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축계 Pilot - 2. 그들과 만나다.(2)
철구는 살짝 인상을 쓰며 말했다.
- 니가 불러 놓고 누구냐니!
철구는 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 지호에게 주었다.
'진실의 문(The Door of Truth)'
그 명함에는 전화번호도, 이름도 없이 단지 웹사이트 주소만이 있었다. 그제야 지호는 자신이 웹사이트에 올린 글 때문에 그들이 온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제일흥신소'라는 촌스러운 이름을 써 붙인 오래된 승합차에 올라탄 지호는 불안한 눈으로 차 안을 둘러보았다.
밖이 보이지 않는 구조로 되어 있는 승합차는 어디론가 계속 달리고 있었다. 겁먹은 표정의 지호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 그, 그런데....... 저, 어디 가는 거죠?
철구의 옆에 앉은 석호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 일단 안전한 곳으로 가야죠.
- 네. 안전한 곳. 안전한 곳이라면.......
- 가보면 압니다.
그리고는 두 사람이 침묵했다. 얼마 후 옆에 앉은 석호는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지호에게 물었다.
- 뭘 보셨는지 구체적으로 얘기해 볼래요?
그러나 지호는 대답이 없었다. 석호는 의아한 듯이 지호를 돌아보았다.
- .......
룸미러로 지호를 흘끗 본 철구는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웃었다.
- 자네요. 저 놈.
얼마 후 세현과 철구, 석호는 테이블에 앉아 지호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들 뒤에는 웹캠에 연결되어 있는 컴퓨터가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모두들 지친 표정이었지만, 이번 일에 대해 대단히 흥미를 느끼는 표정이었다.
- 그래서, 땅을 팠더니 시체가 나왔다?
철구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철구의 표정을 보고 긴장한 표정으로 지호가 말을 했다.
- 예. 우는 소리가 나는 곳을 파보니까...
철구는 지호의 말을 끊고 얘기를 이었다.
- 경찰한테 쫒기는 게 당연한 거야. 아무도 몰랐던 시체를 자네가 찾아냈으니까 말이야.
철구의 말에 지호는 고개를 푹 숙이고 대답했다.
- 예.
철구는 탁자를 손가락으로 튕기다가 정색하는 표정으로 지호를 쳐다보며 물었다.
- 니가 죽였냐?
그러자 지호는 화들짝 놀라면서 손사래를 쳤다.
- 전 아니에요. 절대 아니에요.
지호의 반응에 철구는 지호 쪽으로 얼굴을 들이밀며 거칠게 말했다.
- 이 새끼가 어디서 약을 팔아. 내 눈을 보고 다시 말해 봐.
철구의 말에 지호는 입을 악 다물고 철구를 노려보며 말했다.
- 저는 절대 아닙니다! 절대!
지호는 그 말끝에 눈물을 보였다. 지호의 반응에 철구는 어깨를 한번 으쓱하고 세현을 쳐다보았다.
세현은 살짝 고개를 끄떡였다. 석호는 두 사람의 반응을 보다가 지호에게 말을 걸었다.
- 그 걸 봤을 때의 느낌은 어땠나요?
석호의 부드러운 말투에 지호는 석호를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생각하기도 싫다는 표정으로 진저리를 한 번 쳤다.
- 너무 무서웠어요. 그냥 그 느낌밖에 없었어요. 그냥.......
지호는 그때의 기분이 떠올랐는지 말끝을 흐렸다. 석호는 그런 지호를 보며 다시 물었다.
- 그냥? 그냥 어땠나요?
- 아파하고 있었어요.
- 아파한다라... 그런데 혹시 전에 봤던 얼굴인가요?
지호는 고개를 저었다.
- 아뇨. 처음 보는 얼굴이었어요. 그 모습이 너무 끔찍했지만, 너무 불쌍해서....
지호가 몸을 떨며 말을 잇지 못했다. 잠시 동안 그대로 두다가 세현이 말을 했다.
- 전에도 이런 경험이 있었어요? 환영을 본다던가, 환청을 듣는다던가.
지호는 세현의 말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저었다.
- 아뇨. 그런 적은 없었어요.
그 말에 세현은 고개를 끄떡이다가 물었다.
- 그런데 혹시 머리나 중추신경계, 그러니까 척추 쪽이나 아픈 적이 있었나요?
세현의 말에 지호는 고개를 끄떡였다.
- 전 어릴 때부터 항상 두통이 심했어요. 어떤 날은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프기도 했어요. 병원에서는 머리에 혹이 있다고 했거든요.
- 혹이라뇨?
세현은 의아한 표정으로 지호의 머리 쪽을 쳐다보았다.
- 그게... 저도 정확하게 어떤 혹인지 모르지만, 얼마 전에 제거 수술을 했어요. 그런 다음부터는 머리 아픈 게 사라졌어요.
- 수술? 뇌수술을 말하는 건가요?
세현은 그에게 흥미가 생겼는지 몸을 지호 쪽으로 움직이며 말했다.
- 네. 6개월 전쯤에 송도에 있는 톰슨 병원에서 했어요.
지호의 말에 철구와 석호, 세현은 모두 서로를 쳐다보았다.
- 톰슨 병원이요?
세현이 놀란 듯이 말을 하자, 철구가 분위기를 보고는 크게 한 마디 했다.
- 어이. 너 부자인가보네. 거기 병원비는 비싸다던데.
