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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계(逐界)-쫓겨난 이들의 세계-273화 (273/309)

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축계 Pilot - 7. 한밤의 추격전(5)

지호는 몸을 일으키며 앞으로 보았다. 두 명의 남자가 지호를 쳐다보고 있었다. 두 사람은 모두 검은색 양복 차림이었다.

한 사람이 급하게 무전기에 대고 말했다.

- 목표물 찾았다. 호수 근처. 다시 한 번 말한다. 호수 근처.

지호를 잡으려던 남자가 지호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 순순히 갑시다. 더 이상 고생시키지 말고.

그 남자들은 지호가 병원에서 탈출한 환자로 알고 있었다. 지호는 그들에게 자신의 얘기를 해봤자 씨알로 먹히지 않을 걸 알고 있었다.

지호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몸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었다. 그리고는 그들에게 말했다.

- 더 이상 도망가기도 힘드니까 그럽시다.

그리고는 지호는 손에 있는 스마트폰을 보았다. 또다시 '전송을 실패했습니다.'가 보였다.

지호는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확인 버튼을 누른 후 지호를 향해 다가오는 남자에게 스마트폰을 던져버렸다. 그리고는 그들을 밀치고 앞으로 향해 도망쳤다.

앞 쪽에 호수가 있다는 얘기를 들어서였다. 지호에게 아무 생각 없이 다가오다가 핸드폰을 이마에 정통으로 맞은 사내는 악 비명을 지르며 머리를 감싸고 주저앉았다.

그 옆의 사내는 그 모습을 보고 재빨리 지호에게 다가왔지만, 지호가 강한 힘으로 그를 밀쳐내자 호수 쪽으로 뛰는 모습을 벌러덩 넘어진 채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 목표물이 호수 쪽으로 도망쳤다. 호수 쪽으로 이동하라.

넘어진 사내가 무전기에 대고 외쳤다. 옆에 무전기를 맞은 사내가 고개를 들자 이마에서 피가 흘렀다.

- 이 새끼. 잡히면...

그러나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옆에서 무전을 치던 사내가 일어나 말했다.

- 욕할 시간에 뛰어가서 잡아.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지호가 사라진 방향으로 뛰기 시작했다. 지호는 그 둘 사이를 헤치고 무작정 앞으로 뛰었다.

얼마쯤 달리자 숲속의 건조한 바람이 아닌 습하고 서늘한 바람이 지호의 뺨에 스쳤다. 지호는 그 바람을 맞으며 앞으로 내달렸다. 그러자 얼마 후 호수에 도착했다.

사방은 어두웠지만, 흐린 달빛과 별빛만으로도 그 호수가 대단히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호는 저도 모르게 감탄을 하다가 멀리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와 재빨리 호수 안으로 몸을 던졌다.

지호는 물소리가 나지 않게 최대한 조심스럽게 호수 안으로 들어갔다. 호수는 의외로 깊어서 지호는 물속으로 자신의 몸을 잠글 수가 있었다.

지호가 얼마간 헤엄을 쳐서 호수의 중심부 쪽으로 다가갔을 때 멀리서 하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는 한 쪽에서 보트의 모터소리가 들려왔다.

지호는 호수 한가운데에서 난감한 처지에 빠졌다. 지호는 가급적 소리가 나지 않게 잠수를 하며 호수 반대쪽으로 향해 갔다.

세현은 서둘러 준비를 하고 병원으로 가려고 준비하던 도중에 대장의 메시지를 보고는 충격을 받았다. 비록 오타가 많은 내용이지만 정신착란을 일으킨 사람의 메시지라고 볼 수는 없었다. 세현은 그 메시지를 읽고 또 읽었다.

'병원 의사가 저를 잡으려 했습니다.'

세현은 갈피를 잡기가 힘들었다. 그 때 철구에게 전화가 왔다.

- 할매, 이게 무슨 말이야?

세현은 고개를 저으며 말을 했다.

- 저도 잘은... 그 병원은 그 곳과 관련이 없는..

