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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계(逐界)-쫓겨난 이들의 세계-282화 (282/309)

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축계 Pilot - 9. 추악한 복수(2)

- 네 놈이 감방을 가든 정신병원을 가든 난 별로 상관하지 않아. 단지 똑바로 돌려놓는 거. 나는 그것만 신경 쓰는 거야. 이 개새꺄!

철구는 건물 주인에게 달려들어 주먹을 내리쳤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건물 주인의 코에서 피가 흘렀다.

- 이놈이... 사람을...

철구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 넌 맞아도 싸! 새꺄.

철구가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려고 몸을 돌렸다. 그러자 뒤에서 건물 주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 그런데... 그 년은 다 썩었을 텐데... 신고한 사람도 없을 테고... 어떻게 알았지?

철구는 그런 건물 주인을 쓰윽 한 번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아무 말 없이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 문 밖에서 기다리던 성준에게 철구는 파일을 건넸다.

성준은 철구에게 뭔가 말을 하려다가 멈추고, 무전기를 꺼내어 다른 이들을 호출하였다. 철구가 건물 밖으로 나가자 경찰들이 철구를 스치며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철구의 사무실에는 지호와 대장이 체스를 두고 있었다. 지호는 머리를 벅벅 긁으며 한 수를 두었고, 1초도 되지 않아 대장의 말이 움직였다.

- 체크 메이트!

- 어? 또..

세현은 그 모습을 보며 웃고 있었다. 그 때 문을 열고 철구가 안으로 들어왔다. 대장은 툴툴거리며 말했다.

- 삐삐. 이런 바보랑 노는 것도 힘드네.

그러자 지호가 물러나며 말했다.

- 친구들 사이에서는 제가 제일 잘 한다구요. 그건... 대장... 대장이 너무 잘해서 그런 거에요.

지호가 컴퓨터를 향해 대장이라고 부르자 컴퓨터는 '하하하'하고 웃으며 말했다.

- 딩동. 이젠 너한테도 대장이군. 하하하.

철구가 자리에 앉자 세현이 철구에게 물었다.

- 잘 됐나요?

철구는 세현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지호를 보며 말했다.

- 야! 이제 편하게 있어도 돼! 범인 잡았으니까.

그러자 지호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 정말요? 그 사람이 정말 진범이었어요?

그러자 세현이 지호를 보며 웃었다.

- 네가 알아낸 게 없었으면 잡기 힘들었을 거야.

그러자 지호는 머쓱하게 웃었다. 그러자 세현도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 좀 더 있다 말해 줄까 했는데... 사실은 좋은 소식이 하나 더 있어.

그러자 지호가 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 뭔데요?

- 너 수술 날짜 잡혔어. 뭔가를 보는 증세는 없앨 수 있을 거야.

그러자 지호가 펄쩍 뛸 듯이 기뻐했다.

- 진짜요?

그러나 갑자기 지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 근데 저... 돈이 별로 없어서...

세현은 지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 수술비는 걱정하지 마.

- 네? 고맙습니다. 선생님.

그 모습을 뒤에서 철구가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컴퓨터는 연신 '삐삐' 소리를 내었다.

- 이 기분으로 다시 한 번 대장한테 도전할게요.

지호가 컴퓨터 앞에 앉으며 말하자, 컴퓨터는 삐삐거리며 말했다.

- 기분이 좋더라도 바보는 바보다. 기분을 봐서 한 번 더 해주지.

화면은 어느새 체스판으로 바뀌었다. 세현은 그런 지호를 보고 웃다가 철구에게로 다가왔다.

- 신부님이 뭔가를 알아내신 것 같아요.

- 음...

- 이따가 신부님 오시면 얘기하죠.

- 그러지. 할매. 나 졸리니까 저 쪽 구석에서 잠깐 눈 좀 붙일게.

그러더니 철구는 구석 소파에 가서 누웠다. 누운 지 1분도 되지 않아 코고는 소리가 낮게 들렸다. 세현은 그런 철구를 측은하게 쳐다보았다.

몇 시간 후에 석호는 몹시 다급한 모습으로 그들 앞에 나타났다. 입가는 누군가에게 맞은 듯은 상처가 있었고, 평소에는 볼 수 없었던 사제복을 입고 나타났다.

- 신부님!

