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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계(逐界)-쫓겨난 이들의 세계-252화 (252/309)

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축계 Pilot - 2. 그들과 만나다.(4)

천주교 재단에서 운영하는 고아원이어서 석호는 수녀가 원장으로 있을 것이라 생각을 했는데, 뜻밖에도 일반 신도였다.

석호가 안으로 들어서자 원장은 앞에 있는 소파로 그를 안내했다.

- 명동 교구에 계신 신부님께서 여기까지 어쩐 일이시죠?

원장은 의아한 표정으로 석호를 쳐다보았다. 석호는 자리에 앉아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다가 단도직입적으로 자신이 알고자 하는 것을 말했다. 그러자 원장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 그건 곤란합니다. 신부님.

석호는 그녀에게 충분히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 물론 어려운 부탁이란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석호가 뒷말을 잇기도 전에 원장은 자신의 말을 먼저 했다.

- 아실지 모르겠지만, 저희 고아원은 특수한 아이들이 모여 있어요. 여러 장애나 병이 있는 아이들입니다. 외형적으로는 정상적으로 보이시겠지만, 대부분 희귀병을 앓고 있는 아이들입니다. 그 아이들은 대부분 독지가의 후원을 통해 생명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액수를 후원하시는 분들도 많아요. 그런 분들 대다수는...

원장의 말에 석호는 웃으며 말했다.

- 자신의 선행을 밝히시지 않으시지요.

-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왜 명동 교구에 계신 신부님께서 저희 경기도에 있는 보살핌의 집의 후원자들에게 관심을 가지시는지요?

원장의 말에 석호는 또다시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마지막에는 간절한 표정을 지었다.

- 교구를 대표해서 온 것은 아닙니다. 단지 여기 출신의 한 친구가 곤란에 빠져있습니다. 그래서 그 후원자의 도움이 절실해서 이렇게 찾아온 것입니다.

석호의 말에 원장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 사정은 잘 알겠지만... 정말 죄송합니다. 만약 제가 그분의 신원을 알려드리면, 다른 아이들이 도움을 받지 못할 수 있습니다.

원장은 석호의 말에 조금은 단호하게 말을 했다. 그리고는 눈을 돌려 밖에서 뛰노는 아이들을 보며 말을 이었다.

- 저 아이들은 그 분들의 도움이 없다면 길어야 6개월 정도 살 수 있어요. 아무 것도 말씀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석호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한 번 간청하듯 말했다.

- 비밀은 반드시 지키겠습니다.

석호의 간곡한 부탁에도 원장은 고개를 저었다.

- 저는 그분들이 이 나라에 대해 실망하시는 걸 원치 않습니다.

석호는 원장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원장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마지막 말을 했다.

- 저는 더 이상 드릴 수 있는 말은 없는 것 같네요.

밖에는 다른 아이들의 얘기를 들었는지 꽤 많은 수의 아이들이 석호를 쳐다보고 있었다. 석호는 원장에게 가볍게 목례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아이들을 보며 밝게 웃으며 말했다.

- 하느님께서 늘 여러분과 함께 계세요. 아멘.

석호는 아이들을 향해 진심어린 기도를 했다. 아이들은 석호의 짧고 강한 말에 감명을 받았는지 모두 석호를 쳐다보면 아멘을 함께 외쳤다.

석호는 아무 소득 없이 밖으로 나와 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 동북아 복지재단은 어디에 있는 거죠?

그러나 대장이 알려준 곳은 한국이 아니라 일본에 있는 재단이었다. 석호는 전화를 끊고 자리에 멈춰 서서 생각에 잠겼다.

'일본에 있는 복지 재단이 어떻게 이렇게 조그만 보육원 아이를 알고 직접 연락을 했지?'

석호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신의 차 쪽으로 걸어갔다.

어두운 골목 안에 한 사내가 담배를 피우며 서 있었다. 그리고 그 골목으로 한 사내가 허름한 옷차림으로 들어왔다.

- 형님.

성준이 전봇대 뒤에서 철구를 불렀다. 철구는 잠깐 주변을 돌아보다가 성준에게 다가갔다.

철구는 성준에게로 다가가며 담배를 던져 껐다. 그리고 성준의 앞에서 피식 웃으며 말했다.

- 짜식. 꼭 이런 데서 만나야겠냐?

철구의 말에 성준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 요즘 경찰청 내부 동태가 이상해서요. 어쩌면 저도 누군가가 붙었을 지도 몰라요.

성준의 말에 철구가 고개를 끄떡였다.

- 음... 그렇구나..

성준은 철구의 태도에 다시 밝게 웃으며 말했다.

- 걱정 마세요. 저도 짬밥이 있는데..

성준의 말에도 철구는 얼굴의 표정을 풀지 않았다. 성준이 의심을 받는다면 그건 무조건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성준은 그런 눈치를 채고 철구에게 말했다.

- 뭐 '몸조심해라.' 이런 말 하실 건 아니죠? 남사스럽게.

성준의 말에 철구가 피식 웃었다.

- 눈치만 빨라져서 짜식.