철구는 그런 세현의 마음을 눈치 챘는지 잠시 침묵을 하다가 물었다.

- 어디야?

- 사무실 앞이에요.

세현은 무언가 잘못을 한 사람처럼 대답을 했다.

- 잠깐 기다려.

철구는 세현에게 기다리라고 한 후 빨리 차를 몰아 사무실 앞으로 갔다.

세현은 정태에게 다시 전화를 하고 싶었지만, 그 병원의 의사가 그들과 연결이 되어 있다면 정태 역시 그들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20분 정도 지나자 철구의 낡은 승합차가 세현의 차 앞에 섰다. 그리고는 안에서 꾀죄죄한 차림의 철구가 세현의 차 쪽으로 걸어왔다.

그리고는 세현의 차문을 두드렸다. 멍하게 있던 세현은 철구의 노크 소리에 화들짝 놀라 철구를 쳐다보았다.

철구는 그런 세현의 모습을 보고 입맛을 다셨다. 차문이 열리고 철구가 차에 탔지만, 두 사람은 말이 없었다. 이윽고 철구가 먼저 입을 열었다.

- 신부님은 지금 고아원 앞에 잠복 중이야.

철구의 말에 세현은 아무런 대구를 하지 않았다. 철구 역시 무슨 대답을 바라고 말한 것은 아니었다. 철구는 다시 입을 열었다.

- 그 병원에서 지호가 쫓기고 있다면 그 병원도 그 놈들하고 연결된 거 아냐? 그렇다면..

철구의 말에 세현은 여전히 대답을 하지 않았다. 세현은 잠시 생각을 하다가 전화기를 꺼내 전화를 걸었다. 철구는 그 행동을 보고 한 마디 했다.

- 애인한테 거는 거라면 지금은 타이밍이 안 좋아. 어찌된 건지 알아보는 게 우선이야.

세현은 아무 대답 없이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 스피커에서는 익숙한 기계음이 들렸다.

- 대장, 확실한 거예요?

평소 어리광쟁이 모습이었던 대장이었지만, 이번만은 그의 기계음도 차분하게 들렸다.

- 발신 지역 IP, 전화 번호, GPS 위치 모두 새마음 병원임.

대장의 말에 세현은 무언가 생각을 하는 듯 눈을 감았다. 철구는 대시보드를 손가락으로 두드리다가 말을 했다.

- 일단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지 알아보는 게 우선인 것 같군. 할매 당신이 갔다가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내가 가서 상황을 알아볼게.

철구의 말에 세현은 멍한 표정으로 차창 밖을 쳐다보았다.

'만약 정태가 그들과 한 편이라면...'

세현은 마음이 안정이 되지가 않았다. 아직 확실한 건 아무 것도 없다. 하지만 정태가 그곳에서 일을 하고 있다.

더욱이 그는 자신이 그동안 믿고 지냈던 사람이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리고 자신의 병을 고쳐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사람이었다. 한 때 자신을 위해 생명의 위험도 겪었던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결국 자신을 이용하기 위한, 아니 더 나아가 자신을 이렇게 만든 사람들과 한 패일 수도 있다는 것을 믿을 수도 없었다.

- 정태 씨는 관련이 없을 거에요.

세현의 말에 철구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 그럴 수도 있지만, 일단 조심하는 게 좋아.

철구의 말에 세현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 아니에요. 그 사람은...

철구는 그런 세현을 쓸쓸한 눈으로 보았다. 세현은 철구의 그런 눈에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 아닐 거에요.

세현의 말에 철구는 세현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 그 병원으로는 내가 가 볼 테니까 어디 가서 쉬고 있어. 만약 지호 녀석이 미쳐서 그런 개소리를 했다면 내가 시체로 데려올 테니까.

철구가 할 수 있는 위로는 그것뿐이었다. 세현은 그런 철구가 고마웠다. 철구는 세현의 차를 지하 주차장으로 옮기고 자신의 차에 세현을 태웠다. 그리고는 새마음 병원으로 가는 길에 있는 모텔에 세현을 내려줬다.

