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축계(逐界)-쫓겨난 이들의 세계-276화 (276/309)

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축계 Pilot - 8. 악몽의 끝(1)

8. 악몽의 끝

석호는 지호의 소식을 듣고 올라가기 위해 차에 시동을 걸었다. 그런데 그 때 섬김 보육원으로 고급 자동차들이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석호는 그 차들을 보자 무언가 이상했다. 보통 후견인이라면 낮에 오는 것이 보통인데 한밤중에 고급 승용차가 여러 대 들어가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낮에도 고급 승용차들이 들락거리긴 했지만, 그다지 중요한 인물들처럼 보이진 않았다.

보통 그런 차들은 뒤에 신문사 차나 방송국 차와 같이 들어가기 때문이었다. 석호는 스마트폰을 꺼내 자신은 가지 못할 것 같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는 섬김 보육원 쪽으로 몸을 숨긴 채 다가갔다. 그리고 세워진 차의 번호를 하나 외워 대장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대장에게는 금방 답장이 왔다.

- 톰슨 병원.

석호는 확신을 했다. 그래서 조용히 건물 안으로 잠입을 했다. 안쪽에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정확하게 들리진 않았지만, 누군가와 다투는 듯한 고성도 간간이 들렸다. 석호는 그 소리가 나는 곳으로 조용히 발걸음을 옮겼다.

석호가 복도로 돌아들어가려 할 때 원장실 앞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석호는 하는 수 없이 건물 밖으로 나와 원장실 창문 쪽으로 다가갔다.

창문이 닫혀서인지 말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석호는 창문 근처로 최대한 머리를 가까이 댔다.

그러나 방음벽을 통해 소리가 들리듯이 정확하게 들을 수 없었다. 석호는 고개를 내밀고 창문 틈에 귀를 가까이 가져가 대다가 안쪽의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석호는 누군지 확인할 새도 없이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석호와 눈이 마주친 사람은 아무 반응이 없었다. 오히려 창문 쪽으로 오며 크게 말했다.

- 덥군요. 창문 좀 열겠습니다.

뜻밖에도 최 베드로 신부였다. 그는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 톰슨 병원은, 아니 당신들은 나만 실험 대상체로 사용한다고 했으면서 우리 아이들에게까지 손을 뻗쳤소. 그건 약속을 어긴 것이 아니오.

최 베드로의 말에 석호는 충격을 받았다. 이미 짐작하고 있던 것이었지만, 최 베드로의 입으로 직접 확인을 하니 그 충격이 더 컸다.

최 베드로의 말에 앉아 있던 한 남자가 말을 했다.

- 다시 말씀드리지만, 치료의 차원이었습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그 아이들은 모두 선천적인 난치병을 안고 태어난 아이들이 아닙니까?

- 난치병을 앓고 있는 것이지 마루타는 아닙니다.

최 베드로의 말에 앞에 앉은 남자가 탁자를 탁 치며 말했다.

- 마루타라뇨! 더 나은 치료를 위해 임상시험을 한 것뿐이오.

- 허울 좋은 임상시험 아니오. 지호는 무슨 실험의 대상이었소?

최 베드로가 버럭 역정을 내며 말했다.

- 뇌에 있는 해마가 선천적으로 문제가 있었소. 그걸 제거하는...

- 거짓말 마시오. 당신들이 그 아이한테 한 짓을 내가 모를 줄 아시오?

그러자 톰슨 원장은 크게 웃으며 말했다.

- 저희 수술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군요.

- 당신들 수술은 내 알 바 아니오. 단지 우리 아이들...

최 베드로의 말을 끊고 어눌한 말투의 남자가 말을 꺼냈다.

- 원대한 계획의 일부요. 그 아이들은 새 생명과 더불어 위대한 계획을 실천하는 아이들이고.

최 베드로는 그 남자를 쏘아보았다. 그러자 톰슨 원장이 그 사람을 소개했다.

- 다나카 이치로(田中一郞)상입니다. 동북아재단의 이사장님이시지요.

그 말에 최 베드로는 입을 다물었다. 다나카 아치로는 그런 최 베드로를 보면서 말했다.

- 아이들에 대한 사랑은 이해합니다. 최 베드로 신부님께서도 저희의 뜻에 공감하셔서 선뜻 저희 제의를 받아들이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 당신들의 뜻이 어떤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저 역시 병을 안고 태어나는 아이들을 치료해서 새 삶을 준다는 그것에 찬성합니다. 그렇지만 버려진 우리 아이들을 대상으로 임상실험처럼 하는 것은 용납하지 못하겠소.

다나카 이치로는 크게 숨을 한 번 내쉬고는 말을 이었다.

- 그 아이들은 모두 난치병이오. 어차피 치료나 수술은 모두 임상 실험이 될 수밖에 없는 일이오.

그 말에 최 베드로는 버럭 소리를 쳤다.

- 그 아이에게 시신경을 심어주는 것이 무슨 관계가 있소?

그러자 다나카 이치로의 입이 씰룩거렸다. 그리고는 최 베드로에게 소리쳤다.

- 당신이 수술의 내용을 어떻게 알아?

최 베드로는 그 말을 비웃으며 말했다.

- 나도 당신들만큼은 정보통을 갖고 있어. 그리고 당신들의 행동을 파악하고 있고.

톰슨 원장은 그의 말에 다나카의 귀에 조그맣게 속삭였다. 다나카는 조금 놀란 표정이었지만, 이내 평정심을 되찾았다.

