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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계(逐界)-쫓겨난 이들의 세계-279화 (279/309)

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축계 Pilot - 8. 악몽의 끝(4)

인상 좋아 보이는 아저씨가 석호에게 목적지를 물었다. 석호는 그 순간 어디로 가야하나 고민에 빠졌다.

혹시 이 차도 감시를 당하는 건 아닐까 하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 곳을 빠져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더 간절했기 때문에 목적지를 말했다.

- 코엑스로 가 주세요.

석호는 자신의 교구인 명동 성당이 아닌 다른 곳을 말했다. 운전사 아저씨는 석호를 쓱 한 번 보더니 예의 사람 좋은 얼굴로 말했다.

- 제가 거기까지 길을 잘 몰라서 그런데 내비게이션을 켜고 가도 될까요?

석호는 내비게이션이라는 말에 잠시 멈칫 했다. 전화를 장악한 그들이라도 설마 GPS로 사람을 알아낼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았기 때문이다.

- 그렇게 하시죠.

택시가 떠나자 석호는 뒷좌석에 기대어 생각에 잠겼다. 그들은 자신이 살아 있는 것을 알고 있을뿐더러 자신의 정체도 어렴풋하게나마 알고 있을 것이었다.

무턱대고 모이는 곳으로 찾아갔다가 그들에게 발각이라도 되는 날이면 모두가 위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석호는 코엑스로 향해 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여기와 그다지 멀지 않은 곳이기도 하려니와 사람도 많고 복잡한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택시 아저씨는 한창 달리다가 사이드 미러를 보면서 혀를 찼다.

- 허허. 젊은 사람들이 저렇게 오토바이를 험하게 타서야.

그 말에 석호는 불연 듯 고개를 돌려 뒤 창문을 보았다. 한참 뒤에서 오고 있긴 했지만, 오토바이 서너 대가 위험하게 곡예 운전을 하면서 달려오고 있었다.

- 파당탕...

그 순간 오토바이에 타고 있던 청년 하나가 옆에 있는 차에 쇠파이프를 던졌다. 유리창이 박살이 나고 그 차가 멀어지는 것이 보였다.

- 어어.. 저 녀석들. 왜 택시를 공격해!

아저씨는 운전을 하면서 뒤쪽이 신경이 쓰였는지 계속 보고 있다가 자신의 회사 택시를 발견하였고, 그 순간 오토바이를 탄 젊은이들이 그 차를 공격하는 것을 발견하고는 한 마디 했다.

그 순간 석호는 정신이 아찔했다.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미 택시와 연결된, 어쩌면 모든 운송 수단과 연결된 장치를 감시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석호는 냉정하게 판단을 해야 했다. 자신이 타고 있는 한, 아니 이 차가 서울 쪽으로 가고 있는 한 무사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 아저씨, 저기 앞에 있는 사거리에서 우회전해서 가주세요.

석호가 말한 그 길은 안양으로 빠져 나가는 길이었다. 아저씨도 그 길을 아는지 한 마디 했다.

- 저 길은 안양으로 가는 길인데. 그 길로 가면 돌아서 가요.

그 말에 석호는 재빠르게 대꾸를 했다.

- 갑자기 안양 쪽에 일이 있는 게 생각이 나서요.

그러자 아저씨는 고개를 끄떡이고는 차를 오른쪽 차선으로 옮겼다. 석호는 그리고는 재빨리 말을 이었다.

- 여기부터는 제가 아는 길이니까 내비게이션을 끄고 가셔도 될 것 같아요.

그 말에 아저씨는 잠시 룸미러로 석호를 보다가 말했다.

- 안양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다시 내비게이션을...

그러나 석호는 뒤에서 빠르게 따라오는 오토바이를 보자 허리를 숙여 내비게이션의 전원선을 빼버렸다.

- 어어.. 이 양반이...

- 죄송합니다. 급한 일이어서..

- 아니, 내비게이션 전원 끄는 것하고 급한 일하고...

그 순간 오토바이들이 석호가 탄 택시 주변을 둘러쌓다. 그리고는 차 안에 무언가를 확인하려는 듯이 창 안을 훑어보았다.

아저씨는 그 오토바이들이 거슬렸는지 창문을 열고 한 마디 했다.

- 이 자식들! 너희 같은 놈들....

그러나 아저씨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 오토바이들은 속도를 올려 앞에 있는 택시를 향해 달렸다.

그 택시를 바짝 추격할 때쯤 석호가 탄 택시는 안양으로 빠져나가는 길로 나갔다. 아저씨는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 나 참! 이거 오늘 미친 사람들이 많구만.

석호는 그 미친 사람 중에 자신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아저씨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석호가 앞 건물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세워 달라고 할 때였다.

- 아. 씨발! 저 차야! 내비를 꺼놨을 때 알아봤어야 하는데.

석호가 차를 세우고 계산을 마쳤을 때 오토바이 한 무리가 택시 주위를 감쌌다. 석호는 자연스럽게 뒤로 물러났다.

- 마에스트론가 뭔가 하는 새끼 말만 믿고 추적했다가 좆될 뻔 했네.

한 명이 그렇게 투덜대자 옆에 있던 남자가 한 번 째려보았다.

- 사람들이 듣습니다.

- 머 몇 명 안되는구만.

그러더니 주변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 절루 안 가. 새끼들아! 뒈질려구.

그러자 몇몇 사람들이 무서운 듯이 물러섰다. 그걸 본 남자는 거보라는 듯이 다른 남자를 보며 말했다.

- 거 무섭게 보지 좀 마쇼. 아무리 돈 받고 하는 일이지만, 마에스트론가 하는...

