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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계(逐界)-쫓겨난 이들의 세계-248화 (248/309)

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축계 Pilot - 1. 서울의 밤하늘(3)

얼마 후 원룸 건물 앞에는 몇 대의 경찰차가 사이키 조명을 켜고 있었고, 경찰들은 분주하게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원룸 지하실 입구 앞에는 노란색 출입금지 테이프가 쳐져 있었다. 원룸 입구에 선 경위 한 명이 순경을 불렀다.

- 통제선 너머로 아무도 못 들어오게 해. 특히 저기 카메라 든 새끼들은. 알았어?

경위는 담배를 비벼 끄며 순경에게 말했다. 그러자 순경은 거수 경계를 하며 말했다.

- 옛. 알겠습니다.

순경이 다른 순경들과 함께 사람들을 통제하려고 뛰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던 경위는 집주인과 학생 두 명이 서 있는 곳을 흘끗 보았다. 그리고는 그 쪽으로 걸어가면서 수첩과 펜을 꺼냈다.

- 미라라...

경위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집주인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 이 건물의 주인 되시죠?

경위의 사무적인 말에 집주인은 잠깐 경직되었다가 이내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은밀하게 말했다.

- 예. 그렇습니다요. 그런데, 저, 형사님...

집주인의 말에 경위는 조금 퉁명스럽게 말했다.

- 왜요?

주인아저씨는 비굴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 저, 최대한 조용히 처리해 주시면 안 될까요? 이렇게 요란스러우면 학생들이 동요할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경위는 그 말을 무시하고 수첩에 무언가를 적다가 집주인을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 시체에 대해서 뭐 짐작 가는 거 없습니까?

그러자 집주인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 어, 없습니다.

- 지하실을 수리하거나 한적은요?

경위는 여전히 딱딱한 말투로 물었다. 잠시 흘낏 두 학생을 쳐다보기는 했지만, 그들에게서 이내 시선을 거두고 집주인에게 물었다.

- 없습니다. 없어요. 3년 전에 집 짓고 난 다음에는 별다른 수리공사는 없었어요.

경위는 입을 다문 채 고개를 끄떡이다가 혼잣말처럼 말했다.

- 그럼, 적어도 3년은 된 시체란 말이군요.

수첩에 내용을 적던 경위는 다른 질문을 했다.

- 그럼 3년 전에 여기는 뭐였습니까? 그러니까 집을 새로 짓기 전에요.

집주인은 별 거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 여긴 그냥 빈 공터였지요. 그 때 아마 컨테이너 박스로 된 창고가 하나 있었지요.

- 그렇다면 이곳에 접근할 수 있었던 사람들은요?

그 말에 집주인은 이상한 걸 묻는다는 듯이 말했다.

- 뭐 그냥 공터니까 아무나 올 수 있었죠.

- 사유지인데요?

- 동네 공터가 사유지, 공유지가 어디 있습니까? 그냥 빈 곳이죠.

경위는 그 말에 고개를 한 번 끄떡였다.

- 그 때 이곳을 자주 오가던 사람들은 없었습니까?

- 그거야 저도 잘 모르죠. 저도 이 공터를 소개받을 때에 처음 와 봤으니까요.

경위는 집주인에게 질문이 끝났는지 학생들을 보며 물었다.

- 엄지호 씨와는 친구라고 했죠?

그러자 창수가 그건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마치 지호를 살인자라고 생각을 하고는 그런 사람과 친구라는 것이 자신에게도 죄가 되는 것처럼 느꼈는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 아뇨. 친구보다는... 그냥 인사 정도 하는 사이였습니다.

그 모습을 본 경위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 엄지호 씨는 평소에 학교생활은 어땠습니까?

- 글쎄요. 같은 과가 아니라서요. 그냥 옆방에 산 거죠. 그리고 평소에도 워낙 조용한 녀석이라서요. 사실 그 녀석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어요. 얼마 전에 제 방에 와서 쌀을 빌려 간 것 외에는 없죠.

그러자 집주인도 한마디 거들었다.

- 그 학생 별 문제는 없었던 거 같았는데, 집세도 꼬박꼬박 들어왔었고, 가끔 마주치면 인사도 넙죽 잘하고.......

