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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계(逐界)-쫓겨난 이들의 세계-256화 (256/309)

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축계 Pilot - 4. 지호의 비밀(1)

4. 지호의 비밀

진료실 안에는 철구를 제외하고 모두 모여 있었다. 세현은 지호와 관련된 서류들을 보고 있었다. 석호는 모니터를 보며 동북아 복지재단의 구성도나 연결 고리들을 분석하고 있었다.

- 무슨 일 있는 거 아녜요?

지호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걱정스럽게 말을 하자 컴퓨터에서 기계음이 들렸다.

- 하.하.하. 건물이 무너져도 살아온 사람입니다.

컴퓨터의 소리에 지호가 컴퓨터 쪽으로 눈을 돌렸다. 그러자 석호가 조용하게 대장에게 주의를 주었다.

- 흠흠.. 대장님!

그러자 컴퓨터는 삐삐 소리를 내며 조용해졌다. 석호는 동북아 복지 재단의 구성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 뭐 이렇게 복잡하게 이루어진 거지? 그냥 복지 재단이면 단순해야 하는데, 여긴 병원들하고 연계되어서 그런지 꽤 복잡하네요.

석호의 중얼거림에도 지호는 계속 문 쪽을 기웃거리며 있었다. 그런 지호를 고개를 들어 쳐다보던 세현이 농담처럼 말을 했다.

- 철구 씨 걱정을 하다니 미운 정이라도 들었나 봐요.

철구가 늦는 데도 모두들 아무렇지 않게 각자 자기 일들을 하고 있는 지호는 그들이 이상해 보이기까지 했다.

아무도 철구에게 전화조차 하려 하지 않는 모습에 지호는 어리둥절했다. 지호는 만나기로 한 시간인 밤 9시가 훨씬 넘었는데도 오지 않는 철구가 내심 걱정이 되었다.

이 모임의 실질적인 리더처럼 보였고, 말투가 거칠고 인상이 다소 험악했지만, 자신의 상황을 가장 실질적으로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어느덧 약속 시간이 한 시간 넘게 지나자 컴퓨터에서는 무미건조하지만 조금 짜증난다는 말투의 말이 들려왔다.

- 게으름뱅이야.

그 말에 석호는 빙그레 웃으며 컴퓨터 쪽을 향해 말을 했다.

- 철구 씨는 우리와 다르게 어려운 일을 하잖아요. 대장.

석호의 말에 컴퓨터의 목소리 대장은 '삐삐'하고 조용해졌다. 그 때 문이 벌컥 열리며 철구가 들어왔다. 철구는 다른 사람들에게 가타부타 말도 없이 컴퓨터 쪽을 향해 말을 걸었다.

- 대장! 연결되어 있어?

- 삐삐.

철구는 의자에 앉으며 들고 온 서류들을 책상 위에 던져 놓으며 말을 했다.

- 내 메일 서버에서 경찰청 실종자 코드 좀 받아줘. 흔적은 지우고.

철구의 말에 컴퓨터에서 '삐삐삐삐' 소리가 들렸다.

- 화내지 말고. 중요한 일이야.

그런 철구에게 세현이 팔짱을 끼고 말을 했다.

- 오늘은 다른 날보다 더 늦으셨네요.

- 아! 들렀다 올 데가 있어서. 늦었으니까 시작하자고.

철구는 서류 봉투를 열어 문서를 꺼내며 말을 했다.

- 신부님. 후원자는 알아봤습니까?

석호는 소파에 앉아서 고개를 저었다.

- 아뇨. 고아원 원장은 입이 꽤 무겁더라구요. 하지만 한 가지 사실은 알았어요. 후원자가 '다른 나라' 사람이라는 거요. 그래서 아무래도 역으로 추적해야 할 것 같아요.

- 역으로 추적한다구요?

철구가 석호를 보며 묻자 석호는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 만약 후원자가 불손한 의도가 있었다면, 몸이 성치 않은 고아들에게 접근한 건 의도적인 거겠죠?

- 의도적 접근이라...

철구는 그 말에 턱을 문지르며 말을 이었다.

- 그럼 신부님께서는 그 쪽에 대해 조사해 주세요. 어쩌면 우리가 하는 일에 중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기회일 수 있으니까요.

- 네. 그렇게 하죠.

철구는 석호에게서 눈을 돌려 지호를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다소 굳은 얼굴로 지호에게 물었다.

- 넌 서울에 언제 올라왔지?

철구의 갑작스런 질문에 지호는 잠깐 당황하다가 이내 대답을 했다.

- 전 5년 전에 올라왔어요.

- 5년 전이라. 그러면...

철구는 수염이 까칠한 턱을 다시 문지르며 지호의 말을 그대로 따라했다. 지호는 좀 더 자세하게 말하기 위해 말을 이었다.

- 스무 살 때죠. 서울 쪽으로 대학을 진학해서요.

- 음... 그 때는 어디 살았었지?

철구는 문서를 꺼내며 지호를 쳐다보았다. 지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했다.

- 뭐 학교 근처에 살았었죠. 지금 사는 원룸하고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어요.

지호의 말에 철구는 고개를 끄덕이다 다시 물었다.

- 그런데... 그 건물이 있기 전에는 뭐가 있었지?

철구의 말에 지호는 잠시 머뭇거렸다.

- 거긴... 글쎄요. 저도 그 곳을 자주 다니진 않아서요. 그 때 살던 곳에서 학교로 갈 때 지나치는 곳은 아니었어요.

- 그래서 뭐가 있는지 모른다?

철구의 목소리가 방금 전보다 조금 더 높아졌다. 그러자 지호는 눈이 커다래지며 말을 했다.

- 아뇨. 알죠. 거긴 아마 공터였을 걸요.

