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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계(逐界)-쫓겨난 이들의 세계-253화 (253/309)

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축계 Pilot - 3. 알 수 없는 것들의 향연(1)

3. 알 수 없는 것들의 향연.

원룸 앞 계단은 불이 꺼져 있었고 여전히 출입 금지 테이프가 쳐져 있었다. 그 앞은 음침한 기운이 서려 있었다.

철구는 그 앞에 서서 담배를 하나 꺼내 물었다. 사위가 어둑어둑하고 원룸에는 몇 개의 방만 불이 켜져 있었다. 철구는 담배를 비벼 끄고는 원룸 안으로 들어갔다.

2층 지호의 방을 지나 옆 방 쪽으로 향했다. 철구가 손잡이를 돌려보니 문이 열렸다.

- 수사에 기본이 안 돼 있는 놈들이야. 여기도 중요한 현장인데 개방해 놓다니. 짜식들.

철구는 주머니에서 플래시를 꺼내 방 안을 이리저리 비쳐보았다. 벽에는 무언가 설치한 흔적이 보였다.

- 진짜 감시를 한 게 맞는군. 허 참. 도대체 그 자식 뭐지?

철구는 방에서 나와 5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그 앞에서 초인종을 눌렀다. 문이 열리자 원룸 건물 주인이 귀찮은 표정으로 말했다.

- 무슨 일이슈?

철구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 방이 있다고 해서요.

이 말에 주인은 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 아! 일단 들어오세요.

철구에게 소파에 앉아 있으라고 하고는 시원한 음료수를 가지러 간다며 부엌으로 들어갔다.

철구는 주인이 부엌 안으로 들어가자 소파에서 일어서서 책장에 있는 책들을 보았다.

셜록 홈즈 시리즈, 메소포타미아의 고대사, 함무라비 법전, 아가사 크리스티의 소설들...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들의 책을 보고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책장 위에 아무렇게 놓여 있는 열쇠꾸러미가 보였다.

철구는 주머니에서 파운드를 꺼내 501호라고 쓰여 있는 열쇠를 꾹 눌러 찍었다. 그리고는 흘끗 뒤를 보자 주인이 컵에 음료수를 따라서 부엌 밖으로 나오는 것이 보였다.

철구는 몸을 돌려 옆에 놓여 있는 오래된 영사기를 들어 살펴보았다. 그런 철구를 보며 주인은 화들짝 놀라며 철구 쪽으로 다가 왔다.

- 아이고, 그거 만지시면 안 됩니다.

그러자 철구는 깜짝 놀라 얼른 그 자리에 놓으며 말했다.

- 아. 좋아 보이는데요. 비싼 건가봅니다.

철구의 말에 주인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 물건 보실 줄 아는 분이네. 제가 골동품을 너무 좋아해서 저거 구하느라 미국까지 다녀왔습니다. 허허허.

철구는 그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주위를 둘러보다가 벽에 걸린 가족사진을 보았다.

- 가족이신가 봐요.

철구의 말에 주인은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 가족이지요. 지금은 미국에 가 있지만.

- 아! 그러시군요. 어쩐지 집이 조용하다고 했습니다.

철구의 말에 잠시 우울한 빛을 보이던 주인이 말을 돌렸다.

- 흠흠.. 그럼 언제 들어오실 거유?

이 말에 철구는 딴전을 피웠다.

- 학생들한테만 방을 내놓으신다고 들었는데요.

- 흠. 원래. 그랬지만, 요즘엔 방이 조금 여유가 있어서...

철구의 말에 주인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 혹시 그 살인사건 때문인 겁니까?

철구의 말에 주인은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 다 아시고 왔수? 말 나온 김에 말씀드리지만, 말도 마슈. 내 평생 공무원해서 번 퇴직금이 여기 다 들어갔어. 이제 겨우 건물 올린 대출금을 갚나 했더니만.... 이런 일이 생기니 당연히 학생들이 올 리가 없지.

주인은 철구에게라도 푸념을 해야 마음이 풀린다는 듯 신세 한탄을 했다.

- 미국에 돈도 보내줘야 하는데... 에휴...

주인의 푸념에 철구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말을 했다.

- 그런데 지하실에 그런 게 있다는 게 이상하지 않나요?

- 이상하지. 이상하다마다.

- 그런데 예전에 여기가 뭐였나요?

철구의 계속되는 질문에 주인아저씨는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더니 말을 했다.

- 근데 방 구하는 거 아니죠?

철구는 주인아저씨의 말에 순순히 대답을 했다.

- 사실은 몇 마디 여쭤보러 왔습니다.

그러자 주인아저씨는 버럭 화를 내며 말을 했다.

- 내가 다 이야기 했잖습니까? 몇 번씩이나.

- 저는 경찰이 아닙니다.

그러자 놀란 듯이 철구를 보며 물었다.

- 그럼 당신 뭐요?!

- 도주한 학생을 잡아달라는 의뢰가 들어와서요.

철구는 명함을 건네주며 말했다.

- 흥신소에서 나왔습니다. 도와주시면 성의 표시는 하겠습니다.

- 누.. 누가?