세현이 석호를 향해 놀라서 일어섰다. 그러나 석호는 들어오자마자 급한 듯이 외쳤다.

- 대장. 탐색을 멈춰요.

그러자 컴퓨터에서는 '삐삐' 소리와 함께 말소리가 들렸다.

- 왜 그러나?

- 마에스트로....

그러자 컴퓨터는 순식간에 '삐삐'하는 보안 경고음을 내보냈다.

External IP Closed.

.............................. OK.

.............................. OK

.............................. OK

.............................. Fail

Retry?

.............................. Fail

화면에서 기계어와 같은 것들이 마구 흘러가다가 갑자기 컴퓨터의 전원이 꺼졌다.

Server Shutdown.

모니터에는 이 글자만이 떠다녔고, 대장의 반응은 감지되지 않았다.

- 마에스트로라뇨?

세현은 석호에게 물었다. 석호는 그들이 자신들을 쫓는 이들을 파악하기 위해 '마에스트로'라는 해커를 고용했음을 말했다.

회의실 안의 소란 때문에 철구는 눈을 떴다. 철구는 눈을 비비며 석호에게 말을 했다.

- 신부님은 그럼 그들이 누군지 대충 알았다는 것입니까?

- 네. 지난 번 대장이 찾아 준 정보로 섬김 보육원, 그리고 동북아 평화 재단, 톰슨 병원 사이의 관계를 알아냈죠.

- 음...

석호의 얼굴에는 슬픔이 가득 차 보였다. 철구와 세현은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석호의 표정에서 그런 슬픔을 본 것은 그의 모친에 대한 소식을 들을 때 이후 처음이었다.

- 최 베드로 신부님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석호의 말에 철구와 세현도 다소 충격을 받았다. 평소 석호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최 베드로라는 말을 많이 했기에 석호가 받았을 충격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은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석호는 의외로 담담하게 말했다.

- 역시 그 분은 훌륭한 사제였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이 겪었던 일을 얘기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품 안에서 성경을 꺼냈다.

- 그 분의 마지막 유품입니다.

낡은 성경을 보며 일동은 침묵했다. 석호는 성경을 보며 말했다.

- 그 분이 이 성경을 저에게 남긴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손 때 묻은 성경이기 때문이 아니라 어쩌면 이 안에 무언가를 남겨 두셨는지 모르죠.

석호는 그 말을 마치고 자신이 겪었던 이야기를 시작했다.

최 베드로 신부가 그들의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 자신의 몸을 희생했다는 얘기에서는 다들 놀라움에 휩싸였다. 그리고 바이러스의 존재에 대해서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

- 그렇다면 마지막에 굳이 이 성경을 신부님께 주려고 했던 것도 의미가 있겠네요.

석호는 세현의 말에 무겁게 고개를 끄떡였다.

- 조사해 보면 알겠지. 아무튼... 대장은 뭘 그리 놀라서 컴퓨터를 다 꺼버린 거야?

철구가 컴퓨터를 보며 한 마디 하자 마치 철구의 말을 듣기라도 한 듯이 컴퓨터가 켜지면서 말을 했다.

- 삐삐. 마에스트로에게 내가 복잡한 악보를 하나 던져 주고 왔다. 고민 좀 하라고. 하마터면 정보가 샐 뻔 했다. 신부님! 고맙다.

대장까지 정상으로 돌아오자 철구가 지나가듯이 한 마디 했다.

- 그 녀석들은 뭔 생각으로 이런 일들을 하는 걸까?

철구의 말에 다들 생각에 잠기자 철구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 에라. 모르겠다. 난 가서 삼겹살에 소주나 한 잔 해야겠다.

하며 철구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철구가 일어나도 아무도 따라 일어나지 않자 구석에 있던 지호가 같이 일어섰다.

그러자 철구는 지호를 돌아보지 않고 그냥 휭하니 혼자 나가버렸다. 뒤따라 나갔던 지호는 툴툴거리며 안으로 들어와서 말했다.

- 같이 가자고 소리쳐도 그냥 가버리시네요.

그러자 세현이 웃으며 말했다.

- 후훗.. 같이 못 갈걸요. 그리고 아까 급하게 나가서 못 잡았는데, 그건 철구 씨의 암호 같은 거예요. 삼겹살에 소주. 오늘은 연락하지 말라는 거지. 후후.

