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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계(逐界)-쫓겨난 이들의 세계-263화 (263/309)

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축계 Pilot - 5. 실마리(4)

- 보복 살인.

철구는 문서들을 한참 보다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러자 모든 사람들이 철구 쪽을 쳐다보았다.

- 보복 살인이라뇨?

세현이 묻자 철구는 주저 없이 대답했다.

- 조각이 드러났잖아. 난 일부러 죽이지 않았다. 그런데 넌 날 죽이려 하냐. 물론 이건 이 녀석이 보고 들은 게 사실이라는 전제 아래서이지.

철구의 말에 세현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 그렇게 단정 짓기에는 단서가 너무 적지 않나요?

철구는 세현의 말에 피식 웃으며 말했다.

- 단정을 짓는다기 보다 주어진 정보로 파악할 수 있는 건 그 정도라는 거지. 여자는 누군가를 죽였어. 그런데 그건 일부러 죽인 게 아니지. 그런 변명을 한다는 건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이 피해자인 여자가 죽인 사람과 관련이 있다는 말이지.

- 음...

철구의 말에 세현은 고개를 끄떡였다. 철구는 의자에서 허리를 떼며 말했다.

- 지금까지의 정황으로 보면 피살자도 누군가의 가해자였던 거야.

그렇게 말하고는 모니터 쪽 카메라를 보며 말했다.

- 어이! 대장!

그러나 모니터 화면은 잠잠했다. 옆에 있던 석호가 시계를 한 번 보고는 피식 웃었다.

- 아침 8시니까 이제 막 자러 갔을 시간이네요.

석호가 한 마디 하자 카메라가 '지잉'하고 움직이더니 화면에 '삐삐'이라는 글자가 크게 나왔다.

- 신부님 목소리 들리니까 바로 깨는구만. 허.

철구의 말에 대장은 '삐삐' 소리를 내며 말했다.

- 안 잤다.

철구는 대장의 반응에 시큰둥하게 웃다가 말했다.

- 그럼 대장, 조사 좀 해 줄 수 있어?

그러자 화면에는 온갖 이모티콘이 나왔다 사라지면 삐삐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옆에 있던 석호가 나서서 말했다.

- 대장님! 저희를 위해 일어나 주시겠사옵니까?

그러자 모니터의 화면이 깨끗해지면 '삐삐' 소리가 났다. 지호는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석호를 보았다. 석호는 그런 지호를 보며 싱긋 웃으며 말했다.

- 대장님은 공손한 말투를 좋아하시거든요.

지호는 철구와 석호 모니터를 번갈아 보더니 말했다.

- 꼭 그런 것만 같지는 않은데요. 마치...

그러자 철구가 한 마디 했다.

- 대장이고 뭐고 잘생긴 신부님을 좋아하는 거지 뭐.

철구의 말에 컴퓨터에서는 '삐삐삐'하는 소리가 연속으로 들렸고, 석호와 세현은 피식 웃었다. 철구는 모니터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 부끄러워하긴. 근데 어이 대장 전하. 부탁이 있는데 안 들어주겠지? 내가 애기하면? 그럼 내가 신부님께 부탁할게. 신부님 말은 들어 줘.

그러자 컴퓨터는 '삐삐삐'거리다가 조용해졌다.

- 직접 말해라.

기계음이 들리자 철구는 웃으며 말했다.

- 피살자 주변 정황에 대해 이상한 게 있는지 찾아주겠어?

- 그러지. 그런데 지금 당장인가?

철구는 무슨 말이냐는 듯이 모니터를 쳐다보며 말했다.

- 당연하지. 지금 당장.

- 지금은 피곤한데...

그러자 철구 역시 석호 흉내를 내며 말했다.

- 제발 부탁드리옵니다.

그러자 기계음이 치직거리며 말했다.

- 하. 하. 하. 이번만 이니라. 무엇을 알아봐주면 되겠느냐?

철구는 나지막하게 '환장하겠구만...'하고 읊조리고는 말을 했다.

- 피살자의 재산 관계, 직장, 전화 통화 목록... 뭐 그런 것들 있잖아. 탈탈 털어봐.

그러자 기계음이 딱딱하게 말했다.

- 주.십.시.오.

철구는 모니터를 보며 인상을 팍 썼다 풀며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 털어 봐 주.십.시.오.

- 오냐. 그리 하마.

그러더니 화면이 사라졌다. 철구와 대장의 대화에 다들 킥킥거리며 웃었다. 그러다가 석호가 무언가 생각난 듯이 말을 꺼냈다.

- 그런데 누가 그녀를 죽였을까요?

그 말에 철구가 말했다.

- 다양한 용의자가 있을 수 있습니다만, 현재 가장 심증적으로 가능성이 큰 사람을 꼽아보라면 그녀가 죽인 또 다른 피해자와 가까운 사람이겠죠.

석호의 말에 철구가 고개를 끄떡였다.

- 그럴 가능성이 가장 높죠.

조용히 있던 세현이 입을 열었다.

- 피살자의 부모들은 딸의 죽음을 목격했을 가능성도 있어요. 그 정도의 충격이라면...

철구는 고개를 끄떡인 채 말했다.

- 자살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겠지...

