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Ep2 - 10. 그들의 실험실(4)(完)
- 하하하. 역시 자네로군. 노 박사의 말은 항상 빈틈이 없어 보인다니까. 하지만 가장 큰 전제가 잘못되었지. 미래를 알면 그렇게 흘러가게끔 만들 수 있지. 아니 설혹 그것이 진짜 미래가 아니어도 그렇게 만들 수 있는 것이지. 변화는 작은 흐름으로 이끌어낼 수 있다는 전근대적인 발상이 아니야. 전면적이고 전체적인 면을 바꾼다면 미래를 그렇게 되게 마련이지.
기계음의 말에 슈뢰딩거가 반박을 했다.
- 그건 조작입니다. 위대하신 그레고리님께서는 인간을 더 행복하고 잘 살 수 있도록 고민하셨습니다.
슈뢰딩거의 말에 기계음이 대답했다.
- 슈뢰딩거 박사. 당신은 이쪽의 일을 하기에 너무 이상적이고, 감성적이야. 세상의 어느 누구도 나 이외의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살도록 만들려고 노력한 사람은 없어. 다만 주어진 현실에 충실하다 보니 위인이 되고, 성인이 된 것이지. 자네도 알다시피 종교, 문화, 사회, 정치, 경제, 역사 어느 것 하나 인간 모두를 위해 존재한 적이 있었냔 말이지. 아무도 입 밖에 내진 않았지만, 그 모든 게 이기적인 인간의 산물일 뿐이야.
기계음의 장황한 설명에 슈뢰딩거는 고개를 저었다.
- 만약 당신이 그 분이라면 제가 크게 착각한 것 같군요. 이전에 저지른 일들이야 아직 적응이 안 되어 실수를 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그렇지 않군요. 제가 홈즈와 에드워드와 함께 그린 세상은 모두가 아프지 않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었습니다. 비록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잘못도 하고, 실수도 했지만 그 본질은 인류의 행복이었습니다.
슈뢰딩거의 말에 기계음이 비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 모두 아프지 않고 행복하게, 그럼 영원히 그럴 수 있나? 영원히 그럴 수 없다는, 결국은 죽음에 이르는 길은 막을 수 없다는 것일 테고, 과연 그것이 행복인가?
슈뢰딩거는 기계음의 말을 듣고 근엄한 표정으로 말했다.
- 행복한 죽음도 있습니다.
기계음은 슈뢰딩거의 말에 시니컬하게 대꾸했다.
- 역설적이로군. 행복한 죽음이라니. 죽음은 불행이야. 행복과 어울릴 수 없는 말이야.
슈뢰딩거는 그 말에 고개를 크게 저었다.
- 저만큼 오래 살다보면 행복한 죽음을 꿈꿉니다.
슈뢰딩거의 말에 기계음은 침묵을 했다. 그리고는 조금은 허탈한 말투로 얘기를 했다.
- 죽음의 과정, 죽음의 원인, 죽음의 변화... 그 모든 것은 다 알겠는데 죽음의 행복은 모르겠군. 하하하. 한 방 얻어맞은 기분이군.
톰슨은 기계음의 말에 깜짝 놀랐다. 두 사람의 유대 관계나 역학 관계는 대강 짐작을 하고는 있었지만, 자신의 잘못, 자신이 모르는 것을 슈뢰딩거에게 솔직하게 인정할 정도라는 것이 톰슨의 입장에서는 놀랄 만한 일이었다.
자신에게는, 아니 세상 어느 누구에게도 틈을 보이지 않던 '그 분'이 슈뢰딩거에게는 한 수 접어주는 기분이 들었다.
- 자네와 철학적 논쟁을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야.
기계음의 말에 슈뢰딩거는 엄숙한 말투로 얘기를 했다.
- 철학적 논쟁이 아닙니다. 근원적인 인간성에 대한 것입니다.
기계음은 조금 지친다는 말투로 얘기를 했다.
- 자, 그럼 이제 어떻게 할까? 자네에게 내 엉덩이를 내밀어 볼기라도 맞아야 하나?
슈뢰딩거는 낮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 더 이상 이런 우스꽝스러운 장난은 안 됩니다.