그 때 옆에 서 있던 기혁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말을 할까 말까 고민하는 모습이 역력했기에 경위는 기혁에게 말을 걸려고 했었는데 먼저 입을 열었다.

- 저, 지호가요. 석 달 전쯤인가? 몸이 어디가 안 좋은지 수술을 받는다고 했어요. 이 얘기는 저도 다른 친구에게 전해들은 얘기에요. 저랑 같은 동아리거든요. 아무튼 그래서 열흘 정도 집을 비운다고 했어요. 아픈 것 때문인지 별로 말이 없었고, 친구들과 술도 마시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러자 경위는 기혁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말했다.

- 아파요? 어디가?!

- 저도 거기까지는.......

그런데 갑자기 창수가 무언가 생각이 난 것인지 말을 꺼냈다.

- 아 참! 어제 저녁에요.

경위는 창수를 쳐다보았다. 창수는 경위가 자신을 쏘아보자 당황하며 말했다.

- 그, 그게요. 기혁이가 오기 전이었는데요. 제가 집에 와서 혼자 과제 준비를 하려고 할 때에요. 지호가 옆방 남자랑 얘기하던 거 같던데요. 큰 소리도 나고, 문을 쾅 닫기도 하구요.

- 옆 집 남자라....... 왜 싸웠는지는 알아요?

- 지호가 무슨 소리가 들린다고....... 저도 방에서 들은 거라 자세히는 모르겠어요.

창수는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저었다.

- 소리?

경위는 멀리 있던 경찰 한 명을 불러 지호 옆방으로 가도록 했다. 그리고 경위는 자신의 수첩에 들은 내용을 적고는 학생들을 보냈다.

- 경위님, 한 번 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옆방으로 갔던 경찰은 돌아와서 경위에게 귓속말을 했다. 경위는 경찰을 한 번 보고는 그 방을 향해 걸어갔다.

사람이 살고 있다던 방은 텅 비어 있었다. 급하게 물건을 치운 것처럼 물건이 놓였던 자리만 먼지가 없었다.

경위는 그런 모습이 의심스러웠지만, 정작 의심스러운 것은 벽에 있었다. 경찰은 경위에게 벽 위쪽을 가리켰다.

벽과 천장이 마주치는 곳에는 조그만 구멍이 뚫려 있었다. 경위는 식탁 앞에 있는 의자를 가져다가 올라가 보았다. 그랬더니 벽에는 옆방으로 뚫려 있는 구멍이 조그맣게 하나 있었다.

그리고 그 구멍 끝은 급하게 튜브 같은 것을 꺼냈는지 검은 고무가 묻어 있었다.

- 감시 카메라?

경위는 구멍의 위치와 고무의 재질을 보고는 의아해 했다.

일개 대학생 방을 엿보기 위해 튜브로 연결된 감시 카메라를 설치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경위는 벽에 희미한 줄을 발견하고는 그 줄을 따라갔다.

감시 카메라에서부터 시작된 희미한 줄은 주변의 먼지로 인해 생긴 것이었다. 그 줄은 책상으로 이어진 것처럼 보였고, 그 자리에는 컴퓨터가 놓여 있던 것 같았다.

- 미치겠군. 감시에, 녹화까지?

설치한 솜씨는 전문가의 솜씨였지만, 급하게 철수를 했는지 여기저기 흔적이 남아 있었다. 보안 팀에서 근무했던 경위에게 이런 장면은 익숙했다.

- 그 녀석. 뭐지?

경위는 수첩에 적힌 것을 보았다.

- 대학생. 수술을 했고. 살인을 했고. 감시를 당한다? 이것 참. 어색한 조합이군. 젠장.

경위는 그렇게 투덜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서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 이거야 점점 말투가 조 경감님 따라가니 큰일이네.

경위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수첩을 덮었다. 원룸 건물 멀리 떨어진 골목길에는 후드 티의 모자를 눌러쓴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골목길 구석에서 이들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낮게 한숨을 쉬고는 어디론가 발길을 돌렸다.

- 어떻게 하지?

