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축계 Pilot - 10. 감춰진 음모(4) (完)
- 단순히 과학적으로 추론하자면 이런 거죠. 일단 지금 앵커 바이러스가 활동을 시작하면 모든 사람을 다 죽이죠. 그런데 특이하게도 바이러스가 활동해도 죽지 않는 사람이 있어요. 그 사람의 혈청을 통해 앵커 바이러스 백신을 만드는 것이죠. 활동을 시작해도 '죽지는' 않게.
세현의 말에 철구는 미간을 찌푸리며 다시 물었다.
- 그게 뭔 말이야?
- 쉽게 말하자면 '당뇨병' 같은 거겠죠. 영원히 앓아야 하는 병. 끊임없이 약을 먹으며 미라처럼 변하지 않게 해야 하는 병에 걸리는 거죠.
- 그러니까 그게...
철구는 그렇게 말하다가 잠깐 고개를 갸웃거렸다.
- 그럼 그 백신을 팔아먹기 위해서?
- 기본적인 것은 그렇지만, 좀 더 생각해 보면, 누구든지 그 바이러스가 활동할 가능성이 있는데, 누가 평생 약을 먹기 위해 섹스를 하겠어요? 자식을 갖고 싶다면 '인공 수정'을 하겠죠.
세현의 말에 철구는 고개를 끄떡였다.
- 인공 수정이라.
- 톰슨 병원의 핵심 기술이죠.
철구는 도무지 앞뒤의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 하. 어렵군. 그럼 지호 녀석은 뭐지?
철구의 질문에 세현은 자신이 생각하는 답변을 냈다.
- 바이러스 활동이 시작된 사람을 알아내거나, 혹은 바이러스가 활동하지 않더라도 감염된 사람을 알아내는 것이 아닐까요?
그 말에 석호가 다소 무거운 표정을 말했다.
- 어쩌면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은 사람을 찾아내는 일을 할 지도 모르죠.
석호의 말에 세현과 철구는 무겁게 침묵했다. 그러나 철구는 이내 고개를 가로 저었다.
- 아무튼 이걸 알았다고 해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뭐지?
철구는 누구에게랄 것 없이 혼잣말처럼 물었다. 철구의 질문에 다들 침묵했다. 그런데 그 때 대장이 '삐삐'하며 말을 했다.
- 정보를 알았으면 이용하는 거다. 역으로 흘려도 되고, 아니면 그 정보를 그들만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모두 알 수 있게 하면 된다.
대장의 말에 철구가 피식 웃었다.
- 대장 그건 더 허황된데? 정보 싸움은 대장이나 석호 신부님 외에는 안 되고. 할매와 나는 컴맹이니까.
철구의 말에 세현이 째려보며 말했다.
- 그래도 철구 씨보다는 내가 나아요.
석호는 대장의 말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을 꺼냈다.
- 일단 바티칸에 보고를 할 예정입니다. 스테판 추기경님께 말씀을 드리고...
그러다가 무릎을 탁 치며 말했다.
- 대장, 그 자료 전체 말고 일부만 전 세계 신문사와 방송사에 보낼 수 있을까요?
석호의 말에 철구는 부정적으로 대꾸했다.
- 저런 황당한 얘기를 누가 믿어줄까요?
석호는 철구의 말에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 그러니까 '믿을 만한 수준까지'만 공개를 하는 것이죠. '톰슨 병원의 인체 실험' 부분하고, 동북아 복지 재단 부분만요.
- 삐삐. 일단 스테판 추기경한테 암호 메일을 발송했다. 신문사와 방송사에 보낼 내용을 재전송 바람.
- 네.
- 그런데 왜 하필 불치병이나 난치병 아이들로 생체 실험을 했을까요?
석호는 계속 신경 쓰이는 부분에 대해 세현에게 의견을 물었다.
- 그건 아마.. 제 생각에는 대개 불치병이나 난치병은 대개 유전자의 결함으로 인해 나타나죠. 다시 말해 유전자가 정상인과 다르다는 것이죠. 정상인에게 아무리 송과체에 시신경을 연결해도 뭐가 제대로 보일 리가 없겠죠. 이미 정상적으로 퇴화했을 테니까요. 하지만 유전적 결함이 있는 아이들은...
거기까지 듣던 철구는 인상을 구기며 욕을 했다.
- 이거 완전히 쓰레기 같은 놈들이구만.
철구의 분노를 십분 이해한다는 듯이 대장 역시 '삐삐삐삐'하고 울렸다.
- 휴.. 그렇겠군요.
석호는 한숨을 내쉬었다. 잠깐 동안 모두가 침묵에 싸여 있을 때 대장이 말을 했다.