그 때 컴퓨터에서 '삐삐'하는 소리와 함께 말소리가 들렸다.

- 삐삐. 정말 이상한 게 하나 있다.

대장의 말에 모두 모니터 쪽을 쳐다보자 화면에는 자동차 구입 등록증과 폐차 처리서가 보였다.

김효정

20XX년 6월 아반떼 구입 등록.

20XX년 7월 아반떼 폐차 처리.

이 기록을 본 석호는 말도 안 된다는 듯이 말했다.

- 한 달 만에 새 차를 처분했다구요?

철구는 서류를 한 번 들춰보더니 탁자를 한 번 탁 쳤다.

- 김효정 실종 3개월 전이군. 타이밍 한 번 절묘하군.

철구는 세현을 보며 물었다.

- 이봐 할매. 이런 경우는 뭘 것 같아?

세현은 철구를 째려보다가 말했다.

- 그런 경우는 십중팔구는 교통사고죠. 그리고 그 피해자가 만약 사람이라면...

석호가 세현의 말을 이어받으며 말했다.

- 피해자와 친분 있는 사람이?

철구는 컴퓨터를 향해 말했다.

- 대장. 혹시 김효정한테 교통사고 기록이 남아있나?

- 없다.

그러자 조용히 있던 지호가 한 마디 했다.

- 그럼 교통사고가 아닌가요?

그 말에 철구가 지호를 보며 말했다.

- 뺑소니야. 뺑소니 사고는 기록에 안 남지. 그건 이제 범죄니까.

그 말에 석호가 말을 이었다.

- 그렇다면 김효정은 뺑소니 가해자였던 것이고, 김효정은 뺑소니 피해자나 피해자와 관련 있는 사람이겠네요.

철구는 고개를 끄떡이고 컴퓨터에 질문을 했다.

- 그럼 대장, 하나만 더 물을게. 김효정 실종 신고 일주일 전부터 모친의 자살 기간 동안 그 지역의 뺑소니 사고 좀 알아봐줘.

그런 후 한 10초 정도 지나서 컴퓨터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 삐! 없다.

- 없어? 그럴 리가...

철구는 혼잣말로 서류를 읽었다.

- 김효정, 여자, 직장인, 스물일곱, 남자 친구 없음. 문산, 강남... 문산... 문산....

그러다가 컴퓨터를 향해 말했다.

- 그럼 김효정의 직장과 집 사이 예상 출퇴근로를 조사해 줘. 특히 사고 다발 지역을 중심으로. 그리고 인적이 드문 곳은 중요 표시를 해줘.

철구의 말에 컴퓨터는 '삐삐' 소리와 함께 불과 몇 분 만에 지도를 보여주었다.

- 사고 다발 지역과 주의해야 할 곳까지 표시된 지도다.

철구가 모니터를 보며 고개를 끄떡였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 땡큐! 자료가 없으면 직접 찾아봐야지.

철구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모니터에서 다시 말소리가 들렸다.

- 삐삐. 완료. 내비게이션으로 지도 전송 완료!

- 오케이.

철구는 세현을 돌아보며 말했다.

- 할매는 신부님하고 같이...

그러자 세현이 말을 끊었다.

- 김효정 씨 아버지의 정신병원으로 가라는 거죠.

- 빙고! 역시 의사 선생님이라 똑똑해.

철구는 문 쪽으로 가면서 지호를 쳐다보며 말했다.

- 어이! 가자!

그러자 지호는 당황하며 일어섰다.

- 예? 저요?

- 그럼 여기 너 말고 누가 있냐? 그리고 니가 수고 좀 해줄 일이 있거든...

그러면서 컴퓨터를 향해 말했다.

- 아 그리고 대장! 이젠 주무셔도 되는데... 내가 전화하면 재빨리 받아주시옵소서. 알겠사옵니까?

컴퓨터는 삐삐 소리와 함께 화면이 재빨리 꺼졌다. 철구는 세현이 거울을 보며 화장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며 말했다.

- 할매 뭐해? 화장 안 해도 할매 같으니까 빨리 가야지. 빨리 끝내야 밀린 진료도 볼 거 아니야?

세현이 철구에게 뭐라고 하려고 했을 때는 이미 철구는 지호를 끌고 밖으로 나갔을 때였다.

- 어휴... 저 노땅이...

그러고는 컴퓨터를 향해 말했다.

- 정말 재수 없다니까.

그러자 컴퓨터 모니터가 켜지더니 화면 가득 '빙고'란 글자가 보였다. 석호는 두 사람의 반응에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러다가 컴퓨터를 보고 말했다.

- 지난 번 병원 쪽은 시간이 조금 걸리는 거죠?

그러자 컴퓨터는 잠시 침묵하다가 말을 했다.

- 나만큼은 아니지만 대단한 실력자가 방어막을 쳤다. 시간이 좀 더 걸릴 것 같다.

- 고마워요. 계속 고생해 주세요.

석호는 일어서서 세현에게 문을 열어주었고, 두 사람이 나란히 나갔다. 컴퓨터에서는 낮은 신음소리와 함께 말소리가 들렸다.

- 아.. 오늘 자긴 글렀네... 신부님 부탁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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