슈뢰딩거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톰슨을 보며 말했다.
- 자네도 이젠 자네 본업으로 돌아가게나.
슈뢰딩거의 말에 톰슨이 조금은 뚱한 표정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허공에서는 톰슨에게 하는 말인지 아니면 슈뢰딩거에게 하는 말인지 모를 말이 나왔다.
- 본업이라... 본업이 뭔지 모르겠군.
허공에서 나온 말에 슈뢰딩거가 말을 했다.
- 각자가 맡은 일을 하는 것이 본업입니다. 톰슨은 톰슨 병원을 운영하는 것이 본업이지요. 저는 연구를 하고, 조직을 올바른 길로 안내하는 게 제 일입니다.
- 그럼 내 본업은 뭐지?
기계음의 말에 슈뢰딩거가 엄한 말투로 얘기를 했다.
- 그 분의 뜻을 올바르게 펼치는 것입니다.
슈뢰딩거의 말에 기계음이 잠시 침묵을 하다가 말했다.
- 음... 그렇게 하지. 올바른 게 뭔지 잘 모르겠지만, 자네가 곧 가르쳐주겠지.
그리고는 톰슨에게 말했다.
- 자네도 당분간 가서 '본업'에 충실하면 좋겠군.
기계음은 유독 '본업'이란 말에 강조하여 말했다. 톰슨은 허공을 응시하다가 아주 작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톰슨은 허공에 인사를 하고, 슈뢰딩거를 보며 살짝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 조직을 잘 부탁드립니다.
슈뢰딩거는 톰슨의 말에 가시가 돋힌 걸 느꼈지만, 모른 채 하며 말했다.
- 자네야 말로 조직을 위해 열심히 해 주게.
슈뢰딩거의 말에 톰슨은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 저야 충실한 종복(從僕)이니까요.
그리고는 몸을 돌려 밖으로 나오며 톰슨은 입을 꽉 다물었다.
'슈뢰딩거 박사. 당신은 너무 나대. 조만간 내가 알아서 처리해 주지.'
톰슨은 그렇게 생각을 하고는 밀실 밖으로 나갔다. 슈뢰딩거는 허공을 보며 말했다.
- 더 이상 이런 일은 안 됩니다. 이런 일을 하시려면 저에게 상의를 하시던가 아니면....
슈뢰딩거의 말에 기계음이 대답했다.
- 앞으로 자네와 상의를 하도록 하지. 그러니까 다음 말은 하지 말게나.
슈뢰딩거는 점점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고 있는 이 '괴물'에 대해 애증의 감점이 피어올랐다.
자신이 이렇게 만든 것 같아 마음이 아프면서도 어쩌면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디까지가 그의 한계인지, 어디까지가 그의 진심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 저는 당분간 노벨 위원회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그러니 당분간은 뵐 수 없을 것 같습니다.
- 음... 그렇군. 그럼 나도 당분간은 전에 하던 일을 마저 해야겠군.
기계음의 말에 슈뢰딩거가 조금은 엄한 말투로 말했다.
- 전에 하던 일이 이런 장난 같은 일이 아니었으면 합니다.
슈뢰딩거의 말에 기계음이 말했다.
- 글쎄... 장난 같은 일이라...
슈뢰딩거가 그 말에 무언가 말을 하려하자 기계음이 먼저 말을 꺼냈다.
- 자네가 걱정할 일은 안 하지. 그리고...
기계음의 말에 슈뢰딩거가 허공을 응시했다.
- 내가 톰슨은 최대한 막아보겠지만, 자네도 톰슨을 조심하게.
슈뢰딩거는 기계음의 말에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 야심가의 돌발 행동은 항상 문제가 되겠죠.
슈뢰딩거의 말에 기계음이 말을 이었다.
- 그렇군. 자네도 알고 있다니 다행이야.
- 그런 적의(敵意)는 누구나 느낄 수 있는 법이지요. 특히나 저처럼 죽음을 앞둔 이들에게는요.
슈뢰딩거의 말에 기계음이 버럭 소리를 쳤다.
