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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계(逐界)-쫓겨난 이들의 세계-262화 (262/309)

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축계 Pilot - 5. 실마리(3)

- 살.. 살려줘... 일부로.... 죽인 게... 아니야...

지호는 그 말을 끝으로 눈을 뒤집고 쓰러졌다. 석호는 그런 지호를 부축했다.

그러자 철구가 지호를 한 번 흘끗 보고는 지하실 밖으로 나와 문을 잠그고는 석호가 부축하던 지호를 들쳐 업었다.

- 저도 이 기분... 잘 압니다. 아주 더럽죠.

석호의 말에 철구는 고개를 끄떡이고 차로 갔다. 석호는 철구와 지호의 뒷모습을 보며 성호를 한 번 그으며 말했다.

- 저들을 환난에서 구원해 주소서.

차 안은 조용했다. 그러나 그 때 '으악'하는 소리와 함께 지호가 벌떡 일어났다. 안전벨트가 메어지지 않았다면 자동차 천장을 뚫을 정도로 강하게 튕겨져 일어났다.

안전벨트로 인해 자리에 풀썩 앉게 된 지호는 자신도 모르게 거친 숨을 헉헉거리며 쉬었다.

지호가 일어나자 철구는 한 쪽 구석으로 차를 세웠다. 그리고는 태블릿을 꺼내서 지호 앞에 보였다.

- 시간이 없어. 그거 또 보고 싶지 않을 거 아냐.

철구의 말에 아직 정신이 제대로 돌아오지 않은 지호가 어리둥절하게 철구를 쳐다보았다.

- 이중에서 가장 비슷한 걸로 골라봐. 눈매는.

지호는 눈매가 스크롤되는 화면을 멍하게 보다가 다시 철구를 보았다. 그리고 석호를 불쌍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석호는 철구와 지호를 외면하며 창밖을 보았다. 석호 역시도 지금은 철구의 방식이 잔인하긴 하지만 가장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저... 전...

- 모르겠어? 다시 가서 봐야 하나?

철구의 말에 지호는 손사래를 치며 태블릿으로 눈을 고정했다.

- 아.. 아뇨..

그러고는 첫 페이지부터 살피기 시작했다.

- 없... 없어요. 아뇨... 아뇨... 잠깐만요...

그러다가 한 눈매를 뚫어지게 보았다.

- 잘 봐!! 정확하게 파악해야 해.

지호는 뚫어지게 보던 눈매를 손가락으로 지목했다. 그러자 철구는 그 눈매를 터치하고는 다음 화면으로 넘겼다.

- 그럼 코는?

지호는 화면 하나 하나를 뚫어지며 보며 하나씩 지목을 해 갔다. 그러자 서서히 몽타주가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 이 모습이 확실해?

태블릿에는 예쁜 여자의 얼굴이 보였다. 이십대로 보이는 여성의 모습이었다. 지호는 철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철구는 석호에게 말을 했다.

- 대장한테 연락해 주세요.

석호가 스마트폰을 꺼내어 전화를 걸었다.

- 아. 대장... 안 자고 있었어요?

- 삐삐.

석호는 대장과 연결이 되자 철구에게 전화를 넘겼다. 전화를 넘겨받은 철구가 전화기에 대해 말을 했다.

- 몽타주 하나 보낼 테니까, 실종자 서버에서 찾아줄 수 있지?

- 삐삐. 몽타주가 정확하다면 가능하다.

철구는 석호에게 스마트폰을 넘기며 말했다.

- 이 몽타주 대장한테 보내줘요.

석호는 태블릿에 저장된 사진을 대장에게 보냈다. 태블릿에 떠 있는 여성의 몽타주가 어디론가 전송이 되고, 곧 '송신 완료' 화면이 떴다.

- 오늘은 일단 들어가죠. 너무 늦었으니까.

오래된 흥신소 앞에 차가 서자 철구가 먼저 차에서 내리며 말했다. 그리고는 뒤를 이어 지호가 내리고, 석호가 내렸다.

- 저도 그럼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자리를 너무 오래 비웠거든요.

석호의 말에 철구는 손을 들어보였다. 석호는 지호를 향해 가볍게 목례를 하고는 흥신소 앞에 서 있는 스포츠카에 올라탔다.

석호가 스포츠가 타자 지호는 놀란 듯이 석호 쪽을 보다가 철구를 돌아보았다.

- 날라리 신부님이라서 그래. 그리고 넌 오늘은 여기서 지내는 거야.

지호는 철구를 보다가 철구가 계단 위로 올라가자 따라 올라갔다.

- 사무실은 병원이어서 사람들이 많이 오가니까 너 같은 지명수배자가 있기엔 어울리지 않기도 하지.

철구의 말에 지호는 입술을 살짝 내밀다가 끄떡였다. 철구는 흥신소 안으로 들어가 불을 켰다.

지호도 따라 들어가다 담배 찌든 냄새 때문에 순간 움찔했다. 철구는 외투를 벗어서 낡은 소파에 던지며 지호를 보며 말했다.

- 들어와.

지호가 눈치를 살피며 안으로 들어오자 철구는 안 쪽 구석 캐비닛 옆에 있는 문을 열었다. 그 안은 아무 것도 없는 작은 방이었다.

그 방 역시 담배에 찌든 내가 났지만, 방은 의외로 깨끗했다. 철구는 방 안 스위치를 켜고 지호를 보았다.

지호는 멀뚱히 안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자 철구는 고갯짓으로 지호에게 안으로 들어가라는 시늉을 했다.

- PC방에서 자는 것보다는 편안할 거다.

지호는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갔다. 밖에서는 철구의 목소리가 들렸다.

