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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계(逐界)-쫓겨난 이들의 세계-269화 (269/309)

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축계 Pilot - 7. 한밤의 추격전(1)

7. 한밤의 추격전

다음 날 아침 석호는 모니터 앞에 앉아서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카메라는 그런 석호가 걱정스러운 듯이 살짝 움직였고, 석호는 그런 카메라를 향해 싱긋 미소를 지어주었다.

- 딩동. 데이터가 워낙 방대하고, 시스템이 복잡하다.

대장의 말에 석호는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모니터를 보며 말했다.

- 알고 있어요. 대장한테 이런 부탁하는 게 미안하네요.

석호의 말에 대장이 정색을 하며 말을 했다.

- 삐삐. 아니다. 절대 아니다. 이 정도는 내가 할 수 있다. 단지 시간이 조금 걸릴 뿐이다.

모니터 앞에 앉아서 모니터와 대화하는 석호를 본 세현은 아직도 그들의 모습이 적응이 되지 않았다. 세현은 석호 옆으로 다가와 말했다.

- 신부님께서는 어색하지 않으세요? 저는 아직도 조금 어색해요.

- 어색하긴요. 단지 외물로 보이는 것이 컴퓨터일 뿐 그 너머에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면 괜찮습니다.

- 그렇군요. 그래도 저는 그렇게 생각하기가 어려워서요. 호호호.

카메라는 세현 쪽으로 돌아가서 세현의 웃는 얼굴 중 이상한 얼굴만 캡처를 해서 모니터 화면에 보여주었다.

석호는 그 장면에 깜짝 놀랐지만, 세현은 웃으면서 한 마디 했다.

- 또 질투가 시작되셨네요. 대장. 호호호.

세현은 그 말 뒤에 석호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 최 베드로 신부님에 대한 것은 어떻게 하시려고요?

- 저도 나름대로 조사 중입니다만, 물론 대부분의 정보는 대장에게 얻고 있지만요. 만만치 않네요.

석호는 조금은 답답한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 어쨌든 섬김 보육원이 천주교 재단과 연결된 것만이 아니라 다른 쪽과도 연결되어 있다는 건 알았잖아요.

석호는 확신에 찬 어조로 말을 했다.

- 네.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라 최 베드로 신부님께서 연결 고리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분은 절대 아이들을 그렇게 팔아넘기실 분이 아니지요. 협박이나 위협 따위에는 굴하지 않으실 분이지요.

세현은 의자에 앉아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가 석호에게 질문을 했다.

- 그렇다면 도대체 무슨 일인 거죠?

석호는 종이에 무언가를 써가며 말을 했다.

- 철구 씨처럼 분석을 해 본다면, '섬김 보육원, 지호, 톰슨 병원, 외국의 자선 단체, 불법 시술, 최 베드로 신부' 이렇게 되나요?

세현은 석호가 쓴 내용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 어떤 연결 고리가 있을까요?

세현의 말에 석호는 크게 한숨을 한 번 쉬고는 말을 했다.

- 다른 조합들은 모두 하나로 이어질 수 있는데, 문제는 최 베드로 신부님입니다. 이 연결 조합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람입니다.

- 혹시...

세현은 그에게 최 베드로 신부가 어떤 존재인지 알기에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 그 분이 '어떤 이유' 때문에 그들을 돕거나, 혹은 '바티칸'에서 자신에게 한 행동에 대한 반감으로 그런 것은 아닐까요?

세현의 말에 석호는 고개를 저으며 말을 했다.

- 음... 앞부분은 일리가 있지만, 뒤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 분은 바티칸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 분을 조사한 사람은 저였고, 지난번에 만났을 때에도 여전히 사제복을 벗지 않으셨지요.

- 네. 그렇다면 어떤 이유일까요?

석호는 그녀의 질문에 잠깐 생각을 하다가 말을 꺼냈다.

