료를 한 잔 들고 들어왔다.
- 이거 먹어.
그리고는 탁자 위에 음식을 던지듯 놓고는 밖으로 나갔다.
- 고맙습....
재현이 대답도 하기 전에 밖으로 나가 버린 아이가 버릇없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음식을 보자 그런 생각은 싹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는 눈앞에 있는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웠다. 꿈임에도 불구하고 생선 맛이 기가 막혔다.
그리고 키위 빛깔의 음료는 달콤하고 부드러웠다. 그 순간 이 꿈을 꾸고 난 후 처음으로 행복감을 느꼈다.
포만감이 75% 상승합니다.
포만감 상승으로 인해 포만감과 관련된 전 부분이 정상치를 회복되었습니다.
눈앞에 또 메시지 창이 떴다. 이만하면 이 꿈도 병이었다.
- 이건 뭐. 참나.
혼자 어이없어 하며 중얼거리고 있을 때 문 밖에서 소리가 들렸다.
- 할아버지가 오래!
난 뜬금없는 말에 '뭐?'라고 물었지만, 밖에서는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
- 살려준 건 고마운데 뭐 이렇게 불친절해.
재현은 의자에서 일어나 문을 열었다. 눈앞에는 온통 설원이었다. 군데군데 이글루만 몇 채 보일 뿐 그냥 설원과 다름없었다.
재현은 아까 음식을 가져다 준 여자 아이가 들어가고 있는 이글루 쪽으로 걸었다.
날이 추워서이기도 하겠지만, 밖에 아무 것도 없어서인지 밖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뭐 보였다고 해도 그리 도움이 되진 않았겠지만.
이글루 문을 열자 안에서 온기가 퍼져 나왔다. 그 따뜻한 온기를 맞으며 잠시 멈칫하고 있을 때 걸걸한 목소리가 들렸다.
- 얼른 문 닫고 들어와! 열기 다 빠져 나가기 전에.
재현은 그 말에 화들짝 놀라 안으로 쏙 들어왔다. 그리고는 속으로 '문 닫고 어떻게 들어와?'하고 반문을 했다.
그러고는 혼자 재미있다고 생각하며 킥킥댔다. 재현이 들어와서 혼자 킥킥대자 앉은 사람들이 서로 귓속말을 했다.
- 흠흠...
재현은 그들이 자신을 비웃는 거라고 생각했기에 이내 정색을 했다. 그러자 또다시 그들끼리 쑥덕거렸다.
재현은 눈으로 몇 명이나 되나 하고 숫자를 헤아렸다. 뭐 헤아리고 자시고도 없이 다섯 명이 앉아 있었다.
그 중 한 남자는 이 좁은 문을 어떻게 들어왔나 싶을 정도로 거구였고, 한 명은 촌장, 그리고 한 명은 촌장 옆에 서 있던 남자였다.
그리고 한 명의 남자는 거추장스럽게 쇠로 된 갑옷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한 명은 자신에게 생선을 가져다 준 싸가지 없는 여자 아이였다.
- 거기 앉게나.
촌장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재현은 촌장이 가리킨 의자로 가서 얼른 앉았다. 그 자리에 앉아보니 네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 아이가 나를 둘러싸고 있는 꼴이었다. 이거야 뭐 죄인 심문하는 것도 아니고.
- 자네에게 궁금한 점을 물어봐도 되겠나?
촌장의 말이 끝나자 눈앞에 메시지 창이 떴다.
촌장은 당신에 대한 정보를 궁금해 합니다.
답변을 하시려면 '예'라고, 거절을 하시려면 '아니오'라고 대답하십시오.
대답을 거부하면 신뢰도와 친밀도가 떨어집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결투를 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기본 퀘스트 F
보상 : 적절한 답변 시 쉴 곳과 음식이 제공됩니다.
'이건 또 뭐지?'
재현은 어차피 이곳에서 나가봐야 갈 곳도 없고, 어디로 가야할 지도 몰랐기 때문에 '예'라고 대답했다. 재현이 대답을 하자 촌장이 먼저 질문을 던졌다.
- 자네는 어디서 왔나?
- 저요? 글쎄요. 그런데 이게 꿈인가요?
