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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계(逐界)-쫓겨난 이들의 세계-257화 (257/309)

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축계 Pilot - 4. 지호의 비밀(2)

- 저는 잠깐 고아원에 좀 다녀오겠습니다. 어쩌면 이번 일이 전에 생각한 것처럼 우리의 일과 관계가 깊을 것 같아요.

석호는 다른 사람들의 대답을 듣지도 않은 채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철구는 인상을 약간 찌푸렸지만, 눈은 여전히 지호를 주시하고 있었다.

지호는 어찌된 영문인지 모른 채 두리번거리다가 철구와 눈이 마주치고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철구는 지호를 노려보며 말을 했다.

- 그 조직에서 나온 건 알고 있지. 태호 그 새끼가 묵사발이 되서 쓰러져서 말했으니까.

철구의 말에 지호는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태호라는 이름만으로도 지호에게는 무시무시한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 태.. 태호 형님이...

철구는 그런 지호의 반응에 고개를 살짝 저으며 말했다.

- 그런데 말야... 난 그 태호 자식이 끄는 양재기 파에 대해 조금 알거든. 거기 새끼들은 양아치 같은 놈들이어서 조직을 나올 때 그냥 내보내주지 않는데...

지호는 그 말에 눈에 핏대가 섰다. 그리고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 네... 저 역시 그냥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그러고는 윗옷을 벗기 시작했다. 세현은 놀라서 지호를 쳐다보았고, 컴퓨터에서는 '삐삐삐' 소리가 연속으로 들렸다. 지호가 윗옷을 벗자 내리자 철구는 놀란 표정으로 지호를 쳐다보았다.

- 보시다시피 이렇게 하고 나왔습니다.

지호의 아랫배에는 커다란 자상(刺傷)이 있었다.

- 그게 뭔데?

철구가 다소 냉소적인 말투로 말을 하자 지호가 말을 했다.

- 할복을 했습니다.

철구는 그 말에 어이없다는 듯이 말을 했다.

- 그 새끼 돌았구나.

철구의 말에 지호가 고개를 저었다.

- 원래는 손가락 하나 자르고 나가라고 했는데, 제가 배를 그은 겁니다. 그 이후 치료도 태호 형님이 다 해주셨습니다.

철구는 그런 지호에게 다가가며 어깨를 한 번 두드리며 말했다.

- 원래 몸담고 있는 곳에서 나올 때는 격려금이라도 챙겨주는 게 원칙이다. 손가락을 자르거나 배를 긋는 건 일본 야쿠자나 하는 짓이지.

철구의 말에 지호는 고개를 숙이며 눈물을 흘렸다.

- 전... 전 괴물이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 그래서 거...거기서 번 돈은 모두 고아원에 보냈습니다. 제가... 제가 살... 살 만큼만... 딱 그 만큼만 쓰고요...

지호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 제가 죽이지 않았어요. 전 악마였지만 사람을 죽이진 않았다구요.. 흑흑..

지호는 진정이 되지 않는지 앉은 채로 한참을 울었다. 세현은 물을 한 컵 떠서 지호에게 건네주었다. 철구는 자리에 앉은 채 생각을 정리했다.

- 그럼... 다시 원점인가...

세현은 지호를 데리고 병실로 가서 눕혔다. 그리고 다시 진료실로 돌아와서 철구와 마주 앉아 얘기를 했다.

- 철구 씨는 지호 씨가 범인이라고 생각했나요?

철구는 세현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 범인이라고까지는 생각하지 않았고, 그냥 연관은 있을 줄 알았지.

- 오늘은 다들 신경이 날카로운 것 같으니까 내일 석호 신부님이 오면 그 때 같이 얘기하죠.

석호는 그 길로 차를 몰고 고아원으로 달려갔다. 도착했을 땐 이미 밤 11시가 넘었다. 밤이 늦어서인지 고아원은 불이 꺼져있었다.

석호는 원장실로 걸어 들어가 문을 두드렸다. 원장실은 어둠에 싸인 채로 문소리만 들린 채 조용했다.

석호는 어두운 복도를 두리번거리다가 이내 복도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끝 방은 조그만 예배당으로 희미하게 불이 켜져 있었다.

석호는 그 안에서 기도를 올리고 있는 한 중년의 여성의 뒷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여성은 석호가 뒤에 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것도 모른 채 기도에 열중하고 있었다.

석호는 뒤에 서서 그녀의 기도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조그맣게 목소리가 들려왔다.

- 정문은 닫혔을 텐데요. 담을 넘은 도둑이라면 이렇게 저의 기도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지는 않았을 테고.

그녀의 목소리에 석호는 나지막하게 말을 했다.

- 오전에 왔던 사제입니다.

그러자 그녀는 고개를 돌려 석호를 보았다. 어두운 불빛이었지만 깊은 눈망울이 인상적인 여인이었다.

- 아까 분명하게 말씀을 드렸을 텐데요.

원장의 단호한 말에 석호는 고개를 끄떡였다.

- 네. 알고 있습니다. 이번엔 다른 일로 왔습니다.

그러자 원장은 낮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 원장실로 가시지요. 무슨 말씀이신지 들어나 보겠습니다. 이 밤에 담을 넘어 들어오실 정도라면 중요한 일이겠지요.

