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축계 Pilot - 6. 그 곳에서 있었던 일.(4)
석호가 혼자 무어라고 지껄이자 다들 석호를 보았다. 석호는 자신의 생각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 눈이 전구처럼 빛나는 사람은 '죽은 것'이죠. 하지만 최 베드로 신부님은 눈이 빛나지만 살아있다는 것은, 최 베드로 신부님도 실험체라는 의미가 될 수 있죠.
그 말에 철구가 고개를 끄떡였다.
- 최 베드로 신부는 무슨 실험체일까요?
그러나 그 말에 석호는 고개를 저었다. 지호 역시 실험체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라 가만히 있었다.
그 때 석호가 가져온 노트북에서 삐삐 소리가 들렸다. 석호는 노트북을 책상 위에 놓고는 커버를 열었다.
모니터에는 프롬프터만 덩그러니 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동영상이 하나 나왔다. 세현의 사무실을 누군가가 뒤지는 동영상이었다.
그리고는 MRI 사진을 몽땅 챙기고는 여기저기를 흩뜨려놓고는 컴퓨터 모니터를 바닥에 집어 던지는 장면까지 나왔다.
- 삐삐. 여기까지 녹화된 내용임.
모두 동영상에 집중하다가 동영상이 끝나자 침묵했다.
- 마스크를 쓰고 모자를 뒤집어쓰고 있어 신원 확인은 불가능했지만, 체형이나 특징들은 모두 기록해 놓았다.
노트북에서 나오는 소리에 철구는 짜증이 밀려왔다.
- 우리까지 알았을까?
그러자 컴퓨터는 삐삐 소리를 내며, 줌 화면이 나왔다.
- 우리가 모일 때, 주변 CCTV이다. 우리에 대한 것은 모르는 것 같다. 컴퓨터 정보도 지호에 대한 것만 검색을 했다.
그러고는 세현의 컴퓨터로 지호에 대해 검색한 내용을 쭉 보여주었다.
- 제길...
철구가 짜증을 내자 세현이 한 마디 했다.
- 저는 아무렇지 않게 행동해야겠군요. 어차피 저 역시 그들이 감시하는 대상일 수 있으니까요.
그 말에 석호가 말을 이었다.
- 세현 씨는 가셔서 경찰에 신고하시고, 일단은 정보가 어디에서 노출되었는지 파악하는 게 중요하니까 당분간은 세현 씨는 손을 떼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석호의 말에 철구 역시 고개를 끄떡였다. 그러다가 철구가 생각난 듯이 말했다.
- 저 녀석 퍼즐은 거의 완성됐어.
철구의 말에 세현과 석호, 지호는 모두 철구를 보았다. 철구는 담담하게 자신이 알아낸 정보를 얘기했다.
지호는 손까지 벌벌 떨며 분개했다. 그렇지만 철구는 냉정하게 말했다.
- 퍼즐의 조합은 맞았지만 그 그림에 대한 확신이 아직 없어.
- 그가 범인이라는 심증은 있지만, 물증이 없는 상태로군요.
석호의 말에 철구가 고개를 끄덕였다.
- 일단 마지막으로 확인할 내용이 있으니까 당분간은 제가 연락할 때까지는 각자 하던 일을 하세요.
철구의 말에 세현이 얘기를 했다.
- 부모가 딸이 죽는 걸 어떻게 목격했을까요? 현장에 있었을까요?
세현의 말에 철구는 고개를 저으며 말을 했다.
- 현장에 있었다면 같이 죽었겠지. 목격자를 살려둘 명분이 없지. 할매도 생각해 봐. 살해 현장을 보여주고 한 사람은 자살할 것이고, 한 사람은 미칠 거라고 예상하진 않을 거 아냐.
- 생각할수록 끔찍하군요.
석호의 말에 지호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 혹시 간접적으로 목격했을 수도 있죠. 비디오테이프나 DVD같은 걸로요.
세현의 말에 철구는 모니터를 향해 말했다.
- 어이 대장. 그 즈음에 피해자의 집으로 발송된 소포 같은 거 있어?
- 삐삐. 이미 찾고 있다. 하나 발견.
- 발신인은?
그러나 화면에는 물음표만 가득 나왔다.
- 뭐야?
철구는 대장의 반응에 조금 짜증이 난 목소리로 물었다.
- 이상하다. 발신인이 김효정이다.