- 신부님은 '악령'을 퇴치하는 일을 하셨죠.

- 악령이요?

세현은 어디선가 듣긴 했지만 석호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은 몰랐다.

- 최 베드로 신부님은 바티칸에서 인정한 엑소시스트였습니다. 그리고 그 분의 제자가 저와 마르티노라는 신부였죠. 그 친구는 최 베드로 신부님을 따라 여러 엑소시즘을 거행했는데, 저는 그 때 일본에 있을 때라 같이 하지 못했지요.

석호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 그런데 어느 날 저에게 바티칸으로 빨리 복귀하라는 명령서가 왔습니다. 마르티노 신부는 어린 소녀와 간음을 하고 죽었고, 최 베드로 신부 역시 어린 소녀와 간음을 저질렀다며 조사 위원으로 참여하라고요.

- 가.. 간음이요?

세현의 반응에 석호는 고개를 끄떡였다.

- 저는 믿지 않았죠. 저는 최 베드로 신부님을 누구보다 잘 알았죠. 그리고 마르티노 역시 저는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확신을 했죠.

- 그럼 사실이 아니었겠네요.

세현은 석호의 말에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 아니요. 마르티노는 중국에서 어린 소녀와 간음을 한 채 미라처럼 죽었고, 최 베드로 신부님 역시 어린 소녀와 간음을 한 사실이 드러났죠.

석호의 입에서 나온 말에 세현은 몹시 놀랐다.

- 어.. 어떻게 그럴 수가...

석호는 세현의 반응에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 거기에는 복잡한 일이 있었습니다. 실상은 중국에 있는 한 소녀가 악령에 사로잡혔다는 제보를 받고 마르티노가 그 곳으로 갔죠. 그리고 마르티노가 죽은 것을 알고 최 베드로 신부님께서 그 일을 다시 맡았죠. 그런데 그 '악령'에 사로잡힌 것과 같은 행동을 하는 여자 아이가 최 베드로 신부님을 협박하면서 제안을 했었죠.

- 제안이요?

세현은 석호의 말에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 네. 그 제안은... 만약 저라면 어떻게 했을까 고민했습니다만... 저도 최 베드로 신부님이나 마르티노와 같았을 것입니다.

- 그 제안이 뭐죠?

세현의 질문에 석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무서운 내용이었다.

- 여인을 범하라! 그러면 사라지마!

- 무서운 일이군요.

세현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다음 이야기를 들었다.

- 아무튼 소녀의 삶을 가엾게 여긴 마르티노나 최 베드로 신부님은 자신은 소녀를 범하는 것이 아니라 악령을 퇴치하는 것이라고 여겼죠. 하지만 마르티노는 죽음에 이르렀고, 최 베드로 신부님은 살게 되었죠.

- 그게...

석호는 다소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했다.

- 나중에 밝혀진 바로는 그 소녀들은 악령에 사로잡힌 게 아니라 다른 이유가 있었던 거라고 하더라구요.

- 아..

석호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했다.

- 이 일은 최 베드로 신부님도 대강은 알고 계실 거라고 생각해요. 본인은 스스로 악령을 몸에 가두었다고 하셨지만, 그건 아니었거든요.

- 그렇다면 신부님은...

- 잘못이 없죠. 다만 어린 소녀와 마르티노는 실험에 의해 죽게 된 것이고, 최 베드로 신부님은 거기에 '파문'을 당하신 거죠.

석호의 말에 세현은 고개를 끄떡였다.

- 그래서 바티칸을 떠난 건가요?

- 나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제가 아니니까. 바티칸 밖으로 나가신 최 베드로 신부님을 찾으려고 저는 여기저기 수소문을 했지만, 종잡을 수 없었죠. 그러다가 지호에게 최 베드로 신부님에 대한 얘기를 들은 거죠.

세현은 그간의 사정을 알자 저절로 고개가 끄떡여졌다. 석호는 세현을 보며 다짐하듯 말을 했다.