- 그 정보통이 어디 있는지 대충 알겠군. 정보원에게서 들었나? 윌슨인가?

그의 말에 최 베드로는 뜨끔했지만 그런 내색을 하지 않고 코웃음을 쳤다.

- 윌슨? 나도 당신들만큼 깊이 관여해 있다고만 말해 두지.

다나카는 최 베드로의 말에 잠시 고개를 끄떡이다가 말을 이었다.

- 그렇다면 우리의 목표를 잘 알고 있을 텐데.

최 베드로는 입을 꾹 다물고 그를 노려보았다.

- 우리의 목표를 위해 그 아이들은 디딤돌일 뿐이야. 당신도 그걸 인정했으니까 병원으로 보낸 것일 테고.

- 이 아이들은 실험 대상이 아니야! 나만 실험 대상이지! 그걸 인정한 거였어!

그러자 다나카는 고개를 저었다.

- 당신은 크게 잘못 알고 있군. 당신이 인정을 한 그 순간 당신과 관계되는 모든 것은 다 귀속되는 거야.

- 그 아이들은 내 것이 아니야!

- 아니지. 아니야. 당신이 보호하고 있으니까 그 아이들도 해당되는 거지.

다나카의 말에 최 베드로는 충격을 받았다. 자신은 그저 선의로 자신을 실험체로 쓰는 대신 아이들을 고쳐 주리라고 믿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가 보호하는 모든 아이들이 그들의 실험 대상이었던 것이었다.

- 이 놈! 그런 억지가 어디 있어!

다나카는 비웃으며 말했다.

- 그건 억지가 아니야. '사실'일 뿐이지.

그 말에 최 베드로는 몸을 날려 다나카에게 주먹을 뻗었다. 그러나 최 베드로는 그 옆에 있던 경호원들에게 쉽게 제압이 되었다.

- 옛날부터 조센징들은 말귀를 못 알아들어. 하긴 그러니까 지금도 이렇게 살지.

다나카는 좌우에 있던 경호원들에게 말했다.

- 좀 아깝긴 하지만, 너무 깊이 들어왔어. 처리해!

다나카의 말에 톰슨 원장이 다나카를 쳐다보며 조그맣게 말했다.

- 중요한.. 그 분께... 여쭤봐야 되지 않을까요?

하지만 톰슨 원장의 말에 다나카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 이미 다른 실험체를 구했으니까 괜찮아.

그러자 옆에 있던 경호원들이 최 베드로를 붙잡고 밖으로 끌었다. 최 베드로는 끌려가지 않기 위해 몸부림을 치다가 경호원에게 복부를 강하게 얻어맞았다.

최 베드로는 몹시 고통스러운지 신음을 흘렸다. 석호는 안의 상황에 긴박하게 돌아가자 열린 문을 통해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창문을 통해 석호가 들어오자 안에 있던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석호는 최 베드로의 왼쪽 팔을 잡고 있는 경호원을 발로 걷어 찬 후 최 베드로를 빙글 돌아 오른쪽 경호원의 오금을 주먹으로 후려쳤다.

불의에 일격을 당한 경호원들은 순간적으로 최 베드로를 놓쳤다. 석호는 최 베드로의 허리를 부여잡고 문 밖으로 뛰쳐나갔다.

옆에 있던 톰슨 원장과 다나카는 최 베드로를 잡을 생각도 하지 못하다 쓰러져 있는 경호원과 밖에 대기 중인 경호원들에게 소리를 쳤다.

- 빠가야로. 빨리 잡아라! 죽여도 된다!

밖에서 대기하던 경호원들은 순간적으로 무슨 일인가 싶어 주저하다가 자신들 반대편으로 도망치는 두 사람을 보고는 재빨리 뛰었다.

그리고 그들을 향해 총을 쏘기 시작했다. 석호는 최 베드로를 끼고 옆으로 돌았다. 벽 쪽으로 몸을 돌릴 찰나에 총알 하나가 최 베드로의 옆구리에 꽂혔다.

- 윽..

최 베드로는 신음을 흘렸다.

- 신부님.. 신부님..

석호가 최 베드로를 끌며 그를 부르자 최 베드로는 힘겹게 말했다.

- 저... 저기 왼쪽에 있는 방으로....

석호는 앞에 보이는 왼쪽 방으로 들어갔다. 석호는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그고는 옆에 놓여 있는 책장을 옮겨 문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책상도 그 위에 포개놓았다. 그리고는 피를 흘리고 있는 최 베드로 옆에 앉았다.

총알이 최 베드로의 옆구리에 깊이 박혔는지 옆구리에서 피가 끊임없이 새어나왔다. 최 베드로는 힘겹게 말했다.

- 책장... 책장 옆에 버튼을... 누르게!

석호는 최 베드로가 가리킨 책장 옆을 살펴보았다. 소화전 버튼 같은 것이 있었다. 그것을 힘을 주어 누르자 보육원 안에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밖에서 석호와 최 베드로를 쫓던 사내들은 사이렌 소리에 깜짝 놀라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사이렌 소리에도 각 방은 조용하였다.

분명 자고 있는 아이들이 뛰쳐나오고 했어야 하는데 오히려 너무 조용해 사내들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무슨 일인가를 파악해야만 했다.

하지만 금방 정신을 차리고 최 베드로와 석호가 들어간 방 앞에 서서 문을 열었다. 문이 잠겨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