원장은 조금은 화가 난 말투로 말을 했다. 석호는 이해한다는 듯한 태도로 말을 했다.

- 네. 충분히 중요한 일입니다.

원장실에 앉은 후 원장은 석호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석호는 그런 시선을 피하지 않고 원장을 쳐다보았다.

원장은 석호가 이 밤에 찾아올 정도로 중요한 일은 없다고 생각했기에 무슨 일인가 궁금해 했다. 석호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

- 최 베드로 신부님을 아십니까?

석호의 입에서 최 베드로의 이름이 나오자 원장은 잠깐 멈칫 했다. 석호는 그런 그녀의 반응을 미리 짐작이라도 한 듯이 조용히 말을 이었다.

- 아시리라고 믿습니다. 여기에도 자주 오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석호의 다음 말에 원장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 말했다. 더 이상 감출 것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 말씀하신 대로 최 베드로 신부님께서 여기에 종종 오십니다. 그런데 최 베드로 신부님을 어떻게 하시죠?

원장의 목소리가 다소 차가웠다. 그러나 석호는 이미 그녀의 이런 반응을 예상이나 한 듯이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그러나 그 내용은 전혀 담담하지 않았다.

- 저의 스승님이셨습니다.

석호의 말에 원장은 조금 당황한 표정이 되었다. 석호는 얼굴을 굳히며 말을 이었다.

- 혹시 최 베드로 신부님의 과거 행적은 알고 계시나요?

석호의 말에 원장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다가 화가 난 표정으로 말을 했다.

- 과거 행적이라뇨? 무슨 말씀이신지요?

석호는 잠깐 말을 멈추고 원장의 눈을 응시했다. 그러고는 마음을 먹는 듯이 말했다.

- 최 베드로 신부님은 한 여인에게 치료를 빙자한 간음을 하였고, 바티칸에서 율법으로 정하는 엑소시즘을 마음대로 행하였습니다.

석호의 말에 원장은 얼굴이 붉어지며 소리쳤다.

- 그게 무슨 소립니까!

석호는 원장의 고함에도 전혀 주눅이 들지 않고 말을 했다.

- 최 베드로 신부는 그 이유로 파문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사제 행세를 하고 다닌다는 것은 명백한 이단 행위입니다.

석호의 말에 원장은 책상을 내려치며 소리쳤다.

-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따위 거짓 소문을 저보고 믿으라는 것입니까? 그 따위 소문을 말하려고 이 밤에 여기까지 온 겁니까?

석호는 그 말에 고개를 저으며 낮게 계속 자신의 말을 다시 한 번 반복해서 말했다.

- 바티칸에서는 이 모든 것을 적용해 최 베드로 신부님을 파문하였고, 신부님은 그것을 받아들이셨습니다.

석호의 말에 원장은 손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

- 그건 최 베드로 신부님께서 일이 더 커지지 않기를 바라셨기 때문입니다.

석호는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 네. 저도 알고 있습니다. 제가 그 조사 위원회의 위원이었으니까요.

석호의 말에 원장은 석호를 노려보았다. 석호는 그녀의 반응에 신경 쓰지 않고 자기가 하고자 하던 말을 이었다.

- 불치병에 걸린 어린 아이들을 구하시려는 최 베드로 신부님의 노력은 눈물겨웠습니다. 저도 조사를 하면서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해서 안 될...

석호의 말에 원장은 다시 한 번 탁자를 쾅 내려치며 소리쳤다.

- 해서는 안 될 일이 아니었습니다.

석호는 원장을 흘끔 쳐다보았다. 원장은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다.

- 하지만 그 일은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지요. 그렇게 최 베드로 신부님이 해서는 안 될 일이었습니다.

석호는 '최 베드로 신부님'에서 힘을 주어 말했다. 원장은 고개를 연신 저었다.

- 아닙니다. 최 베드로 신부님이기에 하실 수 있었던 일이었습니다. 그 분의 고귀한 뜻을 폄하하지 말아 주십시오.

석호는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 저 역시 그 부분에 대해 최 베드로 신부님을 폄하하고자 하는 의도는 없습니다.

원장은 석호를 외면하며 차갑게 말했다.

- 그렇다면 더 이상 최 신부님을 욕되게 하지 말고 가주세요.

- 최 베드로 신부님께서는....

석호가 말을 이을 때 문 뒤에서 누군가가 들어왔다. 석호는 그가 누구인지 감지할 수 있었지만, 자신의 말을 이었다.

- 악마를 봉인한다는 미명 하에 그릇된 행동을 하신 것입니다.

앞에 앉은 원장은 뒤에 들어온 사람을 알고는 두 눈이 커졌다. 그리고 석호의 말에 대꾸를 하기도 전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석호도 자리에서 일어나며 자연스럽게 몸을 돌려 뒤에 서 있는 사람을 보았다.

- 오래간만에 뵙습니다. 최 베드로 신부님.

흰머리에 꼬장꼬장하게 생긴 사람은 낡은 수도사의 옷을 입고 있었다. 두 눈은 퀭하니 들어가 있었고, 얼굴에는 전체적으로 주름이 많이 져 있었다.

- 석호군. 오래간 만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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