세현의 말에 지호는 겸연쩍은 듯이 머리를 긁었다. 그러자 컴퓨터에서 딩동 소리가 나며 지호를 불렀다.

- 어이! 바보. 수술하기 전까지 심심할 테니까 내가 놀아줄게.

일주일 후 지호는 어떤 병원의 병실에서 수술복을 입은 채 누워있었다. 석호가 알아봐 준 가톨릭 계열의 병원이었다. 석호는 지호의 손을 잡으며 환하게 웃었다.

- 기분은 어때요?

그러자 지호는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 두 번째인데도 조금 무섭네요.

- 걱정하지 마요. 한숨자고 나면 다 끝나 있을 거니까.

그 말에 지호는 빙긋이 웃었다. 세현은 지호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 그럼 이따 봐요.

세현은 그렇게 말하며 쓸쓸한 표정을 지었다. 지호는 그런 세현의 표정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

- 네. 감사합니다.

세현이 나가자 지호는 빡빡 밀어버린 자신의 머리를 만져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창밖을 쳐다보았다. 흐릿하게 화단을 걷는 여인의 모습이 보였다.

전에는 그런 모습이 보이면 깜짝 놀랐지만, 왠지 지금은 그 여인의 모습을 보는 것이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눈앞에 나타난 그녀의 모습이 측은해 보였다. 지호는 고개를 돌리며 병실 옆에 있는 거울을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세현은 수술을 집도하기 위해 옷을 갈아입고 나와 석호에게 말했다.

- 시신경만 제거한다고 해결될 지는 장담 못하겠네요.

그러자 석호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 시도는 해 보는 게 좋죠.

- MRI에서 보면 시신경이 연결된 것 외에는 다른 변화는 없어 보였어요.

- 그나저나 왜 이리 안 나오죠?

세현이 수술실 안으로 들어가며 간호사를 시켜 지호를 데려오도록 시켰다. 병실로 갔던 간호사가 헐레벌떡 뛰어 들어오며 외쳤다.

- 선생님, 환자가 없어졌어요.

세현과 석호는 그 말에 뛰어서 병실로 갔다. 병실에는 편지 한 장과 예쁘게 깎아놓은 사과 하나가 있었다.

선생님, 저 많이 생각해 봤는데요.

이 능력이 어쩌면 저주일 수도 있고, 어쩌면 저를 계속 괴롭힐 수도 있겠지만요.

이 능력이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생각해 주신 것은 너무 감사하지만, 저 그냥 수술 받지 않을래요.

그리고 저 때문에 다른 분들께서 피해를 입는 게 싫어서 이렇게 떠납니다.

신부님! 감사합니다. 저도 이제부터 성당 열심히 나갈게요.

철구 아저씨께도 안부 전해 주세요. 대장님한테도요.

그리고 나중에 제 능력이 필요하시면 홈페이지에 글을 남겨주세요.

제가 얼른 달려올게요.

감사합니다.

그런데요.. 정말 궁금해서 묻는 건데요...

왜 선생님을 할매라고 부르지요?

하하하.

세현은 편지를 읽으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 여기 우리 같은 환자가 하나 더 생겼군요. 훗...

석호는 그 편지에 어이없었지만 성호를 그으며 지호의 앞날에 축복을 빌었다.

한편 병원에서 빠져나온 지호는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자신이 가봐야 할 곳이라고 생각을 하고는 자신이 살던 원룸 건물로 갔다.

지호는 주변을 한 번 살피고는 옐로 테이프를 살짝 뜯고는 지하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지하실에 자신이 팠던 구덩이 앞에 섰다.

그러자 희미하게 울부짖는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잘린 팔과 다리를 휘젓고 있는 여인의 모습이 보였다. 지호는 그녀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 다 끝났어요. 이젠 편히 쉬어요.

지호는 팔을 뻗어 여인의 얼굴을 쓰다듬으려 했다. 그러나 허공을 스치고 갈 뿐이었다.

하지만 지호는 마치 그 여인이 만져지기라도 하는 듯이 허공을 쓰다듬고는 돌아서 나왔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진실의 문' 명함을 한 번 꺼내 보고는 후드티의 모자를 뒤집어쓰고는 어둠을 향해 걸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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