대장의 말에 철구는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듯이 모니터를 쳐다보았다. 세현은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다.
- 김효정이 자기 집으로 보냈다구요?
석호의 말에 지호가 말을 받았다.
- 김효정은 죽은 상태였잖아요.
철구는 확신에 차서 말했다.
- 범인이 살해 비디오를 보낸 거겠지. 인적 사항은 물론이고 모든 걸 다 파악했다는 말이지. 그리고 이런 놈들의 특징을 잘 알고 있지.
- 도대체 범인은 어떻게 김효정이 뺑소니범인 것을 알았을까요?
세현의 말에 철구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 나 같은 사람이거나 정보를 취급하는 사람이라면야. 그리고 얘기하는 도중에 확신이 생겼어. 이런 놈들의 습성.
- 그게 뭐죠?
지호가 철구를 향해 묻자 철구는 비웃듯이 말했다.
- 이런 사이코패스 같은 녀석은 복수를 곱씹는 걸 좋아하지. 그리고 그럴 때마다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지.
철구의 말에 세현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철구에게 물었다.
- 그게 무슨 말이죠?
- 얼마 뒤면 그런 부류인지 아니면 더 명확한 정보를 찾아야 할지 알 수 있겠지.
그런 후 철구는 책상을 한 번 탁 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면서 세현에게 지호를 가리키며 말했다.
- 할매, 이 떨거지. 거추장스러우니까 오늘부터 이틀 동안 환자 시켜줘. 할매 병원 말고 다른 병원. 대신 아무도 모르는 병원이었으면 해.
그러자 세현은 고개를 끄떡인 반면 지호는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 방해 안 할게요. 데려가줘요.
그러자 철구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 어제만 해도 병원으로 데려다 달라고 발광하던 녀석이.
- 전 환자도 아니고, 의사 선생님께 죄송하기도 하고....
그러자 세현이 웃으며 말했다.
- 하룻밤 사이에 정이 들었나보네. 후후후.
그러나 철구는 단호하게 말했다.
- 안 돼. 귀찮아.
그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 지호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쾅하는 문 닫는 소리가 들렸다. 지호가 실망하며 의자에 앉자 석호가 말했다.
- 아마 몹시 위험한 일일 겁니다. 저 분은 항상 그래요. 누구든 위험한 일에 말려들게 하지 않게 하려고 노력하죠. 무뚝뚝하고 사람을 막 대하는 것처럼 보여도 정말 따뜻한 분이에요.
석호의 말에 컴퓨터에서는 '삐삐삐'하는 부정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세현 역시 부드럽게 말했다.
- 우리가 저 사람을 믿고 따르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요?
그러면서 세현은 한 마디 덧붙였다.
- 여기 있는 사람들은 적어도 한 번씩은 저 사람에게 목숨을 빚지고 있죠. 이제 당신도.
세현의 말에 석호는 고개를 끄떡이고는 빙그레 웃었다.
불이 꺼진 병원 사무실은 사방이 고요했다. 창밖으로 흘러들어오는 불빛이 얼룩처럼 어둠에 빛을 문질렀다.
하지만 그것은 복사기와 책장의 일부에만 스며들고 있을 뿐 사무실 전체는 어둠이 지배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어둠을 몸에 묻힌 채 한 사내가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는 익숙한 듯이 책상 앞 스탠드의 불을 켜고 책상 앞에 어지럽게 놓여 있는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는 MRI 사진을 바라보았다.
한 장 한 장 꼼꼼히 뇌 사진을 살펴보는 남자는 한 사진을 뚫어지게 보았다. 그런데 그 때 갑자기 방 안의 불이 환하게 켜졌다.
그리고 세현은 책상 위에 켜져 있는 스탠드와 어지럽게 놓여 있는 사진들을 보았다. 그러나 사진을 보고 있던 사내는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 남자가 문 뒤에서 갑자기 나오며 세현을 목을 팔로 감쌌다. 그러자 세현은 빙그레 웃으며 남자의 팔을 손으로 감쌌다.
- 이봐요. 도둑 씨. 아까 저기서 들어오는 거 봤어.
세현의 말에 세현을 감싸고 있던 남자가 빙그레 웃으며 앞으로 나왔다.
- 하하. 도둑처럼 들어온다고 했는데, 주인한테 들켰네.
남자의 말에 세현은 환하게 웃으며 물었다.