- 자꾸 죽음에 대해 얘기를 하는데, 자네는 본체 아니면 의미가 없어. 자네도 알지 않나, 복제품의 한계를.
슈뢰딩거는 그 말에 껄껄 웃었다.
- 저의 안위에 대해 그리 신경을 많이 쓰시는 줄은 몰랐습니다. 하하하.
슈뢰딩거의 웃음에 기계음은 조금은 처진 목소리로 말을 했다.
- 자네는... 내게 아버지 같은 존재거든.
기계음의 말에 슈뢰딩거는 눈이 커다래졌다. 그리고 기계음이 들리는 허공을 응시했다. 그리고 과거 그레고리 2세의 상황을 떠올렸다.
'이.. 이건... 성품까지 같아지는 건가?'
슈뢰딩거는 그 말에 고개를 저었다.
- 아.. 아버지라뇨. 그런 말도 안 되는..
슈뢰딩거의 말에 기계음이 말했다.
- 끊임없이 부정을 해 봤지만, 내 안의 결론이 그렇게 내려지는 걸 어떻게 하겠나.
슈뢰딩거는 그 말에 긴 침묵을 했다. 기계음 역시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한참 만에 슈뢰딩거가 입을 열고 말했다.
- 아무튼 당분간은 에릭슨 박사가 조직의 일을 맡아서 볼 겁니다. 상의하실 일이 있으면 에릭슨 박사와 하시면 될 겁니다.
그렇게 말을 하고 슈뢰딩거는 밀실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뒤에서 기계음이 들렸다.
- 자네와 함께여서 기쁘네.
슈뢰딩거는 뒤를 돌아 살짝 고개를 숙이고 밖으로 나갔다. 기계음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 스파이를 잡으면 자네와 관계를 알겠지. 흠...
기계음은 버튼을 누르고 어디론가 이동을 했다.
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 [완결 공지] 축계(逐界) - 쫓겨난 이들의 세계 에피소드 2 완결
안녕하세요. 글쟁이 구라도사입니다.
오늘 마지막으로 미루어 두었던 부분 업데이트를 모두 완료했습니다.
원래 에피소드로 계획한 것이 아니라 파일럿으로 계획한 것이었고, 내용도 19금이었는데, 부랴부랴 19금 부분을 걷어내느라 글이 전보다(뭐 이전에도 그랬지만...) 더 조악합니다.
더욱이 매일매일 연재를 하고자 했지만 목구멍과 일상에 얽매이다 보니 업데이트조차 띄엄띄엄했답니다.
양질의 글과 안정적인 업데이트가 있어야 독자님들께서 '좋아요'와 '별점' 그리고 댓글을 많이 남겨주실 텐데 두 가지 모두 받쳐주지 않으니... ㅜㅜ
아무튼 어찌어찌하여 에피소드 2. 증발이 끝났습니다.
현재까지 1, 2, 3장, 에피소드 1, 2가 완결된 상태이고, 예전에 썼던 파일럿은 수정이 되었답니다. 아직 에피소드 3은 집필 중입니다. 현재까지 150페이지가량 진행이 된 상태이고, 에피소드 4 역시 130페이지 정도 진행된 상황입니다.
결론은 어느 것도 완결이 되지 않았다는 거죠. ㅜㅡ
그래서...
순서와 관계없는, 말 그대로 전혀 생뚱맞은 '파일럿'을 연재하도록 하겠습니다. 파일럿만 완결된 상태니까요. *^^*
파일럿을 연재하는 동안 에피소드 3를 완결하게 되면 마찬가지로 바로 이어서 연재를 하겠지만, 만약 완결이 안 되면...
뭐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되겠죠. ^^
아무튼 지금은 주변이 온통 혼란스러운 관계로 길게 후기를 쓰고 싶으나 쓸 수 없답니다. (지금 너무 어수선해요.. ㅜㅡ)
곧 파일럿과 함께 돌아올 예정이니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이번엔 진짜 조금입니다. *^^*)
얼른 나머지 에피소드들도 쓰고 프리퀄인 0장도 마무리 해야 되는데... ㅜㅜ
암튼.. 암튼...
곧 찾아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