- 그런데...
대장은 뜻밖에도 머뭇거리며 말했다. 평소 그렇게 머뭇거리는 사람이 아님을 알기에 다들 의아해했다. 석호가 대장에게 말을 건넸다.
- 무슨 일이죠?
- 그 때 얘기했던 톰슨 병원, 동북아 복지재단과 연관된 다카타 이치로라는 사람을 찾았는데, 그 사람의 정보가 대부분 '삭제'되어 있었다. 태어난 해도 없고, 행적도 딱히 드러난 것이 없다. 사진도 얼마 전에 워싱턴 포스트에 실린 사진 한 장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화면에 사진 한 장이 크게 나타났다.
- 이거야 악마같이 생긴 놈이구만.
철구는 사진을 보며 한마디 했다. 그러나 세현은 그 사진을 뚫어지게 보다가 무언가 잘못 본 것이 아닌가 하는 표정으로 눈이 커졌다. 세현의 반응에 석호가 말을 하려다가 세현을 쳐다보았다.
- 이... 이 사람은... 예전 부대장... 1892년생이니까 지금 100살도 넘은 사람인데...
세현의 말에 석호가 무슨 말이냐는 듯이 말을 했다.
- 지금 이 사진은 50대 후반 정도로...
그러다가 세현의 눈은 더욱 커지며 말했다.
- 말도 안 돼요. 그 때 실험 샘플은 딱 하나만 남았어요.
그러자 철구가 한 마디 했다.
- 저 인간이 저리 팔팔한 거 보니 할매도...
- 아니 그것보다도... 그가 어떻게...
세현의 말에 철구가 별 거 아니라는 듯이 말을 했다.
- 뭔가 있겠지. 저 녀석도 실험체일지 어떻게 알아?
철구의 말에 세현은 고개를 저었다.
- 그렇다면 저와 같은 현상을 겪어야죠.
- 뭐... 돌머리라서 그런가 보네. 아무튼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자구!
그러고는 석호를 쳐다보며 물었다.
- 우리가 할 일은 뭐죠?
석호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하였다. 그러자 세현이 나서서 말했다.
- 저는 저 사람에 대해 알아볼게요.
그 말에 철구가 대꾸했다.
- 정보 파악은 대장이 더 잘하잖아.
- 정보는 계속 파악하면 되니까 그 사람에 대해 오프라인 쪽에서 알아봐야죠.
세현의 말에 석호가 대답을 했다.
- 아직 움직이면 안 돼요. 일단 제가 신문사와 방송사에 보낼 내용은 모두 '다나카 이치로'와 관련된 내용이거든요. 동북아 복지재단에서 실험체를 보내고 톰슨 병원에서 생체 실험을 한 내용으로요.
그 말에 세현은 고개를 끄떡였다. 그러자 철구는 점퍼를 들고 일어서며 말했다.
- 그럼 당분간은 할 일이 없는 거네요.
- 그런 셈이죠. 하지만 그들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석호의 말에 철구는 인상을 쓰며 말했다.
- 거 참.. 어렵군. 아무튼 난 이만 가보겠습니다.
철구는 석호와 세현에게 눈인사를 하고는 대장을 향해 손을 한 번 들어 보이고 밖으로 나갔다. 철구가 나가자 세현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 늦은 시간에 신부님 사무실에 여자가 있으면 남들이 오해하겠죠? 호호호.
그 말에 석호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 여자는 오늘 원없이 봐서요.
- 네?
석호의 말에 세현이 반문을 했지만, 석호는 웃기만 할 뿐 대답을 하지 않았다. 컴퓨터에서는 '삐삐삐'하는 소리가 들리며 '신부님 바보'라는 글자가 보였다. 세현은 컴퓨터를 한 번 쳐다보고는 석호에게 조그맣게 말했다.
-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세현이 문 밖으로 나가자 컴퓨터에서는 알 수 없는 문자들이 마구 흘러갔다. 석호는 그 문자들을 보고는 피식 웃은 후 말했다.
- 나 말고 다른 사람을 찾아보는 게 어때요, 대장?
석호의 말에 대장은 '삐삐삐' 소리만 냈다.
- 난 이미 하느님께 메인 몸이잖아요.
그 말에 컴퓨터에서는 우울한 기계음이 들렸다.
- 난 조만간 하느님께 갈 몸이고.
석호는 그 말에 잠시 입맛을 쓰게 다셨다.
- 나보다는 늦게 갈 테니까 걱정 마요.