- 맞아. 공터.

- 알고 계신데 왜?

지호는 철구의 말에 당황했다. 철구는 그런 지호를 살짝 비웃으며 말했다.

- 넌 그 공터를 잘 알고 있잖아. 안 그래?

지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철구가 일어선 지호를 쳐다보았고, 다른 두 사람도 이들의 대화를 듣다가 벌떡 일어선 지호를 쳐다보았다.

- 아... 아니에요. 그건...

지호는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 그러나 철구는 그런 지호를 제지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 누가 뭐라고 했나? 넌 그 공터를 잘 알고 있다고만 했지.

지호는 포기했다는 듯이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철구는 고개를 까딱하며 지호에게 앉았던 자리로 오라고 말했다.

- 내가 늦은 건 너 때문이었어. 이제 솔직하게 얘기해 주면 내가 한 번만 용서해 주고, 그렇지 않으면 넌 오늘 여기서 시체로 나갈 테고.

철구의 말에 지호는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 하나만 얘기해 주지. 태호를 만났거든. 양재기파 오야 태호. 응?

그 말에 지호는 체념한 듯이 말을 했다. 지호는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 그럼 다.. 알고 계시겠네요. 그런데 그건 아니에요. 저... 저는...

- 개수작 부리지 말고.... 알았으니까 이제 얘기해 봐.

철구는 탁자를 쾅 내려쳤다. 그러자 지호는 움찔 하면서 말을 꺼냈다.

- 서울에 처음 올라왔을 때... 저는 대학생인데도... 학교에서 왕따를 당했었어요.

지호는 눈물이 그렁해졌다. 철구는 그런 지호를 노려보았다. 지호는 고개를 숙인 채 말을 이었다.

- 서울에서... 그것도 고아가... 아무런 연고도 없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어요.

모두들 조용하게 지호의 말을 듣기 시작했다. 철구는 손가락으로 탁자를 치며 지호를 계속 쳐다보았다.

- 20살이 넘으면 고아원에서 지원도 끊기구요. 그래서... 저는 알바를 하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진짜 나이트클럽 주방에서 일했어요. 정말로요.

지호는 목이 메는지 잠깐 말을 멈췄다. 세현은 그런 지호의 말을 받아 얘기를 했다.

- 그래서 과일을 잘 깎더라구요.

철구는 세현을 잠깐 쳐다보다가 다시 시선을 돌려 지호를 쳐다보았다. 지호는 침을 한 번 꿀꺽 삼키고 말을 이었다.

- 그런데 나이트클럽에서 패싸움이 일어났는데, 거기에서 제가... 고아원에서부터 전 반항아여서요. 이런 저런 운동을 많이 했거든요. 그런데 거기에서 싸움이 벌어졌는데.... 거기에서 제가 다른 조직원들 몇을 때려 눕혔어요.

석호와 세현은 지호의 과거사가 흥미로웠는지 어느새 다가와 앉았다. 철구는 여전히 심드렁한 표정으로 지호를 쳐다보았다.

- 그.. 태호 형님이 저보고 조직에서 일을 하라고 했어요. 나이트 알바보다 훨씬 돈도 많이 준다고...

- 그래서 한 일이 뭐였어!

철구는 지호에게 버럭 소리를 쳤다.

- 그 공터에는 컨테이너 박스가 하나 있었어요. 조직에서 사채를 빌린 사람들을 그곳에 가두고 협박을 하는 일이었죠.

세현과 석호는 지호의 말에 얼굴색이 달라졌다.

- 그런데... 저는 죽이지 않았어요. 거기서 아무도요. 정말이에요. 믿어주세요.

지호는 흑흑 거리며 울기 시작했다. 그러나 주변의 반응은 싸늘했다.

- 니가 죽이지 않았다는 증거는 없어. 그리고 그 컨테이너 박스에서 나온 사람들 대부분은 니가 악마 같았다고 했어.

철구의 말에 지호는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 그 때는.... 정말 누구라도... 정말로 죽이고 싶었어요. 힘들었으니까요...

지호는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얘기를 했다. 철구는 다시 책상을 탕 치며 말했다.

- 내가 힘들다고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면 그건 미친 살인마의 마음이야.

철구의 말에 지호는 더욱 고개를 숙이며 말을 했다.

- 그... 그 때는...

지호는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철구는 귀를 파며 말했다.

- 너한테 사과 받으려고 얘기한 거 아니니까 그 따위 소리는 집어 치우고.

철구는 서류를 꺼내며 지호 앞에 던지며 말했다.

- 이 사람들이 다 너한테 당했던 사람들이야.

지호는 자신의 앞에 펼쳐진 서류들을 보며 고개를 숙였다.

- 죄.. 죄송합니다.

철구는 지호를 한동안 노려보다가 말을 했다.

- 그런데 왜 그만 둔 거지?

- 그.. 그게... 돈을 좀 벌어서 보육원에 갔다가... 최 베드로 신부님을 만나고 나서 그만 뒀어요.

'최 베드로'라는 이름이 나오자 모두 놀란 눈이 되었고, 석호가 벌떡 일어나 지호에게 물었다.

- 최 베드로 신부님이요?

석호의 반문에 지호가 고개를 끄떡였다. 석호는 확인하듯이 다시 물었다.

- 최 베드로 신부님께서 그럼 그 고아원에 계신다는 말입니까?

석호의 말에 지호는 고개를 끄떡였다.

- 계시는지는 모르지만, 가끔 운동장에서 아이들과 놀아주시기도 하셨어요.

- 아! 그동안 그럼 거기 계셨던 건가.

석호의 감탄 섞인 말에 다들 석호를 쳐다보았다. 석호는 다급한 듯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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