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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계(逐界)-쫓겨난 이들의 세계-277화 (277/309)

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축계 Pilot - 8. 악몽의 끝(2)

그들 중 한 명이 손잡이에 총을 쏘자 문손잡이는 쉽게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문을 열려고 하자 안의 장애물 때문에 열기가 어려웠다.

경호원 중 덩치가 큰 한 명이 나서 문을 향해 몸을 밀었다.석호는 최 베드로의 옆구리를 살펴보다가 자신의 윗옷을 찢어 최 베드로의 허리를 묶으려했다.

그러나 최 베드로는 고개를 저었다.

- 나는.. 괜찮아. 그것보다...

- 얼른 여기서 나가셔야 합니다.

그러나 최 베드로는 고개를 저으며 다시 책장을 가리켰다. 문 밖에서는 문을 몸으로 미는 소리가 들려왔다.

- 이러실 틈이 없습니다. 잠깐 계시면...

석호의 말에 최 베드로는 석호의 손을 움켜잡았다.

- 그것보다 책장에서..

석호는 점점 창백해져 가는 최 베드로를 보다가 책장으로 다가갔다.

- 성경... 성경을 꺼내게.

석호는 한쪽 구석에 놓여 있는 성경을 꺼내어 최 베드로에게 왔다. 그리고 성경을 최 베드로에게 넘겨주었다.

최 베드로는 성경을 한 번 쓰다듬더니 석호에게 주었다.

- 가지고 가게... 저... 저기로...

최 베드로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을 보자 희미하게 벽에 금이 간 것이 하나 보였다. 빛이 들지 않아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기 힘들었다.

- 저기가 비상 통로입니까? 자! 저한테 업히세요.

그러나 석호의 말에 최 베드로는 아까와 같이 고개를 저었다.

- 내가 잘못한 일이었어.

최 베드로는 힘겹게 숨을 헐떡였다.

- 아니에요. 신부님.. 같이 가야 돼요!

석호는 울부짖었다. 그러나 최 베드로는 여전히 손으로 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 가! 가서 찾아주게나.

석호는 그런 최 베드로의 말을 듣지 않았다. 최 베드로는 점점 눈이 감기고 있었지만, 마지막으로 힘을 다해 석호의 멱살을 끌며 말했다.

- 이 녀석아! 너마저 없으면 다 끝나는 일이야!

석호는 최 베드로의 눈을 쳐다보았다. 최 베드로는 그런 석호를 예전의 스승의 눈으로 인자하게 보았다.

- 신부님.

- 난 한 번도 아들이 없었지만.. 쿨럭...

최 베드로는 석호에게 말을 하다가 피를 토하며 기침을 했다. 그런 후 입가를 닦으며 말했다.

- 하느님의 축복이야... 고맙네.

그런 후 최 베드로는 놀라운 힘으로 석호를 밀쳐냈다. 그리고는 기어서 조금씩 열리고 있는 문을 향해 몸을 누였다.

- 잘 가게나.

석호는 최 베드로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

- 가... 감사합니다.

석호는 그런 최 베드로를 놔두고 패닉 룸(Panic Room)처럼 뚫려 있는 구멍으로 몸을 옮겼다.

그 구멍은 한 사람이 겨우 빠져나갈 수 있을 정도로 작은 통로였다. 구멍으로 들어와 문을 닫자 몹시 어두웠다.

어디로 향하는지는 모르지만, 석호는 무작정 앞으로 나갔다. 최 베드로가 남긴 성경을 품에 안은 채.

석호가 빠져나간 지 한참 만에 문이 열렸다. 그들이 안에서 발견한 것은 이미 싸늘하게 식어버린 최 베드로의 시신뿐이었다.

그 방으로 들어온 다나카 일행은 방으로 들어와 방 안을 훑어보았다.

- 쥐새끼 같은 놈. 어차피 필요 없어진 곳이니까 불태워 버려.

그러자 톰슨 원장이 놀라서 말했다.

- 아이들이 자고 있는 곳입니다. 우리에게는 유용한...

- 그런 애들은 또 구할 수 있어. 저 쥐새끼 같은 놈이 우리 정보를 어디까지 빼냈는지 모르지만, 분명 이 안에 있을 거야. 우리가 찾지 못하면 불태워버려서 흔적을 없애는 게 낫지.

그런 후 다나카는 경호원들에게 소리쳤다.

- 모두 나가고, 10분 후에 불태운다!

석호는 좁은 통로를 따라 한참을 기어갔다. 그러자 지하실 같은 곳이 나타났다. 석호는 누군가의 말소리를 듣고는 잠시 멈췄다.

- 할아버지 신부님은 안 오세요?

뜻밖에도 아이들이었다.

- 조금만 기다리시면 오실 거야.

석호는 그들이 놀랄까봐 일부러 흠흠 헛기침을 하고는 그들이 있는 쪽으로 갔다. 석호의 헛기침 소리를 들었는지 아이들이 조금 술렁거렸고, 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 이리 나오세요!

석호는 그 여인이 보육원장임을 알았다. 석호가 코너를 돌자 여섯 명의 아이들과 원장이 같이 서 있었다.

