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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계(逐界)-쫓겨난 이들의 세계-247화 (247/309)

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축계 Pilot - 1. 서울의 밤하늘(2)

저 멀리서 새벽이 밝아오는 여명이 원룸 골목길을 가득 메웠다. 붉은 빛은 건물을 황금색으로 물들였고, 이른 아침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황금빛 세상을 조우하고 있었다.

1층에 사는 기혁과 창수는 지난 밤 프로젝트로 뜬눈으로 밤을 새어 두 눈은 퀭했다. 프로젝트도 프로젝트였지만 밤새 들리는 이상한 소리에 더욱 신경이 예민했다.

급한 프로젝트만 아니었어도 밖으로 나와 그 소리의 정체를 확인하고 싶었지만, 자기들 코가 석 자인지라 밖의 소리는 무시했었다. 그러나 프로젝트가 다 끝나자 그 소리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했고, 두 사람은 담배를 물고 얘기를 했다.

- 무슨 소리 같아?

기혁이 마지막 프레젠테이션 화면을 확인하고 저장 버튼을 누른 후에 창수에게 물었다. 창수는 밤을 새서 퀭한 얼굴로 고개를 저으며 귀찮다는 듯이 말했다.

- 글쎄, 지하 공사하나?

창수의 말에 기혁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 무슨 공사를 새벽에 하냐?

창수는 담배를 비벼 끄며 말했다.

- 수도 공사 같은 건 새벽에 하지 않나? 낮에는 사람들이 사용하니까.

- 그런가?

기혁은 같이 재떨이에 담배를 비비며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그 때 기혁이 창수에게 뭔가 흥미롭다는 듯이 말했다.

- 내려가 볼까?

하지만 창수는 여전히 귀찮은 듯 한 표정으로 말했다.

- 뭐 하러 내려가? 얼른 씻고 나갈 준비나 하자.

- 그래.

기혁이 호기심을 접고 욕실로 들어가자 창수는 침대에 벌렁 누웠다.

- 어? 물 잘 나오는데? 수도 공사 아닌가?

욕실 안에서 기혁이 물을 틀어보고는 창수에게 말했다. 하지만 창수는 그게 뭐 별 거냐는 듯이 대꾸했다.

- 무슨 공사겠지. 암튼 일찍 가서 준비할 게 많아.

- 그래도 뭔가 이상하지 않아?

기혁이 샤워를 하며 밖에 소리쳤지만, 창수는 지난밤 피곤이 한꺼번에 밀려왔는지 낮게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샤워를 마치고 나온 기혁은 창수를 깨우며 말했다.

- 그래도 나가면서 주인아저씨한테 한마디 하고 가자. 밤새 저 소리 때문에 짜증났다고.

잠이 덜 깼는지 창수는 고개를 도리도리하며 정신을 차리다가 여전히 들리는 쿵쿵 소리에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 젠장, 저 소리만 아니었어도 두 시간은 먼저 풀었겠다.

창수는 욕실로 들어가며 투덜거렸다. 등교 준비를 마친 두 사람이 계단을 걸어 올라가 주인집이 있는 4층 현관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안에서 잠에서 덜 깬 눈을 한 중년의 사내가 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조금은 뚱한 표정으로 하품을 하면서 두 학생을 쳐다보았다.

- 아침부터 무슨 일들이야?

집주인의 뚱한 목소리에 올라올 때까지 씩씩거렸던 창수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 아침부터 죄송한데요. 지하실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서요.

- 지하실?

집주인은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냐는 듯이 두 학생을 쳐다보았다.

- 네. 새벽에 내내 이상한 소리가 들리더니 지금까지 들리고 있어요.

그러자 집주인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 이상한 소리라고?

집주인이 복도로 나와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그러자 어디선가 '쿵쿵'하는 벽을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간헐적으로 멈췄다가 계속되는 소리에 집주인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 이게 뭔 소리지?

집주인의 말에 창수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 밤새도록 들렸어요.

집주인은 바지춤을 추켜올리고 안으로 들어가 골프채를 들고 나왔다. 그리고는 창수와 기혁을 보며 말했다.

- 한번 가 보자구.

집주인의 말에 창수는 당황하며 말했다.

- 아니 저희는...

하지만 집주인은 막무가내로 먼저 앞장을 섰고, 창수와 기혁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다가 영문도 모르고 집주인을 따라 아래로 내려왔다.

그러다가 두 학생도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 옆에 놓여 있는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들었다. 세 사람은 조심스럽게 지하실로 내려갔다.

- 몇 시야?

기혁이 창수에게 묻자 창수가 시계를 보고 대답했다.

- 일곱 시 삼십 분.

기혁은 아직 시간이 조금 있다는 걸 알고는 고개를 끄떡이며 창수 앞에 섰다. 조심스럽게 아래로 내려가던 창수가 말을 했다.

- 공사는 아닌가 보네. 아저씨도 모르는 걸 보니까.