철구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 고객 신상은 함부로 발설해서는 안 돼서요.

철구의 말에 주인은 고개를 끄떡이다가 갑자기 도망간 지호 욕을 하기 시작했다.

- 그 놈이 나를 아주 망쳐 놨어요. 그 살인자 놈이 지하실을 파헤쳐서. 그 놈 잡는다는 데 내가 당연히 도와야지요.

주인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을 했다. 철구는 짐짓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크게 끄떡였다.

- 아! 그렇군요.

- 그 정신 나간 놈이. 그렇게 끔찍한 짓을 해 놓고. 내가 수술하러 간다고 했을 때부터 정신 나간 미친놈이란 걸 알았어야 했어. 에이.. 재수가 없으려니까.

- 네.

- 같이 방에 가 보실라우?

주인은 지호를 잡아야 된다는 말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러나 철구는 주인을 소파에 앉히며 말을 이었다.

- 그것보다 먼저 알고 싶은 것들이 있어서요.

철구가 말을 하자 주인은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 뭐유? 도움이 되는 거라면 내가 다 말해 주리다.

주인은 팔을 걷어붙이고 적극적으로 철구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철구는 수첩을 꺼내 주인을 쳐다보며 말했다.

- 옛날에 이 자리에 뭐가 있었죠?

철구의 질문에 주인은 허탈하다는 듯이 말했다.

- 어째... 묻는 게 경찰하고 똑같소?

- 그렇습니까?

- 궁금하다면야 말해 주지. 여기가 원래 공터였던 자리인데... 사람들이 주차장으로도 쓰고, 쓰레기도 버려놓고 했지. 한 구석에 컨테이너박스가 있었는데, 원래 뭔 사무실인가가 있었는데, 건물이 있는데, 그냥 비어있었던 걸로 아는데... 자세한 건 잘은 모르고. 항상 자물쇠가 걸려있었거든.

주인의 말에 철구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 원래 아저씨 소유가 아니었습니까?

주인은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 지금이야 내 소유지만, 그 때야, 지금은 돌아가신 김 할머니 땅이었지요. 친구 녀석이 이 지역에 대학 캠퍼스가 들어선다고 해서 왔는데, 때마침 김 할머니가 손자 녀석 장가 밑천 대준다고 판다고 하길래 내가 퇴직금 미리 빼서 그 때 사놓은 거구.

- 그 때 뭔가 특이하게 기억에 남는 게 없습니까?

주인은 뭔가를 생각하듯 찬찬히 기억을 더듬었다.

- 특이한 거? 나도 외지에 살아서 잘은 모르지.

- 네? 여기 출신 아니세요.

주인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 여기 집 지으면서 들어왔으니까.

- 네...

철구가 심각한 표정을 짓자 집주인은 푸념하듯 한 마디 했다.

- 여기 처음 왔을 때도 양아치 같은 놈들이 진을 치고 있어서 재수가 없었는데...

주인의 말에 철구의 눈이 순간 반짝였다.

- 여기에요?

- 그렇다니까. 근데 그러고 보니... 그 땐 근처에 인가가 없어서 양아치 녀석들이 자주 왔다 갔다 했었지. 나랑 대판 싸우기도 했는데... 그 뭐냐.... 근데 얼굴이 기억이 잘 안 나네. 꽤 오래된 일들이라... 근데 그 자식같이 생긴 놈도 있었던 것 같은데.

주인은 문득 그 때 양아치들이 떠오른 듯이 말을 했다. 철구는 주인의 말에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 아! 그래요?

- 뭐 오래 전 일이니까. 근데 그 때 하나 확실한 건 그 때 양아치 녀석들이 대부분 조폭들인가 그러던데.. 김 할머니가 무서운 녀석들이라면서 공터에 있어도 신고도 못했으니까.

철구는 동네 양아치가 아니라 '조폭'이란 말에 수첩을 덮었다.

- 조폭이요?

- 그렇다니까. 나도 그 녀석들 내쫓느라 경찰까지 동원했으니까 뭐.

- 조폭이 여기서 뭐했을까요?

- 낸들 알겠소?

철구는 고개를 끄떡이고는 말했다.

- 알겠습니다.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철구의 말에 주인은 의아한 듯이 물었다.

- 다른 건 안 물어보시구? 지호 녀석이 어떤 놈인지 뭐 그런 거라든가.

철구는 주인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 경찰하고 똑같은 질문을 하진 않습니다.

철구의 말에 주인은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가 갑자기 호탕하게 웃었다.

- 아하하하. 그렇구만. 왠지 사람을 아주 잘 찾는 사람 같아 보여. 하하하하.

주인이 그렇게 웃자 철구는 쓴웃음을 짓고는 그에게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차에 올라 탄 철구는 서류 봉투에서 건물 대장을 꺼냈다.

건물을 올리겠다고 신청한 건 6년 전이고, 건물을 완공한 건 4년 전이었다.

- 4년 전. 이 동네 조폭이라...

철구는 피식 웃으며 차에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는 대학가를 빠져 나와 번화가로 접어들었다. 그리고는 한 룸살롱 앞에 차를 세웠다.

- 이 자식들인가? 이거 너무 쉬운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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