- 역시 당신이었군요.

석호가 그들 옆으로 다가가자 아이들은 조금 경계하는 표정으로 석호를 보았다.

- 최 베드로 신부님께서는요?

석호는 그 말에 어떤 대구도 할 수 없었다. 석호가 머뭇거리자 그 원장은 낮게 한숨을 내쉬며 아이들에게 말했다.

- 일단은 밖으로 나가자. 나가서 버스를 타고 가는 거야. 지난번처럼.

석호는 그들과 함께 구석에 있는 조그만 쪽문으로 나갔다. 그러자 거기에는 9인승 승용차가 하나 서 있었다.

아이들은 누구 하나 불평하는 말없이 차에 올랐다. 석호는 그들이 모두 올라타자 아래서 원장을 보았다.

- 일단 같이 타세요.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하죠.

석호는 그 말에 차에 올랐다. 석호까지 차에 타자 버스는 이미 목적지를 알고 있는 것처럼 출발을 했다.

그리고는 한 시간을 넘게 달려 산 속 별장에 도착했다. 별장에 도착하자 원장은 아이들에게 각자의 방을 지정해 주었고, 아이들은 그 말에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이윽고 석호와 원장 두 사람만이 남았다.

- 최 베드로 신부님께서는 편히 가셨나요?

원장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석호는 자신 때문에 최 베드로 신부가 죽은 것으로 느껴져 몹시 마음이 아팠다.

- 하느님 품으로..

그 순간 석호는 자신도 모르게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터져 나왔다. 무릎을 꿇은 채 얼굴을 땅에 묻고 울기 시작하였다.

온몸에 있는 슬픔이 그의 눈물을 만들어 내듯 그의 몸이 떨렸다. 아이들이 들어가서 자고 있어서 큰 소리는 내지 못한 채 가슴으로, 목으로, 얼굴로, 입술로 울었다.

원장은 그런 석호를 물끄러미 지켜보다가 쪼그려 앉아 석호의 겨드랑이에 손을 끼고 일으켰다. 석호는 그런 손길에 못 이겨 고개를 들었다. 원장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 신부님께서는 항상 당신 얘기를 했죠. 나에게 아들은 없지만, 아들이 있다면 당신 같았을 거라고. 당신이 교구에서 인정을 받고, 바티칸에서 인정을 받았을 때 마치 자신의 일처럼 기뻐했죠. 어린아이처럼 말이죠.

석호는 멈추지 않는 울음 때문에 어깨를 들썩거리기만 했다. 원장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 자신을 멈추고, 자신의 소망을 이루어줄 사람이 바로 당신이라고 했죠. 하지만...

석호는 붉게 물든 눈을 들어 원장을 보았다. 원장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하셨죠.

그러고는 주변을 한 번 훑어보며 말했다.

- 이곳은 최 베드로 신부님께서 미리 안배해 놓으신 곳이에요. 이런 일이 있을 거라며 항상 저에게 말씀하셨죠. 아이들만은 무사히 구해야 한다고.

석호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원장은 그런 석호에게 다짐하듯이 말했다.

- 이제 신부님 몫이에요. 최 베드로 신부님의 소망은.

석호는 고개를 끄떡였다. 그리고는 물기가 젖은 목소리로 물었다.

- 아이들은 어떻게?

석호의 말에 원장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 신부님께서는 미리 그것도 안배해 놓으셨죠. 일단 이곳으로 피한 후 일주일 후에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건너갈 예정이에요.

- 그들의 정보만은 넓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비행기로 이동한다면...

- 그것 역시 이미 준비되어 있어요.

석호는 원장의 말에 의구심이 들었지만, 최 베드로와 원장의 치밀한 계획을 알았기에 더 묻지 않았다.

- 오는 길에 혹시 뒤를 보셨나요?

원장의 뜻밖의 말에 석호는 고개를 저었다.

- 룸미러로 보니까 저희 보육원이 모두 불타고 있더군요.

- 그런 미친 짓을...

그러나 원장은 차분하게 말했다.

- 그들은 자신들만 뛰어나다고 생각하죠. 그것 역시도 생각한 대로였지요.

석호는 그녀의 말에 몹시 놀랐다. 원장은 이어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

- 정작 중요한 정보는 저기 있지 않은데.

그러더니 말을 잠깐 멈췄다가 조금 힘을 주어 말했다.

- 이제 당신도 알아야 하겠네요. 최 베드로 신부님의 뜻을.

석호는 원장의 말에 석호는 고개를 끄떡였다.

- 저희 보육원에서 불치병, 난치병에 걸린 아이들은 이미 다른 시설로 옮겼죠.

- 그럼 저 아이들은...

- 최 베드로 신부님의 자식들입니다.

석호는 그 말에 충격을 받았다.

- 그게 무슨..

- 최 베드로 신부님은 자신의 몸에 있는 존재가 악령이 아니라는 걸 알고 계셨죠. 그것은 저들이 만든 바이러스였으니까요.

- 알고 계셨군요.

- 하지만 저는 자세히는 모르죠. 저까지 위험해지는 걸 막기 위한 신부님의 노력이었죠.

- 그게 저 아이들과 무슨 관계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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