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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계(逐界)-쫓겨난 이들의 세계-283화 (283/309)

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축계 Pilot - 10. 감춰진 음모(1)

10. 감춰진 음모.

얼마 후 원룸 주인은 정신병원 휴게실에 앉아서 신문을 보고 있었다. 신문에는 자신과 관련된 기사가 1면에 실려 있었다.

'사지절단 살인마. 정신 이상으로 정신병원 행'

원룸 주인은 자신의 사진을 보며 쓰게 웃었다. 휴게실에 다른 환자들이 신문을 읽고 있는 그의 모습을 신기해하며 다가왔다.

그러자 원룸 주인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 절루 가! 이 미친놈들아!

원룸 주인의 고함에 환자들은 주눅이 들어 그를 슬금슬금 피해갔다. 원룸 주인은 심각한 표정으로 자신의 기사를 읽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앞에 그림자 하나가 드리웠다.

- 다른 데로 가라고 미친 것들아!

그러나 그림자는 물러서지 않았다. 원룸 주인은 짜증 난 목소리로 버럭 소리쳤다.

- 비켜! 이 미친놈아!

그리고 고개를 들었을 때에는 날카롭게 깎여있는 연필이 그의 목울대에 찔려 있었다.

- 커... 커억..

그의 앞에는 김효정의 아버지가 피가 흐르는 연필을 들고 있었다. 바닥에는 그가 그리던 그림이 한 장 있었다.

그 그림에는 팔 다리가 잘린 여자 한 명과 사지가 잘린 남자 한 명, 칼에 찔린 남자 하나가 그려져 있었다.

김효정의 아버지는 목을 부여잡고 쓰러지는 원룸 주인을 덮치며 연필로 마구 찔러댔다.

- 일부러 죽였지. 넌. 일부러 죽였지...

김효정 아버지의 입에서 슬픈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리고는 더 슬픈 눈을 하고는 말했다.

- 나... 나도...

그리고는 원룸 주인을 찌르던 연필로 자신의 목을 찔렀다. 김효정 아버지는 그러면서 마치 자신이 할 일을 다 했다는 표정으로 환하게 웃으며 그 자리에 쓰러졌다.

한편 신문과 방송에서는 온통 미국 배우 에릭 스미스(Eric Smith)의 죽음에 대해 떠들었다.

그가 인류를 위협하는 이들에 대해 중대한 발표를 하기로 한 전날 밤이었다. 그의 죽음에 뭔가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고 사람들은 말했고, 음모론자들은 정부가 그를 죽인 것이라고 방송에서 떠들어댔다.

그도 그럴 것이 할리우드에서도 손꼽히는 부자인 그는 집 안에 각종 보안 시설을 설치해 놓았고, 더욱이 그의 시신이 발견된 곳은 오직 한 사람, 에릭 스미스만 들어갈 수 있는 방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곳에서 죽은 그의 죽음이 외부에 어떻게 알려졌는지, 또 누가 알아냈는지, 그리고 그가 어떻게 죽었는지는 아무도 몰랐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다 의문투성이였지만, 에릭 스미스가 죽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사진으로 공개된 그는 마치 미라처럼 몸이 바싹 말라 죽어 있었다.

사람들은 왕성하게 배우 활동을 한 것과는 별개로 여러 어려운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돕던 그를 기억했기에 그의 죽음을 모두 애도하는 분위기였다.

그리고 그가 발표하려고 했던 중대한 사안이 무엇인지 알아내려고 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추모의 분위기는 익명의 제보들로 인해 그의 죽음은 쓰레기가 세상에서 사라진 것으로 변하게 되었다.

그 제보들은 그가 아동성애자로 많은 어린아이들을 성추행하고, 그 아이들 중 일부는 죽여서 자신의 집에 묻었다는 내용이었다.

그 제보에 따라 경찰이 에릭 스미스의 뒷마당을 파서 조사를 해 보니 어린아이들의 뼈가 다수 발견되었다.

일이 그렇게 되자 사람들은 가면을 쓴 채 살아간 에릭 스미스의 죽음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을 했고, 오히려 잘 죽었다고 말하는 이들이 더 많아졌다. 또한 그가 발표하려던 내용 따위는 아무 상관이 없어지게 되었다.

- 잘 처리했다.

기계음이 어두운 밀실에서 울렸다. 그러자 의자에 앉아 있던 톰슨은 별 일 아니라는 듯이 대답했다.

- 약만 끊으면 되는 일이었습니다. 이 일로 다른 사람들도 알게 되었겠죠.

톰슨의 말에 기계음이 말을 했다.

- M3 건은 어떻게 된 일인가?

- 저희가 M3를 GPS로 발견했을 때에는 이미 죽어 있었습니다. 일이 끝나면 처리하려고 했는데, 상황이 급해졌는지 테트로도톡신을 먹고 죽었더군요. 그런데 거기서 새로운 사실을 하나 알아냈습니다.

- ...

기계음이 침묵하자 톰슨은 말을 이었다.

- 바이러스가 특정한 외부 조건이 있을 때에 활동을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 특정한 조건이라...

- 네. 일단은 테트로도톡신이 활동을 시작하게 한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그 테트로도톡신 분자식을 바탕으로 연구해보면 될 것입니다. 그리고 테트로도톡신이 세균에 의해 합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세균도 함께 연구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톰슨의 말에 기계음은 잠시 침묵을 하다가 다른 말을 꺼냈다.

- CP1 샘플이 사망했다고?

기계음의 말에 톰슨은 조금은 당황하며 말을 했다.

- 그게... 다나카가 혼자 폭주하는 바람에...

톰슨의 말에 기계음은 낮은 신음을 냈다.

- CP1이 가장 이상적인 샘플이었는데... 안타깝군.

화를 낼 것 같았던 '그'가 의외로 평범한 반응을 보이자 톰슨은 의아한 듯이 고개를 들었다.

- CP1이 죽었으니 슈뢰딩거 박사가 몹시 슬퍼하겠군.

기계음의 알 듯 모를 듯한 말에 톰슨은 무어라고 물으려 했지만, 그보다 기계음이 먼저 말을 했다.

- X10 샘플의 행방은 찾았나?

- 그게 아직... 마에스트로가 얼마 전에 당하는 바람에.

톰슨의 말에 기계음은 이번에는 조금은 화가 난 목소리로 말을 했다.

- 멍청한 자식.

- 그럼 마에스트로도...

톰슨은 기계음의 눈치를 보며 말을 했다.

- 아직은 놔둬. 쓸모가 있으니까.

그리고는 낮게 한숨을 쉬며 말을 했다.

- 음. 제대로 된 일이 없군.

- 네. 하지만 그동안 우리를 추적하던 바티칸 놈들과는 다른 녀석들 같습니다. 조만간 정체를 밝혀내겠습니다.

- 음.

기계음의 침묵에 톰슨의 이마에는 땀이 한 방울 흘렀다. 오랜 침묵 끝에 기계음이 다시 들렸다.

- 가슴이 아프군. 우리가 하는 일은 인류를 위한 일인데.

그 말에 톰슨은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 인류를 위한 작은 희생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 그렇겠지. 알았다.

기계음이 멈추자 톰슨은 전화기를 들었다. 그리고는 이런 저런 명령을 내린 후 전화를 끊고 눈앞에 놓인 서류를 보았다.

서류 안에는 최 베드로의 사진이 있었다.

'이 샘플이 죽은 걸 알면 슈뢰딩거가 슬퍼한다고? 신부인 자인데... 뭐지?'

톰슨은 혼자 그렇게 중얼거리다가 서류를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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