후드티를 눌러 쓴 남자는 서둘러 골목을 빠져 나왔다. 그리고는 어디로 가는지 모른 채 발길을 움직였다.

그리고는 지난밤 왜 자신이 그렇게 행동했는지 자책을 했다. 그 소리가 시끄러웠다면 다른 곳에서 자도 되고, 아니면 무시해도 상관이 없었을 것이었다.

- 아.. 씨발.. 왜...

지호는 그렇게 자신을 향한 자책을 하다가 어디로 몸을 숨겨야 하나 고민을 했다. 그리고 어차피 자신이 저지른 일이 아니니까 경찰에 가서 자수를 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왠지 그냥 그러기엔 너무나도 억울했다.

- 그런데 왜 어젯밤만 들린 거지?

지호는 그 곳에 건물이 들어설 때부터 살고 있었지만, 어제와 같은 흐느낌 소리를 들은 것은 처음이었기에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딱히 어디로 숨을 곳도 없었기에 지호는 일단 이곳을 피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지난 밤 옷을 그대로 입고 있었기에 주머니에는 지갑과 핸드폰이 그대로 있다는 게 그나마 다행스러웠다.

지호는 은행에 들러 서둘러 돈을 뽑은 다음 버스를 타고 지방 쪽으로 향했다. 아무래도 서울에 있으면 금방 잡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 아무튼 가서 생각해 보자.

초등학교 수업이 끝났는지 주택가 근처에 있는 PC방은 몇몇 아이들이 시끄럽게 떠들면서 게임을 하고 있었다.

지호는 강릉의 어느 동네 PC방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는 한쪽 구석 자리에서 의자 깊숙이 앉았다. 모니터에는 다양한 심령사진들이 먼저 떴고, 여러 블로그 글들이 스쳐 지나갔다.

신문 기사도 있었고, 게시판 글들도 스쳐지나갔다. 지호는 자신이 경험한 일을 검색해 보았지만 딱히 알아볼 것도, 알 수 있는 것도 없었다.

- 젠장.. 어떻게 해야 되는 거지.

머리를 싸쥐고 앉아서 한참 고민을 하다가 다시 컴퓨터로 눈을 돌렸다. 아무 생각 없이 마우스를 클릭하다가 게시물 중 이상한 글을 발견하였다.

'당신이 경험한, 그러나 일상적이지 않은 일들.'

- 이게 뭐지?

지호는 그 글을 클릭해보았다. 그러자 한 사이트로 연결이 되었다. 그 사이트는 검은 배경에 단 네 줄의 글만 보였다.

당신이 경험한, 그러나 일상적이지 않은 일들.

그들은 이해하지 못하지만, 우리는 이해할 수 있는 일들.

믿을 수 없지만, 당신에게 일어난,

당신이 알고자 하는 것을 우리에게 말하라.

지호는 엔터를 클릭했다. 그러자 게시 글을 쓰는 화면이 나왔다. 지호는 '이게 뭐지'하는 생각이 들어 화면을 닫으려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 이거 애들한테 들었던 해커가 운영한다는 곳인가?

지호는 다른 게시 글들은 볼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떨렁 제목과 내용 치는 공간만 있는 그 곳이 이상했지만, 떨리는 손으로 타자를 치기 시작했다.

아마도 믿지 못하실 겁니다. 저는 죽은 사람의 환영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환영으로 인해 그 사람의 시신을 찾았습니다. 그것 때문에 제가 살인범으로 몰린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전....... 괴물일까요?

지호가 타자를 마치고 확인 버튼을 클릭하자 딩동 소리와 함께 '접수되었음.'라는 화면이 보였다. 그걸로 끝이었다.

지호는 뭔가 속은 듯 한 느낌이었다. 아무런 피드백도 없고, 전 화면으로 되돌아가기도 없었다. 더욱이 자신이 쓴 글조차 볼 수가 없었다. 화면에서 보이는 것은 처음 보았던 화면뿐이었다.

- 젠장. 혼자 미친 짓한 거야?

지호는 그렇게 투덜거리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방식으로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을 해결할 수는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지호는 다시 머리를 감싼 채 컴퓨터 앞에 엎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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