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축계(逐界)-쫓겨난 이들의 세계-274화 (274/309)

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축계 Pilot - 7. 한밤의 추격전(6)

지호는 혼자 푸념을 하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찌되었건 이제부터 한 방향으로만 달리다 보면 어딘가가 나오겠지 하는 생각이었다.

그것이 병원이건, 아니면 경비원들이 모여 있는 장소이건. 그 때 일은 그 때 생각하기로 하고 지호는 몸을 일으켜 재빨리 달리기 시작했다.

한참을 달리다 보니 어느새 뒤에서는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지호는 내심 기뻐하며 좀 더 힘을 주어 앞으로 내달렸다.

'턱'

그 순간 지호는 무언가에 다리가 걸려 앞으로 고꾸라졌다. 다행이도 풀밭이이서 지호는 쭉 미끄러졌을 뿐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

지호는 일어나서 자기가 뭐가 걸렸는지 보기 위해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화들짝 놀랐다. 쓰러져 있는 경비원이었다.

그 순간 지호의 뒷덜미를 잡아채는 손길이 있었다. 지호는 경비원의 모습에 놀라 미쳐 피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이제는 꼼짝없이 잡혔구나 하는 생각에 체념을 했다. 그의 뒤에서는 가쁜 숨을 몰아쉬는 사내의 숨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뜻밖의 목소리가 들렸다.

- 헉헉.. 새끼. 달리기는 되게 빠르네.

지호는 그 목소리에 놀라 몸부림을 치며 고개를 돌리려고 했다.

- 헉헉.. 너 미쳤냐?

지호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몸부림을 치며 말했다.

- 놓고 얘기해요. 미치다뇨...

지호는 자신의 목덜미에서 손의 힘이 약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았다. 지호는 반가운 표정으로 그 사람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 철구 아저씨.

- 새끼. 반가워 하긴. 아무튼 너 미친 거냐고?

그 말에 지호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냐는 표정으로 철구를 보았다.

- 미치다뇨? 전 멀쩡한데요?

그 말에 철구는 고개를 끄떡이고 말했다.

- 그래. 그냥 봐도 미친 것 같진 않군.

그리고는 지호의 손을 끌며 말했다.

- 갈 길이 머니까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하고. 여기저기에 매복하고 있는 놈들이 있어. 대충은 정리하긴 했는데, 아직 더 있는지 모르니까 지금부터는 조용히 따라와.

철구는 지호의 손을 놓고는 몸을 숙인 채 나무들 사이를 걸었다. 급하게 걷는 것도 아닌데 속도가 대단히 빨랐다. 지호는 그런 철구를 따라가기 위해 뛰듯이 걸었다.

- 숙여.

철구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호는 그 말에 본능적으로 목을 움츠리며 숙였다. 그 때 철구가 갑자기 앞으로 튀어 나가더니 한 남자의 목덜미를 후려졌다.

그러자 그 남자는 기절하듯이 쓰러졌다. 철구는 지호 쪽을 보고 손짓을 했다. 지호는 철구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철구는 다시 나무들 사이를 빠르게 걸었다. 지호 역시 최대한 소리를 죽여 가며 그의 뒤를 따랐다. 철구는 잠시 멈춰 사방을 한 번 훑어보더니 천천히 걸어갔다.

지호는 철구가 급한 중에 그렇게 천천히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 의아했다. 철구는 뒤로 손짓을 하였다. 지호는 재빨리 철구 옆으로 다가갔다.

- 이 아래로 한 20미터 쯤 내려갔다가 오른쪽 방향으로 뛰어 가. 뒤도 돌아보지 말고.

- 아.. 아저씨.

- 당장!

철구의 말에 지호는 철구가 말한 대로 뛰기 시작했다. 철구는 낙엽들 위로 발을 끌며 천천히 걸었다. 지호는 달리던 중에 멀리서 누군가 철구에게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 숲에서 나오십시오! 여긴 사유지입니다.

지호는 자신들이 그들에게 금방 발각될 것을 알고 자신을 먼저 피하게 했음을 알았다. 그 순간 멈춰서 철구 쪽으로 가고 싶었다.

그러나 가봤자 딱히 도움도 되지 않을 것을 알았다. 그래서 지호는 철구가 시킨 대로 무작정 달렸다.

철구가 가리킨 방향으로 달리다 보니 저 멀리에 철구의 승합차가 보였다. 지호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차 옆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차 문이 잠겨 있었다. 지호는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했다.

- 젠장.. 어떻게 하지...

지호는 불안한 마음에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우왕좌왕했다. 한편 철구는 두 손을 주머니에 꽂은 채 앞에 있는 사람들에게로 다가갔다.

- 여긴 사유지입니다. 지금 무단으로 침입을 하셨습니다.

앞에 서 있던 경비원 하나가 철구에게 말을 했다. 그러자 철구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말했다.