재현은 재현이 궁금한 점을 물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거구의 남자가 탁자를 탕 치며 소리쳤다.
- 뭔 개소리야!
촌장은 거구의 남자를 보며 '진정하게.'라고 말하고는 재현에게 다시 질문을 했다.
- 다시 한 번 물어보겠네. 자네는 어디서 왔나?
재현은 자신이 아는 범주에서는 최선의 대답을 했다.
- 저는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강남구....
- 흠흠... 됐네. 그러면 자네는 왜 그 설산(雪山)에 있었나?
사실 그건 재현이 묻고 싶은 질문이었다. 도대체 자신이 왜 그런 추운 곳에 버려졌는지를.
- 그것도 사실.... 눈을 떠 보니까 거기였어요. 뭐랄까 그냥 누군가 저를 쓰레기 버리듯 내버린 느낌?
재현은 솔직히 말했다. 그러자 그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고개를 끄떡였다.
- 이 마을, 아니 엄밀히 말하면 이 초소에 이방인이 온 것은 자네가 처음이네.
재현은 그 말에 고개를 끄떡였다. 아무리 재수없는 꿈을 꿔도 하긴 이런 추운 곳에 내던져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 사실은 이게 가장 궁금한 질문이네만...
촌장은 질문에 뜸을 들였다. 그러자 옆에 앉은 갑옷을 입은 사람이 재촉하듯 촌장을 쳐다보며 턱을 약간 추켜들었다.
- 자네는 어떻게 드래건 피어를 맞고도 살아 있을 수가 있지?
'이건 뭐. 내가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을 하란 말야!'
속으로는 이렇게 외쳤지만, 겉으로는 최대한 성심성의껏 대답을 해야 했다. 그리고 까짓거 꿈인데 뭐 어떠랴 싶어 되는 대로 지껄였다.
- 뭐 생각해 보니까, 제가 그 드래건하고 같이 살았던 것 같아요. 사실 도망쳐 나온 거라고 보면 되죠. 드래건 옷도 빨고, 음식도 하고, 똥도 치우고 하면서 살았는데, 드래건은 엄청나게 쳐먹고, 드럽게 커서 옷도 크고, 똥은 또 얼마나 많이 싸는지...
재현의 되지도 않는 말에 촌장과 다른 이들의 눈이 커다랗게 변했다.
- 저.. 정말 자네가 드래건과 살았단 말인가?
'어? 이거 진짜로 믿는 분위기잖아? 드래건한테 가는 길 알려달라면 안 되는데.'
재현은 순간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 네. 드래건이 사는 데, 거 동굴 같은 곳인데..
- 드래건 레어 말인가?
- 네. 그 드래건 레어에서 사는데, 몸도 커다란 놈이 어찌나 깔끔을 떨던지 하루하루 지옥 같았죠.
재현의 말에 갑옷을 입은 사람이 몸을 앞으로 숙이며 물었다.
- 얼마나 크던가?
듣기에도 중후한, 무언가 고위직의 냄새가 풍기는 사람이었다.
- 음... 크기로 따지면 한 20층짜리 아파트 크기라고 할까요?
- 아파트?
- 네. 아파트.
- 아파트가 뭔가?
나 참 어이가 없어서. 꿈 속 사람들한테 아파트를 설명해줘야 할 판이니.
- 아파트는...
재현은 말로 설명하기 힘들어서 바닥에 그림을 그리며 설명했다.
- 이렇게 층으로 나뉘어서 층마다 사람들이 사는 곳인데요....
- 오호... 드래건이 사는 곳에는 그런 게 있단 말인가?
재현은 뭐라 더 꾸밀 맘도 생기지 않아 그냥 '네. 네.'하고 대답했다.
- 놀랍군. 역시 드래건의 마법은 위대하군.
- 흠흠.. 아무튼 이렇게 생겼는데, 한 층당 한 5미터 정도 되니까 100미터 정도 되는 크기네요.
그들이 '미터'는 또 무슨 말인가 하는 표정이길래 '드래건이 길이를 잴 때 쓰는 것'이라고만 했다. 그리고는 그들이 알기 쉽게 말했다.
- 이 얼음집을 한 200개 쌓은 것만 해요.
재현의 대답에 갑옷을 입은 남자는 경악의 눈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