- 정태 씨, 늦었는데 집 안 가고 왜 이리 왔어?
정태는 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 집에 안 가다니. 나한텐 니가 집인데? 그리고 아까 낮에 전화해서 오라면서?
정태의 말에 세현은 정태의 팔을 꼬집으며 말했다.
- 언제 오라고 했어. 그냥 환자 한 명 입원할 수 있냐고 했지.
- 그게 오란 말 아니었어? 보고 싶다고 들렸는데?
정태의 의뭉스러운 말에 세현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 엉큼하긴.
- 어디 더 엉큼해져 볼까?
정태가 세현에게 다가오자 세현은 몸을 빼며 책상 쪽으로 갔다.
- 됐네요.
세현이 몸을 빼자 정태는 무안한 듯이 다시 머리를 긁었다.
- 쩝... 이거 완전히 혼자 노는 꼴인데?
- 하하.
정태가 무안해 하는 걸 본 세현은 크게 웃으며 정태의 볼에 입을 맞췄다. 그러고는 눈을 비비며 말했다.
- 어제 너무너무 피곤했어.
그러자 정태는 세현을 한 번 꼭 안았다가 책상 쪽을 사진을 쓰윽 보고는 말했다.
- 이것 때문에?
세현은 고개를 끄떡이고는 책상 쪽으로 갔다. 그러더니 정면에 놓인 사진을 보며 정태에게 물었다.
- 뭐 잡히는 거 없었어?
정태는 책상 앞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 MRI는 나보다 자기가 전문가잖아. 그런데.. 처음 보던 광경이던데?
세현은 그 말에 피식 웃었다가 진지한 표정으로 사진을 가리켰다.
- 여기 피질부에 연결되어 있는 거 보여?
- 음.. 어? 잠깐..
정태는 사진 속의 신경을 따라가다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 이건 시신경이네? 이게 어떻게 여기 연결되어 있을 수 있지?
- 누군가의 작품이지.
세현은 어깨를 한 번 으쓱하며 말했다. 그러자 정태는 뭔가 흥미가 생긴다는 듯이 말을 했다.
- 자세히 좀 말해줄래?
- 말하자면 길어.
그리고는 정태를 농염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 자기 최고의 신경외과 전문의잖아?
세현의 눈에 정태는 멋쩍은 듯이 웃으며 말했다.
- 하하하. 당연하지. 자기가 인정하면 세계 최고의 전문의지.
- 고칠 수 있겠어?
정태는 심각한 표정으로 사진을 보다가 세현을 보며 빙그레 웃었다.
- 자기가 분부만 주면...
정태의 말에 세현은 팔짱을 끼며 말했다.
- 분부!
- 그럼 치료비로 뽀뽀.
세현은 예쁘게 눈을 흘기다가 정태에게 뽀뽀하려고 얼굴을 들이밀 때였다. 갑자기 핸드폰에서 띠리링하는 벨소리가 들렸다.
세현이 얼굴을 돌려 핸드폰 쪽을 보자 정태는 자신의 이마를 치며 '오!!'하고 외쳤다. 세현은 돌아서서 핸드폰을 보았다. 그러고는 정태에게 말했다.
- 오늘 자긴 틀렸나 봐.
그런 세현을 보고 정태는 다가와 세현을 한 번 안으며 말했다.
- 다른 일도 중요하지만 자기 건강이 더 중요해. 너무 무리하지 마.
정태의 말에 세현은 정태의 품 안에서 고개를 끄떡였다. 지금 이 순간은 모든 것을 다 놓고 그저 그의 품에서 잠들고 싶을 뿐이었다.
- 고마워.
정태는 세현의 이마에 뽀뽀를 하며 말했다.
- 무슨 수술인지 모르겠지만, 준비되면 연락해줘.
세현은 정태의 말에 고개를 끄떡이고 말했다.
- 고마워. 조만간 시간 잡아볼게.
정태는 웃옷을 걸치며 말했다. 세현은 그런 정태에게 다가가 입맞춤을 했다.
- 고마워.
- 고마우면 빨리 시집 와!
그 말에 세현이 웃자 정태는 손을 흔들고 밖으로 나갔다. 정태가 밖으로 나가자 세현은 낮게 한숨을 쉬었다.
- 도대체 어떻게 해야 되는 거지.
세현은 다시 핸드폰을 한 번 보고는 혼자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