그러자 지호는 무언가 잘못을 한 사람처럼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 아뇨... 사실은.. 저 고아에요. 가진 돈도 별로 없구요.
지호의 말에 철구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지호를 보며 말했다.
- 고아이고, 돈도 없는데 어떻게 미국에 가서 수술을 하지?
철구의 노골적인 질문에 지호는 더욱 고개가 숙여졌다.
- 그냥 맘 좋은 복지단체가 도와주셔서... 제가 있던 보육원에서 연결해 주신 거예요.
- 보육원이라면?
지호의 말에 석호가 말을 받았다.
- 섬김 보육원이라구요.
석호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가 말을 이었다.
- 그럼 후원했다는 그 복지단체의 이름이 뭐죠?
- 동북아 복지재단인가.. 아무튼 그런 이름이었어요.
지호는 머리를 긁으며 말을 했다.
- 그럼 후원자에 대해서는 알고 있는데 있어요?
석호의 질문에 지호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 저도 잘은 몰라요. 그냥 그 쪽에서 먼저 제가 있었던 고아원에 연락을 해왔다고 했어요.
- 다른 아는 게 있나요?
석호의 마지막 질문에 지호는 아까와 마찬가지로 고개를 흔들었다. 지호의 반응에 철구가 입을 열었다.
- 단서가 없으니까, 우선 퍼즐을 풀어 보자고. 이 봐 대장! 다 들었지?
그러자 컴퓨터에서 딩동 소리가 들렸다. 지호는 삐삐 소리가 들린 컴퓨터 쪽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석호에게 물었다.
- 무슨 소리죠?
석호는 찡긋 웃으며 대답했다.
- 우리 대장이 알아들었다는 소리입니다.
철구는 그런 그들의 대화는 신경 쓰지 않고 컴퓨터에게 말을 했다.
- 과거 귀신을 보는 사례를 찾아봐줄 수 있지?
그러자 또다시 삐삐 소리가 들렸다.
- 음.. 그리고 할매는 저 친구 상태에 대해 의학적으로 좀 더 자세히 알려줘.
세현은 철구를 향해 눈을 흘기며 말했다.
- 할매라도 하지 말라고 했죠!
그 때 컴퓨터에서는 삐삐 소리가 들려왔다. 세현은 컴퓨터를 한 번 째려보더니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컴퓨터 모니터에는 '할매'란 글자가 떠 있었다. 철구는 그 말을 무시하고 석호 쪽을 보며 말했다.
- 신부님께서는 동북아 복지재단인가 하는 곳하고, 후원자에 대해 조사해 주십시오. 전 저 친구가 발견한 시신에 대해서 알아볼게요.
철구는 사람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 내일 이 시간에 다시 여기에서 보죠.
자리에서 일어선 철구는 전화기를 꺼내서 전화를 하고 있었다.
- 어이. 조성준 경감. 이번에 승진한 거 축하해.
그러자 전화기에서 멋쩍은 듯 한 목소리가 들렸다.
- 형님. 왜 이러십니까. 형님께서 계셨으면....
여기까지 얘기하던 성준은 순간 입을 다물었다. 성준은 철구의 사정을 잘 알고 있기에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철구는 그렇게 얘기한 성준이 민망하지 않게 농담을 했다.
- 죽은 사람한테 너무 과한 칭찬 아냐?
- 아 참. 형님도...
- 하하하. 자식. 니가 그런 일로 당황하면 어떻게 하냐. 우리가 하루 이틀 안 사이도 아닌데.
철구의 농담 섞인 말에 성준은 멋쩍게 웃다가 말을 했다.
- 네. 형님. 그런데 어쩐 일로...
- 어? 아. 맞다. 성준아. 부탁 하나만 하자.
철구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눌 때, 무언가 열심히 적던 석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조그만 가방을 챙겨 들고는 모두에게 말했다.
- 그럼 내일 저녁에 뵙겠습니다.
그리고는 컴퓨터 화면을 보며 다정하게 얘기를 했다.
- 연락할게요. 대장.
그러자 컴퓨터 화면에 슬픈 표정의 사진이 뜬 다음 스피커에서 '삐삐' 소리가 났다. 석호가 뒤돌아 나가자 지호는 석호가 나간 문만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지호가 생각하기에 이 사람들 중 가장 정상적인 사람이 석호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컴퓨터에서 '삐삐' 말고 다른 소리가 들렸다.
- 퇴장! 삐삐
컴퓨터에서 소리가 나자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던 세현과 전화 통화를 방금 마친 철구가 컴퓨터를 향해 말했다.
- 잘 자! 대장!
- 잘 자요!
그들은 마치 컴퓨터가 살아있는 사람인 양 대했고, 지호는 그들이 왜 그러는지 궁금했다. 그러나 석호마저 '대장'이라고 말할 뿐 아무 얘기도 안 해 주어서 궁금증만 되뇌다 그냥 말았다.
- 저..
철구가 통화를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서려 하자 지호는 얼른 철구에게 말을 걸었다. 철구는 밖으로 나가려다가 돌아서며 지호를 봤다.
- 뭐?
- 그런데 전 뭘 할까요?
지호의 말에 철구는 심각한 표정을 짓다가 말했다.
- 넌.. 그냥 여기 있어. 할매 말씀 잘 듣고.
- 네? 네...
철구가 세현에게 간단하게 인사를 하고 나가자 지호는 멍한 표정으로 문 쪽을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무언가 생각난 듯이 세현에게 말을 걸었다.
- 그런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