- 제가 반드시 구해낼 겁니다. 그리고 최 베드로 신부님께서도 제가 이 일에 어느 정도 관여가 되어 있다는 걸 알고 계시는 듯 해요. 저한테 '이 일에서 손을 떼.'라고 말씀 하셨죠.

- 그렇다면 최 베드로 신부님도 그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확실하네요.

세현의 말에 석호는 고개를 끄떡였다.

- 그들을 돕는 쪽으로 연결되지는 않으셨을 겁니다. 제가 알고 있는 최 베드로 신부님은 자신의 목숨을 버리더라도 결코 아이들을 팔아넘기거나 할 분은 아니까요.

석호는 그러면서 뭔가 의심스럽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 진짜 의심스러운 사람은 보육원장이에요. 그녀는 마치 최 베드로 신부님을 성자(聖者)처럼 여기고 있는 것 같지만, 한편으로는 감시하는 듯한 느낌이었죠.

석호의 말에 세현이 말을 받았다.

- 그럼 혹시 그 원장이 아이들을 미끼로 후원을 얻어내면서 최 베드로 신부님을 속이는 건 아닐까요?

석호는 고개를 저었다.

- 아니 그것보다 훨씬 더 깊은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아요.

그 때 컴퓨터에서 딩동 소리가 나면서 화면에 문서 하나가 보였다.

- 삐삐. 힘들었다. 바티칸 서버를 또 뚫고 문서를 훔칠 줄은 몰랐다.

- 미안해요. 대장.

- 아니다. 신부님의 부탁이라면.

바티칸 명령서 RM3014#-712

1. 최 베드로의 모든 권한을 박탈한다.

2. 최 베드로는 사제직 파면과 함께 파문한다.

3. 그의 몸 안에 있다는 존재를 바티칸은 부정한다.

4. 그리고 그를 지근(至近) 거리에서 감시하는 요원을 배치한다.

교황의 서명이 있는 정식 명령서였다. 석호는 받아본 적이 없는 명령서였다. 그 다음 화면은 석호에게 더욱 충격적이었다.

최 베드로 신부를 감시하는 요원이 보육원장이었다. 석호는 더욱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게 바티칸과 연결이 되어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믿음의 한편이 무너지고 있음을 느꼈다.

- 설마, 아이들을 실험한 것도 바티칸인걸까?

하지만 석호는 그 의문에 대해 스스로 고개를 저었다. 바티칸이 그런 짓을 할 리가 없다.

더욱이 자신이 어렸을 적부터 보아오던 곳의 사람들이 그리할 리는 없을 것이라 믿었다. 석호는 다시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석호의 충격과는 다르게 세현은 라틴어로 된 편지 한 통에 석호가 침묵하는 것을 보고 무언가 중대한 일이라고 생각을 해서인지 조용히 있었다.

조용한 건 대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음 화면에서 나온 여인의 사진 역시 그들에게는 생소한 인물이라 석호의 마음을 가늠할 길이 없었다.

석호는 대강 그들 간의 관계를 머릿속으로 정리하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 대장. 부탁 하나만 더 할게요. 섬김 보육원 후원자와 후원하는 재단을 조사해 주겠어요? 그리고 후원인이나 재단과 연결된 병원이나 회사도 같이요.

- 삐삐.

석호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세현에게 말했다.

- 저 여자는 보육원 원장이에요. 그녀는 최 베드로 신부님을 감시하는 요원이지요.

석호의 말에 세현은 고개를 끄떡였다.

- 지호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어쩌면 이쪽 일이 더 중요할지 모르겠네요. 제가 없더라도 철구 씨한테 얘기해 주세요.

- 네.

석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섬김 보육원으로 갔다. 평소 그가 끌고 다니던 차가 아니라 다소 낡은 차로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차종이었다.

석호는 차 안에 앉아서 기다리기로 했다. 무언가 나타나길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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