- 샤워는 안에 세탁실에서 하면 되고, 이불은 저기 안에 벽장에 보면 있다.

여기저기를 둘러보던 지호가 철구를 향해 물었다.

- 저... 변기가 없는데요...

그러자 철구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재떨이로 쓰던 큰 깡통 하나를 비우고는 지호에게 주었다.

- 여기에다 싸라.

- 네?!

철구가 쥐어준 큰 깡통을 든 지호는 멍하니 철구를 보았다.

- 아니면 세탁실 안에서 그냥 싸던가.

철구는 그렇게 말을 하고 문을 닫았다. 그러더니 밖에서 문을 잠갔다. 지호는 당황하여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 아.. 아저씨. 왜 이러세요...

철구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말했다.

- 글쎄. 아직 네가 죽였는지, 아닌지 밝혀지지 않았으니까. 난 의외로 겁이 많거든.

철구의 말에 지호가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 아... 아저씨!!

- 니가 이해 좀 해라. 내가 원래 이렇게 의심이 많거든. 늦었으니까 자라.

지호는 계속 문을 두드리며 철구를 불렀다. 철구는 그런 지호를 신경 쓰지 않고 낡은 소파에 누웠다. 그리고는 입에 담배를 하나 물었다.

늘 보아오던 불 꺼진 형광등이 낯설었다. 담배를 끄고 외투를 덮고 자려고 누웠을 때, 다시 방에서 쿵쿵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 한 번만 더 두드리면 죽는다!

철구가 버럭 소리를 치자 방 안이 조용해졌다. 철구는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사방은 빛 때문인지 아니면 원래 그렇게 칠한 것 때문인지 온통 하얗게 보였다. 그 안에는 하얀 옷을 입은 사람들이 하얀 실린더 안에 있는 한 여인을 둘러싸고 있었다.

시선이 사람들을 둘러보자 어떤 사람은 손에 차트를 들고 있었고, 어떤 사람은 태블릿 같은 기계를 들고 있었다.

누군가는 다급하게 소리를 치고 있었으나 그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마치 모두 멈춰 있다가 시선이 다가오자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실린더 안에 있는 여인의 아래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놀랍게도 그녀는 임산부였다.

시선이 그녀 얼굴 쪽으로 향하자 수술실의 사람들은 마치 짜기라도 한 듯이 시선 앞으로 다가왔다.

그 시선이 그녀의 얼굴에 닿자 시선은 깜짝 놀랐다. 그리고 발버둥치며 다가가려고 하는 시선을 붙잡는다.

그들에게 붙잡힌 이는 철구였다.

주변의 소란스러움 때문에 깬 여인은 아직 마취가 덜 풀린 것과 같은 표정으로 사방을 두리번거리다가 사람들에게 붙잡힌 철구의 얼굴에서 시선이 멈췄다.

- 여.. 여보..

철구는 그 말을 듣자 그간 물속에서 뻐끔거리듯 밖으로 나오지 않던 목소리가 튀어 나왔다.

- 혜민아!

철구는 크게 소리를 지르며 소파에서 일어났다. 사방은 여전히 몹시 어두웠다.

철구는 관자놀이를 두 손으로 비볐다. 또 같은 꿈이었다. 그리고 이 꿈을 꾸고 나면 관자놀이가 미친 듯이 쑤셨다.

철구는 고개를 세차게 한 번 흔들고는 수돗가로 가서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철구는 오늘따라 꿈이 더욱 지독하게 느껴졌다.

정신을 차리고 탁자 위를 보니 핸드폰이 반짝이고 있었다. 철구는 핸드폰을 열고 메시지를 보더니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리고는 쪽방 문 자물쇠를 열었다. 지호는 정신을 잃은 것처럼 자고 있었다. 철구는 방으로 들어가 지호를 발로 툭툭 건드리며 깨웠다.

지호는 잠결에 꿈틀거리다가 눈을 떠서 철구를 쳐다보고는 흠칫 놀라 뒤로 물러났다.

그도 그럴 것이 어두운 방에 웬 거구의 사내가 자신을 잡아먹을 듯이 내려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나가야 돼. 옷 입어.

철구의 말에 지호는 무슨 일인가 싶어 두리번거리다가 정신이 번쩍 드는지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부리나케 철구의 뒤를 따랐다.

어느새 날이 밝았는지 사방은 환하였다. 그러나 다들 지난밤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 해 정신이 없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가장 늦게 도착한 석호가 자리에 앉자마자 세현이 입을 열었다. 자리에는 지하실에서 발견된 여자의 신원과 인적 사항이 나와 있었다.

- 이 조사가 사실이라면 부모들은 큰 쇼크를 받았을 거야.

- 그러한 사실만으로 충격을 받았겠지만...

철구의 말에 석호가 뒤를 이어 받았다.

- 도대체 어떤 충격이 사람 둘을 그렇게 만들 수 있을까요?

석호의 말을 들은 철구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가 지호를 보며 말했다.

- 어이. 너 그 때 그 여자가 살려달라고 하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지?

지호는 그 때 생각이 났는지 몸서리를 치며 말했다.

- 네. 살려달라고 했어요. 자기가 일부로 죽인 것도 아니라고 했구요.

철구는 탁자를 툭툭 치다가 한 마디 했다.

- 자. 내용을 조합해 보자구. 일가족이 이 지경이 되었고, 죽임을 당한 여자는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다.'라고 항변하고 있는 거지. 물론 네가 본 게 진짜라면 말야.

철구의 말에 지호가 강하게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 진짜로 그렇게 말했어요.

철구는 지호를 흘끗 보고는 다시 주어진 정보를 확인하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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