- 잠깐만 여기서 쉬고 있어. 지호 데리고 금방 올게.

세현은 모텔 앞에서 내리면서 고개를 끄떡였다. 차문을 닫기 전에 세현은 슬픈 눈으로 철구에게 말했다.

- 조심하세요. 그리고..

철구는 그런 말이 어색했지만, 세현을 향해 고개를 끄떡였다.

- 알았어. 금방 올게.

세현이 차에서 내리자 철구는 액셀러레이터를 밟아 속도를 올렸다.

- 어떤 새끼가 구라를 치는지 가보면 알겠지.

병원 한참 앞에서 철구는 차를 세웠다. GPS 지도로 본 병원이 엄청나게 넓다는 것을 알았다. 이런 곳에서 지호를 찾기란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알았다.

- 뭐 이렇게 넓어. 이래서야 어디...

철구가 차에서 내리고 병원 앞으로 걸었다. 이런 병원은 대개 CCTV가 많이 달려 있어 자신이 차를 타고 들어가면 금방 알아챌 거라는 걸 철구는 직감적으로 알았다.

그래서 병원으로 들어가는 큰 길이 아니라 숲길 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숲길을 한참 걸어 가다보니 멀리서 사람들이 외치는 소리와 모터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 저 쪽이군. 짜식. 요란하게도 도망가는군.

철구는 숲길에 몸을 숨겨가며 그 소리가 나는 쪽으로 걸어갔다.

지호는 물속에서 이명(耳鳴)처럼 들리는 소리에 몸을 이리저리 돌렸다. 숨을 쉬기 위해서 잠깐 동안 머리를 내미는 것 외에는 잠수를 하며 이동을 했다.

어느 쪽이 올바른 방향인지는 모르지만, 소리가 나는 쪽 반대로 헤엄을 쳤다. 얼마동안을 왔는지 모르지만 어느새 수심이 낮아졌다. 호수가로 온 것이었다.

지호는 몸을 돌려 다시 물속으로 들어갈까 하다가 호수 중심에 있는 보트에서 플래시 불빛으로 호수 안으로 살펴보는 이들이 있어 밖으로 나오기로 하였다.

몇몇 사람들은 호수에 뛰어들어 이리저리 헤엄을 치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지호는 물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스럽게 물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귀를 세워 주변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지 들으려 했다. 몸을 엎드린 채 포복으로 앞으로 기어 나왔다.

주변에서 멀리서 들리는 소리 외에는 들리는 소리가 없다고 느껴지자 지호는 다시 몸을 일으켜 숲 안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방향을 가늠하기 힘들었지만, 호수를 건너 올라왔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소리가 들리지 않는 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몸이 물에 젖어서인지 달리기 불편했다. 또한 신발 안에 물이 차 있어 찌꺽찌꺽하는 소리가 귀에 거슬리게 들려왔다.

달리다 보니 몸에서 열이 올라 몸에서 증기처럼 수증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지호는 조용히 귀를 기울여 소리를 들어보았다.

아직까지는 호수 쪽에서 사람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지호는 잠시 나무에 기대어 앉았다.

어디로 빠져나가야 하는지 가늠이 되지도 않았고,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조차 알 수 없었다. 언제까지나 이렇게 숨바꼭질하듯이 숨어 있을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시간을 가늠하긴 힘들었지만, 몇 시간은 흐른 것 같았다. 그리고 앞으로 몇 시간 후면 해가 떠오를 것이고, 그러면 사람들이 자신을 찾기가 더욱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호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하늘의 별이 반짝거렸다. 그러면서 옛날 사람들은 별을 보고 방향을 알아냈다고 한 것을 떠올렸다.

하지만 지호에게는 그런 지식이 없었다. 하늘의 별은 그저 하늘의 별일뿐이었다.

- 젠장. 지구 과학 공부 좀 열심히 해 두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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