석호의 말에 대장은 아주 느리게 '딩동' 한 번 하고는 화면을 껐다. 석호는 낮게 한숨을 쉬고는 자리에 앉아 보낼 기사문을 작성하였다.
석호가 작성하고 대장이 전 세계 방송국과 신문사에 보낸 기사는 '출처 불명'으로 대부분 기사화되지 못하였다.
기사화된 것들조차 가십거리에 불과한 내용으로 치부되었다. 아동 복지로 유명한 '톰슨 병원'이었기에 그것을 모두 그들을 음해하려는 내용으로 알았던 것이었다.
- 별 일 안 일어나는군요.
석호의 말에 대장은 약간 당황했다.
- 그건...
- 대장을 탓하는 게 아니에요. 이미 예상했던 일이죠. 다만 그들에게 '그들의 정보'를 캐고 있는 조직이 있다는 것을 알렸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죠. 앞으로 섣부르게 행동하진 못할 테니까요.
대장은 석호의 말에 침묵했다.
- 아무튼 바티칸에서도 이 일을 계기로 팀을 꾸린다고 했으니까 어느 정도 목적은 달성한 거죠.
석호의 혼잣말 같은 얘기에 대장은 '딩동'으로 대답을 했다.
- 당분간은 기도나 열심히 해야겠네요. 하하하. 당분간 수도원에 들어갈 예정이니까 대장 그동안 잘 지내요!
석호의 말에 대장은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석호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려 할 때였다. 석호의 핸드폰에 '띠링'하고 메시지가 하나 떴다.
'믿지 못하시겠지만....'
석호는 컴퓨터를 보고는 손사래를 치며 웃었다. 그 순간 불륜 현장을 잡으려고 잠입해 있던 철구는 핸드폰을 보고는 '이런 우라질...'을 외쳤고, 사무실에서 최면 요법을 시행하던 세현 역시 '오... 이런!'하고 이마를 쳤다.
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완결 공지] 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파일럿 완결
안녕하세요. 글쟁이 구라도사입니다.
원래 후기는 완결짓고 바로 쓰곤 했는데 이번에는 후기를 조금 늦게 쓰게 되었습니다. 뭐 구구절절한 사정이 있긴 하지만 구질구질한 것이기에 사정 이야기는 접어두려 합니다.
그간 축계를 연재하면서 가급적이면 연재 주기를 지키려고 노력했는데 이번 파일럿은 정말 중구난방이었습니다. 이 점은 진심으로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만 제 본업이 글을 쓰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그리 되었기에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얼마 전 모 출판사로부터 이북 출간을 제안받았습니다. 물론 좋은 기회일 수도 있고 어쩌면 그동안 재미있게 읽으신 독자님들의 원성을 들을 수도 있는 상황일 수도 있기에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물론 결론은 이북을 내기보다 좀 더 기다리고 다듬어서 종이책으로 내보려 이북은 생각을 접었습니다.
뭐 그런저런 사정이야 제 몫이니 독자님들께 구구절절하게 말씀드리는 것조차 죄송하게 느껴지네요.
아무튼 이번 파일럿은 제가 처음 연재했던 글이자 베스트리그로 올라올 수 있었던 계기를 마련해 준 글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미흡한 점이 많이 보여 안타까운 글이기도 합니다.
뜬금없는 파일럿에 많이들 당황하셨을 텐데도 많이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현재는 에피소드 3과 에피소드 4, 에피소드 5를 동시에 집필 중입니다. 에피소드 3의 경우에는 스토리는 다 잡았고 분량도 200페이지가량 썼습니다...만 왠지 썩 마음에 들지 않아서인지 영 진도가 안 나가네요.
에피소드 4는 예전에 썼던 내용을 새롭게 꾸며서 쓰고 있어서인지 어느 정도 글이 완결된 상태입니다. 다만 축계와 그 구조를 맞추기 위해 여기저기를 뜯어 고치다 보니 점차 이야기가 산과 바다로 떠나고 있어 걱정입니다. 에피소드 5는 개인적으로 아주 흥미있는 소재와 구성이어서 재미있게 쓰고 있지만 이제 겨우 2챕터를 끝낸 상황이기에 언제 완결까지 갈까 걱정이랍니다.
뭐 하나도 제대로 못하면서 세 개를 동시에 하냐고 힐난하실 수도 있지만 항상 글이라는 게 하나만 쓰자고 해서 그렇게 되지는 않더라구요. 더욱이 요즘은 잡생각이 많아져서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축계가 아닌 다른 이야기들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고 있답니다. 어쩌면 축계가 아닌 다른 이야기가 새롭게 연재될 수도 있겠죠.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까요.
일단 현재까지 진행된 내용과 순서를 말씀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