- 사유지라는 표시가 없던데. 그리고 나도 볼 일이 있어 왔시다.

그러자 경비원 중 높은 사람인 듯한 사람이 철구를 뚫어지게 보면서 말했다.

- 이 밤에 숲에 볼 일이 있어 왔다니 앞뒤가 맞지 않는군요.

그 말에 철구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 원래 볼 일은 숲에서 봐야 자연도 보호가 되지 않겠어요?

그러나 철구의 농담을 들은 채도 하지 않고 철구에게 경비원들이 다가섰다. 철구는 두 손을 주머니에서 뽑으며 손을 번쩍 들었다.

- 참나. 도와주라고 해서 왔더니 이거 완전히 범죄자 취급하는군.

철구의 말에 경비원 하나가 무전기를 통해 누군가에게 연락을 했다.

- 의뢰인이 최세현이라고. 미친놈 하나 잡아달라고 해서 왔더니만.

무전기를 통해 서로 말이 오갔다. 그러자 경비원 하나가 무전기를 철구에게 넘겨주었다.

- 누구 대리인으로 오셨다고요?

- 최세현이란 의사 대리인으로 왔시다. 그런데 당신이 누군지 먼저 밝히는 게 예의 아닌가요?

철구가 퉁명스럽게 말을 하자 의사는 자신의 신분을 말했다.

- 전 병원을 책임지고 있는 정 과장입니다.

- 아. 혹시 이정태라는 사람은 없수? 그 사람 찾아가 보라던데.

철구는 지호의 메시지를 떠올렸다. 철구는 이 정 과장이라는 자가 지호를 미치광이로 몬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순간 정태라고 여겨지는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 세현 씨 대리인으로 오셨다구요?

철구는 무전기에 대고 짜증난다는 듯이 말했다.

- 몇 번을 말해야 되는 거요. 참나.

철구의 말에 정태는 미안하다는 듯이 말을 했다.

- 세현 씨는 왜 오지 않았죠?

정태의 물음에 철구는 그 말에 어이없다는 말투로 얘기했다.

- 뭔 사정이 있으니까 심부름센터에 전화해서 대신 가서 미친놈을 잡아달라고 했겠죠. 저희 센터에서는 그 사정까지 묻지는 않거든요.

- 알겠습니다.

그 대답을 끝으로 무전기 너머에는 침묵이 흘렀다.

- 이봐요. 어이..

철구가 무전기에 대고 외쳤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 뭐 이런 지랄 맞은 의뢰가 다 있어. 씨발.

철구는 불같이 화를 내며 전화기를 들고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그러나 전화를 받지 않는 듯이 버럭 화를 내었다.

- 이건 또 뭐야. 의뢰를 했으면 뭐 사전에 연락을 하던가. 근데 왜 전화를 안 받아?

철구가 혼자서 버럭버럭 화를 내자 경비원 중 하나가 다가와서 말했다.

- 그 사람은 저희가 찾을 테니까 그만 돌아가시죠.

철구는 그 사람의 말에 전화를 끊고 말했다.

- 그럼 의뢰비는 어쩌란 거요?

그 중 책임자인 듯한 사람이 나서서 말했다.

- 그 사람은 저희가 찾아서 연락을 드릴 테니까 연락처를 남겨 주시면 됩니다. 그러면 되겠습니까?

그 말에 철구는 능글맞게 웃으며 말했다.

- 뭐 그렇다면야. 하! 오늘 공돈 벌었네.

철구는 안주머니에서 명함을 하나 꺼내 그 사람에게 건넸다.

- 불륜 현장 촬영, 미행, 뭐든 시키면 다합니다. 필요하시면 연락 주세요.

책임자인 사람은 명함을 한 번 흘끗 보더니 주머니에 넣었다. 철구는 그 사람들을 놔두고 뒤로 돌아 차 있는 곳으로 갔다.

자신에게 맞았던 사람들이 깨어났을 때 생각한 변명을 하지 않아도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정태라는 사람이 이 일과 정말 관련이 있는지 마음속으로 가늠을 해 보았다. 아직 아무 것도 확신이 서지 않았다.

혹시 정태라는 자는 이들과 다른 사람일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아직 아무 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섣불리 행동할 수는 없었다.

지호는 차 앞에서 철구를 기다렸다. 차 옆에 숨어 있다가 저 멀리서 누군가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선뜻 나가려고 했다.

그러나 외양이 철구와는 사뭇 달랐다. 지호는 깜짝 놀라 어떻게 할지 고민을 했다.

- 저 차 뭐야?

- 저기 차가 왜 서 있는 거야?

경비원 두 사람이 철구의 승합차 옆으로 다가왔다. 오래된 똥차임을 확인하고는 뒤에 번호판이 있는지 플래시로 비춰보았다.

폐차 직전의 차처럼 보였기에 누군가가 여기에 버린 것으로 생각했다. 경비원 중 한 사람은 플래시를 들어 안을 들여다보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