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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계(逐界)-쫓겨난 이들의 세계-261화 (261/309)

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축계 Pilot - 5. 실마리(2)

석호가 웃으면서 말을 하자 컴퓨터에서 '삐삐'하는 말이 바로 나왔다. 철구는 진료실 안으로 들어가 지호를 흔들어 깨웠다.

지호는 뭔가에 놀란 듯이 벌떡 일어나 철구를 쳐다보았다.

- 물어 볼 말이 있으니까 사무실로 와.

철구가 이 말을 하고 나가자 지호는 머리가 아픈 듯 고개를 세차게 한 번 흔들었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로 들어갔다.

지호는 사무실 안의 분위기를 살폈다. 컴퓨터 화면에는 뇌를 찍은 사진이 펼쳐져 있었고, 석호는 무언가 골똘히 생각에 잠긴 듯 보였다.

세현은 지호를 보며 살짝 웃어주었다. 컴퓨터 모니터에는 뭔가 알 수 없는 글자들이 수없이 스크롤되고 있었다.

지호가 자리에 앉자 철구는 양 미간을 문지르며 말했다.

- 이봐! 네가 본 것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 해줄 수 있어?

철구의 뜬금없는 말에 지호는 어리둥절해 하며 세현을 보았다. 그러자 세현이 다시 말을 이었다.

- 지하실에서 본 모습을 말하는 거야. 그 외에 다른 것들도 있으면 말해 줘.

그러자 지호는 고개를 끄떡이고는 철구에게 말을 했다.

- .... 무척 고통스러운 모습이었어요. 비명이 들리는 것 같기도 했구요.

철구는 지호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말했다.

- 여자였어?

철구의 말에 지호는 몸을 조금 움츠리며 말했다.

- 네. 20대 초반의 여자 같았어요. 온몸에 피투성이였구요.

- 그럼 전체적인 모습은 어땠지?

철구의 말에 아직도 무서운 듯이 지호는 진저리를 치며 말했다.

- 팔다리에서 계속 피가 뿜어져 나오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렇게 기억나요.

지호의 말에 철구는 고개를 끄떡였다. 그리고는 세현을 보며 말했다.

- 이 녀석이 본 게 뭐든지 간에 사실을 본 거 같군. 피해자는 살아있을 때 사지절단을 당했거든.

철구는 사건 파일 안에 들어 있던 사진을 테이블에 쫙 깔아 놓았다. 그 사진에는 사지가 절단된 미라가 된 한 여인의 사진이 있었다.

그 사진을 본 지호는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사진들을 보았다. 생각에 잠겨 있던 석호도 자신의 두 뺨을 툭툭 치고는 앞으로 다가와 사진을 보았다.

그런 석호를 보고 세현은 빙그레 웃었다. 석호는 사진을 보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석호는 사진에서 눈을 떼고 철구에게 물었다.

- 살아 있는 상태에서 잘렸다는 걸 어떻게 알죠?

철구는 사진 한 장을 앞으로 끌어 보였다. 그 사진을 보며 세현이 마찬가지로 눈살을 찌푸렸다.

- 죽은 상태에서는 혈액이 몸 안에 돌지 않기 때문에 절단된 그대로 흐르죠. 하지만 살아 있는 상태에서는 몸 안의 압력으로 인해 피가 밖으로 뿜어져 나오지요. 여기 절단면을 보면 피가 얼룩덜룩하게 응고되어 있죠?

- 너무 잔인하네요.

그러자 컴퓨터에서 삐삐거리는 소리와 함께 말소리가 들렸다.

- 캠에 대줘. 궁금하다.

그 말에 석호가 고개를 돌려 캠을 보며 말했다.

- 대장, 약속할게요. 나라면 보고 싶지 않을 거예요.

철구는 의자를 뒤로 젖히고는 생각에 잠겼다. 다른 사람들은 사진의 끔찍한 모습에 혀를 내두르며 잔인한 살인범에 대한 추측을 내뱉었다.

철구는 생각이 정리되었는지 의자에 똑바로 앉아 지호를 쳐다보았다.

- 만약 네가 말한 게 사실이라면, 이 사건 해결할 수 있어.

- 사실이에요. 그리고...

지호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 이건 좀 다른 건데요... 수술하고 난 다음에 최 베드로 신부님을 뵈었을 때요.

최 베드로 신부의 얘기가 나오자 석호가 의자를 끌어 지호에게 붙었다.

- 무슨 일이 있었나요?

석호의 반응에 지호는 당황하며 말을 했다.

- 무슨 일이라기보다... 전에는 그냥 평범하셨는데, 수술 후에 보니까 눈에서 빛이 나셨어요.

- 눈에서 빛이라뇨? 햇빛에 비춘 것처럼?

석호의 말에 지호는 고개를 저었다.

- 아뇨. 어두운 밤이었는데도 뭐랄까... 희미한 전구를 켜놓은 것처럼 눈에서 빛이 나셨어요.

- 전구라뇨?

- 네. 처음에는 제가 수술을 잘못 받은 줄 알았어요. 그런데 다른 사람들한테는 안보이고, 최 베드로 신부님 눈에서만 보였어요.

그 말에 석호는 생각에 잠겼다. 세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눈에서 전구와 같은 불빛을 본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 잘못 본 건 아니에요?

세현의 말에 지호는 고개를 저었다.

- 네. 최 베드로 신부님을 몇 번 만났었거든요. 수술 후에. 수술 경과나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느라요. 그런데 그 때마다 똑같았어요.

- 다른 사람한테서 본 건 없구요?