철구의 말에 성준은 자신의 옆구리에 끼고 있던 서류를 철구 앞으로 내밀었다.

- 여기.

철구는 심각한 표정을 다시 하다가 성준이 내민 서류를 받아들고는 말했다.

- 미안허다. 이렇게 부탁만 해서.

철구의 말에 성준이 정색을 하며 말했다.

- 어허.. 왜 이러십니까. 형님 덕분에 제가 지금 숨 쉬고 사는데.

성준의 말에 철구는 피식 웃었다. 성준은 철구의 모습을 보자 또다시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그런 성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철구는 파일을 열어 시체 사진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 이게 전분가?

철구의 말에 성준은 고개를 끄떡였다.

- 지금까지 파악한 전부에요. 아직 수사 초기 단계라서. 시신은 죽은 지 약 4~5년 정도 되었구요. 훼손 상태가 너무 심해서 신원 파악이 힘들다고 하더라구요. 현재로서는 그 당시 실종 신고 된 비슷한 나이대의 여성들의 사진과 대조 중이구요.

성준이 그렇게 설명을 하자 철구가 서류를 넘기며 말했다.

- 사인은 뭐지?

- 형님. 많이 무뎌지셨는데요?

성준은 철구를 놀리듯이 말했다. 그러자 철구가 고개를 들어 성준을 보았다.

- 짜식. 너 많이 컸다. 옛날 같으면 한 방인데.

- 하하하. 많이 컸죠.

성준의 말에 어색했던 분위기가 조금 누그러졌다. 성준은 다시 심각한 말투로 말했다.

- 그 잔인한 짓을 산 채로 당했어요.

성준의 말에 철구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 원한에 의한 범죄로 보고 있는데, 사체의 신원을 모르니 뭐, 개점 휴업상태죠. 뭐.

- 용의자는?

성준은 철구의 말이 짧아진 것을 보고 재빨리 말을 했다. 성준이 아는 한 철구가 질문을 짧게 할수록 그의 머리는 많은 생각을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 현재는 사라진 청년 한 명 뿐이요. 오지호라는 녀석인데. 최초 발견자가 도주했으니 당연한 거죠. 그런데 웃긴 건 그 녀석 감시를 당하고 있었더라구요.

- 감시?

철구는 뜻밖의 말에 서류를 다음 장으로 넘겼다. 성준은 브리핑을 하듯이 말을 이었다.

- 네. 옆방 사람이. 스토커인지 아니면 뭐 다른 목적이 있는지 모르지만, 전문가 소행이라고 생각돼요.

- 음... 전문가라...

철구가 그렇게 중얼거리자 성준이 말을 이었다.

- 거기 주인도 용의 선상에 있긴 한데요.

성준의 말에 철구가 성준을 보며 물었다.

- 주인은 왜?

- 그 집이 공터에다 지은 거거든요. 그러면 분명 땅을 파고 기초 공사를 했을 텐데 시신이 그렇게 발견되어서요.

성준의 말에 철구가 고개를 끄떡였다.

- 집 주인이 집 짓는 데 관여를 한 건가?

철구의 물음에 성준이 어깨를 으쓱했다.

- 그건 모르죠. 5년 전에 지어서 관련 서류가 남아있긴 한데, 공사 업체에 그냥 맡겼는지 아니면 공사에 참여했는지는 나와 있지 않거든요.

철구는 입을 다문 채 생각에 빠져 있자 성준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 그런데 형님. 왜 이번 케이스에 관심이 생긴 거죠?

그 말에 철구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 그 용의자 신원. 내가 확보하고 있거든.

철구의 말에 성준은 살짝 놀랐지만,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 괜찮겠어요? 그 자식이 진짜 범인이라면 엄청 사이코인 건데.

성준의 말에 철구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 그 녀석이 진짜 범인이라면 경찰에 그 자식 시체를 인계할 거니까.

철구의 말에 성준은 자기도 모르게 하하하 소리를 내며 웃었다. 그러다가 얼른 입을 막고 말했다.

- 하여튼 형님도. 정말 그 성격 하나는 변함없네요.

성준의 말에 철구는 생각을 다 정리했는지 말을 꺼냈다.

- 성준아. 부탁 하나만 더 하자.

- 뭐죠?

- 경찰청 실종자 서버코드를 알려줘.

철구의 말에 성준은 농담처럼 말했다.

- 하! 이 양반. 제 목을 내놓으라고 하시죠.

그러나 철구는 진지하게 말을 했다.

- 부탁하마. 흔적은 없애 놓을게.

철구의 말에 성준은 입을 다물었다. 평소 철구의 성격에 '부탁'이란 말을 두 번이나 한다는 것은 무언가를 직감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 난 이만 간다.

철구가 돌아서자 성준이 뒤에서 말을 했다.

- 형님. 서버코드는 메일로 확인하십시오.

- 그래. 고맙다.

철구가 돌아서 가려는데, 뒤에서 성준의 목소리가 들렸다.

- 언제 한번 소주나 한 잔 합시다.

철구는 뒤돌아 그냥 웃으며, 손을 번쩍 들고는 갈 길을 가버렸다. 성준은 그런 철구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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