투덜대던 남자는 뒷말을 하지 못했다. 그를 째려보던 남자한테 목울대를 정통으로 맞고 컥컥거리며 쓰러졌기 때문이다.

그 남자가 쓰러지자 그와 일행인 듯한 남자들이 인상을 험악하게 쓰며 그 사람을 을러댔다.

- 이 새끼가 우리 형님을...

그러자 남자는 낮게 한숨을 쉬었다.

- 이래서 양아치들하고 엮이면 안 돼.

그 말이 남자들이 그에게 다가섰고, 그 남자는 그들의 급소에 한 방씩 주먹과 발을 날려 쓰러뜨렸다. 그리고는 멈춰 있는 택시로 다가가서 말했다.

- 여기 탔던 사람은 어디로 갔습니까?

정중한 물음이었지만, 자신의 눈앞에서 거구의 폭주족들이 쓰러지는 걸 본 운전기사 아저씨는 놀란 눈으로 건물 안을 가리켰다.

- 저.. 저기로...

그러더니 차 안을 쓰윽 둘러보고는 블랙박스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 저 블랙박스 영상이 필요하니까 제가 가져가지요.

하더니 블랙박스를 통째로 뜯었다. 그러더니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백만 원짜리 수표를 주며 말했다.

- 오늘 일은 잊으시는 게 좋습니다.

택시 아저씨는 백만 원짜리 수표를 받고 얼이 빠졌다. 사실 그 블랙박스는 사고 감시용이라 차 바깥만 찍는 것이었다. 그러나 놀란 아저씨는 아무 말도 못한 채 덜덜 떨고만 있었다.

석호는 한 걸음 떨어져서 그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 남자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하였다.

그리고는 자신이 타고 온 오토바이에 몸을 실었다. 석호가 그가 차에서 무언가를 가져가는 것을 보고는 자신의 영상이 찍힌 블랙박스로 생각했다.

그렇게 되면 자신의 신분이 그들에게 그대로 노출될 것이 분명했다. 그 오토바이가 시동을 걸고 출발하려 할 때 석호는 주변에 있는 돌을 들어 그에게 던졌다.

꽤 큰 돌이었기에 오토바이에 타고 있던 남자는 그것에 맞고 오토바이에서 굴러 떨어졌다.

석호는 굴러 떨어진 남자에게 다가갔다. 남자는 땅에 떨어진 충격 때문인지 허리를 부여잡고 있었다.

석호는 재빨리 그 남자의 얼굴을 걷어차려고 했다. 그러나 남자는 석호의 발이 닫기도 전에 그 남자는 몸을 굴려 피했다.

- 자식. 급하니까 나오는군.

그는 마치 석호가 자신을 지켜보다가 나올 것이라고 예상이라도 한 듯이 말했다. 그러더니 자신의 주머니 안에 있던 블랙박스를 꺼내 한구석을 던졌다.

- 잘도 낚였군.

석호가 그가 던진 블랙박스를 보았다. 실내 촬영 카메라가 없는, 실외만 찍을 수 있는 2채널짜리였다.

석호는 블랙박스를 꼼꼼히 보지 않은 자신을 탓했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블랙박스까지 확인할 여력이 없었다는 것을 본인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 조용히 같이 가실까? 아니면 강제로 데려갈까?

석호는 그 말에 피식 웃었다. 그가 전문가라면 자신 또한 나름 전문가였다. 다수와 대결을 한다면 모를까 일 대 일로 싸운다면 자신도 크게 밀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 나는 조용히 내 가던 길 갈 테니까 당신도 당신 가던 길을 가시죠.

석호의 말에 남자는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 끌고 가는 수밖에 없군.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는 재빨리 석호에게 주먹을 내질렀다. 석호는 그 주먹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빤히 보다가 몸을 돌려 피했다.

그리고는 손날로 남자의 목덜미를 가격하였다. 그러나 남자 역시 석호의 손을 피해 몸을 웅크렸다가 폈다.

남자는 석호의 싸움 실력에 놀라는 눈치였지만, 전문가답게 얼굴에 그러한 표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석호는 그런 그를 보며 말했다.

- 이 정도로는 끌고 가기 힘들 텐데.

석호의 말에 남자는 다시 발을 내질렀다. 무척이나 빠른 발놀림이었지만, 석호는 그 역시도 한편으로 흘려보내며 손날로 여전히 그의 목덜미를 노렸다.

서로 몇 번의 주먹질과 발길질이 오갔지만, 누구 하나 서로를 가격하지 못하였다. 그러자 남자는 재빨리 움직였다.

남자는 석호의 오금 부분을 공격했다. 석호가 한 다리를 들어 피하자 남자는 석호에게 가까이 다가와 다른 다리를 걷어찼다.

그러자 석호가 자리에서 쓰러졌다. 남자는 석호가 쓰러지자 몸을 띄워 석호를 밟으려고 했다. 석호는 몸을 굴러 발을 피했다.

그러나 그의 발이 조금 빨랐다. 석호의 옆구리 부분이 남자의 발끝에 밟혔다. 석호는 옆구리가 찌릿했다.

하지만 남자는 쉴 틈을 주지 않고 석호의 몸을 밟기 위해 계속 석호 쪽으로 다가왔다. 석호는 옆구리의 통증을 느끼며 계속 바닥을 굴렀다.

남자가 어느 정도 가까이 다가오자 석호는 재빨리 다리를 돌렸다. 남자는 석호의 다리가 가까이 오자 몸을 피해 석호의 다리를 잡으려 했다.

석호는 그의 손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고 재빨리 다리를 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 제법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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