세현의 말에 지호는 고개를 끄떡였다. 철구는 지호의 말을 듣고는 석호를 한 번 보았다. 석호도 알고 있느냐는 제스처였다. 그러자 석호는 고개를 저었다.

- 저는 그런 걸 본 적이 없어요. 그냥 평범한 눈이죠.

석호의 말에 철구는 의자를 뒤로 젖혔다. 그리고는 복잡한 표정을 짓다가 의자를 휙 다시 앞으로 움직이며 말했다.

-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맙시다. 지금은. 뭐 알 수 있는 것도 없고.

철구의 말에 다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끄떡였다.

- 뭐 언젠간 알게 되겠지. 혹시 그 분이 가톨릭에서 말하는 성인(聖人)이라서 그럴 수도 있잖아?

철구의 말에 석호는 잠깐 미간을 찌푸렸다가 폈다. 하지만 철구의 말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철구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 일단, 신부님은 저랑 같이 가실 데가 있습니다.

- 네? 지금요?

철구의 말에 석호는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섰다. 철구는 지호를 보면서 말했다.

- 너도 같이.

- 네? 저두요? 어디로 가시...

지호의 말이 끝나기 전에 철구는 손에 든 키를 흔들며 말했다.

- 여기!

사방은 너무 어두워 지척을 분간할 수 없었다. 철구는 사건 현장의 옐로우 테이프를 살짝 뜯었다.

그러자 석호와 지호가 재빨리 안으로 들어갔고, 철구는 다시 옐로우 테이프를 붙였다. 세 사람은 발소리를 죽이며 지하실 계단으로 내려갔다.

그리고는 또다시 옐로우 테이프가 쳐진 철문 앞에 섰다. 철구는 옐로우 테이프 사이로 손을 넣어 철문을 열었다.

낮게 '끼익'하는 소리가 났고, 세 사람은 조심스럽게 안을 쳐다보았다.

- 준비는 됐지?

철구가 지호를 돌아보며 말했다. 지호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 들... 들어가야 되는 거죠?

그러자 철구는 지호의 어깨를 꾹 눌러 잡으며 말했다.

- 우리가 같이 있으니 걱정마라.

- 네...

세 사람은 옐로우 테이프 아래로 숙여 들어갔다. 지하실은 밖보다도 더 어두웠다. 옆에 있는 사람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철구가 작은 손전등 켜자 주변이 눈에 들어왔다. 철구는 손전등으로 이리저리 비추어 보았다.

- 저... 불을 켜면 안 되나요?

지호가 몸서리를 치며 말을 하지 철구가 지호를 돌아보며 말했다.

- 왜? 아예 왔다고 신문 광고라도 내지.

철구의 농담에도 지호는 여전히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철구는 시체가 있던 구덩이 쪽으로 가는 모습을 보고 석호가 말했다.

- 뭐가 보이나요?

석호의 말에 철구가 고개를 저었다.

- 아무 것도 없네요. 너 혹시 시체가 없어서 안 보이고 그러는 건 아니지?

철구가 구덩이를 플래시로 비추다가 뒤를 돌아보며 지호에게 말했다.

- 이봐! 뭔가 보여?

지호는 플래시 불빛 사이로 흐릿하게 환영을 보았다. 구덩이 위로 스멀거리는 괴상한 모습의 여자의 모습을 보며 공포에 사로잡혀 말했다.

- 네.. 거기.. 거기.. 아저씨가 서 계신 자리요.

지호의 말에 철구는 흠칫 놀라며 옆으로 비켜섰다.

- 이 자식 겁 주는 거냐?

지호는 철구 바로 옆에 서 있는 환영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말했다.

- 아저씨 옆.. 옆에 서 있어요.

철구는 그 말을 듣고 뒤로 물러섰다. 석호는 지호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 정확하게 뭐가 있는 거죠?

석호의 말에 철구는 지호를 쳐다보았다. 지호는 몸을 부들부들 떨며 울먹였다.

- 저... 나... 나가면... 안될까요?

지호의 말에 철구는 낮게 위협하듯 말했다.

- 누명 벗기 싫어?

지호는 여전히 몸을 떨며 말했다.

- 너무... 너무 무서워요.

철구는 지호의 옆으로 다가와 강하게 말했다.

- 정신 차려. 얼굴을 자세히 봐봐. 몽타주를 그려야 하니까.

철구의 목소리에 지호는 몸을 벌벌 떨면서 대답했다.

- 네...

석호가 조용히 성호를 긋고는 지호의 옆으로 다가 왔다. 지호는 기괴한 얼굴을 응시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두 다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옆에서 석호는 지호를 부축하며 낮게 기도문을 외기 시작했다.

- 신부님도 널 돕고 있으니까 잘 보라구. 구체적인 것까지 모두 알아야 해. 연령대. 눈, 코, 입의 생김새, 비례, 얼굴형태. 모두 확인하라구. 그래야 몽타주가 나올 수 있으니까.

지호가 기괴한 얼굴을 응시하자 기괴한 얼굴이 지호에게로 다가왔다. 지호는 얼굴이 온통 땀투성이가 되었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는 무어라고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 뭐... 뭔가 말하고 있어요...

석호가 지호를 부여잡으며 말했다.

- 뭐라 말합니까?

- 잘.. 잘 들리진 않아요. 너무 작게 얘기해서요...

그러자 철구가 말을 했다.

- 입 모양을 봐. 입 모양.

지호는 혼신의 힘을 다해 기괴한 얼굴의 입술을 쳐다보았다. 입술은 계속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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