기혁은 창수의 말에 고개를 끄떡였다. 사방이 황금빛이어서 그런지 굳게 닫혀 있는 지하실 앞으로도 황금빛 비단이 펼쳐진 것 같은 햇살이 주단처럼 깔렸다.

그러나 그런 빛도 지하실 문에까지는 닿지 않았다. 지하실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을 슬쩍 엿보았지만, 온통 물건이 쌓여 있기도 하려니와 빛이 들지 않아서인지 무척이나 어두웠다.

- 쿵.. 쿵...

그 어둠을 뚫고 갑자기 '쿵'하는 소리가 크게 들리자 세 사람은 동시에 걸음을 멈추었다. 깜짝 놀란 기혁과 창수는 한 걸음 물러나려 했지만, 집주인이 옆에서 완강하게 서 있는 바람에 그 자리에 우뚝 서게 되었다. 집주인은 골프채에 더욱 힘을 주었다.

- 어떤 놈의 자식이...

집주인은 화가 난 목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리고 한 걸음 앞으로 내딛자 다시 '쿵, 쿵'하는 콘크리트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지하실 철문 앞에 세 사람이 멈춰 섰다.

집주인은 크게 심호흡을 한 번 하였다. 그 모습에 기혁과 창수도 덩달아 심호흡을 한 번 하였다. 그리고는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손에 꼭 쥐었다.

집주인은 갑자기 문고리에 손을 대고 문을 벌컥 열면서 안에다 대고 크게 소리를 쳤다.

- 어떤 놈이냐? 당장 나와!

집주인의 외침에 지하실은 순식간에 침묵에 휩싸였다. 침묵의 시간이 길어지자 집주인은 조심스럽게 안을 쳐다보았다. 안에서는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집주인은 골프채를 손에 들고 지하실 안으로 한 걸음 걸어 들어갔다. 그런데 그 순간 누군가가 갑자기 문을 밀치고 뛰어나갔다.

문 앞에 서 있던 집주인은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었고, 기혁과 창수는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든 채 멍하니 서서 그 광경을 쳐다보기만 하였다.

- 야! 이 녀석아!

엉덩방아를 찧은 집주인의 외침에 기혁은 퍼뜩 정신이 드는지 달려 나가는 이의 뒷모습을 쳐다보며 넋이 나간 듯이 말했다.

- 쟤는...

기혁이 도망가는 뒷모습을 보고 말을 했다.

- 어? 쟤는 2층에 사는 지혼데요.

기혁의 말에 집주인은 의아한 듯이 지하실 안쪽을 다시 쳐다보며 말했다.

- 저 자식 지하실에서 뭐한 거야?

집주인은 지하실 안을 쳐다보다가 여기저기 몹시 어질러져 있는 것을 보고는 불같이 화를 냈다.

- 저 새끼 뭐야?

창수는 집주인과 기혁이 이야기를 나눌 동안 지하실 안을 들여다보았다. 멀리서 흐린 플래시 불빛만 보였고, 그 불빛에 지하실에 쌓여 있는 물건들의 그림자가 괴물처럼 일렁거렸다.

밖에서 집주인이 지호에게 내뱉는 욕설을 들으면서 창수는 무언가에 이끌리듯 물건들 틈을 비집고 안으로 들어갔다.

- 어? 창수야! 안에서 뭐해?

밖에서 기혁이 창수를 부르자 창수는 안으로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 안에서 뭐했는지 한 번 보려고.

창수의 말에 기혁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 야! 그걸 왜 니가.......

기혁은 오지랖 넓게 행동하는 창수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어차피 집주인이 해야 할 일을 굳이 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생각도 창수의 비명 소리에 사라졌다.

- 아악~!

그 때 안에서 쓰레받기를 들고 들어간 창수의 비명이 들렸다. 그 비명 소리에 집주인과 기혁이 깜짝 놀라 안으로 들어갔다.

창수는 지하실 바닥에 누운 채 한 쪽 구석을 손으로 가리켜다. 두 사람은 어지럽게 땅이 파여 있는 바닥이 보였다. 그 옆으로는 지호가 밤새 깬 두꺼운 콘크리트 더미가 보였다.

그리고 창수가 가리킨 손가락 끝을 따라가 거무튀튀한 물체가 보였다. 기혁은 그 거무튀튀한 물체가 무엇인지 몰라 좀 더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 으악~!

그것은 미라처럼 쭈글쭈글한 시체의 한쪽 얼굴이었다. 기혁은 기겁을 하며 밖으로 뛰쳐나왔고, 집주인도 몹시 놀랐는지 그 자리에 우뚝 서서 움직이지 못했다.

기혁의 비명 소리에 창수 역시 바닥을 기다가 엉거주춤 밖으로 뛰쳐나오며 소리를 질렀다.

- 사, 사람이 죽었다!

창수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복도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고 기혁 역시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에 사람들이 뛰쳐나올 거라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문은 열리지 않았고, 복도에서 두 사람의 외침만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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